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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득이
188.
“미친 거 아니야? 만득이가 뭐야? 그게 이름이야?”
“오빠, 다른 이름은 다 돼도 만득이 만은 절대 안 돼요.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아이에게 만득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짓이에요.”
“만티고어니까 만득이잖아. 만득이! 입에 착착 달라붙네. 아주 마음에 들어. 만득이로 하겠습니다.
- 한 번 정한 이름은 바꿀 수 없습니다. 만득이로 하시겠습니까?
“예.”
- 만티코어 정령의 이름은 지금부터 ’만득이‘입니다.
“만득아!”
꺄르릉
“너도 마음에 들지? 그렇지?”
까르릉
“헉!”
“헐~”
하린이와 하연이의 안 된다는 비명을 무시하고 만티코어 정령의 이름을 만득이로 지었다.
그리고 만득이라고 다정하게 부르자 머리에 앉은 녀석도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낮게 까르릉 대며 웃었다.
“하연아, 알에서 나온 몬스터 중에 버퍼형도 있는지 알아봐.”
“싫어요. 이름 바꾸기 전에는 안 해줄 거예요.”
“한 번 정한 이름은 바꿀 수 없어.”
“바꿔달라고 하세요. 오빠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잖아요.”
“헛소리 그만하고 말한 거나 알아봐. 볼기 맞기 전에.”
“히잉.”
심통이 잔뜩 난 하연이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접속하게 했다.
몬스터는 유저처럼 직업을 구분 짓지 않았지만, 사용하는 스킬에 따라 탱커, 근거리 딜러, 마법사, 도적, 궁수, 버퍼 등으로 나뉘었다.
이름에 전사, 궁수, 마법사가 붙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으로 혼자 행동하는 몬스터보다는 무리 지어 사는 인간형 몬스터인 오크, 고블린, 코볼트, 리자드맨, 놀, 트롤, 오우거 등이 주로 이런 형태였다.
“현재 버퍼형 몬스터와 동물을 이용하는 조련사는 없어요. 만득이가... 이름 정말 구리네요.”
“알았으니까 하던 말이나 빨리해.”
“올라온 글에는 버퍼형 몬스터를 거느린 유저는 없어요.”
“처음이란 뜻이지?”
“그거야 알 수 없죠. 조련사에게 길들인 동물과 몬스터는 날카로운 칼과 같은데 그걸 다 말하진 않겠죠.”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수많은 자료가 있었지만, The Age of Hero에 관련된 모든 자료가 있는 건 아니었다.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알맹이가 없는 자료도 많았고, 확실하지 않은 자료, 거짓 자료도 많았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내야 볼 수 있는 아주 비싼 사이트였지만, 고급 정보만 다룬다는 증권가 찌라시처럼 거짓과 진실이 난무해 적당히 믿어야지 맹신했다가는 한 방 크게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만득이 레벨도 올리고 인스턴트 던전 입장권도 구하기 위해 국경수비대를 지나 검은 오크 왕국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빠르게 나아갔다. 5km를 전진하며 검은 오크 전사와 궁수, 기사 300여 마리를 잡자 만득이의 레벨이 2레벨이 됐다.
이름 : 만득이
종족 : 만티코어
클래스 : 버퍼
등급 : 유니크
레벨 : 2(다음 레벨 0/1,000)
충성도 : 100
스태미나 : 120/120
생명력 : 200/200
마 나 : 100/100
공격력 : 20
방어력 : 20
특수 능력 : 주인의 생명력 회복 속도 2% 향상
특이 사항 : 레벨이 오를 때마다 특수 능력 향상, 20레벨마다 새로운 능력 개방
경험치 획득 : 주인이 얻은 경험치의 10% 획득
레벨이 2가 된 만득이는 기대했던 크기 변화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특수 능력 주인의 생명력 회복 속도가 2배인 2% 올라 기분을 아주 흡족했다.
“나쁘지 않은데.”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지나치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말 하는 거 보니까 갖고 싶구나? 그렇지?“
“네.”
“줄까?”
“양도할 수도 있어요?”
“아니.”
“네에?”
“흐흐흐흐.”
“오빠, 지금 저 놀린 거예요?”
“응.”
“아우 못됐어. 남들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잘해준다고 하는데, 오빠는 점점 못돼지는 것 같아요.”
“못된 남자가 요즘 트렌드 아니었어?”
“내가 미쳤지. 못된 남자인지도 모르고 좋아했으니. 미쳤어. 미쳤어. 미친 거야.”
“후회해도 늦었어.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절대 놔주지 않아.”
“제가 물고기예요?”
“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인어!”
“사람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호호호호.”
3km를 더 전진하자 초원이 사라지고 늪지대가 나타났다. 늪도 그냥 늪이 아니라 세계 13대 마경(魔境, 악마가 사는 곳)이라 불리는 미국 애리조나 주의 맨착 늪지대처럼 아주 음산한 모습이었다.
길이가 36km에 수심이 최고 0.9m인 맨착 늪지대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 한낮에도 어둡고 컴컴했다.
그리고 나무 위에는 검은 독수리가 잔뜩 앉아 있었고, 늪에는 악어들이 우글거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런 모습도 사람들을 두려움을 떨게 했지만, 마경이라 불리게 된 건 유령 때문이었다.
