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170화 (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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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털이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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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야!”

“어, 형필아!”

“지금 네 메일로 이은택이 숨겨놓은 차명 계좌와 차명 부동산, 페이퍼컴퍼니 명단 보냈어. 금액도 함께 보냈으니까 조사해봐.”

“알았어. 그런데 이런 자료를 어디서 찾은 거야?”

“미안해. 말해줄 수 없어.”

“나에게도 말할 수 없는 거야?”

“네가 곤란해질 수도 있어. 모르는 게 좋아.”

“알았어.”

NPC가 유저의 기억을 빼낼 수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엄청난 문제가 된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었다.

부끄러운 실수나 가슴 아픈 사연이 대부분이겠지만, 너무나 창피해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일반인도 그런데 더러운 짓을 셀 수 없이 한 놈들은 어떻겠는가? 쥬디를 죽이려 할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숨기기 위해 여론을 이용해 환인과 ㈜판타스틱을 압박하든, 자객을 고용하든 쥬디를 반드시 죽이려 할 것이었다.

지금 내 힘으로는 쥬디를 보호할 수 없었다. 유저들로부터 보호할 힘이 생겨도 여론이 악화되면 환인이 쥬디의 능력을 지우거나 바꿀 수도 있었고, 최악에 죽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하린이와 하연이를 빼고는 누구에게도 쥬디의 능력을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못하게 했다.

비밀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비밀을 아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다. 비밀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쥬디가 안전했다.

“확인해서 경찰에 넘길게.”

“아니야. 넘기지 말고 갖고 있어.”

“왜?”

“그것과 연계해서 써먹을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위험한 일이면 하지 마.”

“위험하지 않아. 아주 간단한 일이야.”

“조심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일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알았어.”

내일이 은하 생일로 종로 XXX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6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은하 선물을 사기 위해 6년간 모은 적금을 깼다.

어떤 선물을 받으면 좋아할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시계를 샀다.

은하가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어 고민했지만, 어떤 선물을 사든 오해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애초 생각대로 시계를 골랐다.

“상사님, 대포차 한 대만 구해 주십시오.”

“차종은?”

“짐을 실을 수 있는 차면 됩니다. 대신 화물차는 안 됩니다.”

“봉고차면 되는 거야?”

“네.”

“언제까지 필요한데?”

“오후 5시까지 구해주시면 됩니다.”

“오늘?”

“네.”

“다른 거 더 필요한 건 없어?”

“번호판 하나만 더 구해주십시오.”

“알았어.”

이범석 상사에게 차를 부탁한 후 새로 산 차를 끌고 안산 시화공단으로 향했다. 공단 후미진 곳에 차를 세우고 반월공단에서 떼어온 다른 차의 번호판으로 갈아 끼었다. 그리곤 유유히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가.”

“저도요.”

“안 돼. 이번 일은 혼자 해야 해.”

“같이 가면 도움이 될 거야. 내가 망은 기가 막히게 보거든.”

“언니 말이 맞아요. 혼자보다는 셋이 주위를 둘러보는 게 더 안전해요.”

“이런 일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도움이 안 돼. 나 혼자 갔다 오는 게 위험을 더는 길이야.”

“그래도...”

“하린아, 갔다 오는 동안 쥬디하고 마림 길드 경영진 기억 좀 털어놔.”

“하아... 알았어. 대신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군대에서 수없이 했던 훈련 중 하나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연아, 언니 좀 도와줘.”

“오빠, 다치면 안 돼요.”

“어.”

오후 4시 따라오려는 하린이와 하연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이범석 상사가 내민 자동차 키를 받아들고 한강 시민 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검은색 12인승 그랜드 스타렉X를 몰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5시 10분 XX 상가 지하 3층에 있는 사설 금고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검은색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그것도 안심이 안 돼 판초우의를 뒤집어써 귀조차 보이지 않게 했다.

또한, 키와 몸매를 속이기 위해 두꺼운 솜바지에 패딩 점퍼를 판초우의 속에 입고, 20cm나 되는 신발을 신어 2m의 거구로 보이게 했다.

띵동띵동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필요한 게 있어 가지러 왔습니다.”

“고객 번호를 눌러주십시오.”

벨을 두 번 누르자 인터폰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시키는 대로 고객 번호를 철문에 달린 터치패드에 눌렀다.

[8452 3251 1178]

띠리링

“첫 번째 암구호를 눌러주십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라!]

