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165화 (165/320)

0165 / 0310 ----------------------------------------------

신상 털기

165. 신상 털기

따르릉따르릉

사냥을 끝내고 영주성으로 돌아오자 박무윤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급히 봉합 수술을 하고 다른 병원으로 수영이를 옮기려고 했지만, 기레기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으로 몰려들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기자들에 막혀 수영이를 데리고 나올 수 없자 박무윤 상사와 김상호 상사, 정동일 상사만 병원을 빠져나왔다.

자신들 얼굴이 알려지면 이은택이 내가 수영이 뒤에 있는 걸 알아낼 수도 있어 수영이를 놓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병원 CCTV 영상 챙겼다. 1분 전에 이범석 상사님께 영상 보냈으니까 확인해봐.”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 아니라 말썽이지. 미안하다. 작전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정에 휩쓸려 실수나 하고... 면목이 없다.”

“제가 박 상사님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넌 나처럼 멍청하게 하지 않았을 거야. 걸리지 않고 엄마를 만날 방법을 찾았을 거야.”

박무윤 상사 말처럼 내가 수영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면 무작정 중환자실에 데려가는 짓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미리 보내 수영이 엄마를 다른 병실로 몰래 옮긴 다음 수영이와 만나게 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박무윤 상사를 탓할 순 없었다. 나는 고용주였고, 박무윤 상사는 월급쟁이였다.

월급쟁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중환자실에 버금가는 병실로 수영이 엄마를 옮긴단 말인가.

생각은 있어도 실천할 순 없는 일로 박무윤 상사가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방법을 찾질 못한 것뿐이었다.

“상사님, 상사님은 위험한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그런 상사님을 존경합니다.”

“고맙다. 죽기 전에 이번 일 꼭 갚을게.”

“오래오래 제 옆에 계셔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알았다. 쫓아내지만 않으면 평생 옆에서 시다바리로 살게.”

“남아일언 중천금입니다.”

“그럼. 당연하지.”

다행히 수영이 어머니가 입원한 중환자실 앞에 CCTV가 있었다. 덕분에 놈들이 수영이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고 가려는 모습과 모자를 뒤집어쓴 박무윤 상사가 놈들을 막는 모습, 놈들이 수영이와 박무윤 상사에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아주 잘 나왔다.

확실한 증거 자료가 없으면 마림 재단에서 박무윤 상사를 폭행범으로 몰수도 있어 수영이를 입원시키고 바로 CCTV 영상을 확보했다.

경찰이 넘겨 달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영상을 복사한 다음이라 조작할 수도 지울 수도 없었다.

“김은하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수영이 경호원 좀 붙여줘야겠다. 100명도 넘는 기자와 1,000명도 넘는 팬들이 몰려와 난리도 아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병원 옮기고 다시 연락하마.”

“네.”

기레기들이 병원에 도착한 지 5분도 안 돼 수영이가 피습당했다는 소식이 속보로 뉴스를 탔다.

괴한들이 휘두른 칼에 수영이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뉴스가 나가자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아픈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간 수영이를 괴한이 납치하려 했고, 뜻대로 안 되자 칼을 휘둘러 죽이려 했다는 걸 알게 된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그동안 다현이와 수영, 민지, 연아는 키워준 회사를 헌신짝처럼 발로 찬 배은망덕한 년들,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아무 곳에서나 팬티를 내리는 창녀로 취급받았다.

그러다 수영이가 피습을 당하며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납치와 살인은 입을 막으려는 행동으로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될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다현이와 수영, 민지, 연아가 아니라 SUN 엔터테인먼트 아니면, 마림 재단 이은택이라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이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비교적 공정하게 상황을 전파했던 신문들이 다현이와 민지, 연아, 수영이가 왜 그룹을 탈퇴했는지, 스폰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국민 감정이 다현이와 민지, 연아, 수영이에게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동안 소설을 쓴 기레기들과 악의적인 보도를 일삼은 SUN 엔터테인먼트, 마림 재단을 욕하며 처벌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사건 덕분에 국민 감정이 우호적으로 바뀌며 재판이 유리해졌다. 재판은 언제나 공정해야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어 국민감정이 쏠리는 곳에 유리한 판결이 자주 났다.

그러나 피습 사건을 환영할 순 없었다. 한 치만 옆에 찔렸어도 수영이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늘이 구해준 것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 ♩♪♬♩♪~

“은하야. 10분 있다가 동영상 하나 보내줄게. 그거 보고 기자회견 열어서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기자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기레기들 부르지도 말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알았어. 다현이네 사건을 악의적으로 보도한 기레기들은 기자회견장에 발도 못 붙이게 할게. 그런데 동영상도 공개해?”

“아직 하지 마. 돌아가는 상황보고 생각하자.”

“알았어.”

“수영이 내일 중환자실에서 나와 1인실로 옮길 거야. 네 이름으로 경호회사와 계약해서 경호원 넉넉히 보내. 간호할 사람도 같이 보내고. 그리고 네 허락 없이는 아무도 병실에 못 들어가 해. 놈들이 경찰이나 기자로 변장하고 들어갈 수도 있어.”

“알았어. 지금 바로 연락할게.”

“수고해.”

“형필아.”

“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 일주일 후에 생일이야. 많이 바쁜 거 아는데, 잠시 시간 내서 같이 저녁 먹을 수는 없을까?”

“... 알았어.”

“네가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 정말 많이 했어. 이렇게 쉽게 허락할 줄 알았다면 더 빨리 말할 건데 그랬어.”

