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1 / 0310 ----------------------------------------------
습격
161.
“동쪽 펑거스 숲도 20일이면 나무뿌리를 모두 캐낼 수 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작물을 심을 수 있는 거야?”
“농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남았지만, 우드 골렘이 도와주면 금세 마무리할 수 있어 겨울작물부터는 재배할 수 있습니다.”
“펑거스 숲 전체를?”
“네. 대신 황색 오크와 버그 베어 서식지 정리 작업은 조금 늦어질 겁니다.”
“괜찮아. 작물 재배가 우선이니까.”
펑거스 숲만 농지로 늘려도 전보다 2배 이상 농지가 늘어나는 것으로 버그 베어 숲과 황색 오크 서식지는 내년에... 게임 시간으로... 늘려도 충분했다.
그리고 농지가 2배로 늘어나면 일손도 부족해 버그 베어 숲과 황색 오크 서식지를 개간해도 일할 농노가 없었다.
젊은 남자 농노들을 사들이면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지만, 남자 농노는 대부분 문제가 있어 데려오면 일만 많아졌다.
탁아소와 학교 운영도 보고받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곳곳에서 잡음이 들렸지만,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신분이 상승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자기는 죽을 때도 농노로 죽어도 자식만은 인간으로 살길 원하는 게 부모였다. 그런 기회를 주자 농노들의 충성도가 크게 올랐다.
덕분에 나는 업적과 평판 포인트를 10만 점 받았고, 하린이와 하연이도 5만 점씩 받았다.
집사 다니엘의 보고가 끝나자 조나단이 앞으로 나섰다.
“조나단, 방어탑은 어떻게 됐어?”
“15개로 숫자를 늘려 대나무 숲과 새로 농지로 편입한 펑거스 숲 바깥쪽 경계로 옮기는 작업 중입니다.”
“초소 근무자는 모자라지 않아?”
“여성 농노 병사들의 훈련을 끝내고 수비대에 배치했습니다. 영주성과 광산, 방어탑 근무에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활 실력은 어때?”
“근력은 남자보다 떨어지지만, 집중력은 더 뛰어나 명중률은 여자 쪽이 더 높습니다.”
“서로 경쟁해야 실력이 느는 거니까 한 달에 한 번 사격대회를 열어. 우수한 성적을 거둔 병사는 내가 직접 포상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조만간 이탕가 산적 중에서 우리 영지로 귀화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중에 쓸만한 놈들 있으면 병사로 차출해줄 테니 병력이 모자라도 조금만 버텨.”
“괜찮을까요?”
“넘어오는 순간 우리 밥이야. 알아서 잘 주물러줘.”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온몸이 노곤해지도록 주물러주겠습니다.”
“그렇다고 병신 만들면 안 돼. 내 영지에 속하는 순간부터는 내 부하니까.”
“정신만 번쩍 들도록 하겠습니다.”
“조나단 대장은 언제나 내 말을 잘 이해해서 아주 마음에 들어. 흐흐흐.”
“감사합니다. 영주님!”
“고생했어. 나가 봐.”
“영주님께 충성을!”
영지가 안정되자 치안과 농업, 광업, 교육, 생산 등 모든 분야가 눈부시도록 빠르게 발전했다.
이 상태로 1년만 지나면 남작 영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살림살이가 풍족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상업 발전도는 여전히 제로에 가까워 미래를 암울하게 했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다는 건 내수시장이 매우 빈약하다는 뜻으로 영지 발전에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이는 세금이 농작물에서만 나온다는 뜻으로 대동법을 시행하기 전 조선 사회와 다를 것이 없는 아주 열악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장 상업을 발달시킬 방법이 없었다. 가게를 이용할 수 있는 평민이 100여 명밖에 안 됐고, 이들도 경제력이 빈약해 물건 살 돈이 없었다.
방법은 유저들을 끌어들여 주머니를 터는 것밖에 없었다. 이런 오지에 누가 오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바로 옆이 검은 오크 왕국이었다.
내 영지를 검은 오크 왕국으로 진출하는 관문 도시로 만들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영지를 지킬 힘이 아직 턱없이 부족했고, 유저들도 검은 오크 왕국에 관심이 없어 생각처럼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날을 위해 준비해야 했다. 준비된 자만이 탐스러운 과실을 딸 수 있었다.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절대 달콤한 감을 먹을 수 없었다.
“다현이네 집 사정이 많이 안 좋아. 수정이도 어머니가 위암이 재발하며 급격히 나빠졌고. 다행히 민지와 연아는 별다른 문제 없어.”
“얼마나 안 좋은데?”
“다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홀로 3남매를 키우셨어. 그런데 2년 전 어머니도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시다가 퍽치기를 당해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일을 못 하게 됐어.”
“다현이가 가장이야?”
“응.”
“그동안 돈도 못 벌었을 텐데 어떻게 살았어?”
“다현이와 두 동생이 아르바이트해서 간신히 먹고 살았어. 그러다 히어로걸스로 데뷔하며 협찬도 들어오고, 얼만 안 되지만,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 있어 버틸 수 있었어. 그런데 이번 일 터지자마자 거래은행에서 연장 신청을 못 해주겠다고 연락 왔어.”
“SUN 엔터테인먼트에서 손 쓴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지저분한 새끼들.”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나쁜 짓만 골라 하고. 생각할수록 화가 나.”
원래 인간은 자기합리화가 지나치도록 투철한 동물이었다. 자기가 잘못한 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고, 그 일로 불이익이 생기면 불같이 화를 냈다.
