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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178.
뒤차에 탄 남녀는 악을 쓰며 앞차를 산 아래로 떨어뜨려 차에 탄 사람을 모두 죽이기 위해 액셀을 밟아댔다.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크기 차이로 인해 앞차가 앞으로 쭉쭉 밀렸다. 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가드레일까지 밀리자 앞에 탄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내와 딸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창문을 열려고 했다.
“개·돼지들이 도망가려고 한다. 더 밟아. 더 밟아. 더 세게 밟아!”
“감히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해?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지옥으로 떨어져라. 개·돼지들아!!”
뒤차에 탄 남자가 저주를 퍼부으며 액셀을 더욱 세게 밟자 가드레일이 힘없이 넘어지며 단란한 일가족이 탄 앞차가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쿵쿵쿵쿵쿵
앞차가 산 아래로 떨어지자 뒤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앞차가 제대로 떨어졌는지 절벽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확인했다.
깜깜한 밤이라 잘 보이지 않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앞차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보여?”
“잘 안 보여.”
“기다려. 내가 갈게.”
남자의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여자도 문을 열고 내려 남자 곁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로 떨어진 차를 찾았다.
1분쯤 핸드폰을 휘젓던 남녀가 차를 발견했는지 큰 목소리를 소리치며 발광했다. 남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고, 여자는 3점 슛이라도 넣은 것처럼 양손을 들어 올린 채 방방 뛰었다.
“크하하하. 빈대떡이야. 완벽한 빈대떡.”
“내가 뭐라고 그랬어? 밀어서 떨어뜨리면 빈대떡 된다고 했지?”
“역시 똑똑해. 멘사 회원은 달라도 너무 달라.”
“불까지 났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쉽다.”
“내려가서 확인할까?”
“사람들 오기 전에 그만 가자.”
“아 맞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설명하게 헤드라이트에 비췄다. 남자는 이은택, 여자는 정이슬이었다.
“이런 개새끼들.”
“쌍놈의 새끼들!”
“화가 나셔도 끝까지 봐주세요. 그래야 억울하게 죽은 일가족의 한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몇몇 사람이 참지 못하고 욕을 해대자 은하가 일가족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면서 정숙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기자회견장이 다시 조용한 침묵에 빠졌다.
온갖 쌍욕을 해대며 앞차의 상태를 확인한 이은택과 정이슬이 차에 올라타 또다시 광란의 질주를 했다.
“차에 블랙박스 있지 않아?”
“있어.”
“메모리 카드 부숴버려. 남겨두면 위험해.”
“역시 정이슬이야. 나와는 생각하는 수준이 달라. 정이슬 짱!”
“마림 재단 차기 이사장인 이은택만 하겠어?”
“나는 엄마·아빠 후광이고, 너는 실력이잖아. 비교할 걸 비교해.”
“마림 재단 후계자께서 고작 로펌 회사 딸에게 아부하는 거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보다 더 아름다운 정이슬양에게 겨우 이 정도로 아부가 되겠어? 내 튼튼한 삐이~삐이~를 깊이 넣어줘야 아부하는 거지.”
“음탕하기는.”
“여기서 할까?”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부터 없애. 그런 다음 느긋하게 즐기자.”
“알았어.”
뚝
화면이 꺼졌다. 그러나 300명이 넘는 기자 중에 손을 들어 질문하는 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입을 벌린 채 멍한 눈으로 꺼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생중계를 통해 영상을 본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기자들처럼 너무나 큰 충격에 멍한 눈으로 커진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신 영상은 불과 두 달 전 일어난 일입니다. 30대 초반의 아빠와 엄마 그리고 5살 난 딸이 여행을 가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아빠가 졸음운전을 해 사고가 났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웅성웅성
“화면에 보시면 바닥에 범퍼 조각과 범퍼에 칠했던 페인트가 벗겨져 떨어져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은하가 마우스를 조작하자 앞차를 낭떠러지에 떨어뜨린 이은택의 차가 뒤로 후진하는 모습이 화면에 떴다.
사고 현장을 떠나기 위해 차를 뒤로 뺀 것으로 왼쪽으로 차를 돌리기 직전 차가 잠시 멈춰 섰다.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범퍼 조각과 페인트가 강한 헤드라이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가족이 탄 차는 흰색이었고, 이은택의 차는 검은 색으로 색깔이 다른 조각이 페인트와 함께 도로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사고 기록에 보면 바닥에 아무것도 없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화창했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발견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2시 42분 지나가는 차가 사고 현장을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3시 10분 경찰과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건 기본 아닐까요?”
“변호사님 말씀은 경찰이 사고를 조작했다는 말인가요?”
“그건 제가 밝힐 일이 아니라 검찰이 밝힐 일 아닐까요? 이상으로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질문은 제가 아니라 경찰과 검찰에 하세요. 그러라고 그분들 국민이 월급 주는 거니까요.”
