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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176. 악몽
“내 부탁을 들어주면 영주성에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줄게. 어때?”
“무슨 부탁인데 그래요?”
“할 건지 말 건지 그것부터 말해.”
“물어보나 마나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한다는 말이지?”
“제가 이제 영주님 떠나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이제 좀 믿어주세요.”
“좋아. 믿어줄게. 대신 믿음이 어긋나면 그에 대한 대가는 아주 혹독하다는 거 기억해. 나는 내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배신자와 적은 절대 살려두지 않아.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죽여.”
“환인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 죽을 때까지 영주님께 충성하고, 절대 손해날 짓을 하지 않겠다고. 이제 됐죠? 이제 믿을 수 있죠?”
“좋아.”
이름 : 세라
나이 : 10,133살
종족 : 서큐버스
계급 : 릴리트 성의 공주
직책 : 포로
특기 : 환몽술
충성심 : 81
성격 : 교활하고, 고집 세고, 4차원적임. 단, 모모님에겐 순종적임
레벨 : 60(보스)
생명력 : 2,576/257,650(능력 봉쇄)
마나 : 255/25,500(능력 봉쇄)
근력1 순발력1 체력1 지력1 (능력 봉쇄)
상태 : 모모 레오 남작의 포로(마법 족쇄로 인해 모든 능력 봉쇄)
흡혈로 인한 무기력증(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 50% 감소)
세라에게 기회를 준 건 충성심이 80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게만은 순종적이란 성격도 새로 생겨나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일 충성 맹세를 백 번씩 하고,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려도 풀어주지 않았다.
믿음이 없는 상대는 능력이 출중해도 부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건 칼자루를 쥐여주는 것과 같아 언젠가는 그 칼이 내 목을 겨눌 수도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칼을 쥐여 준다면 배포가 하늘에 닿은 호걸이나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정신줄 놓은 바보천치였다.
쨍그랑
“야호~”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던 마법 쇠사슬을 풀어줬다. 몇 달 만에 손과 발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제 살 것 같네요. 그동안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매일 누워서 책만 보던데 뭐가 답답해? 너무 편해서 죽을 것처럼 보이던데.”
“그렇게 편해 보이면 영주님이 해보실래요?”
“크흠... 그만 나가자. 널 위해 만찬을 준비했어.”
“처음부터 풀어줄 생각이면서 저 놀리신 거군요?”
“놀리긴 뭘 놀려? 네 마음이 어떤지 물어본 것뿐이야.”
“피이~ 거짓말.”
“흐흐흐흐.”
“영주님 웃는 거 보면 저보다 더 음흉한 것 같아요.”
“나 음흉한 사람 아니다. 착한 사람이다.”
“음흉한 사람이 이마에 음흉하다고 써 붙이고 다니는 거 봤어요? 음흉할수록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하는 거예요.”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갑자기 왜 그래요? 재미없게.”
“너에게 부탁할 일이 아주 음흉한 일이거든.”
“뭔데요?”
“누굴 괴롭히는 거야. 자살하게.”
“네에?”
세라를 꺼내준 건 이은택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였다. 편안하게 자야할 꿈에서도 괴롭혀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마음 같아선 평생 감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놈은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않아 자신이 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감 생활도 우리가 영화에서 받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 기대한 만큼 고통을 줄 수도 없었다.
마림 재단은 엄청난 과징금으로 재산 대부분을 국가에 뺏기겠지만, 해외에 숨겨놓은 돈이 워낙 많아 거지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은택의 엄마는 아들에게 준 것 말고도 따로 꼬불쳐놓은 돈도 있어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그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매일 놈을 접견실에 불러다 놓고 좋은 밥 먹이고, 웃고 떠들며 지내게 해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국가 하지 않는 정의의 심판을 내가 대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60레벨 보스 몬스터인 세라의 힘으로도 이은택을 죽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환인은 유저의 안전을 위해 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환각 증상은 모두 차단해 놓았다.
이 때문에 사라가 홀딱 벗고 뛰어다녀도 이은택이 자살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상태에선 자살할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현실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상황은 달라졌다.
암울한 현실로 인해 매일 자살을 꿈꾸는 사람에게 밤마다 지독한 악몽을 꾸게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미치거나,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
“그러니까 매일 밤 두 연놈의 꿈에 나타나 지독한 악몽을 꾸게 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라는 거네요?”
“딩동댕.”
“음흉한 게 아니라 악독하네요.”
“이은택과 정이슬 꿈에 들어가 봐. 그러면 그런 소리 못할 거야.”
“그렇게 못 됐어요?”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보게 될 거야.”
“그렇다면 저도 죄책감 가질 필요 없고 좋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저는 남자 담당이지 여자 담당이 아니에요. 남자는 인큐버스가 전문이에요. 주소 잘못 찾으신 것 같네요.”
“인큐버스는 여자 강간하는 놈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저는 남자 강간하는 악마죠.”
“그런가?”
