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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171. 생일
“마림 재단 경영진은 어떻게 됐어?”
“이은수의 측근 중 재무를 담당하는 2명의 기억을 털었어.”
“쓸만한 내용 있어?”
“있는 정도가 아니야. 대박이야.”
“어느 정도인데 대박이야?”
“세금을 안 내려고 할 수 있는 짓은 모두 다 했어. 그리고 돈 받고 대학에 입학시킨 학생도 수백 명에 달하고, 성적 조작에 성상납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아.”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해서 은하에게 넘겨줘.”
“알았어.”
“그리고 은하 경호원 2명 더 붙여줘. 2명으로는 부족해. 잠도 호텔로 바꿔주고. 모텔 전전하는 것도 보기 싫어.”
“그럴게. 그런데 내일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는 거 위험하지 않을까? 마림 재단에서 따라붙을 수도 있잖아.”
“나도 그게 걱정이야.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만나는 것도 다를 게 없으니...”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지 말고 호텔방에서 만나. 그러면 얼굴 들킬 일도 없잖아.”
“호텔방?”
“응.”
“방은 좀 그런데...”
“은하 언니가 덮칠까 봐 겁나?”
“그런 게 아니라 사이가 더 어색해질까 봐서 그래.”
“은하 언니 좋은 사람이야. 잘해줘.”
“좋은 사람이지. 그런 좋은 사람과 호텔방에 있는데 걱정도 안 돼?”
“걱정돼. 하지만 그럴수록 옭아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러면 벗어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니까.”
“하린아, 나는 네가 나를 옭아맸다고 생각한 적 없어.”
“처음 오빠를 만났을 때는 떠날까 봐 두려웠어. 말도 안 되는 앙탈을 부린 것도 모두 그 때문이야. 그러나 이제는 오빠가 그러지 않을 걸 알아. 그래서 안심하고 은하 언니와 한방에 넣는 거야.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 와.”
하린이의 말은 자기 곁에만 있어 주면, 사랑해주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용서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해답을 찾았다. 동생 하연이 때문이었다. 하연이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를 자기 혼자만 차지하려고 하면 동생 하연이가 크게 다칠 것을 알기에 나와 하연이에게 틈을 준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내가 너무 미안했다. 내가 처신을 잘했다면 하린이가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했을 하린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리와.”
“흐응.”
품에 안고 입술을 맞추자 달콤한 신음을 토해냈다. 숨이 차 죽을 것 같을 때까지 격렬하게 입술을 빨았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오빠, 나 언제 안아줄 거야?”
“안아주고 있잖아.”
“이거 말고 진짜 안아주는 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응.”
“왜?”
“그게 진짜 하나 되는 거니까.”
“그거 그냥 섹스야. 달라질 거 없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지금보다 서로를 백배는 더 사랑할 거야.”
성관계를 맺는다고 사랑이 깊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여자, 자기 남자라는 생각이 더 깊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남녀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스킨십이 섹스라 관계를 맺은 커플과 맺지 않은 커플은 친밀감이 달랐다.
하린이가 섹스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오롯이 나만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세상 누구보다 나와 친밀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생각, 나를 소유했다는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번 일 끝나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결혼식 올리자.”
“결혼? 정말이지?”
“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오빠!!”
“그렇게 좋아?”
“응. 좋아. 죽을 만큼 좋아. 좋아 죽을 것 같아.”
결혼식을 올리자는 말에 품에 안긴 하린이가 아이처럼 좋아했다. 옆집으로 이사 온 이후 내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한다가 아니라 결혼하자는 말이었다.
이사한 다음 날 찾아뵌 후로 하린이네 집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가기 싫어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린이가 집을 나와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옆집이라 가고자 하면 가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크게 실망한 하린이의 마음은 1,000km 이상 멀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이 멀어지며 하린이의 불안도 커졌다.
내가 자기 가족과 맞지 않아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내가 반듯한 부모를 찾아도 그때의 앙금이 남아 결혼을 계속 미루면 어쩌나 하는 걱정했다.
그런 걱정이 결혼하자는 말 한마디에 모두 사라졌다. 어깨를 무섭게 짓누르던 불안이 사라지자 하린이의 얼굴이 복사꽃보다 더 환하게 폈다.
“자리를 잠시만 비워도 끌어안고 쪽쪽 빨아대네. 언니, 그러다 오빠 녹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다.”
“걱정하지 마. 오빠 재생력 좋아. 밤새 빨아도 다음 날이면 멀쩡해.”
“그럼 나도 빨아도 되겠네?”
“뭐라고?”
“재생력 좋다며? 그러니 나도 좀 빨자. 맛있어 보이는데.”
“어후. 저걸 그냥...”
“히히히히.”
하린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게임에 접속했다. 피곤해도 인스턴트 던전은 다녀와서 자야 했다.
5일 동안 인스턴트 던전을 20번 다녀왔다. 아라치와 쥬디, 미미, 아서, 아더를 데리고 다녀 경험치가 확 줄어들었지만, 한 번에 5만 점씩 꾸준히 먹자 95만 포인트를 모을 수 있었다.
포인트를 생명력에 모두 투자하자 피통이 4만을 넘어갔다. 생명력과 마나에 나눠서 투자한 하연이도 피통이 4만을 넘겼고, 하린이는 마나가 1만5천을 넘겼다.
