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180화 (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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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말로

180. 비참한 말로

따르릉따르릉

달러와 골드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은하였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자 하린이가 어서 받으라고 재촉했다. 하린이의 독촉에 하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형필아!”

“어, 은하야.”

“검찰에서 연락 왔어.”

“무슨 연락?”

“이은수와 이은택이 나란히 자살했어.”

“자살?”

“응.”

“이은택은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으니 그럴 수 있겠지만, 이은수는 왜?”

“세금 포탈, 공금 횡령 및 배임,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조사받으며 많이 괴로워했어. 그리고 아버지 이만철 몰래 돈을 엄청나게 빼돌렸다가 이번에 걸렸어. 그 때문에 화가 난 이만철이 이은수를 마림 재단 정책실장 자리에서 해임시켰어.”

“얼마나 빼돌렸는데?”

“현재 밝혀진 것만 3,000억 원이 넘어.”

“자식이 아니라 도둑이었네.”

“도박에 손을 대서 그래. 필리핀과 마카오에 원정도박을 다녔어. 2,000억 원이 넘는 공금 횡령도 그 때문에 한 거야.”

“비참한 말로네.”

“자업자득이야. 동정할 거 없어.”

이은수는 침실에서 독약을 먹고 자살했고, 이은택은 독방에서 비닐로 줄을 만들어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이은수가 먹은 독약은 아코니틴(Aconitine)으로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의 뿌리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 독약이었다.

독성이 매우 강해 1~2mg만 먹어도 호흡 곤란과 마비로 몇 분 안에 숨이 끊어졌다.

이은수는 마약을 한 상태에서 아코니틴을 술에 타 마셨다. 덕분에 고통보다는 환희를 느끼며 죽었다.

형 이은수가 환희를 느끼며 죽는 동안 동생 이은택은 비닐봉지로 1m 길이의 끈을 만들어 목을 매 지독한 고통을 느끼다가 죽었다.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두 명이나... 둘 다 죽을 짓을 넘치도록 했지만, 막상 죽고 나자 기분이 씁쓸하다 못해 신물이 넘어왔다.

“하아...”

“형필아, 네 잘못 아니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그런 건 없어. 그러나 기분은 정말 별로네. 어찌 됐든 내가 죽인 거니까.”

“나는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은택이 천수를 누렸다면 어떻게 됐겠어? 억울하게 죽은 여학생과 청년, 일가족처럼 희생자가 또 나왔을 거야. 그리고 많은 여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거고. 이은수도 마찬가지야. 가업을 이어 계속 매국노 짓을 했을 거야. 또한, 학생들의 머리에 친일 사관을 심어 자손만대에 피해를 줬을 거고. 넌 독립투사야. 이 나라의 암 덩어리를 제거한 독립투사라고.”

“이은수와 이은택의 부모도 그렇게 생각할까?”

“자식을 올바르게 인도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어. 그들이 이렇게 만든 거야. 자식을 개떡같이 키워서.”

은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자식을 올바르게 키운 부모가 몇이나 된단 말인가? 이 땅의 모든 부모에게 물어보라. 자식을 올바르게 키웠냐고.

몇 명이나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양심이 있다면 누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식을 바르게 키우지 못한 책임이 모두 부모에게 있다고 돌리는 것도 잘못이었다.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었다. 때리고 달래고 돈을 줘도 어긋난 길로 가는 자식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죽이기라도 하란 말인가?

“이만철은 언제쯤 잡혀 들어갈 것 같아?”

“원래는 내일 아침에 긴급 체포될 예정이었는데, 두 아들이 죽는 바람에 불구속 수사할 것 같아.”

“나에 대한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겠다.”

“그렇겠지. 그러나 뭘 할 수 있겠어.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에 불과한데.”

“그래도 물리면 아파.”

“물 힘도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은수와 이은택이 죽자 또 다른 원한이 생겨났다. 원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고 했다. 그 말처럼 자식이 죽자 부모가 원수가 됐다.

다행이라면 이만철의 아들은 이은수와 이은택뿐이었다. 이만철만 죽으면 대가 끊기는 것으로 원한도 끝났다.

딸이 두 명 있지만, 마림 재단이 무너지면 두 딸도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될 확률이 높았다.

두 딸 모두 알아주는 재벌 집 며느리였다. 그러나 사랑이 아닌 정략결혼으로 마림 재단이 무너지면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를 찾기 위해 쫓겨날 게 확실했다.

정략결혼은 서로 도움이 될 때만 필요했지, 짐이 되면 가차 없이 쳐내는 것이 부자들의 행태였다.

“정이슬은 어떻게 하고 있어?”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어.”

“살인죄로 잡혀갔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검찰과 교도관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어. 살다 살다 그렇게 태평한 아가씨는 처음이래. 강심장이라고 해도 죄수복을 입고 구치소에 수감되면 무서워 벌벌 떨거나 최소한 기가 죽는데, 정이슬은 전과 10범은 된 죄수처럼 흔들림이 없데.”

“골치 아픈 여자네.”

“지금은 뭐가 뭔지 몰라서 그럴 거야. 그러나 살인죄가 선고되면 달라지겠지.”

“무서운 여자야. 절대 쉽게 봐선 안 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해.”

“알았어. 하루에 한 번씩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할게.”