서큐버스(Succubus)는 남자 꿈에 나타나 정기를 빼앗는 악마였고, 인큐버스(Incubus)는 잠든 여성을 성폭행하는 악마로 인간 여성과 성관계를 맺어 자식을 갖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능력 외에도 둘 다 꿈에 나타나 NPC와 유저를 괴롭힐 수 있었다. 문제는 사라의 말처럼 서큐버스는 남자에 특화한 악마로 여자인 정이슬의 꿈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은택이 받는 고통 지수를 100이라고 했을 때 정이슬이 받는 고통 지수는 반의반도 안 되는 20 정도에 불과했다.
20이면 놀라게 하는 것도 어려운 고통 지수로 심약한 사람이면 모를까 독한 정이슬에겐 간지럽히는 것만도 못했다.
“여기서도 꿈에 나타날 수 있어?”
“서큐버스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야.”
“이름과 사진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인간계에 있는 한 어디서든 꿈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면 오늘부터 괴롭혀.”
“알았어요.”
예전에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를 게임으로 괴롭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작년 1월부터 교도소에도 캡슐이 보급되며 언제든 놈을 괴롭힐 수 있었다.
환인은 대한민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도 크라쿠루스 남쪽에 위성 도시를 하나 만들고, 그곳 전체를 사이버 교도소로 운영할 수 있게 해줬다.
사이버 교도소는 일종의 생산시설로 수도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정부는 그 대가로 수도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관공서를 설치해 대한민국 유저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사이버 교도소는 현실에서 하던 노역을 The Age of Hero에서 하는 것으로 현실 시간으로 하루 8시간씩... 게임 시간으로 32시간... 접속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정부는 현실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이익도 많아 올해 안에 교정시설에 있는 생산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수감자 전원을 사이버 교도소에서 일하게 할 계획이었다.
세라는 이은택이 작업하는 동안 꿈속에 들어가 괴롭히면 됐다. 이은택 같은 놈은 평생 일이라곤 해보지 않아 단순반복 작업은 10분도 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게 분명했다.
그리고 돈을 이용해 게임 속에서도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부릴 확률이 높아 놈을 괴롭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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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이야. 네 화려했던 생활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갈 거야. 내 마음대로 세상을 휘젓던 그때로 돌아갈 거야.”
“어떻게?”
“엄마와 아빠가 구해줄 거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네 엄마도 아빠도 구속됐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어제부터 면회 안 왔잖아. 왜겠어? 구속돼서 못 온 거야.”
“아빠는 몰라도 엄마는 이번 일과 상관없어.”
“네가 죽인 여학생과 남성 시체를 누가 처리해줬지?”
“그건...”
“네 엄마잖아. 아니야?”
“엄마가 도와줬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을 거야.”
“사람을 죽였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그 일을 은폐하는데 가담하면 형량이 얼만지 알아? 까딱 입을 잘못 놀리면 평생 교도소에서 썩을 수도 있어. 네 엄마 이름을 대야만 그들도 정상참작이 돼. 그런데 말할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나 같으면 네 엄마 이름을 백번도 넘게 말했을 거야.”
“돈을 주기로 했어. 평생 먹고살 돈을.”
“네가 돈이 어디 있어?”
“이런 일을 대비해 숨겨둔 돈이 있어.”
“아아 그 사설 금고.”
“뭐라고?”
“청계천에 있는 사설 금고 말이야.”
“그.그걸 어떻게.”
“고객 번호가 8452-3251-1178이었지? 맞아?”
“헉!”
“암호가 [email protected]Ħð79-6H3&-05FL-ЖЁ44이었고, 첫 번째 암구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라! 두 번째는 돈이 그대를 천국에 들게 할 것이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어.어떻게. 어.어떻게 그걸...”
“500억 잘 쓸게. 정치인과 검찰, 경찰, 언론에 돈 뿌린 장부도 너무너무 고마워!”
“그.그.그...”
“아참 한 가지 알려줄 게 있다. 네 아버지 화 많이 났어. 왜인 줄 알아? 그 장부 때문이야. 네 엄마가 장부를 몰래 복사하는 바람에 네 아버지를 비호해야 할 정치인과 검찰, 경찰, 언론이 모두 잡혀가게 생겼어. 그런데 네 아빠가 널 도와줄 것 같아? 나라면 네 모자 믹서에 갈아 마실 거야.”
“.......”
“넌 끝났어. 끝장났다고. 호호호호.”
놀란 이은택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멍한 눈으로 세라를 바라봤다. 철썩같이 믿고 있던 엄마와 아빠도 이제는 도움이 안 됐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인 사설 금고마저 날아갔다. 금고마저 사라지면 냄새나는 교도소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돈이 없다면 자신을 변호해줄 변호사도 구할 수 없었고, 범행에 가담한 사람들도 등을 돌리게 된다.
그건 완전한 파멸을 뜻했다. 파멸은 평생 교도소에서 썩거나 사형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목에 포승줄이 걸려 발버둥 치는 모습과 전기의자에 앉아 몸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아아아악...”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