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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초경사(打草驚蛇)
192.
“대포폰 쓰는 거 의미 없을 것 같은데. 도청하면 그만이니까.”
“핸드폰에 도청방지장치를 달아도 놈들이 사무실을 도청할 수 있습니다.”
“이연숙 중사와 박미향 중사로 경호원을 바꾸고, 너와의 통화는 지정된 장소에만 하라고 하면 되잖아. 그 방은 이 중사와 박 중사가 매일 도청장치를 했는지 기계로 훑으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하루에 1~2통화씩 꼬박꼬박 통화하다가 전화를 뚝 끊어버리면 그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범석 상사는 통화는 전처럼 정상적으로 하면서 통화내용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집을 옮길 생각입니다.”
“왜?”
“너무 좁고 주변 관리가 안 돼서요.”
“위치는 나쁘지 않은데, 사방에서 감시하기가 쉬운 자리긴 하지. 어디로 옮길 생각이야?”
“서울 근교에 대지가 넓은 땅을 구해 집을 지을 생각입니다.”
“그러면 9명으로 부족하잖아?”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믿을 수 없다면 적은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의리 하나로 목숨을 거는 군인을 찾아보기 어렵지. 하지만 모두 돈만 밝히는 건 아니야. 아직도 신의를 목숨처럼 여기는 놈들도 있어.”
“상사님이 믿으면 저도 믿습니다.”
“알았어. 진짜배기만 추려서 좀 더 보강할게.”
“네.”
“대신 네가 독수리 경호회사 대표니까 돈 많이 든다고 욕하면 안 된다. 알았지?”
“제가 왜 대표입니까?”
“차 살 때 참여하기로 했잖아. 잊었어?”
“그때도 대표는 상사님이 하시기로 했습니다.”
“다 네놈 돈으로 움직이고 있어. 그러면 당연히 네가 사장이지, 어떻게 월급 받는 내가 사장이냐?”
“전 죽어도 사장 안 합니다. 사장은 상사님입니다.”
“나보러 바지 사장하라는 거냐? 싫다.”
“누가 바지사장 취급을 한다는 겁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상사님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 가진 놈이 장땡이야. 돈을 안 주는데 내가 어떻게 네 말을 안들을 수 있어? 나 꼭두각시놀이 하고 싶지 않다.”
“말도 안 되는 궤변 그만 늘어놓으십시오. 그럴 일 없다는 거 상사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
“형필아.”
“네.”
“군대나 경호회사나 명령 전달이 확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망이 되는 거야. 너도 알잖아?”
“무슨 뜻인지 압니다. 하지만 김상호 상사님, 박무윤 상사님, 정동일 상사님, 김영우 중사님, 손필영 중사님, 김동양 중사님, 이연숙 중사님, 박미향 중사님 모두 상사님 보고 회사에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제가 대표가 되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배신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들은 나를 무조건 믿고 따른다. 그래서 네게 운명을 맡기고 함께하는 거다. 이번에도 내 판단을 믿고 따를 거야.”
“저도 그럴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상사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봅니다.”
“나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 아니다. 야근 수당도 이중으로 올렸고, 밥값도 5,000원짜리 먹고 10,000원짜리 먹었다고 올렸다. 기름값도 조금씩 꼬불치고 있고.”
“나가서 종일 고생하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더 올리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밤새 좁은 차 안에서 잠도 못 자고 놈들 나오는지 지켜보면서 시간당 5.000원으로 계산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공과 사는 분명히 해주십시오. 아는 사람이라고 싸게 해주려고 발버둥 치지 마시고요.”
“너 계속 그러면 나 하린이가 해준 밥 안 먹는다.”
“겨우 그게 협박입니까?”
“이 나이 먹고 일 못 하겠다고 할 순 없잖아. 그러니 어쩌겠어. 하린이라도 괴롭혀야지. 하린이 내가 밥 잘 먹으면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안 먹어봐라. 걱정돼서 잠도 못 잘 거다. 음하하하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거 생각했으면 특전사 가지도 않았고, 제대하고 이런 일 하지도 않았어. 내 목숨 걱정하지 말고 네 목숨이나 잘 챙겨.”
“제 목숨이야 상사님이 챙겨주실 거잖습니까?”
“내가 왜? 내 목숨 챙기기도 바빠. 허튼소리 그만하고 내일 중으로 대표 이사 이름 바꿀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하아... 알겠습니다.”
이범석 상사는 동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자기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면서 동료와 부하가 힘들어하면 슬그머니 월급봉투를 쥐여주고 가는 바보 같은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 나를 잊겠는가? 그것도 마음에 들어 평생 함께하려고 했던 부하를.
정말 고마웠다.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친구만큼 소중한 친구는 없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힘이 됐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웠다. 이건 옆에 앉아 함께 소주를 마셔주며 위로 몇 마디 하는 일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었다. 내가 뭐라고 이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빠, 조금 전에 사촌 언니 전화 왔었어.”
“땅 나왔어?”
“땅하고 건물 다.”
“살던 집이야?”
“아니. 건물을 다 지은 상태에서 건물주가 부도가 나서 경매로 나왔어.”