띠리링 철컥

첫 번째 암구호를 정확히 누르자 30cm가 넘는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두꺼운 쇠창살 안에 운동 좀 했다는 티를 팍팍 내는 남자 다섯 명이 서 있었다.

“두 번째 암구호를 눌러주십시오.”

[돈이 그대를 천국에 들게 할 것이다.]

띠리링 철컥

쇠창살에 붙은 터치패드에 두 번째 암구호를 누르자 쇠창살에 중앙에 달린 문이 열렸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검은 슈트를 입은 날렵한 차림의 남자를 따라가자 또다시 두꺼운 철문이 길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경비원이 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경비원이 열어준 문을 밀고 들어가자 작은 철문이 달린 방이 줄지어 서 있는 통로가 나왔다.

이은택의 고객 번호 앞에 도착한 직원이 문을 열어줬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방에 들어갔다.

사설 금고를 이용하는 놈들은 모두 부자와 정치인으로 고개가 아주 빳빳했다. 사설 금고 경호원 따위에게 고개를 숙이는 놈들이 아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거만하게 행동했다. 그래야 의심을 사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자 커다란 은색 금고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터치패드에 암호를 입력했다.

[NP36 [email protected] Ħð79 6H3& 05FL ЖЁ44]

위이이잉 철컥

잠금장치가 해체되는 소리와 함께 금고가 열었다. 높이 2m, 폭 5m의 금고는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단에는 5만 원권 지폐가 500장 단위로 묶여 있었고, 미연방준비은행에서 방금 찍은 것 같은 빳빳한 100달러 지폐도 비닐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1kg 금괴도 100개나 있었다. 시가로 50억 원어치로 지폐와 금괴만 해도 100억 원은 넘었다.

상단에는 무기명 국채가 10개가 넘는 봉투에 들어있었고, 작은 주머니에는 다이아몬드도 20개나 있었다.

원화와 달러, 금괴를 합한 것보다 몇 배는 많은 돈으로 쥬디가 말한 500억 원을 훨씬 웃돌았다.

자루에 돈과 금괴, 채권을 몽땅 쓸어 담고, 마지막으로 노란 봉투에 담긴 장부를 챙겨 카트에 실었다.

나올 때는 아무것도 누르지 않아도 돼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차에 자루를 싣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사설 금고 직원들이 따라올 수도 있어 복잡한 중심가를 돌고 돌아 고속도로로 빠진 후 안산 시화공단으로 들어갔다.

몇 번이나 따라오는 차가 있는지 확인한 후 내 차를 세워둔 곳으로 대포차를 몰고 갔다.

자루를 내 차에 옮겨 실은 다음 수건으로 닦고, 소형 진공청소기로 차 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렇게 하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바퀴벌레 살충제 3통을 운전석을 중심으로 뿌려댔다.

장갑을 끼고 있어 지문이 남을 일도 없었고,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어 머리카락이 빠질 위험도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 증거가 남지 않게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차 안을 청소한 후 대포차 번호판을 뜯고 이범석 상사가 구해온 번호판으로 바꿔 달았다.

작업이 끝나자 내 차를 몰고 시화공단을 벗어났다. 그러나 바로 오지 않고 또다시 2시간 동안 돌고 돌아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재차 확인한 후 원래 번호판으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대포차 키는 찾을 수 없게 호수에 버렸다.

그런 다음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자 저녁 12시 30분이었다.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 것으로 10년 치 구경을 하루 만에 다한 기분이었다.

“차에다 금괴와 돈을 놓고 온 거야?”

“어.”

“얼마나 되는데?”

“못해도 100억 원은 넘을 거야.”

“미친 거 아니야? 100억 원을 차에 놓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일 낮에 몰래 3층으로 옮길 거야.”

“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니까.”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린이와 하연이 다음으로 이범석 상사를 믿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아내를 믿는다고, 자식을 믿는다고, 친구를 믿는다고 자기가 한 일을 하나도 숨김없이 다 털어놓는 사람은 없었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하지 못할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말아야 할 얘기도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약점이었다. 치명적인 약점이 될 일은 절대로 말해서도 보여줘서도 안 됐다.

이범석 상사와 내가 갈라설 확률은 0.0001% 이하였다. 나도 그렇고, 이범석 상사도 그렇고 신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돈이나 사소한 오해로 갈라서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아무도 몰랐다. 친구가 적이 될 수 있었고, 적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세상이었다.

그때를 대비해 꼬투리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현명했다. 그래서 이은택의 사설 금고를 턴 일도 말하지 않고 차만 빌린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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