대낮에도 유령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 지역 사람들도 두려워 늪지대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늪지대는 맨착 늪지대보다 더욱 기괴하고 위험했다. 30m가 넘는 아름드리나무가 회색 가지를 길게 늘어뜨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음산했고, 길이가 5~10m에 이르는 커다란 악어 몬스터도 늪지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썩은 통나무집 주위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밴시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통나무집이 200~300m마다 하나씩 있었고, 통나무집 한 채에 밴시가 4~5마리씩 있었다.
“여기 검은 오크 왕국 8대 위험지역이라고 불리는 곳 아닐까요?”
“8대 위험지역은 뭐야?”
“검은 오크 왕국에서 오크도 두려워 들어가지 않는 지역을 그렇게 불러요.”
“100레벨 보스 몬스터도 두려워하는 곳이 있어?”
“황제나 다름없는 검은 오크 대족장이 그런 곳에 가겠어요? 전사와 궁수, 기사들이 들어가지 않아 그렇게 불리겠죠.”
하연이 말이 맞았다. 아틸라 제국에도 미지의 숲, 얼어붙은 빙하지대, 죽음의 정글 등 들어가면 안 되는 금지가 여럿 있었다.
그곳을 황제가 차지하겠다고 우기면 수많은 병사와 기사, 마법사를 파견해 정벌할 수도 있었다.
아틸라 제국은 그만한 힘과 역량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황제도 그와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해봐야 얻을 게 없고 손해만 잔뜩 생겨 하지 않는 것이었다.
황제는 영원한 자리가 아니었다. 고난을 이겨내고 도전을 물리쳐야 지킬 수 있는 자리였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엉뚱한 짓을 하지 말아야 했다. 엉뚱한 짓이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고 아까운 병사를 금지에 밀어 넣는 짓이었다.
그렇게 했다간 금지를 없애 제국에 안정을 기했다는 호평보다는 제국의 기틀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폭군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은 황제로 기록될 것이었다.
100레벨 보스 몬스터 검은 오크 대족장도 아틸라 제국 황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르다면 혼자서도 8대 위험지역을 정벌할 힘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몬스터도 목숨은 하나였다. 만에 하나 자기보다 강한 상대가 그 안에 있다면 객기를 부리다 목숨만 잃는 꼴이었다.
100레벨 보스 몬스터가 우리에겐 하늘 같은 존재였지만, 놈들보다 더욱 강력한 몬스터가 The Age of Hero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 8대 위험지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까.
“밴시 잡아봤어?”
“아니요. 하지만 어떤 몬스터인지는 알아요.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서 봤어요.”
밴시(Banshee)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전설에 나오는 여자 유령으로 언데드 몬스터였다.
사람이 죽었을 때나, 죽은 후에 나타나 슬피 우는 여자 유령으로 원한을 가진 사람이 죽었을 때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레벨은?”
“75에서 85사이요.”
“높네.”
“레벨도 높지만, 더 무서운 건 정예와 보스가 사용하는 밴시의 통곡(Wail of the Banshee)이란 스킬이에요. 여기에 걸리면 한 방에 목숨을 잃어요.”
“100% 죽는 거야?”
“그렇진 않아요. 마법 저항력과 상태 이상 저항력에 영향을 받아요. 높은 유저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아주 낮은 유저는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죠.”
밴시는 정예와 보스 몬스터만 위험한 게 아니었다. 일반 몬스터도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손에서 차가운 한기를 쏘아대 맞으면 얼어붙거나 움직임이 느려졌고, 물리 데미지도 100% 면역이라 마법이나 상태 이상 스킬로만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슬립과 참 등 재우거나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도 면역으로 50레벨 보스 몬스터보다 힘든 상대였다.
다행스러운 건 언데드 몬스터라 내가 놈을 때릴 땐 데미지가 55% 증가하고, 맞을 땐 데미지가 50% 감소했다.
그리고 용기사 사이먼의 홀리메탈 블레이드에 붙은 중소형 몬스터 데미지 33% 증가 옵션도 적용돼 나에게는 크게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일반 몬스터는 비명 안 질러?”
“질러요.”
“그것도 즉사야?”
“아니요. 혼란이요.”
“골치 아프네.”
쉽게 생각했는데 복병이 숨어 있었다. 혼란은 움직임을 제어하거나 타격을 주는 상태 이상 효과는 아니었지만, 걸리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공격해 아군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언니와 제가 비명 지르지 못하게 화살로 얼리고 침묵시킨 다음에 오빠가 들어가서 잡으면 돼요. 밴시는 시야가 짧아서 먼 거리에서 공격하면 꼼짝 못 하거든요.”
“그러면 악어부터 잡아야겠네?”
“그래야죠.”
밴시를 잡기 전 늪지를 가득 채운 악어 몬스터부터 처리했다. 레벨이 70 초반에서 80 사이인 늪지 악어는 신경독이 함유된 연두색 액체를 코에서 뿜어댔다.
몸에 묻으면 3초에 피가 300씩 빠져나갔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도 유발해 놈이 코를 벌름거리면 재빨리 피해야 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물리면 절단기처럼 상대를 토막 내는 강력한 턱 힘, 아름드리나무도 한 방에 부러뜨리는 꼬리치기도 가볍게 볼 수 없어 리히테나 검술을 믿고 붙어서 싸우다간 피똥을 쌀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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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