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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득이
187. 만득이
“한 여자의 일생을 망칠 수도 있는 짓이야.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산채로 돌아가면 마틸다 인생이 바뀔 것 같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을 거야. 크로아탄 가문이 다른 가문에 흡수되면 마틸다를 살려둘 것 같아? 살려두지도 않겠지만, 산다고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거야. 죽는 게 백번 나을 만큼 끔찍한 일을.”
“여기도 마찬가지잖아. 다를 게 뭐가 있어?”
“오빠, 마틸다 자빠뜨릴 생각이었어?”
“내가 미쳤어? 절대 그런 일 없어.”
“그러면 마틸다를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거야?”
“마틸다가 물건도 아니고 왜 다른 사람에게 줘?”
“그럼 평생 마틸다 잡아둘 거야? 포로로.”
“아니. 산적들 흡수하면 놓아줄 거야.”
“이것 봐. 최소한 이 땅에서는 마틸다를 강간할 사람도 없고, 노예로 대할 사람도 없고, 평생 잡아놓을 생각도 없잖아. 괴롭긴 하겠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할 수도 있고, 드넓은 세상에 나아가 모험가로 살 수도 있어.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달라도 전혀 다른데.”
“흐음...”
하린이 말을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틸다가 산채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그려져 반박할 수 없었다.
남편 아돌푸스가 죽으며 대가 끊긴 크로아탄 가문은 구심점이 사라져 사분오열되기 직전이었다.
시아버지가 살아 있었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로 통솔력을 잃은 지 오래로 세력이 나날이 줄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 있는 건 세 가문의 가주와 아슈뉴르 총독 베일리 후작이 손을 잡았다는 의심을 산채 사람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틸라 제국의 박해와 핍박을 피해 산에 숨어든 사람들이 만든 단체가 이탕가 산적이었다.
배가 부른 우두머리들은 생각이 다르겠지만, 대다수 산적은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있어 아틸라 제국과 손을 잡는 건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크로아탄 가문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산채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세 가문의 수장을 바라보고 있어 간신히 버티는 것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돌푸스가 죽는 날 크로아탄 가문도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살짝 연장된 것뿐이지 크로아탄 가문이 사라지는 건 바꿀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길어야 1년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아돌푸스의 이름이 사라지면, 크로아탄 가문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마틸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크로아탄 가문을 위해 죽어라 일만한 사람들은 조건 없이 흡수해도 가문의 중추 세력인 시아버지와 마틸다, 친척들은 살려두지 않을 것이었다.
이들을 살려두면 흡수한 크로아탄 가문 농노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어 남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죽이고 여자는 잡아다가 색노로 삼으려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사는 건 죽는 것만 못한 삶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으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신이 저주스러울 지경이었다.
하린이가 기회를 준다고 한 건 이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 영지에선 그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아틸라 제국에선 재혼을 장려하고 있어 마음만 있다면 다른 남자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오빠, 머리 아플 때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요. 농노를 늘리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거죠?”
“어.”
“지금 목적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 된 거 아닌가요? 계획을 세우고 목적을 이뤘잖아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건 옳지 못해.”
“그러면 이건 어때요? 우리가 이탕가 산적 출신이라고 괄시하거나 개·돼지처럼 부리고 있나요?”
“아니.”
“제가 보기엔 최대한... The Age of Hero 기준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대우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죠?”
“어.”
“그럼 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잖아요. 마틸다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고요. 다 좋은데 뭐가 고민이세요?”
“하아... 그래. 네 말이 맞다. 다 좋은 일인데 고민할 필요 없지.”
“그럼 밥 먹고, 알에 마나 주고, 입장권 구하러 가요. 어제도 못 갔는데, 오늘도 못 가면 손해가 막심해요.”
“알았어.”
하연이가 아주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나 100% 우리 관점에서 정리한 것으로 마틸다와 크로아탄 가문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정리는 원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노력해도 정리가 안 됐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다 따라준다면 그건 상대의 정리였지 내 정리가 아니었다.
타협점을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지만, 세상 어떤 타협도 모두가 좋을 순 없었다.
저울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듯이 많든 적든 한쪽에 유리한 타협만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불공평했다.
불평등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힘을 키워야 한다. 그것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길이었다. 오직 힘만이 자신을 지켜줬다.
“이런 일 어디에도 없었지?”
“어둠의 상인과 히어로 에브리, ㈜판타스틱 홈피까지 다 뒤져봤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요.”
“이제 와서 버릴 수도 없고 이놈의 알 정말 대책이 없네.”
“시작한 거니까 끝까지 해보세요. 누가 또 알아요. 드래곤이 나올지.”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계속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뜻이에요. 긍정의 힘 모르세요?”
“두 번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간 화병 나겠다.”
“그러고 보면 오빠도 은근히 부정적인 것 같아요. 쯔쯔쯔쯔.”
