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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191화 (19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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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초경사(打草驚蛇)

191. 타초경사(打草驚蛇)

“오빠, 뉴스 보러 가요.”

“뉴스는 왜?”

“마림 재단 금품 살포 건에 대해 중간 수사 발표한다고 속보 떴어요.”

“다른 뉴스도 아니고 마림 재단 뉴스면 봐야지.”

이은수와 이은택이 죽었지만,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이만철도 사라져야 마림 재단과의 악연이 완전히 끝났다.

“XXX당 대표를 지낸 김모숭을 비롯해 감송회, 윤석헌, 최금환, 정욱임, 허대경... 총 23명의 전·현직 국회의원이 마림 재단에서 돈을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특별 수사팀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검찰과 경찰, 언론 등 129명에 대한 명단은 시간관계상 기자회견이 끝나면 따로 자료로 배포해 드리겠습니다.”

“마림 재단이 돈을 준 목적은 무엇입니까?”

“학교 설립, 부지 선정, 부지용도 변경, 사학법 개정, 학교폭력 무마, 성폭력 사건 은폐, 부정입학 축소 등 200여 건이 넘는 일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 부분도 내용이 워낙 많아 일일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자료로 배포해 드릴 테니 그걸 참조해주십시오.”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3,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소환은 언제, 누구부터 하는 겁니까?”

“내일부터 사안이 큰 순서대로 소환할 예정입니다.”

“이만철 회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재 건강이 매우 나빠 조사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당분간은 재단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입니다.”

“생명이 위독하다는 말이 있던데, 진짜입니까?”

“사실입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연명하고 있습니다.”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까?”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은수와 이은택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고 병이 악화해 그런 것이지 자살을 시도한 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이은수와 이은택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지만, 부모인 이만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금쪽같은 자식이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품에 안고 감싸는 게 부모였다. 그 때문에 두 아들을 인간말종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마저 욕할 수는 없었다.

이은수와 이은택이 자살한 날 충격을 받은 이만철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저승 문턱까지 갔던 이만철은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에... 돈의 위력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를 위중한 상태로 의식조차 없었다. 이만철은 운 좋게 숨이 붙어있었지만, 자식을 목숨보다 더 사랑한 이은택 엄마는 자식이 죽은 방법대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파출부가 발견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먼저 간 이은택이 애타게 불렀는지 가슴이 다 내려앉도록 심폐소생술을 하고도 숨이 돌아오지 않아 아들을 따라 저세상으로 갔다.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주치의 말로는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영영 깨어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럼 수사에 차질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이만철 이사장이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10원짜리 한 개를 준 것까지 아주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만철 회장이 없어도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죄를 입증하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XXX신문 조진웅 기자입니다. 정치인과 검찰, 경찰이 받은 돈 중 일부가 전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이 장부에 있습니까?”

“장부와 동영상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관련이 없다는 내용입니까?”

“그건 좀 더 수사해봐야 알 수 있는 일로 지금 뭐라 말씀드릴 내용이 아닙니다.”

“전임 대통령 친척 중에도 돈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왜 그 내용은 빠진 겁니까? 고의적으로 뺀 겁니까?”

“중간 수사 발표라 대략적인 내용만 말씀드린 겁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만간 보강 수사가 완료되면 그때 발표하겠습니다.”

“보강 수사 발표는 언제 하는 겁니까?”

“이것으로 중간 조사 수사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총경님! 총경님!”

조진웅 기자가 애타게 불렀지만, 특별수사팀을 맡은 김진수 총경은 황급히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

마림 재단 게이트가 속속 밝혀지자 국민의 관심은 돈을 받은 정치인과 검찰, 경찰, 언론에서 전임 대통령으로 옮겨갔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의 정치인과 100명이 넘는 검찰, 경찰, 언론인이 돈을 받고 마림 재단을 조직적으로 도왔다.

이런 일을 국가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던 전임 대통령이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더군다나 전임 대통령 친인척 2명도 검은돈을 받은 명단에 올라 있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또한, 마림 재단이 이런 일을 한 건 이만철 때만이 아니었다. 이만철의 아버지 이홍득과 조부 이연수 때부터 쭉 해오던 일로 전임 대통령 이전에도 비호세력이 있지 않았다면 마림 재단이 이토록 커질 순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이 이번에 드러난 정치인과 친인척, 검찰 등을 빼고도 더 많은 사람이 연루됐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전임과 전전임 대통령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다 우리 죽는 거 아니에요?”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만철과 마림 재단 문제로 끝날 수준이 아니잖아요. 청와대까지 엮이면 누가 장부를 보냈는지도 알게 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앙심을 품고 우리를 공격할지도 몰라요.”

