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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정이슬의 비참한 최후
199. 악녀 정이슬의 비참한 최후
“푹 자. 지금은 잠만큼 좋은 게 없어.”
“옆에 있을 거지.”
“어디 안 가. 걱정하지 말고 자.”
“고마워. 오빠.”
기운이 쭉 빠져 집에 들어온 하린이의 손을 잡고 3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혔다. 그리곤 품에 안고 팔베개를 해줬다.
마음이 무겁고 아플 때는 자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마음속에 가득 찼던 검은 먹구름도 걷히고 찬란한 아침이 찾아온다.
“오빠.”
“어?”
“곤히 잠드셨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급한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괜찮아. 그런데 무슨 일인데 그래?”
“전화 받으세요. 은하 언니예요.”
“바꾸지 말고 무슨 내용인지 듣고 전달해주면 되잖아?”
“직접 받으셔야 해요. 제가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에요.”
“알았어.”
하린이를 재우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하린이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 한 시간 넘게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하린이만큼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깊이 잠들어 하연이가 열 번 넘게 불러도 일어나지 않아 흔들고 나서야 간신히 깨울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형필아. 놀라지 마.”
“안 놀랄 테니까 빨리 말해.”
“1시간 전에 정이슬 죽었어.”
“.......”
당황스럽긴 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하린이와 정이슬을 대화하는 내용을 전화기 너머로 들으며 정이슬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실행할 줄은 몰랐다. 사형이 확정되면 그때 자살할 것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죽었어?”
“하린이 면회가 끝나고 정이슬 엄마가 면회를 왔어. 그리고 얼마 후 독약을 먹고 자살했어.”
“어떤 독약?”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발표가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호흡곤란과 심근마비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교도관 얘기로 봐서 이은수가 먹은 아코니틴일 가능성이 아주 커.”
“정이슬 엄마가 왜 딸인 정이슬에게 독약을 줘?”
“교도관 말로는 1차 공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낮이고 밤이고 잠을 못 잤다고 했어. 시도 때도 없이 비명을 질러 주의도 여러 번 받기도 했고. 면회실에서 엄마에게 죽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었나 봐. 교도관이 왔다 갔다 하다 여러 번 들었다고 했어.”
“그렇다고 딸에게 독약을 준다는 게 말이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딸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잘 알아. 아빠는 몰라도 엄마는 모를 수가 없어. 정이슬 엄마도 정이슬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을 거야. 차마 말을 못 했을 뿐이지. 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땠을 것 같아?”
“많이 괴로웠겠지.”
“괴로운 정도가 아니었을 거야.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거야. 딸을 대신해 용서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을 거야. 나라면 그랬을 테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정이슬의 요구를 들어줬을 거야.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딸을 잘못 키운 미안함에. 그리고 딸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사형이 구형되지 않아도 분위기가 최소 무기징역이라 평생 교도소에서 썩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겠지. 그런 마음이 모두 더해져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 거야.”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부모라면 그래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은택의 엄마처럼 많은 부모가 자식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감싸기에만 바빴다.
그 때문에 많은 아이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로 자랐다. 정이슬의 부모는 그런 못된 부모는 아니었다.
정이슬이 악녀가 되긴 했지만, 그건 두 분의 잘못이 아니었다. 정이슬의 본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못된 친구를 만나 나쁜 길로 들어설 수도 있었고, 정이슬처럼 본성에 문제가 있어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해 부모만 탓할 순 없었다.
정이슬의 부모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두 분 모두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했고, 이웃에게도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
정이슬의 아버지가 딸의 무죄를 부르짖은 건 부모라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 잘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이 사형당하기를 바라겠는가? 천륜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동반 자살한 거야?”
“사람들이 악녀라고 욕해도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딸이니까 혼자 보낼 수 없었겠지.”
정이슬의 고통을 보다 못한 엄마가 아코니틴을 몰래 숨겨가지고 구치소 면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이슬과 같이 사이좋게 주스에 나눠서 타 마신 후 생을 마감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정이슬에게 엄마가 해줄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하나 더 있어.”
“또 있어?”
“정이슬 아버지도 돌아가셨어. 정이슬과 엄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셨어. 20층 건물에서 떨어져 손쓸 사이도 없이 죽었어.”
“하아...”
나와 하린이, 하연이의 가장 큰 적 정이슬이 사라졌다. 그리고 정이슬의 아버지와 엄마도 사라져 우릴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정이슬의 부모도 사라졌다.
뿌리까지 깨끗이 뽑았지만, 마음이 편하기는커녕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너무 무거워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나로 인해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음이 무겁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었다.
“형필아.”
“어.”
