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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 확인
142.
“편히 쉬셨습니까?”
“영주님 덕분에 잘 쉬었어요. 감사해요.”
“좋은 곳으로 모셔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성이 워낙 좁고 낡아 그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천막이지만,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고, 화장대도 있어 생활하기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마틸다와 이탕가 산적을 영지에 데려온 첫날 깨끗이 씻긴 후 좋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성대한 만찬을 열어줬다.
극진한 손님으로 대접한 건 마틸다를 이용해 이탕가 산적 일부를 흡수하거나 친선우호 관계를 맺을 계획이라서였다.
이탕가 산적은 아틸라 제국의 공적으로 동맹을 맺는 건 반역행위였다. 그래서 동맹이 아닌 비밀 우호 관계를 맺어 미래를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이탕가 산적은 4개의 파벌로 이루어진 산적 집단으로 두 개는 평민, 두 개는 몰락 귀족에서 탄생했다.
이 때문에 적이 침입하면 협력해 적을 물리쳤지만, 평소에는 서로 못 잡아먹지 못해 아웅다웅 다퉜다.
마틸다가 속한 파벌은 200년 전 황위 쟁탈전에서 뛰어들었다가 몰락한 크리아탄 후작 가문으로 이탕가 산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4개 파벌 중 힘이 가장 약해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했다.
“남편은 200년 만에 반밖에 남지 않은 가문의 비전 검술인 크리아탄 검술을 복원한 천재로 프로보스트를 눈앞에 두고 있었어요. 그런 남편이 경비병들에게 죽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부인이나 같이 오신 부하 중에 부군께서 싸우는 걸 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없어요. 남편은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측근 몇 명만 데리고 갔어요. 저는 남편이 붙여준 호위병 50명과 함께 움직였고요. 남편을 따라간 부하들은 남편과 함께 모두 죽었어요.”
“부군께서 누구를 만나러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까?”
“네.”
“전에도 아슈뉴르에 오면 부인 몰래 누굴 만났습니까?”
“아니요. 언제나 저와 함께 다녔어요.”
“남편을 죽이기 위해 누군가 불러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네.”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베일리 총독 아니면 3대 파벌 수장이라고 생각해요.”
마틸다의 남편 아돌푸스가 죽자 아슈뉴르 총독 베일리 후작은 경비병들과 마주쳐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이탕가 산채에 아돌푸스를 죽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금화 5,000개를 보냈다.
산적을 죽였다고 사과하고 금화를 보내는 게 언뜻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탕가 산채가 아돌푸스의 원한을 갚겠다고 하면 아슈뉴르 시는 아주 귀찮을 일을 겪게 된다.
아틸라 제국의 10대 도시 중 한 곳인 아슈뉴르는 인구가 3,0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탕가 산적이 작심하고 달려들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이유는 지켜야 할 곳은 많은데 병력이 20만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20만이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아슈뉴르도 수도 크라쿠푸스처럼 위성 도시를 10개나 품고 있어 지켜야 할 곳이 많아 이탕가 산적이 악착같이 달려들면 수십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을 수도 있었다.
“베일리 총독이 진짜 사과할 뜻이 있었다면 저에게 먼저 사과한 후 관련자들을 처벌했어야 해요. 그리고 저와 부하들을 산채로 돌려보냈어야 해요. 그러나 후작은 저와 부하들을 수도에 있는 노예 시장으로 보냈어요. 이것만 봐도 후작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렇군요.”
“그뿐만 아니에요. 3개 파벌은 남편이 크리아탄 검술을 복원하자 매우 두려워했어요. 우리 가문을 흡수하려다가 흡수당하게 되자 후작과 연계해 남편을 한적한 곳으로 유인해 살해한 게 분명해요.”
마틸다가 이렇게 생각한 결정적인 요인은 베일리 총독이 보낸 사과 편지와 황금을 받은 이탕가 산채 3대 파벌이 아돌푸스의 죽음을 우발적인 사고로 결론짓고 복수는 없던 일로 했기 때문이었다.
크리아탄 가문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방방 뛰었지만, 3개 파벌 수장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 이탕가 산채를 배반한 것으로 간주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피눈물을 쏟고 있었다.
철창에 갇혀 있던 마틸다가 베일리 총독과 산채 3개 세력의 행동을 알 수 있었던 건 내가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베일리 총독이 사과문과 돈을 보낸 건 수도에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어 나도 쉽게 주워들을 수 있었고, 그 일을 마틸다에게 알려주자 이탕가 산채 내부 사정까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영주님께서 보내주신다면 산채로 돌아가 힘을 키워 남편의 복수를 할 거예요. 남편을 죽인 베일리 총독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3대 파벌 수장 놈들을 모조리 죽여 남편 영전에 바칠 거예요.”
“쉽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해야 해요. 그게 제가 죽지 않고 사는 유일한 이유니까요.”
마틸다의 눈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이 처절한 분노가 되어 용암보다 더 뜨겁게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마틸다의 눈을 보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린이와 하연이 절대 기분 나쁘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방법을 달리해보는 건 어떨까요?”
“달리하다니요?”
“마틸다님이 이탕가 산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3개 파벌의 견제로 세력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아요.”
“새로운 곳에서 힘을 키워 복수하는 건 어떻습니까?”
“새로운 곳이면 어디를 말하는 건가요?”
“여깁니다.”
“네에?”
내 영지를 새로운 본거지로 삼아 힘을 키우라고 하자 마틸다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쳐다봤다.
