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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182화 (18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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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먹기

182.

미끼를 던지자 마틸다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덥석 물었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미끼였지만, 그건 독이 든 사과였다.

절대 물어선 안 될 미끼였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마틸다는 독이 든 사과인지도 모르고 달콤한 말에 속아 미끼를 물고 말았다.

그러나 마틸다의 잘못이 아니었다. 3만 명을 2만km 떨어진 곳까지 무사히 보낼 방법은 군주의 소환밖에 없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미끼였다.

나는 처음부터 산적들에게 내 영지에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땅을 내준단 말인가?

땅을 뺏어도 모자랄 판에 가족도 아닌 사람들에게 땅을 내준다는 건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자유민인 평민으로 대우할 생각은 없었다. 농노로 받아들이는 것, 다른 농노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편의였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마틸다는 내가 내민 농노 증명서를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가슴에 품고 집무실을 나갔다.

“레이첼, 조나단과 다니엘을 불러줘.”

“네.”

마틸다가 나가자 조나단와 다니엘을 불렀다. 크로아탄 가문 농노들을 흡수하려면 살 곳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이들을 감시할 병사도 늘려야 했다.

똑똑

“들어와.”

“영주님께 충성을!”

“다니엘, 집은 마음에 들어?”

“아주 좋습니다.”

“그래?”

“아내와 아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좋아한다니 다행이군. 조나단은 어때?”

“너무 과분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야. 과분한 거 아니니까 마음껏 즐겨도 돼.”

다니엘과 조나단의 집을 3층으로 지어줬다. 마당도 크게 넓히고, 텃밭도 가꿀 수 있게 해주는 등 전에 살던 집과도 비교도 안 될 만큼 근사하게 지어주자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열심히 일한 대가이기도 했지만, 농노들의 집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 지어준 것이었다.

조나단과 다니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건 농노들의 집은 단층에 작은 마당이 전부로 이들의 집과 비교하면 오두막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레벨로 짓는 것도 아니었고, 새로 지어준 집도 공짜였다.

농노를 사람 취급하는 게 여전히 불만이었지만, 분명한 차이를 둔 만큼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영주님이 기거하시는 영주성 건물보다 저희 집이 더 좋습니다. 이건 과분이 아니라 불경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며칠 후부터 개조작업 들어가니까.”

“그렇습니까?”

“어.”

“그렇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농지가 크게 늘어났지만, 재정이 늘어난 건 아니라서 영주성을 새로 지을 형편이 안 됐다.

그렇다고 관리들 집을 새로 지어주며 내가 사는 집만 그대로 두는 것도 서로 불편할 수 있어 내부를 대대적으로 수리하기로 했다.

관리들이 사용하는 2층을 건물 밖으로 빼고 집무실과 서재, 공간이동 마법진실을 2층으로 내리기로 했다.

3층은 방과 목욕탕, 응접실을 설치해 온전히 나와 하린이, 하연이, 쥬디, 미미, 아라치, 세라의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고 편한 복장으로 다닐 수 있게 남자는 나 빼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할 예정이었다.

“다니엘. 호숫가에 농노들이 살 집을 아주 크게 지어. 새로 유입되는 농노는 물론 영주성 근처에 살던 농노들도 모두 그리로 옮길 거니까.”

“그럼 전에 살던 집은 어떻게 할까요?”

“깨끗이 밀어 버린 후에 서쪽에는 대장간과 공방, 가죽 가공소를 짓고, 동쪽에는 여관과 상가도 짓도록 해.”

“여관과 상가요? 지어도 이용할 사람이 없습니다는.”

“조만간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무슨 이유로 우리 영지에 사람들이 몰려온단 말입니까?”

“사냥 때문이지.”

“황제께서 검은 오크 왕국을 토벌한다고 하셨습니까?”

“아니야. 순수하게 사냥을 목적으로 자유민들이 올 거야.”

“자유민들이요?”

“어.”

자유민은 원래 평민을 말하는 용어였지만, 귀족의 허락 없이는 평민도 영지를 떠날 수 없어 자유민이라고 잘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NPC들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유저를 자유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지를 검은 오크 왕국으로 넘어가는 관문 도시로 키울 생각이야. 그러려면 자유민들이 먹고 마시고 잘 수 있는 여관과 식당이 있어야 해. 농사만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어. 돈을 벌려면 자유민을 유치해야 해. 그래야 영지를 키울 수 있어.”

“알겠습니다.”

검은 오크 왕국으로 진출할 위치에 있다고 관문 도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에 합당한 시설을 갖춰야 유저들이 몰려온다.

유저들이 묵을 여관, 식사를 해결할 식당, 물건을 사고팔 상점이 있어야 유저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게임 시간으로 최소 1~2년은 준비해야 유저들을 영지로 유혹할 수 있었다.

“조나단.”

“예, 영주님.”

“남자 병사는 150명, 여자 병사는 50명 늘려.”