“사고 나서 문제 되는 거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아주 깨끗하대.”
“어딘데?”
“경기도 광주. 팔당호 바로 옆이야. 위치 괜찮지?”
“어. 좋아. 언제 볼 수 있어?”
“내일 아침에 가도 돼.”
“그럼 간다고 전화 드려.”
“알았어.”
경기도 광주면 거리도 적당하고, 팔당호가 보이면 경치도 나쁘지 않아 위치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은밀한 집으로 경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주변 경관이 좋아서 나쁠 건 없었다.
“안녕하세요. 하린이, 하연이 사촌 언니 송하정이에요.”
“전형필입니다.”
“올해 안에 결혼한다는 얘기 들었어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한 차로 가기 위해 사촌 언니 송하정이 아침 일찍 집에 찾아왔다. 하린이보다 7살 많은 송하정은 XX대학교 부동산학과를 3년 전에 졸업하고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동산컨설팅 업체에 취직해 근무 중이었다.
장인어른은 3남 2녀 중 맏이셨고, 송하정은 둘째 삼촌한테서 태어난 첫째 딸로 둘째 삼촌도 장인어른처럼 결혼을 일찍 해 송하정이 하린이보다 7살 많았다.
사촌이라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엄마 쪽 영향인지 미모는 하린이와 하연이보다 많이 처졌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아주 흔해 이야깃거리도 안 됐다. 미모가 특출한 여자 연예인 중에는 형제자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닮지 않은 식구도 많았다.
성형을 심하게 해서 그런 연예인도 있었지만, 자연 미인도 그런 일이 잦았다. 생김새와 분위기는 딱 봐도 누구 동생, 누구 언니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예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못생겼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걸 억지로 삼켜야 하는 언니, 동생도 있었다.
송하정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린이와 비교하면 정말 안타깝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미모였다.
‘열 손가락도 모양이 제각각인 걸 어쩌겠어. 저것도 팔자지.’
사촌 언니가 알려주는 대로 2시간을 달려 하남나들목을 빠져나와 팔당대교를 건넜다.
팔당호를 끼고 10분쯤 달리다가 산으로 향하는 좁은 콘크리트 도로로 빠졌다. 5분쯤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다.
막다른 길에서 만난 철문은 좌우로 3m가 넘는 돌담이 쭉 이어져 있어 안가처럼 느껴졌다.
“아저씨. 어제 전화 드린 XXX 부동산컨설팅 송하정이에요.”
“들어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차가 멈춰 서자 철문 옆 경비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60대 아저씨가 나와 송하정이 내민 명함을 확인한 후 철문을 열어줬다.
지이이이잉
자동문이 열리자 좌측으로 비스듬히 휘어진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숲을 건들지 않고 별장을 지었는지 자연 그대로의 우거진 숲이 펼쳐지자 마음이 상쾌하게 해줬다.
천천히 숲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 들어가자 넓은 잔디밭 위에 하얀색 2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둥과 일부 벽을 빼고 모두 유리에 둘러싸인 집은 심플하면서도 우아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오빠, 이 집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제가 매일 꿈 꾸던 모습 그대로예요. 사요.”
“나도 하연이와 같은 생각이야. 특별한 문제 없으면 사자.”
“이 아가씨들이 집을 겉만 보고 사려고 하네. 제정신이야? 안에도 괜찮은지 봐야 사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겉이 이 정도면 속은 안 봐도 알 수 있어요. 무조건 좋을 거예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고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너희에게 집이나 차 알아보라는 말 절대 해선 안 되겠다. 과자로 지은 집도 예쁘다고 사겠어.”
“히잉.”
“우이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집 안도 구조가 아주 잘빠졌고, 자재도 최고로 좋은 것을 사용해 흠잡을 곳이 한 곳도 없었다.
1층에는 식당과 거실, 서재, 칵테일바, 헬스장 그리고 작은 수영장이 있었다. 길이가 10m밖에 안 돼 수영을 즐길 순 없지만, 하린이와 하연이의 미끈한 몸을 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2층은 침실 4개와 응접실이 있었다. 침실에는 사람 2~3명은 너끈히 들어가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실이 유리창에 붙어 있어 목욕을 즐기며 숲을 감상할 수 있었다.
건물 유리창도 모두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2중 유리창으로 색깔까지 들어가 눈이 부시지 않았다.
그리고 본채 뒤에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도 두 채나 있어 이범석 상사 일행과 도우미들이 사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촌 언니 송하정의 말에 따르면 20년 전에 땅을 산 주인은 자연이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다가 1년 전 공사를 시작해 완공 직전 회사가 부도나며 잠 한 번 못 자보고 경매로 나오게 됐다고 했다.
열심히 키우고 가꿔서 우리 좋은 일만 시킨 것으로 숲이 우거져 밖에서 집이 보이지 않았고, 담도 높아 감시 카메라만 달면 완벽한 요새였다.
그리고 본채 지하에는 커다란 창고와 냉장고가 있어 1년 치 음식은 충분히 보관할 수 있었고, 간이 발전기도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옥상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돼 있어 전기가 끊겨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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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