“자책하지 마. 네가 죽인 거 아니니까. 그들 스스로 그렇게 만든 거야. 자신들이 만든 그물에 걸려 죽은 거야. 동정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
“알아.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
“사람이 죽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나 오래 끌진 마. 너를 바라보는 눈이 한둘 아니야. 네가 힘이 빠져 있으면 모두가 힘들어해.”
“오늘 하루만 그럴게.”
“그래. 하루쯤은 그래도 돼.”
은하 말처럼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으면 하린이와 하연이는 물론 다현이네와 이범석 상사, 독수리 경호팀 모두 내 눈치를 봤다. 내가 갑질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들을 이끌어가는 대표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말을 않고 있어도 평온한 모습을 보이면 집안에 활기가 돌고 웃음꽃이 피었다.
내 표정 하나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은하가 오래 끌지 말라고 한 건 이 때문이었다.
“언니 일어나면 많이 놀랄 텐데 어쩌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해야지.”
늦어도 1~2시간 후면 TV와 인터넷에서 정이슬과 부모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이다.
휴대전화도 안 되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는 무인도에 가지 않는 한 정이슬의 죽음을 숨길 수 없었다.
“저만 해도 심장이 떨리고 손이 부들거려 참을 수가 없는데, 언니는 저보다 열 배는 더 할 거예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야.”
“이슬이 언니 자살한 것도 큰 충격이지만, 아줌마와 아저씨까지 죽은 건 너무 가슴 떨리는 일이에요. 언니 그 얘기 들으면 쓰러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도 놀라서 쓰러질 거예요.”
“은하에게 전화해서 아는 의사 있는지 물어봐. 있으면 좀 보내달라고 해.”
“네.”
쓰러진 사람도 없는데 의사를 부르는 건 요란 떠는 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하린이뿐만 아니라 장모님과 할머님도 정이슬네 가족이 모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쓰러질 수도 있었다.
충격이 커도 하린이는 젊어 큰일이 일어나진 않지만, 장모님과 할머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것처럼 쓰러지기 전에 의사를 대기시키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을 당하지 않는 길이었다.
“은하 언니 사촌 언니가 XXX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래요. 오늘 노는 날이라고 함께 온대요.”
“같이 온다고?”
“네.”
“혼자 오라고 하면 안 돼?”
“사촌 언니 혼자 있으면 뻘쭘하잖아요. 오늘은 오빠가 참으세요.”
“하아... 알았어.”
기회가 생기자 은하가 집에 쳐들어왔다. 생일 날 호텔에서 만난 후부터 틈만 나면 집으로 오려고 했지만, 다현이네 위치가 발각될 수 있어 안 된다며 간신히 못 오게 했다.
지금도 장부의 출처가 드러날 수도 있어 오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은하가 장부를 언론에 보냈다는 것을 정부도 모르고, 나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해 오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은하 사촌 언니만 혼자 오라고 할 수도 없어 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은하 사촌 언니 김송이예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형필입니다.”
“은하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은하 첫사랑이라고.”
“아. 네.”
“언니, 그런 얘기는 왜 해?”
“내가 없는 얘기 한 것도 아닌데 왜 발끈하고 그래?”
“그런 얘기는 둘이 있을 때만 하는 거잖아.”
“말하면 안 된다는 말도 하지 않잖아.”
“정말... 형필아, 예전에 한 번 한 얘기한 걸 언니가 잊지 않고 있었나 봐. 최근에 얘기한 적 없었어. 오해하지 마.”
“며칠 전에도 말했잖아. 잘하면 다시 연결될 것 같다고.”
“언니~”
“은하야, 괜찮아. 화 내지 않아도 돼.”
“미안해.”
“괜찮다니까.”
나와 은하 사이를 연결시켜 주려고 사촌 언니가 고의로 말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나와 다시 사귀고 싶어 하는 은하의 간절한 마음도 알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은하는 평생 나 하나만 보며 살았다. 그런 은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도 못하면서 화를 내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린이는?”
“자고 있어.”
“충격이 많이 컸을 거야. 정이슬 모습이 아주 충격적이었거든.”
“어땠는데?”
“머리는 산발에, 혈색은 창백하고, 눈은 충혈돼 있었어. 밖에서 보는 나도 겁이 날 지경이었어. 그런 모습을 봤으니 충격이 엄청났겠지.”
전화기를 화상 통화로 해놓은 것이 아니라서 대화만 들을 수 있을 뿐 정이슬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다.
상대의 모습을 보며 대화 내용을 듣는 것과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소리만 듣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괴기 영화를 볼 때 소리를 끄고 보면 전혀 무섭지 않았다. 반대로 소리만 듣고 화면을 끄면 그 또한 크게 두렵지 않다.
화면과 소리가 합쳐질 때 공포가 배가 되는 것으로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밋밋해 재미가 없었다.
그처럼 내가 소리만 듣고 느낀 정이슬의 상태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하린이가 느낀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로 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화를 냈으니...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