“200명이나요?”

“200명 빠지면 농사에 차질 있어?”

“큰 마님이 우드 골렘 3마리를 지원해주셔서 두 배를 빼가도 문제 없습니다.”

영지 병사는 총 403명으로 이중 남자가 288명, 영자가 115명이었다. 남작 영지치고는 매우 많은 숫자였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이탕가 산적이 몇 배는 많이 넘어올 수 있어 병사를 늘려야 했다.

대다수가 여자와 아이들로 위협이 되진 않았지만,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 치안이 나빠질 수 있어 미리미리 대비해야 했다.

“그러면 내일 공고 내고 모레 선발해. 훈련은 지난번과 동일하게 하고.”

“알겠습니다.”

조나단과 다니엘을 내보내고 세라를 불렀다. 세라에게 주문한 건 이탕가 산적들의 정신 개조였다.

크리아탄 가문을 완전히 잊고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길은 공포와 강압보다는 환몽술이 더 효과적이었다.

사람이나 NPC나 의식이 있는 상태일 때보단 무의식일 때 정신을 개조하는 게 훨씬 쉽고 빨랐다.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여기 노는 사람 아무도 없다.”

“저도 일한 대가를 달라는 뜻이에요.”

“뭐가 받고 싶은데?”

“쥬디와 미미, 아라치만 데려가지 말고 저도 사냥에 데려가 주세요. 평생 60레벨에 머물 수는 없어요.”

“좋아.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뭔데요?”

“몽환의 신전에 갇히게 된 진짜 이유를 말해줘. 그러면 데려갈게.”

“꼭 아셔야겠어요?”

“어.”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어요.”

“겁주는 거야?”

“아니요. 사실을 말한 거예요.”

“그래도 알고 싶어.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딸을 1,000년이나 가둬뒀는지.”

“하아....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걸 죽였어요.”

“그게 뭔데?”

“사탄의 뱀이요.”

“사탄의 뱀은 뭐야?”

“엄마가 항상 몸에 칭칭 감고 다니는 뱀이 한 마리 있어요. 우리는 그 뱀을 사탄의 뱀이라고 불러요.”

“그걸 왜 죽였어?”

“맨날 그놈과 그 짓을 하니까 죽였죠. 더러워서 볼 수가 없었어요.”

“네가 싫다고 해도 엄마의 사생활은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놈이 엄마하고만 그 짓을 했다면 그랬겠죠. 놈은 언니들과도 그 짓을 했고, 궁전에 있는 서큐버스는 모두 건드리고 다녔어요. 그리고 저에게 그 짓을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어요. 그래서 죽였어요. 놈에게 당하기 싫어서.”

“네 엄마 화 많이 났겠다. 소중한 걸 잃었으니까.”

“난 정도가 아니에요. 길길이 날뛰었어요.”

“그래도 널 많이 예뻐했나 보네. 죽이지 않고 유배하는 거로 끝낸 거 보면.”

“많이 예뻐했죠.”

“그런데 어디를 보고 예뻐한 거야? 내가 보기에는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정말 그럴 거예요?”

“농담이야. 흐흐흐흐.”

“정말 못 됐어.”

“칭찬으로 들을게.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왜 예뻐한 거야?”

“엄마와 가장 안 닮은 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예뻐했어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분신이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닮은 분신이기에 헌신적인 사랑을 쏟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으로 자식이 자기를 닮지 않길 바랐다. 자기를 쏙 빼닮은 자식을 원하는 부모도 있지만, 대다수는 자신과는 다르기를 바랐다.

사람은 자기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점을 죽도록 미워했다. 그래서 자식에겐 그 모습이 나타나질 않길 바랐다.

릴리트가 세라를 가장 예뻐한 건 그 때문이었다. 자신의 음탕함을 세라가 닮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탄의 뱀을 죽였는데도 죽이지 않고 몽환의 신전을 만들어 가둔 것이었다.

너무 사랑했기에...

“돌아가면 받아줄 것 같은데 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거야?”

“엄마와 언니처럼 살기 싫어요. 인간들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간의 사랑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좋지만은 않아.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미워하고, 화내고... 아주 지랄이야.”

“매일 누군지도 모를 남자의 정액을 뽑으러 다니는 것보다는 그게 백배 낫죠.”

“그렇긴 하지.”

서큐버스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나 고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세라가 인간의 삶을 동경하는 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인간의 모습 때문이었다.

서큐버스의 삶은 개미와 같았다. 여왕개미인 릴리트가 있고, 그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일개미 서큐버스가 있었다.

이들은 개미가 버섯을 키울 재료를 물고 오는 것처럼 매일 남자의 정액을 모아왔다.

세라는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남자의 정액을 모으러 다니다 죽는 서큐버스의 삶이 싫었다.

그래서 인간을 동경하게 됐다. 남편과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한 침대에서 자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 작품 후기 ============================

행복한 추석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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