이름 : 모모
생명력 : 11,999/43,929
마나 : 6,830/20,003
이름 : 하린
생명력 : 8,900/25,670
마나 : 4,690/15,690
이름 : 하연
생명력 : 28,555/40,555
마나 : 10,115/17,715
평판 점수도 많지는 않지만, 1,000점 가까이 모았다. 그리고 70레벨 정예와 보스 몬스터까지 꾸준히 잡아 프라나 32개와 레어 아이템 업그레이드 재료 8개, 고급 이상 아이템 7개를 얻었다.
이외에도 잡템을 얻어 한 판에 100만 원 정도를 벌며 2,0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스턴트 던전을 가기가 어려워질 전망이었다. 5월 1일부로 인스턴트 던전에서 황금 티켓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필드에서도 입장권을 구하려면 50레벨 보스 몬스터 이상을 잡아야 황금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스턴트 던전에서 나오는 일반 몬스터도 500마리에서 1,000마리로 두 배나 많아졌고, 따로 나오던 정예 몬스터도 일반 몬스터와 함께 나와 한 라운드 당 1,101마리의 몬스터를 잡아야 했다.
몬스터 숫자가 늘어난 것도 부담이었지만, 정예가 함께 나오는 게 더 큰 부담으로 3~4배 이상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변한 건 환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유저들이 경험치와 아이템을 몇 배나 많이 얻어서였다.
이 상태로 가면 한 달도 안 돼 80레벨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3인 파티가 수백 팀 나올 수도 있었다.
Part 2 전쟁의 서막을 위해선 유저들의 실력이 급상승해야 했지만, 환인이 원한 수준을 벗어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난이도를 크게 올려 성장 속도를 둔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몇몇 파티에겐 큰 기회였다. 몬스터 숫자가 2배로 늘어난 만큼 경험치도 2배로, 아이템 획득 확률도 2배로 늘어났다.
어떻게 보면 몇몇 파티를 위해 난이도를 올린 게 아닌지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주인공을 선발하려는 의도로 봐야죠. Part 2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일곱 용기사와 전쟁의 서막. 이게 뭘 뜻하겠어요? 주인공이 일곱 명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이 오빠고요.”
“용기사 빼고도 세 명이나 더 있잖아.”
“한스 마이어와 지그문트 파엘, 로만 리히테나의 후계자요?”
“어.”
“리히테나의 후계자가 누구예요?”
“나라고 봐야겠지?”
“레드 와이번 카르파고스의 주인인 사이먼은요?”
“그것도 내가 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
“그러면 답 나왔잖아요. 꼭 한 명씩 될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하연이의 말은 나처럼 십대 고수 중 두 명의 능력을 이어받은 유저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나도 사이먼과 리히테나의 후계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이먼은 검과 화염 마법의 대가였지만, 나는 아이템 빼고는 받은 게 없었다.
로만 리히테나도 전반부 검술을 얻었지만, 진짜는 후반부 검술이었다. 그걸 얻어야 진짜 후계자였다.
“나도 아직은 진정한 후계자라고 말할 수 없어. 후계자로 가는 중이라고 하는 게 맞아.”
“그러면 좀 더 인원이 늘어나겠죠. 어쨌든 환인이 추리기에 들어간 건 확실해요.”
지금 내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환인이 딱 일곱 명만 추릴 가능성은 없었다. 수백 명? 수천 명에게 기회를 주고 그중에서 운과 실력이 따르는 사람이 십대 고수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조만간 그들과 피 터지게 싸워야 했다. 싸워서 이기면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 권력과 돈을 한 손에 쥐는 것이고, 지면 모든 것을 잃고 게임을 접어야 했다.
바야흐로 죽느냐 사느냐 한판 승부를 가를 건곤일척의 도박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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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이제 출발하려고. 너는?”
“나도 이제 출발할 거야.”
“알았어. 조심해서 와.”
“은하야.”
“응?”
“스카이라운지 말고 XXXX실로 와.”
“방으로 오라고?”
“어.”
“아.알았어. 조금 이따 봐.”
하린이가 방을 예약한 건 아침 9시였다. 그런데 내가 은하에게 연락한 건 저녁 5시였다.
약속 시간 1시간 30분을 남겨두고 바뀐 장소를 알려준 것이다. 그렇게 한 건 호텔방에서 만나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였다.
아침 9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코앞에 닥쳐서야 하는 수 없이 알려준 것이다.
“오빠도 참 문제네요.”
“내가 뭘?”
“미리 알려줘도 될 걸 왜 출발하기 직전에 알려줘요?”
“말하기가 그렇잖아.”
“뭐가요?”
“남녀가 단둘이 한 방에 있는 거.”
“오빠, 은하 언니에게 관심 없다고 했죠?”
“어.”
“그런데 왜 단둘이 한 방에 있는 걸 신경 써요? 관심도 없는데.”
“남녀잖아. 그것도 한때 사랑했던. 당연히 신경 쓰이지.”
“사랑이 아직 남았어요?”
“아니.”
“그러면 아무 일도 없겠네요? 그렇죠?”
“어.”
“그런데 왜 신경이 쓰여요?”
“나도 모르겠다. 하아...”
하연이의 집요한 공세에 항복을 선언했다. 말로는 이길 수 없다는 하린이의 말이 무엇인지 오늘에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하연이는 아픈 곳도 동시에 찌르며 공격해 당할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