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133화 (133/320)

0133 / 0310 ----------------------------------------------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

133.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황태자님께 충성을!”

“앉게.”

“감사합니다.”

반짝이가 잔뜩 달린 검은 외투를 걸친 황태자가 프로보스트로 보이는 고수 2명과 검은 후드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금발에 파란 눈, 185cm의 훤칠한 키의 황태자는 올해 나이가 28살로 황위 계승 서열 1위이자 황제의 적장자였다.

13살에 황태자로 임명돼 황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아직까지 큰 잡음 없이 지내와 세간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그럴 뿐 실상은 완전히 개차반으로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겨 황실 전용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사냥할 때 미끼로 농노들을 사용해 한 번 사냥을 나갈 때마다 100명 이상의 농노가 목숨을 잃었다.

또한, 나 같은 하급 귀족은 사람으로 보지도 않아 만나주지도 않았고, 최소 백작은 돼야 사람으로 취급해 같이 차라도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남작밖에 안 되는 나를 만나준 건 눈에 가시 같은 3황자가 보호해준 게르하르트 가문 사람들을 데려와 반가운 마음에 만나준 것으로 금화를 산처럼 들고 오지 않는 한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반역자들을 데리고 왔다고?”

“네. 전하.”

“아주 훌륭한 일을 했군.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전하.”

“패트릭.”

“예, 전하.”

“반역자들은 어디 있지?”

“지하 감옥에 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놈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목을 쳐야 마땅하지만, 어리석은 놈들도 끌어안아 주는 것이 만백성을 사랑하는 황태자의 모습이겠지? 안 그래 패트릭?”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전하.”

“놈들을 모두 석방하고 원하는 곳으로 보내줘. 수도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북쪽의 얼어붙은 빙하지대나 남쪽의 화산지대 근처면 괜찮겠군.”

“황태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뼛속까지 새길 수 있게 아란테스 대륙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보내겠습니다.”

“역시 패트릭은 내 마음을 아주 잘 알아.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패트릭, 레오 남작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와.”

“어떤 것으로 할까요?”

“공이 작지 않으니 직접 고르게 하는 게 좋겠군. 레오 남작.”

“예, 전하.”

“패트릭을 따라가 원하는 선물 한 가지를 고르도록 하게. 패트릭 2급 선물의 방으로 레오 남작을 데리고 가.”

“예, 전하.”

“존안을 뵌 것만으로 은혜가 하늘과 같사옵니다. 그리고 전하의 선물을 받을 만큼 큰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겸양까지 할 줄 알고, 아주 똑똑한 친구군. 남작으로 썩기는 아까운 인재야. 패트릭, 레오 남작을 1급 선물의 방으로 안내해.”

“예, 전하.”

“레오 남작, 다음에 또 봅시다.”

“감사합니다. 전하.”

다음에 보자는 말을 끝으로 황태자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휑하니 사라졌다. 영지를 가진 귀족은 작은 왕국의 왕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구보다 큰 아란테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아틸라 제국의 황태자가 보기에는 하찮은 시골 촌놈에 불과했다.

황제의 힘은 농노와 평민이 아닌 영지를 가진 귀족에서 나왔다. 귀족들이 바치는 세금과 병사가 황제의 힘이었다.

직영지와 수도, 10대 도시에서 걷은 세금으로 기사단과 마법병단, 황궁 수비대, 수도 방위대 등 강력한 병사를 자체적으로 운영했지만, 귀족들이 바친 세금과 병사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검은 오크 왕국의 파상적인 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이들이었고, 미지의 숲과 같은 죽음의 땅을 경비하는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이 모두 돌아서면 황제는 수도와 주변 도시만 장악할 수 있을 뿐 국토의 90%를 잃게 된다. 이것을 잘 아는 황제는 영지를 가진 귀족이면 남작이라도 홀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이 없는 황태자는 자기 눈에 차지 않는 하급 귀족은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큰 강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었다. 작은 시냇물이 모이고 모여, 작은 빗방울이 모이고 모여 큰 강이 된 것이었다.

농노를, 평민을, 하급 귀족을 무시하고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아틸라 제국도 말라버린 강처럼 사라지게 된다.

황태자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많은 귀족이 황태자가 아닌 2황자와 3황자, 7황자, 13황자, 21황녀 등을 따르며 황태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모모님은 The Age of Hero 유저 최초로 아틸라 제국 황태자를 만났습니다. 모모님의 위대한 도전에 대한 보답으로 업적 200,000점과 평판 200,000점을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황태자 얼굴 봤다고 업적과 평판 점수를 20만 점이나 줘? 겨우 사람 얼굴 봤다고 점수를 준 거야? 은근히 기분 나쁘네.’

황태자를 만난 시간은 10분도 안 됐다. 그리고 20m 떨어진 거리에서 얼굴 몇 번 쳐다보고, 놈이 말하는 거 예 예 대답한 게 전부라서 만났다고 말하기도 창피한 일이었다.

겨우 그거하고 평판 포인트를 20만 점이나 받자 도둑질을 한 것 같아 기분이 들어 찝찝했다.

또한,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도 사람 얼굴에 그처럼 많은 점수를 주는 시스템에 울컥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TV도 인터넷도 없는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농노와 평민이 고위 귀족과 황족, 황태자, 황제의 얼굴을 볼 기회는 없었다.

