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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을 위한 준비
162. 반격을 위한 준비
“이번에도 족쇄야?”
“당연하지.”
“나는 오빠가 이렇게 계산이 철저한 사람인지 몰랐어.”
“버림받고 혼자 힘으로 살아봐.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미안해. 괜한 말 했어.”
“욕한 거 아니란 거 알아. 대신 또 그러면 혼난다.”
“응. 다시는 안 그럴게.”
많이 미안했는지 하린이가 품에 안기며 사과했다. 계산이 철저하다는 말은 욕은 아니었다. 그러나 냉정한 사람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린이가 그런 말을 한 건 한 번도 돈에 관해 철저하게 굴지 않던 내가 다현과 수정이에게만 빡빡하게 굴자 불안해서 한 말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다른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한 사람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은 생소함을 넘어 거북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하린이도 두려움에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린이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는 착각. 그런 착각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하린이가 나에 관해 아는 건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됐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힘들었구나 하는 정도만 알뿐 그 기나긴 고통의 시간 속 세세한 삶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간도 아주 짧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통을 당한 사람은 그 시간이 영원처럼 길었고, 고통의 깊이도 다른 사람은 절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참혹했다.
고참이 사소한 일을 꼬투리 잡아 얼차려를 줬다. 등을 땅에 붙이고 팔과 다리를 비스듬히 공중에 띄운 채 머리를 지면에 붙이지 않는 아주 편안한(?) 자세였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목이 부러질 같이 아팠다. 그러나 얼차려를 주는 고참에겐 고작 30초의 짧은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잔소리 몇 마디 한 아주 짧은 시간으로 얼차려를 줬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1분이 흘렀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2분이 흘렀다. 목과 팔, 다리가 부러질 것같이 아파 더는 들고 있을 수가 없다.
3분이 흘렀다.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10년은 흐른 것처럼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고통에 대한 상대적인 느낌이었다. 나에게 3분은 10년보다 더 긴 시간이었지만, 상대에게는 1초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 고통을 몇 년, 몇십 년 당한 사람을 우리는 이해한다고 말한다.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이가 당하는 고통조차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단 말인가?
자신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절대... 절대로 나는 당신의 고통을, 당신은 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한다고 말하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은하야.”
“어, 형필아.”
“1시간 후에 이범석 상사님이 2억 원 들고 갈 거야. 그걸로 다현이와 수정이 빚 갚아줘.”
“알았어.”
“마약은 내일 아침에 결과 나올 거야. 결과보고 전화할게.”
“응.”
“별일 없지?”
“보디가드가 2명이나 붙어 있는데 당연히 없지. 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당분간 집에는 가지 마. 위험할 수도 있어.”
“알았어.”
“내일 전화할게.”
“응.”
은하에게 돈을 줘 다현이와 수영이 빚을 갚아주게 한 건 이은택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놈이 은행에 스파이를 심어놓았을 수도 있어 내 이름이 드러나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내가 다현이와 연루됐다는 걸 알면 곧바로 우리 집이 발각된다. 놈을 파멸시킬 때까지는 철저하게 나를 숨겨야 했다.
“오빠, 다현이와 민지, 연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대요.”
“안 해도 돼.”
“받아주세요. 안 받아주면 평생 미안해할 거예요.”
“하아... 알았어.”
하연이의 부탁에 하는 수 없이 1층 거실로 내려갔다. 예상했던 대로 셋 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 고마워했다.
특히 다현이는 내 품에 매달려 면티가 다 젖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감사 인사를 받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우는 여자를 달래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내 여자도 아닌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간신히 다현과 민지, 연아를 달래고 2층으로 올라오자 탈진해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다.
“오빠, 고생했어.”
“이 짓 다시는 못 할 짓이다.”
“내가 울어도 모른 체할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내 여자 아닌 여자를 안고 달래는 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다른 남자들은 다현이 한 번이라도 안고 싶어 난린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게 미안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난 내 것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아. 내 성격 알잖아?”
“그건 참 마음에 들어. 헤헷.”
“오빠, 그러면 저는 뭐예요? 저는 왜 매일 거들떠보세요. 저도 오빠 여자예요?”
“헉!”
하연이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쳐들어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아주 요상한 능력으로 80레벨 보스 몬스터의 공격보다 더욱 강력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오빠, 마약으로 이슬이 언니와 이은택을 완전히 보낼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 없어.”
“제가 보기에는 이은택은 물론 이슬이 언니도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정이슬과 이은택을 완벽하게 파멸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이은수가 이은택을 미워해도 아버지 이만철과 엄마가 건재해 실형을 선고될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놈이 바보같이 수영이를 습격했다는 것이었다. 박무윤 상사가 경찰에 넘긴 두 놈이 입을 열면 이은택은 끝장이었다.
그러나 놈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고 경찰이 이은택과의 관계를 찾아내지 못하면 사건은 광적인 팬들의 복수심에 불타 저지른 우발적인 사고로 끝날 수도 있었다.
