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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166화 (16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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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털기

166.

“며칠에 한 번 오는데?”

“최근에는 거기서 살다시피 하나 봐요. 게임 시간으로 이틀에 하루는 그곳에서 술 먹고 여자들 끼고 잔다고 했어요.”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그곳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나 보네?”

“그렇죠.”

은하가 스폰서 사건을 터뜨리자 기자들이 이은택의 집에 몰려갔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는데도, 마림 재단 이름이 뜨자 기레기들이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채고 몰려간 것이었다.

기레기들이 이은택의 평소 행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이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예전 같으면 기자들의 눈을 속이고 몰래 빠져나와 룸살롱에서 놀았겠지만, The Age of Hero가 오픈하며 밖에 나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흥을 즐길 수 있어 집에 콕 처박힌 채 님프에서 불안한 마음을 술과 여자로 달래고 있었다.

현재 이은택의 정신 상태는 최악이었다. 도청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마림 재단에서 영원히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히스테리를 넘어 신경 쇠약증에 걸린 상태였다.

게임에 접속해 있지 않은 시간은 온종일 도우미와 경호원들을 들볶았다. 짜증은 기본이었고, 사소한 실수만 해도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이 때문에 그만둔 도우미와 경호원이 20명이 넘었다. 그러나 돈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엄청나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듯 새로운 도우미와 경호원이 바로바로 채워졌다.

이은택의 성질이 지랄 같아도 보수만 많이 준다면 일할 사람은 넘쳐났다. 슬픈 현실이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쥬디는 어떻게 잠입시키려고?”

“힘들게 잠입시키지 않아도 돼요.”

“왜?”

“입구 근처에 숨어 있다가 놈이 나오거나 들어갈 때 혜안을 사용하면 되거든요.”

“마차가 안에 들어가지 않아?”

“네. 입구에서 걸어서 들어가야 해요.”

“지키는 사람 있을 거 아니야?”

“입구에만 몇 명 있어요. 그것도 힘만 센 놈들로요. 근처에 숨어 있어도 위험하지 않아요.”

이윤이 많이 남는 고급 요정은 특권층만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아니면 특권층에 기댄 암흑가의 폭력조직만 할 수 있었다.

특권층은 권력을 잡은 귀족을 뜻하는 것으로 이런 귀족이 뒤에 있는 한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입구에 무장한 병력을 세우지 않은 것이었다. 권력을 잡은 귀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님프를 건드릴 세력이 없으니까.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자 하린과 하연, 쥬디를 데리고 수도로 이동했다. 하연이가 알아낸 요정까지 말을 타고 이동한 후 100m 떨어진 골목길에 숨어 이은택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빠. 제가 들어가서 이은택이 있는지 알아보고 올게요.”

“은신 쓰고 들어가려고? 은신할 수 있는 시간 얼마 안 되잖아?”

“은신을 왜 해요? 마림 길드에서 심부름 왔다고 물어보면 있는지 없는지 바로 알 수 있는데.”

“아아 그렇지. 역시 똑똑해.”

“제가 똑똑한 게 아니라 이것도 생각하지 못한 오빠가 문제 있는 거 아닐까요?”

“미안하다. 멍청해서.”

“그런 얘기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조금 미안하네요. 호호호호.”

“여우!”

“히히히히.”

“그런데 정체가 탄로 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줄 알고 이렇게 화장품 잔뜩 싸 들고 왔죠. 어때요? 준비성 철저하죠.”

“어.”

하연이가 인벤토리에서 메이크업 박스를 꺼냈다. 박스를 열자 색조 화장품을 비롯해 BB크림, 파운데이션, 팩트, 파우더, 섀도우, 아이라이너, 틴트, 립스틱, 마스카라, 컨실러 등 수많은 종류의 화장품이 가득했다.

현실 속 화장품을 박스 안에 다 넣어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이것만 있으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나서도 될 것 같았다.

“화장으로 변장이 돼?”

“오빠,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도 못 알아보게 할 테니까요. 언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화장해줘.”

“나 화장할 줄 몰라.”

“그 나이 먹도록 화장도 못 해?”

“나 베이비 로션만 바르는 거 너도 알잖아. 그런데 어떻게 화장을 해. 눈썹도 안 그려봤어.”

“20살 먹고 화장도 못 하는 게 자랑이야?”

“그러는 너는? 너는 할 줄 알아?”

“나는 고등학생이잖아. 언니는 대학생이고.”

“야! 요새 애들 중학교만 들어가도 화장하고 다녀. 고등학생이라고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러는 언니는 왜 못해.”

“난 안 해도 예쁘니까.”

“웃기고 있네. 그 얼굴이 예뻐? 호박이 백배는 예쁘겠다.”

“이게 정말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오늘 구덩이 팔까?”

“진실을 얘기하면 꼭 주먹을 쓰려고 해. 전생에 깡패였어?”

“이게 정말...”

“언니들 싸우지 마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쥬디야, 화장도 할 줄 알아?”

“딸 같지도 않은 딸이 매일 하는 게 뭐겠어요? 언니들 시중드는 일이죠. 화장도 그중에 하나예요.”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3시 백작가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쥬디는 언니들 씻을 물을 우물에서 길어오고, 씻기 좋게 따뜻하게 데워야 했다.

언니들이 씻고 나면 옆에 달라붙어 머리를 빗겨주고, 립스틱과 로션을 발라주고,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등 온종일 쫓아다니며 수발을 들어야 했다.

쥬디가 몸종처럼 일한 건 단 하나 엄마가 평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같은 아버지를 뒀지만, 비천한 어머니를 뒀다는 이유로 농노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 했고, 괴롭힘도 몇 곱절은 더 당했다.