단상을 내려온 은하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소란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커져갔다.
방송사와 신문사마다 사건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카메라에 떠들어대자 자갈치 시장보다 더한 소음이 TV와 인터넷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정이슬은 어쩌고 있습니까?”
“지금 3층 자기 방에 있어.”
“달아날 수도 있으니 경찰이 올 때까지 감시 잘해주십시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집주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까.”
“경찰 오면 바로 돌아오십시오. 근사하게 한 턱 쏘겠습니다.”
“뭐 사줄 건데?”
“뭐 드시고 싶으십니까?”
“참치 뱃살. 네 덕분에 나도 참치 뱃살 좀 먹어보자.”
“알겠습니다.”
TV를 끄고 이범석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스를 본 정이슬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정이슬이 달아나면 지금껏 한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됐다. 그래서 기자회견이 열리기 3시간 전 이범석 상사가 김상호 상사와 새로 들어온 베테랑 요원 5명을 데리고 직접 정이슬 집으로 출동해 감시하고 있었다.
“하린아, 은하에게 전화해서 고생했다고 말해줘.”
“알았어.”
“그리고 오늘 경호팀 전체와 참치 먹기로 했어. 다현이네도 데리고 갈 수 있는 조용하고 은밀한 집이 있는지 좀 알아봐 줘.”
“나 참치 집 모르는데.”
“언니, 아빠에게 물어보면 알 거야. 오빠, 그건 제가 알아볼게요.”
“어.”
정이슬을 지키던 독수리 경호팀은 전화를 끊은 지 2시간 후 집으로 돌아왔다. 격분한 시민들이 정이슬도 빨리 잡아들이라고 청와대와 국회, 경찰청 홈페이지를 마비시켰다.
안 그래도 마림 재단 게이트로 정치권과 검찰, 경찰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정이슬을 빨리 잡아들이지 않으면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경질하라는 구호가 나올 기세였다.
그리고 여론이 더 악화하면 대통령을 하야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올 수 있어 영상이 나온 지 30분 만에 검찰과 경찰이 동시에 정이슬의 집에 들이닥쳐 안가로 끌고 갔다.
웃기는 건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가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서울경찰청 차장을 정이슬 집으로 출동시키는 촌극을 벌였다.
그 모습이 TV와 인터넷에 동시에 생중계로 방송되자 사람들이 청와대를 향해 쇼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해댔다.
“오빠, 아빠가 참치 먹으러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먹자고 하시는데요.”
“어떻게?”
“아빠 아시는 분이 냉동 참치 도매하신대요. 그분에게 전화하면 좋은 부위로 먹기 좋게 썰어서 얼음에 넣어 보내주신대요. 광어와 농어, 우럭도 회로 보내주시고, 참치하고 회 먹는데 필요한 것들도 같이 보내준대요.”
“그럼 그렇게 해.”
“얼마나 시킬까요?”
“참치 킬러들 있으니까 못해도 50인분은 시켜야 할 거야. 아니다. 그거로도 안 되겠다. 한 마리 통째로 달라고 해.”
“한 마리를요?”
“큰 놈으로 달라고 해. 작은 놈이 오면 모자랄 수도 있어. 먹다가 모자라면 화낼지도 몰라. 화내면 분위기 살벌해진다.”
“알았어요.”
“하연아, 전화 끝나면 어른들도 오시라고 해.”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단, 직계만. 다현이네 우리 집에 있는 거 아직 밖에 새어나가면 안 돼.”
“네.”
동영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우리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회식을 즐겁게 준비했다.
옆집에 줄초상이 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면 즐겁게 여행가는 세상이라 회식하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 영상을 누가 찾았고, 누가 내보내게 시켰는지 생각하면 이렇듯 태평할 순 없었다.
정이슬을 엮어 넣었으니 이제 걱정할 게 없어 회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대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무서운 상대였다.
그런데도 이러는 건 고생한 사람들을 위무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 일의 총책임자인 내가 이겼다는 것을, 이제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사방에서 적군이 몰려들어도 수장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부대를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적군을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내 위치는 수장과 같았다. 지고 있어도 이기고 있는 척 행동해야 했고, 상황이 불리해도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했다. 그래야 정이슬을 몰락시키고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2,000만 원짜리 참치를 한 마리 시키자 참치를 자르지 않고 통째로 가져왔다. 주방장 한 명과 보조주방장 2명도 같이 와 1층에서 참치를 해체했다.
외부인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회식은 2층에서 하고 주방장과 부주방장은 1층에만 있게 하면 돼 들어오게 했다.
약속대로 회도 열 접시 넘게 떠왔고, 양념게장을 비롯한 반찬도 스무 가지나 보내왔다.
그리고 간장과 초장, 무순, 겨자, 마늘, 고추, 상추, 김 등 참치를 빛내줄 조연들도 등장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