이런 일은 농노와 평민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하급 귀국 중에는 황제의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죽는 귀족도 상당히 많았다.

이들 얼굴을 한 번 보고 죽는 것도 엄청난 행운으로 자자손손 자랑해도 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농노와 평민이 귀족과 눈을 마주치는 건 매우 큰 죄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어 앞에 있어도 쳐다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내 영지의 농노들도 내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 못해 허구한 날 진창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그런 사회적 풍토를 생각하면 20만 점을 준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공짜로 평판 포인트 20만 점을 받았는데 기분 나빠 하다니... 미친 짓이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환인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중에서 고르면 됩니다. 딱 하나만 골라야 하고, 고른 후에는 바꿀 수 없습니다. 시간은 30분입니다.”

“알겠네.”

패트릭을 따라 지하 3층으로 내려가자 경비병 2명이 지키는 육중한 철문이 나왔다. 패트릭이 열쇠로 철문을 열자 자동으로 불이 커지며 커다란 석실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와.”

“여기에는 값나가는 보석, 도자기 그런 것들밖에 없습니다. 원하시면 이 중에서 골라도 됩니다.”

“아닐세.”

“잘 생각하셨습니다.”

루비와 사파이어, 에메랄드가 박힌 장식용 칼, 파란빛에 도는 화려한 도자기, 100%황금에 다이아몬드와 오팔, 아쿠아마린을 박아 넣은 커다란 안장 등 보물창고에는 1,000여 점이 넘는 보물이 아름다운 빛을 내며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유혹의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금으로 된 안장만 가지고 나가도 부자 되겠네. 이게 대체 얼마야? 나라를 짓고도 남겠다.’

아름다운 보물들을 가로질러 맞은편 벽까지 가자 문이 3개가 나왔다. 그중에서 숫자 1이 쓰인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10평 남짓한 작은 방이 나왔다.

방에는 20개 아이템이 투명한 유리 상자에 담겨있었다. 상자에는 아이템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불의 정령 이프리트의 불타는 칼날

등급 : 레어

불의 정령 이프리트의 영혼이 봉인된 칼

내구도 : 100/100

공격력 : 50

생명력 : 200

순발력 : 2

착용 효과 : 화염 공격력 10% 상승

착용 제한 : 없음

냉기의 정령 코라이거의 얼어붙은 비수

등급 : 레어

냉기의 정령 코라이거의 영혼이 봉인된 칼

내구도 : 100/100

공격력 : 50

생명력 : 200

체력 : 2

착용 효과 : 얼음 데미지 50 추가

착용 제한 : 없음

1급 선물을 주라고 해 에픽 아이템을 기대했는데, 보는 것마다 레어 아이템이라 실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성장형 아이템도 없어 실망이 배가 됐다.

‘이건 또 뭐야? 이거 도박 아이템이잖아. The Age of Hero에 이런 것도 있었어?’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

등급 : 없음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가 죽기 직전 만든 마법 주머니는 경험치 1만 또는 금화 10개를 투자해 최대 레전드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꿈이 가득한 행운의 주머니입니다. 경험치와 금화를 더 많이 투자할수록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급격히 증가합니다. 여러분 인생역전을 노려보세요.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가 당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드릴 겁니다.

내구도 : 100/100

사용 제한 : 없음(사용하던 사람이 죽어야 주인이 바뀜)

사용 효과 : 하루에 한 번 경험치 1만 또는 금화 10개(그 이상 투자하면 확률이 크게 올라감)를 투자해 아이템을 뽑음

“이걸로 하지.”

“한 번 정하면 바꿀 수 없습니다. 정말 이거로 하시겠습니까?”

“괜찮아. 아주 마음에 들어.”

“남작님,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가 사람들의 손이 아닌 깊은 지하에 처박혀 있는지 그것을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귀족이 마법 주머니의 유혹에 빠져 알거지가 된 채 자살했습니다. 설명대로 행운을 가져다줬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네.”

“맞습니다. 그러나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힘들게 얻은 경험치와 금화를 마법 주머니에 투자한 사람 중 한 명도 부자가 된 사람이 없습니다. 남작님도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못했다고 나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잖은가? 내 운이 얼마나 좋은지 시험해고 싶네.”

“알겠습니다. 남작님 뜻대로 하십시오.”

내가 인생은 도박이라고 말하며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를 선택하자 패트릭의 얼굴에 비웃음과 얕보는 빛이 가득했다.

충고까지 해줬는데, 생각해보지도 않고 인생이 어쩌니, 도박이 어쩌니 헛소리를 지껄였으니 내가 얼마나 같잖게 보였겠는가?

황태자가 나를 하찮게 여긴다는 걸 느끼자 황태자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의 충고도 듣지 않는 무능한 놈, 도박에 인생을 낭비하는 쓰레기로 비치기 위해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마법 주머니를 선택했다.

어설프게 기억에 남아 있으면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었다. 데려다 쓸 수도 없을 만큼 쓰레기로 낙인 찍혀야 정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매일 입버릇처럼 떠드는 내 운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환인의 아들 환웅이라고 느낄 만큼 내게 운이 있다면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가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마법 주머니에서도 남들이 얻지 못한 행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껏 얻은 행운은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격으로 더는 행운을 바라지 말고 죽도록 노력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