“이렇게 눈 화장을 짙게 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여요. 그리고 입술도 찐하게 칠하고 볼 터치도 핑크색으로 찐하게 하면 아무도 몰라봐요. 큰오빠 어때요? 하연이 언니 같아요?”

“아니. 누군지 진짜 몰라보겠다. 쥬디 손재주 정말 좋다.”

“헤헤헤헤.”

“쥬디야. 언니가 너에게 잘못한 거 있었니?”

“아니요.”

“그러면 앞으로도 언니하고 잘 지내자. 알았지?”

“네.”

“쥬디야, 언니는 어때?”

“하린이 언니도 좋아요.”

“그러면 나하고도 잘 지내는 거다.”

“당연하죠.”

쥬디의 화장 솜씨에 매료된 하린이와 하연이가 쥬디의 손을 꼭 잡고 평생 같이 가자며 아부를 떨었다.

똑같은 얼굴도 화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 보였다. 잘한 쪽은 미스코리아였고, 못한 쪽은 호박에 줄 그어 놓은 것과 같았다.

이 때문에 하린이와 하연이가 쥬디에게 살살거리는 것이었다. 황당한 건 하린이와 하연이는 화장하지 않았다.

게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로션 하나 바르면 끝이었다. 그런데도 살살거리는 것을 보면 여자에게 화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모양이었다.

하린이와 하연이는 평소에도 쥬디를 동생처럼 대했다. 쥬디뿐만 아니라 아라치와 미미도... 나이는 46살이지만, 정신연령은 3~4살 아이라 동생으로 대하고 있음... 친동생처럼 대했다.

그리고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엠마, 에밀리도 친구처럼 대하는 등 남작 부인이라고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덕분에 영주성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못해 종일 수다 떠는 아가씨들로 항상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살갑게 웃고 떠들며 조잘대는 소리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보다 더 듣기 좋았다.

어릴 적 절간보다 더 적막한 곳에서 자라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그리웠다.

그 소리를 마음껏 듣자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더 밝아졌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든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항상 고마웠다.

“이상한 낌새 있으면 바로 귓속말해. 강제 소환할 테니까.”

“네.”

씩씩하게 대답한 하연이가 정문으로 걸어갔다. 이은택의 여자 친구가 아닌 마림 길드 길원으로 가는 것이라 화장은 진하게 했지만, 복장은 전형적인 유저 차림으로 방어구에 후드를 입고 갔다.

그리고 혹시 몰라 방어구도 고급 아이템으로 바꿔 입어 화장을 지우고 방어구를 바꿔 입으면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 NPC 2명이 하연이 다가오자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고급 술집이지만,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여성 유저들도 가끔 들러 여자가 오는 걸 어색해하지 않았다.

“마림 길드 길마 스사노오님에게 안내해.”

“어디서 오셨습니까?”

“보면 몰라? 마림 길드지.”

“스사노오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6시에 도착하신다고 연락 주셨는데, 좀 늦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안에 들어가 기다리시죠. 금방 도착하실 겁니다.”

“으음... 1시간 후에 다시 오지.”

“누가 오셨다고 전해드릴까요?”

“다시 올 거야.”

“알겠습니다.”

하연이가 입구를 지키는 남성 NPC에게 말을 놓았다. 님프가 든든한 후원자를 둔 고급 술집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인 얘기였지 말단 종업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종업원은 부속품과 같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바꿀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주인이 무서우면 그 집 개도 안 건드는 것처럼 님프에서 일하는 NPC를 때리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일부로 말을 놓은 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마림 길드의 특성을 벗어나면 발각될 수도 있어서였다.

마림 길드는 힘없는 평민과 농노 NPC에겐 자신들이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개·돼지 취급을 했다.

평민과 농노는 도시의 치안을 책임진 치안대를 두려워해 진짜 큰일이 아니면 신고하지 않았다.

마림 길드는 이 점을 노리고 평민과 농노를 막대했다. 이런 일은 마림 길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유저가 힘없는 NPC를 무시했다. 그중에는 현실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유저도 있었지만, 매일 을의 위치에서 무시당하는 유저도 있었다.

현실에서 당한 걸 NPC에게 푸는 것으로 쥐꼬리만 한 힘을 얻자 자기가 개새끼라고 욕하던 짓을 자신이 하는 것이었다.

“수고했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호호호호.”

“잘난 척하기는.”

“그러면 언니가 하지 그랬어?”

“너 잘났다.”

“이제 알았어?”

“아우 저걸 그냥...”

“그만 좀 해. 어떻게 얼굴만 보면 싸우냐?”

“하연이가 시비를 걸잖아.”

“언니가 말꼬리 잡았어요.”

“동생이 시비 건다고 싸우는 언니나, 언니가 말꼬리 잡는다고 대드는 동생이나 정말 한심하다. 하아...”

“히잉.”

“우이씌.”

“오빠, 저기 마차 와요.”

“여기서 걸 수 있어?”

“눈을 마주쳐야 혜안을 쓸 수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야 해요.”

혜안은 눈을 통해서만 상대의 지나온 시간을 읽을 수 있어 눈을 마주쳐야 했다. 그리고 거리가 멀면 혜안에 잘 걸리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나이가 들면 능력이 높아져 거리도 늘어나겠지만, 지금은 최대 10m가 한계였다.

“오빠는 영주성에 먼저 가 있어. 그래야 쥬디를 안전하게 소환하지.”

“알았어.”

이은택이 쥬디의 혜안을 눈치채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면 재빨리 영주성으로 강제 소환해야 쥬디가 안전했다.

하연이와 하린이가 양옆에서 쥬디를 보호하면 됐지만, 여럿이 몰려가면 이은택이 경계할 수도 있었다.

상대가 경계하면 혜안 걸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싸움이 붙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어 최대한 싸움을 피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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