나 역시도 그런 인간이었다.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합리화는 해도 내가 잘못한 일로 생긴 일을 남 탓으로 돌리진 않았다. 그게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었다.
“동생들 몇 살이야?”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 막내인 남동생은 고등학교 1학년.”
“줄줄이 사탕이네.”
세 남매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월세에 식비에 엄마 병원비까지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학교만 다녀도 한 달에 몇십만 원은 들었다. 다현이네 가족에게 2년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2년 동안 돈에 쪼들리면 사람은 못할 짓이 없었다. 당장 내일 먹을 쌀 한 톨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장기라도 팔고 싶어진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게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기면 어쩌나, 가스비를 내지 못해 가스가 끊기면 어쩌나, 상하수도 요금을 내지 못해 수도가 끊기면 어쩌나 매달 걱정했다. 보통 이런 걱정은 아빠·엄마가 하는 것인데, 해줄 부모가 없어 매일 내가 해야 했다.
전기료, 가스비, 상수도 요금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다. 수업료 고지서였다. 그걸 받는 날이면 두렵다 못해 겁이 났다.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도 벌 수 있는 돈은 70~80만 원 사이였다. 부모라고 불렸던 놈들이 준 60만 원을 더하면 130~140만 원이란 적지 않은 돈이 된다.
하지만 관리비로 최소 40~50만 원은 빠져나갔고, 교통비와 급식비로도 25~30만 원을 지출했다.
50~60만 원이 손에 남았지만, 학교에서 이것저것 뜯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고... 무슨 학원도 아니고 가지가지 명목으로 돈을 뜯어감... 먹고 살아야 해 아끼고 아껴야 20~30만 원이 남았다.
그렇게 아끼며 모은 돈으로 4개월에 한 번씩 날아드는 수업료를 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돈이 없었다.
사는 건 먹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부하려면 교과서와 참고서도 사야 하고, 볼펜도 사야 하고, 공책도 사야 하고, 입고 다닐 옷도 사야 하고, 신발도 사야 하는 등 사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그 고통을 겪어 봤기에 다현이 마음을 이해했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잠도 편히 못 자고, 먹는 것도 항상 목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 길을 가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자 다현이를 다시 보게 됐다.
“빚이 얼마나 되는데?”
“1억 가까이 되나 봐. 엄마 병원비로 쓴 돈이 이자에 이자를 낳았어.”
“내가 갚아줄게.”
“정말?”
“어.”
“고마워 오빠.”
“좋아할 거 없어. 공짜 아니야. 족쇄야.”
“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흐흐흐흐. 진짠데. 세상에 공짜 없어. 양잿물도 돈 주고 사서 마셔야 하는 세상이야. 하물며 그 많은 돈을 주는데 공짜라고 생각하면 그게 이상한 거야.”
“무섭게 왜 그래?”
“네가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그 말을 따르는 거야.”
“나하고 하연이에게도 그렇게 대할 거야?”
“세상에 딱 두 명만 제외야. 너 하고 하연이. 다른 사람은 국물도 없어.”
“우리 부모님은?”
“물어볼 걸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너하고 하연이가 있는데 내가 남 취급하겠어?”
“정말이지? 뒤에 가서 딴소리하는 거 아니지? 그러기만 해봐. 진짜 죽여 버린다.”
“죽기 싫어서도 평생 받들어 모시고 살 거야.”
“그 말은 정말 마음에 든다. 히히히히.”
족쇄라는 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 여자도 아닌데 1억 원을 공짜로 주고, 최신형 캡슐을 사주고, 변호사 비용을 될 이유는 없었다.
하린이 친구라서? 죽마고우도 아니고 만난 지 두 달도 안 된 친구에게 그런 거금을 쓸 만큼 내 마음은 넓지 못했다.
그러면 아이돌 가수라서?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 거금을 주겠는가. 내가 여자 아이돌에 미친놈도 아니고.
다현이의 상황이 마음 아파서? 아픈 것과 도와주는 것은 별개였다. 그리고 한두 푼도 아니고 힘들게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억 원을 준다는 건 머리에 총 맞은 놈이나 할 짓이었다.
다현이는 히어로걸스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로 솔로로 데뷔해도 될 만큼 가창력이 뛰어났다.
또한, 작사·작곡 실력도 매우 뛰어나 1집과 2집 앨범의 절반 이상을 다현이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채웠다.
가요계 세태가 솔로보다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 어쩔 수 없이 8인조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한 것이었지, 분위기가 달랐다면 멋진 싱어송라이터가 됐을 것이다.
나는 그 재능을 믿고 투자한 것이었다. 가요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어 밀어주기만 하면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투자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철저한 Give And Take였다. 투자할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건 바보 멍청이나 할 짓이었다.
“수영이는?”
“병원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어.”
“얼만데?”
“다현이와 비슷해.”
“그것도 갚아줄게.”
수영이는 히어로걸스에서 얼굴과 몸매가 가장 뛰어났다. 아이돌 가수만 하기에는 아까울 만큼 예쁜 외모와 몸매로 모델과 연기자로 나가도 될 정도였다.
패션 감각도 매우 뛰어나 옷도 잘 입었고,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 자잘한 소품은 직접 만들어서 착용했다.
또한, 그림도 잘 그렸고, 아이디어도 반짝반짝 빛나는 등 못 하는 게 없어 팔방미인으로 통했다.
이 때문에 히어로걸스가 주춤할 때 연기자로 데뷔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자주 나왔다. 수영이도 이번 사건만 잘 마무리되면 언제든 빛을 볼 인재였다.
가장 큰 투자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현이와 수영이를 통해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