“다음부터 말할 거 있으면 바로 말해.”

“그럴게. 고마워. 약속 장소 내일모레까지 알려줄게.”

“어.”

4월 30일 목요일 석가탄신일. 그날이 은하 생일이었다. 6년이 지났지만, 은하 생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날을 위해 저금했던 통장이 아직도 서랍에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만났을 땐 한여름이라 생일을 챙겨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년 생일을 기약하며 은하 몰래 적금을 들었다.

그걸로 둘만의 특별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쓸쓸한 추억만이 남았다.

미워하지 않았기에, 헤어지고 싶어 헤어진 게 아니었기에 통장을 깰 수 없었다. 그래서 만기가 돌아오면 매년 기한을 연장했다.

그렇게 6년을 갖고 있었다. 4월 30일이 만기인 통장을...

“미안해.”

“밥 한 끼 먹는 걸 가지고 뭐가 미안해?”

“허락도 맡지 않고 내 멋대로 정했잖아.”

“나쁜 짓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허락을 받아? 그러지 마. 그러면 나 나쁜 여자 돼.”

“고마워.”

하린이 말처럼 나쁜 짓하러 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헤어진 여자 친구 생일에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 둘이... 좋은 짓이라곤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러고 그런 자리에 가는 걸 괜찮다며 허락해주는 여자도 아주 드물었다. 고마웠지만, 그래서 더 미안했다.

“오빠, 이은택이 자주 가는 곳을 알아냈어요.”

“어디야?”

“수도 크라쿠푸스 서쪽에 고급 술집이 밀집해 있어요. 그중에 님프라고 아주 비싼 요정이 있어요. 그곳에 자주 출입해요.”

“요정이면 기생집?”

“네.”

“The Age of Hero에도 그런 곳이 있어?”

“The Age of Hero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뭔들 없겠어요. 오히려 대한민국보다 더한 곳이 더 많잖아요.”

“더한 곳?”

“창남촌요.”

“컥!”

유교 문화가 꽃피운 조선 시대에도 기생집이 넘쳐났다. 하물며 귀족이 판치는 The Age of Hero에 요정과 창녀촌이 없겠는가.

인간과 술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 같은 관계로 The Age of Hero에도 가는 곳마다 술집이 있었다.

그리고 The Age of Hero는 성매매가 불법이 아니라서 술집마다 몸 파는 접대부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고급 술집은 나이 어린 여자가 많았고, 싸구려 술집은 나이든 여자가 많다는 것밖에 없었다.

“원래는 귀족들만 상대하던 곳이었는데, 유저들 주머니 터는 게 더 쉬운지 작년부터 유저들만 상대하고 있어요.”

“유저들이 호구야?”

“시골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는데?”

“호구요.”

“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농민은 아주~ 먼 곳에서 사 온 콩과 깨를 자기가 길렀다고 속이고, 아침에 시장에서 사와 심어 놓은 파를 정성을 다해 키운 것처럼 속여 서울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요. 그래서 호구라고 부르죠.”

“정말?”

“오빠 같은 사람은 1초면 속이죠.”

“이런...”

하연이 말이 사실이었다. 유기농만 판다고 써놓고 농약을 잔뜩 뿌린 채소를 비싼 값에 파는 매장도 있고, 원산지를 속이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도 있고, 국산과 중국산을 섞어서 파는 아저씨도 있었다.

이문을 많이 남기기 위해 그런 것으로 웃기는 건 불법인지 알면서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웃긴 건 그렇게 안 하면 손해나 난다고 우긴다는 것이었다.

“다른 집은 여자 한 명 붙여줄 때 두 명씩 붙여줬대요. 그러니 유저들이 환장할 수밖에요.”

“두 명을?”

“원하면 열 명도 한 방에 넣어줬대요.”

“열 명?”

“부러워요?”

“아.아니야. 노.놀라서 그런 거야.”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부럽죠?”

“아.아니라니까.”

“부러워할 거 없어요. 대신 돈은 귀족들보다 세 배 많이 받았어요. 금화 1개에 3~4명씩 사온 농노 아이들을 이용해 엄청난 폭리를 취한 거죠. 나쁜 놈들.”

은하 생일로 잠깐 어색했던 분위기가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의뢰해 이은택이 어디 출입하는지 하연이가 알아오며 말끔하게 해소됐다.

그러나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얘기로 또다시 나를 곤란하게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그것도 여자애가 남자 혼자서 여자 열 명을 데리고 논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다니... 강해도 너무 강했다.

“이은수는?”

“현실이 좋은지 게임 안에서 술집을 들락거렸다는 기록이 없어요.”

“정이슬도 그곳을 들락거리는 거야?”

“이은택만 자주 가는 곳이에요.”

“정이슬은?”

“학교와 마림 길드 본부 빼고는 거의 다닌 곳이 없어요.”

“사냥도 안 다녀?”

“거의 안 했나 봐요. 기록이 없어요.”

“하연이 말이 맞아. 이슬이 게임보다는 현실에 집중했어.”

모든 사람이 The Age of Hero에 미쳐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사람 중에도 현실에 더 충실한 사람도 있었다.

영화 매트릭스(Matrix)처럼 기계가 인간을 캡슐에 가둬두고 사육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이 게임에 매달릴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전기도 끊기고, 차도 멈추고, 물도 마실 수 없고, 쌀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먹고 놀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 게임에만 미쳐있다면 아무도 살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