이탕가 산채는 인구가 대략 25만 명쯤으로 이 중 크리아탄 가문은 세력이 가장 작아 3만 명이 조금 안 됐다.
이들이 영지에 모두 넘어온다면 3만 대 4천으로 주객이 전도돼 영지를 빼앗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무모한 제안을 하는 건 3개 파벌이 이들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10분의 1만 무사히 빠져나와도 다행으로 2,000~3,000명도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면 무난히 흡수할 수 있었다.
모두 무기를 들 수 있는 건장한 남성이라면 쉽지 않겠지만, 70~80%는 여자와 아이일 가능성이 커 400~500명만 정신이 번쩍 들게 주물러주면 나머지는 한입에 꿀꺽 삼킬 수 있었다.
그리고 딴마음을 품는 놈들은 내 영지에 정착한 순간 영지 인물 간파로 바로바로 잡아낼 수 있어 걱정할 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마틸다를 차지하면... 같이 자겠다는 게 아니라 흡혈 스킬을 이용해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임. 오해하지 말기를... 동요도 크게 줄일 수 있어 힘들이지 않고 수천 명을 영지민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부인과 크리아탄 가문이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맹세합니다.”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시아버님과 상의해야 해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시아버님과 상의하려면 같이 온 부하 몇 명을 시아버님께 보내야 하는데 그래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저녁 먹기 전까지 보낼 부하 3명을 골라주십시오. 공간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아슈뉴르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마틸다가 내 얘기에 솔깃해 하는 건 남편 아돌푸스가 죽으며 크리아탄 가문에 후계자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돌푸스는 크리아탄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 형제가 없는 외동아들이었다. 시아버지도 연세가 많아 뒤로 물러난 지 5년이 넘어 마틸다가 가문을 이끌어야 했다.
가문을 이을 후계자가 없다는 건 가문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권솔들이 언제 이탈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다.
마틸다가 권솔들을 휘어잡아야 가문이 존속하는데 3개 파벌이 있는 한 그러기가 어려웠다.
마틸다는 질병과 병균으로 상대를 시름시름 앓게 해 죽이는 저주 마법사로 남편 아돌푸스보다는 못해도 프리 스콜라에 해당하는 정식 마법사였다.
능력도 출중하고 머리도 비상해 마틸다를 따르는 부하도 많아 조용히 세력을 키울 곳만 있다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영주님,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됐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마틸다는 내 검은 속도 모르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당장에라도 품에 안겨 쏟을 기세였다.
양심에 찔렸지만, 어차피 누군가에겐 흡수당할 세력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내가 흡수하는 것이 마틸다도 좋고, 크리아탄 가문에도 이로웠다.
“쥬디야.”
“네, 큰오빠.”
“마틸다와 이탕가 산적들 자주자주 확인해. 다른 마음 품을 수도 있으니까.”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확인하고 있어요.”
“그랬어? 아이고 예뻐.”
“헤헤헤헤.”
마틸다와 이탕가 산적들에게 만찬을 베풀어준 날 쥬디의 혜안을 이용해 성향 파악을 끝냈다.
혜안은 영지 인물 파악처럼 충성도와 스탯을 알아낼 순 없지만, 살아온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완벽히 읽어낼 수 있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능력은 영지 인물보다 몇 배는 뛰어났다.
그리고 수준이 떨어지는 상대는 쥬디가 혜안을 사용한 것도 알아채지 못해 이탕가 산적들은 내가 진심으로 자신들을 대한다고 믿고 있었다.
“세라는 아직도 안 돼?”
“죄송해요. 큰오빠. 제 능력이 낮아서 읽을 수가 없어요.”
“낙담하지 마.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지 네가 못 나서 그런 거 아니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정말 그럴까요?”
“오빠 믿지?”
“네.”
“그럼 믿어. 그러면 그렇게 돼.”
“알았어요.”
혜안으로 세라의 마음을 훔쳐보려 했지만, 60레벨 보스 몬스터라 쥬디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 계속 실패했다.
쥬디의 나이가 어려 그런 것으로 능력이 만개하려면 최소 2~3년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때가 되면 세라보다 더 강력한 보스 몬스터도 순식간에 속옷 색깔이 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마법 주머니는 어때?”
“어제와 같아요.”
“줄어든 기미도 없어?”
“네.”
플레시 골렘 던전에서 엄청난 보물들을 손에 넣었지만, 마법 주머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날 질 않았다. 이 때문에 하루에 10번도 넘게 검은 기운이 사라졌는지, 줄어들었는지 물어봤다.
‘정말 이러다 손모가지 자르는 거 아니야?’
“이제 뭐 할 거야?”
“책 읽어야죠. 그래야 오빠에게 도움이 되죠.”
“그래. 들어가서 책 봐.”
“네.”
쥬디는 16년 동안 채우지 못한 지식을 단번에 채우려는지 하루에 서너 권씩 책을 읽어댔다.
그중에는 나 같은 보통 사람은 한 페이지도 읽기 힘든 심리학, 철학, 인문학 등 어려운 책들도 있었다.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책을 읽자 책 사는 게 겁날 지경으로 돈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황립 도서관 사서 하나를 매수해 책 한 권당 은화 5개씩을 주고 1,000권이 넘는 책을 복사했다.
그러나 지금 읽는 속도면 길어야 두 달이면 모두 읽게 돼 도서관을 하나 털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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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