히어로걸스를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들이 팀을 해체시킨 수영이에게 앙심을 품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 그것이 이은택이 원하는 시나리오였다.
정이슬 역시 마찬가지로 든든한 아버지가 있어 집행유예로 끝날 확률이 아주 높았다.
방법은 고등학교 때 저지른 일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낸다는 보장도 없어 최악에는 두 연놈을 모두 놓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뱀을 건드려 독만 잔뜩 오르게 한 꼴로 우리도, 다현이네도 이로울 게 없었다.
“오빠, 쥬디 능력을 이용해보는 건 어때요?”
“어떻게?”
“쥬디를 마림 길드에 시녀로 잠입시키는 거예요. 혜안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탈탈 털면 마약과는 비교도 안 될 것들이 나올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쥬디가 다칠 수도 있어.”
“그러면 이건 어때요? 이은택과 이은수, 정이슬이 자주 가는 술집이나 식당에 취직시키는 거예요. 그곳은 길드만큼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쥬디가 정이슬과 이은택의 기억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파멸이 아니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정이슬과 이은택의 평소 행동으로 봤을 때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될 무시무시한 비밀이 최소 3~4개는 있을 게 확실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언제 일어났는지, 누구와 관련됐는지 등을 자세하게 알 수만 있다면 증거를 찾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이범석 상사와 김상호 상사와 박무윤 상사, 정동일 상사는 증거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전문가들로 작은 단서만 있어도 모래사장에서 바늘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연놈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찾아내면 법정에 세우지 않고도 둘을 끝장낼 수 있었다.
정이슬과 이은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중형을 받고 교도소에 가는 것이었다. 중형을 선고받으면 최소 10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면 비난 여론 때문에 사면도 받기 어려워 20년 이상 썩을 수도 있었다.
그럼 남은 건 하나 자살이었다.
“둘이 어디 자주 가는지 알아낼 수 있어?”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어요. 늦어도 하루면 알아낼 수 있어요.”
“알았어.”
어린 쥬디를 밖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지만, 정이슬과 이은택을 없애지 않으면 우리가 위험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짓이 온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하린이와 하연이가 살기 위해선 반드시 둘을 없애야 했다.
삶은 비정한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벌레든, 인간이든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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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슬과 이은택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인스턴트 던전에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려면 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연놈을 처리하는 일은 그 일대로 진행하고, 게임에서 우리 실력을 키우는 것도 멈춰선 안 됐다.
보스 몬스터의 레벨이 높을수록 황금 티켓이 나올 확률도 높아져 네크로맨서 탈라한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80레벨일 가능성이 매우 커 당분간은 못 본 척 그냥 두기로 했다.
80레벨 보스 몬스터 다크 엘프 팬텀 나이트 나디아를 잡은 건 순전히 흡혈 덕분으로 흡혈 스킬이 없었다면 절대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탈라한을 잡다가 죽으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돼 인스턴트 던젼의 80레벨 보스를 완벽히 잡을 때까지는 시선도 주지 않는 게 바람직했다.
국경수비대 성벽을 빠져나와 바람의 정령 사원이 있는 동쪽이 아닌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검은 오크 전사와 궁수, 주술사 기사를 잡으며 10km쯤 전진하자 땅이 쩍쩍 갈라진 계곡이 나왔다.
평평한 대지에 균열이 생겨 만들어진 계곡으로 깊은 곳은 300m가 넘어 음산함마저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도 던전이 있을까?”
“이런 곳일수록 던전이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래?”
“그럼요. 오빠는 저만 믿으면 돼요. 그러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거예요.”
“흐흐흐. 알았어.”
하연이의 확신에 찬 말에 따라 비탈진 소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폭이 500m가 넘는 넓은 계곡은 빛이 적게 들어와 풀과 나무가 많지 않았다.
대신 지형이 복잡하고 커다란 바위가 많아 시야가 좁아 10m 앞도 내다보기가 어려웠다.
치이익
- 자이언트 코브라의 맹독에 중독됐습니다. 1분 동안 3초마다 생명력 50이 소모됩니다.
퍽
- 65레벨 자이언트 코브라가 정신파괴에 걸렸습니다. 공황상태에 빠진 자이언트 코브라는 10초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자이언트 코브라가 고개를 내밀고 독물을 쏘아댔다. 홀리메탈 원형 방패로 막았지만, 방패에 튀긴 독이 팔에 튀었다.
바람 가르기로 재빨리 다가가 블레이드로 머리를 치고 나가자 놈이 정신파괴에 걸려 쓰러졌다.
퍽퍽퍽퍽
키익
- 파티원 모모님이 66레벨 자이언트 코브라를 사냥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22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22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연님이 22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쓰러진 자이언트 코브라의 머리를 삼연격 스킬을 이용해 연달아 찌르자 5초도 안 돼 숨이 끊어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