정이슬은 이은택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독해도 보통 독한 성격이 아니라서 자살은 바랄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는데, 지금은 왜 안 그러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건 매우 어리석은 생각으로 초등학교 때 모습이, 중·고등학교 때 모습이 대학에 가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10년, 20년 만에 동창회에서 나가보라. 학교 다닐 때 지질했던 친구가 몰라보게 달라져 있거나, 근사하던 친구가 추레하게 변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은 변한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이가 용감한 아이로 변했고, 덧셈도 제대로 못하던 어리바리한 아이가 의사, 검사가 되기도 했다.

정이슬도 그랬다. 하린이를 만나 자신감을 찾고, 하린이로 인해 독해지며... 하린이가 아니라 자격지심이 원인이었지만, 정이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서 일가족 살해범으로 구금된 상태에서도 여유로울 수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하연아, 정이슬에게 괴롭힘당한 사람들 명단 좀 구해줄 수 있어?”

“네. 가능해요.”

“언제까지 해줄 수 있어?”

“내일까지 해드릴게요.”

“고마워.”

“언니 일인데 제가 고마워해야죠.”

은하와 전화를 끊고 하연이를 몰래 베란다로 불러냈다. 정이슬을 끝장낼 수 없다면 교도소에 최대한 오래 붙잡아 놔야 한다.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붙잡아 놓을 수만 있다면 정이슬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살인죄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했다.

이 말은 로펌 사장인 정이슬의 아버지가 힘을 쓰면 5년 만에 풀려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것도 살인죄가 적용됐을 때 얘기로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으면 1~2년 후에 거리를 활보하는 정이슬을 볼 수도 있었다.

정이슬이 차에 탄 일가족을 죽이라고 소리치며 발광을 했지만, 죽인 건 이은택이었다.

정이슬이 죽인 게 아니었다. 살인 공모 또는 살인 교사에 해당됐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지른 소리였다고 우기며 눈물로 호소하면 살인죄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걸 방지하려면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 때문에 하연이에게 정이슬에 당한 사람들 명단을 알아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들을 통해 정이슬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려줘야 판사도 검사도 장난질을 칠 수 없었다.

그리고 보통 악질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호호백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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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이은수와 이은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그러나 누구도 두 형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마림 재단의 비리와 이은택의 일가족 살해 뉴스가 전파를 타자 네티즌들이 형제가 그동안 했던 못된 짓들을 낱낱이 파헤쳐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자 먹잇감을 발견한 찌라시들도 벌떼같이 달려들어 이은수와 이은택을 물어뜯었다.

네티즌과 찌라시들의 노력으로 형제의 엽기적인 만행들이 보도되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교도소 밥도 아깝다며 동시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날 만큼 국민의 마음은 활화산처럼 들끓었다.

그런 와중에 형제가 30분 간격으로 목숨을 끊자 잘 죽었다는 글이 인터넷에 1초 단위로 하나씩 올라왔다.

아버지 이만철의 입장에선 가슴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악성 종양을 떼어낸 것처럼 좋아했다.

“정이슬에 대한 여론은 어때?”

“단군 이래 가장 악독한 여자라고 떠들고 있어.”

“그런 소리 들을 만하지. 누가 봐도 제정신 갖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니까.”

“하연이에게 들었어. 이슬이에게 당한 애들 명단 구해달라고 했다는 말. 내게 말하지 그랬어? 내가 하연이보다 더 잘 아는데.”

“지금은 원수지만, 한때는 둘도 없는 친구였잖아. 그런데 어떻게 명단을 구해달라고 할 수 있어.”

“아니야. 괜찮아. 할 수 있어.”

“감정 정리했어?”

“성우 죽은 날 깨끗이 정리했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응.”

“마지막으로 물을게. 진짜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응.”

“그러면 하연이와 상의해서 내일까지 은하에게 자료 넘겨줘.”

“알았어.”

정이슬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했다는 하린이의 말은 거짓이었다. 하린이에게 정이슬은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이었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행복했던 기억과 영원히 지우고 싶은 불행한 기억을 동시에 가진 존재로 절대 지울 수 없는 애증의 산물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하연이를 도우라고 했다. 그러면 진짜 정리가 될 수 있으니까.

많이 아프겠지만, 그렇게라도 끝내야 했다. 그래야 정이슬의 기억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하린이와 얘기가 끝나자 게임에 접속해 말을 타고 남쪽 경계로 내려가 독 가시나무와 분홍 은행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새로 유입된 몬스터를 사냥했다. 내 영지는 던전 빼고 몬스터를 구경하기 어려울 만큼 씨가 말랐다.

그러자 그 틈을 노리고 칼 스타프 남작 땅에서 몬스터가 끊임없이 넘어왔다. 레벨이 낮은 동물형 몬스터는 넘어와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오크와 고블린, 코볼트 등이 넘어오면 금세 불어나 또다시 큰 부락을 형성해 골칫거리가 됐다.

그래서 게임 시간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남쪽 경계를 돌며 몬스터를 사냥해야 했다.

병사들을 시키면 수고로움을 덜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병사 수나 질 양쪽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또한, 독 가시나무와 분홍 은행나무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는 돌봐줘야 해 당분간은 내가 순찰 임무를 맡아야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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