“칭찬으로 들을게.”
“욕이에요.”
“고맙다.”
“히히히히.”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알을 가슴에 품고 마나를 퍼부었다. 한 달 넘게 퍼부은 마나만 100만이 넘었다.
100만이면 2,000명을 강제 소환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마나였다. 그런데도 알은 허공에다 발길질을 한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
오늘도 2만에 달하는 마나가 거의 다 스며들도록 알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욕이 나오려는 순간 알이 움직였다.
꿈틀
“움직였어.”
“정말요?”
“어. 이것 봐.”
“진짜네. 오빠, 나오려나 봐요.”
“헉!”
쩌쩌쩌쩍
참았던 끼를 한꺼번에 발산하듯이 알이 요동치자 단단한 껍질에 균열이 생겼다. 손을 떼면 균열이 멈출 것 같아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쥐어짜 알에 퍼부었다.
“카오오.”
다단한 껍질이 모두 부서지자 그 안에서 날개 달린 작은 사자가 튀어나와 포효하며 날아올랐다.
- 신수(神獸) 만티코어(Manticore)를 얻었습니다. 축하합니다.
- 모모님은 The Age of Hero 유저 최초로 신수(神獸)를 동료로 획득했습니다. 모모님의 위대한 업적에 경의를 표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업적 100,000점과 평판 100,000점을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신수(神獸) 만티코어(Manticore)
종류 : 버퍼
등급 : 유니크
사자의 몸, 인간 얼굴, 전갈의 꼬리, 악마의 날개를 가진 만티코어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강력한 몬스터로 오랜 옛날부터 경외의 존재였다. 신수 만티코어는 크기는 20cm밖에 안 되지만, 만티코어를 수호하는 신령스러운 몬스터로 성장을 통해 주인에게 매우 강력한 도움을 주는 신수이다.
레벨 : 1(다음 레벨 0/500)
충성도 : 100
스태미나 : 110
생명력 : 100/100
마 나 : 50/50
공격력 : 10
방어력 : 10
특수 능력 : 주인의 생명력 회복 속도 1% 향상
특이 사항 : 레벨이 오를 때마다 특수 능력 향상, 20레벨마다 새로운 능력 개방
경험치 획득 : 주인이 얻는 경험치의 10% 획득
근사한 몬스터를 기대했는데, 생긴 것만 근사한 손바닥만 한 작은 만티코어가 나왔다.
“이게 뭐야? 장난하는 거야? 대체 이거로 뭘 하라는 거야?”
“귀엽잖아.”
“정말 예쁘네요. 인형 같아요.”
“몬스터가 귀엽고 인형 같으면 그게 몬스터야? 장난감이지.”
“레벨이 오르면 커질지도 모르잖아?”
“맞아요. 커질 거예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크면 징그러울 것 같아요.”
“나도.”
“나는 열 받아 죽겠는데, 놀리니까 재미있어?”
“응. 히히히히.”
“네. 정말 재미있어요. 킥킥킥킥.”
“이것들을 그냥... 아우!”
작은 날개를 파닥여 손에서 벗어난 놈이 내 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카락을 푹신푹신한 깔개로 생각했는지 연신 삐이 삐이 소리를 내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마음에 드는 둥지를 찾자 세수를 하듯이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을 닦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꽃단장을 했다.
그 모습에 반한 하린이와 하연이가 꺄악 꺄악 비명을 질러대며 귀여워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이 전혀 귀엽지 않았다. 몬스터는 몬스터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주인을 돕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신수 만티코어는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사자가 아니라 귀여운 고양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행히 20레벨마다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레벨이 오를수록 버프 능력도 향상할 게 확실해 짐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손바닥만 한 놈의 모습은 한숨만 나왔다.
- 만티코어 정령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이름을 지어주라고 하는데, 뭐로 하지?”
“첫 글자와 세 번째 글자를 따서 만코 어때?”
“언니, 만티가 더 귀엽지 않아?”
“귀엽기는 개뿔... 너희 이름 한 글자씩 따서 린연이라고 짓자.”
“죽고 싶어?”
“오빠, 맞고 싶으세요?”
“.......”
머리카락을 빨아대는 녀석을 잡아 손에 올려놓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카르릉 소리를 냈다. 작아도 습성은 그대로인지 소리가 제법 맹수다웠다.
그 순간 녀석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메시지가 떴다. 안 그래도 신수 만티코어라고 부르기엔 이름이 너무 길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메시지가 뜨자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어떤 이름이 좋은지 물었다.
그러나 만코와 만티는 생각만큼 입에 착 감기는 이름이 아니었다. 이미지가 맞지 않았고, 부르기 쉽지 않았다.
“좋은 이름 생각났다.”
“뭔데?”
“뭔데요?”
“만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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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