“누가 보냈는지 절대 알 수 없어. 너도 알잖아?”

“그래도 걱정돼요. 상대는 국정원과 기무사, 검찰을 마음대로 움직였던 전임 대통령이에요. 지금은 뒤로 물러나 그때와 같은 힘은 없겠지만, 아직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요직에 있을 거예요. 그들을 이용하면 알아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하지도 않았지만, 알아낸다고 해도 우릴 어쩌지 못해. 대한민국이 아프리카 국가도 아니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나라 아니야.”

“누명 씌워서 죽이고, 사고로 위장해서 죽이고, 허위사실 유포해서 힘들게 만들고, 말도 안 되는 법으로 엮어서 재산 다 몰수한 적도 있잖아요.”

“그건 다 옛날얘기야. 지금은 그렇게 못해.”

“아닌데...”

“하연아, 오빠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있어도 오빠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우리는 오빠를 믿고 따르면 돼.”

“그런 뜻이 아니라 오빠가 다칠까 봐 걱정돼서 말한 거야.”

“오빠 강한 사람이야. 절대 다치지 않아.”

“오빠, 언니 말처럼 진짜 다치지 않을 거죠?”

“어.”

“알았어요. 다시는 이런 말 하지 않을게요. 전 오빠를 믿어요.”

“고마워!”

은하가 언론에 보낸 이은택 살인 사건과 마림 재단 정·재계 상납 장부는 편의점 택배를 이용해 보냈다.

그것도 수원과 청주, 대전 3개 도시 24개 편의점에서 선글라스와 모자, 마스크로 얼굴을 완벽히 가리고 보냈다.

집과 사무실 근처에서 보낸 게 아니라서 은하가 보냈다는 걸 알아낼 수 없었다. 혹시 몰라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은하를 의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금품 상납 장부도 나와 하린이, 하연이, 은하 이렇게 4명만 알았지 이범석 상사도 몰랐다.

문제는 은하가 이은택을 잡기 위해 기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블랙박스를 공개한 일이었다.

다현이네 사건을 맡은 변호사라서 사건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그와 같은 일을 했다고 해도 너무 깊숙이 연관돼 있어 의심을 피하기 어려웠다.

놈들이 은하를 의심하면 통화내역을 조사할 것이다. 현임도 아닌 전임 대통령이 무슨 힘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전임 대통령의 수족들이 아직도 많이 정·재계의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이들을 이용하면 불법이긴 했지만,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면 우리와 통화한 내역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화내용까진 알 순 없지만,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아내 나와 하린이, 하연이 뒤를 캘 수도 있었다.

‘생각이 너무 짧았어. 장부에 있는 명단을 봤으면 사건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하는데.’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상대를 이은수와 이은택으로만 생각해 허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표적을 누구로 삼느냐에 따라 보안 수준도 달라졌다. 처음부터 국회의원과 그 이상을 표적으로 삼았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사실은 시작도 안 했겠지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이은수와 이은택에만 맞춰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아 우리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했다.

또한, 은하도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하연이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했지만, 전임이나 전전임 대통령과 마림 재단이 엮여있다면 몹시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변호사를 바꾸고 잠적할 수도 없었다. 그건 은하와 우리가 그 일을 했다는 걸 놈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대비할 시간마저 잃게 된다.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린아, 지금 은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했지?”

“응.”

“어느 정도야?”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대형 로펌에서도 같이하자는 제안을 했어. 심지어 팬클럽까지 생겼어. 회원이 자그마치 10만 명이야.”

“은하에게 전화해서 TV 출연하고, 팬클럽 모임도 이른 시일 내에 가지라고 해. 그리고 사무실도 키우고 사회 문제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일할 변호사도 구하라고 하고.”

“은하 언니 많이 위험해?”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뜻이지 그런 거 아니야.”

“알았어.”

내가 무슨 뜻으로 그런 일을 하라고 했는지 하린이가 단번에 눈치챘다. 아니라고 말해도 똑똑한 하린이를 속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맞는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건 불안만 키우는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내가 확신을 심어주고 자신 있게 행동하면 하린이와 하연이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불안해하면 하린이와 하연이는 초조함과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중심을 잡으면 된다. 그러면 이번 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상사님, 대포폰 2대만 구해주십시오.”

“누구와 통화하게?”

“은하와 통화할 때 쓸 겁니다.”

“알았어.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말씀하십시오.”

“장부 건 우리와 관련 있는 거야?”

“네.”

이범석 상사가 우리와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 네 아니라 우리라고 말한 건 자신도 한배를 탄 식구라는 뜻이었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으로 확고한 뜻을 품고 말하는 이범석 상사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건 배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순순히 그렇다고 말했다. 나도 상사님을 믿고 있다고.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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