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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慧眼)의 소녀 쥬디
130. 혜안(慧眼)의 소녀 쥬디
“오빠는 여기 던전이 아니라 미미가 지은 공장이라고 생각한 거죠?”
“어.”
“저도 그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미를 잡으면 플레시 골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플레시 골렘은 안 돼. 그건 너무 비인간적인 행위야.”
“그러면 진흙이나 나무, 돌, 강철 등으로 골렘을 만들면 되잖아요. 미미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다른 골렘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미미의 분신이 65레벨 보스 몬스터야. 80이 넘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잡아? 잡는다고 해도 잡아둘 방법도 없고.”
“탱크와 전투기를 만든 과학자는 탱크와 전투기보다 강한가요? 자동차를 만든 기술자는 자동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나요? 모터보트를 만든 기술자는 물 위를 달릴 수 있나요? 골렘 술사 미미가 미미의 분신보다 강하다는 보장도 없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골렘 술사 미미가 80이 넘는 보스 몬스터였다면 플레시 골렘이 파괴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가 만들어 보지 않아 장담할 순 없지만, 골렘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쉬웠다면 황궁에서 만드는 법을 감출 이유도 없었고, 레벨이 55가 넘지도 않았겠죠.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만든 플레시 골렘이 부서지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다?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아요. 나가서 싹 다 죽여 버려요. 80레벨 보스 몬스터라면요.”
“으음...”
하연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연이가 아니라 내가 미미였어도 한두 마리도 아니고 힘들게 만든 골렘 수천 마리가 사라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힘이 없다면 모를까 80레벨 보스라면 침입자들을 잡아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근지근 밟아서 죽였을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잔인하게.
“그러면 미미를 불러볼까?”
“대화가 될까요?”
“밑져야 본전이잖아.”
“그렇긴 하네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미미의 플레시 골렘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경보장치가 끝내주는지 발을 들어놓는 순간 사이렌이 울렸다.
애애애애앵
“경보! 경보! 침입자 발생. 경보! 경보! 침입자 발생. 플레시 골렘 경비병들은 지금 즉시 침입자를 처리하라. 플레시 골렘 경비병들은 지금 즉시 침입자를 처리하라.”
“이거 1단계 경보 아니에요?”
“맞아.”
“리붓된 거죠?”
“글쎄?”
“맞은편 문만 열렸어요. 리붓된 게 확실해요.”
“정말 그렇다면 보안 시스템이 완전히 엉망인데.”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잖아요.”
“그렇지. 좋은 일이지.”
하연이의 말처럼 공장을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자 시스템이 리붓돼 경보가 1단계부터 다시 발령됐다.
경보 시스템이 리붓된 덕에 가장 약한 55레벨 플레시 골렘이 다시 나왔다. 대신 숫자도 확 줄어들어 100마리도 안 됐다.
“던전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그렇죠?”
“어.”
네 번째 경보까지 똑같은 수순으로 반복됐고, 숫자도 5분의 1로 확 줄어있었다. 다섯 번째 특급 경보가 울리자 아까처럼 미미의 분신이 65레벨 쌍수 여검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미미의 분신을 피해 쌍수 여검사 플레시 골렘 50마리만 잽싸게 잡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오빠, 내일 다시 오면 플레시 골렘이 늘어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면 남쪽에 있는 검은 오크 잡고 내일 다시 오는 건 어때요? 경험치도 쌓고 아이템도 얻고 좋잖아요.”
“그러자.”
미미를 불러내려던 계획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하연이 생각처럼 미미가 힘이 없는 NPC일 수도 있지만, 80레벨 이상의 보스 몬스터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협조적으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어 먼저 꼬챙이에 꿰인 곶감을 빼먹듯이 플레시 골렘을 모두 처리하고 미미를 만나기로 했다.
“가신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거의 다 처리했어. 내일이면 끝나.”
“다행입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일 올 때 가져다줄게.”
“그동안 신경 써 주셔서 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어? 간 다음에 땅 치지 말고 지금 말해.”
“한 가지 필요한 게 있습니다. 근데 그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네가 왜 돈 걱정을 해? 돈 걱정은 내가 할 테니까 필요한 거나 말해.”
“광부가 더 필요합니다.”
할리가 말한 광부는 영지의 농노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광부로 쓸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렵고 위험한 작업에 쓸 광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노예 시장에서 사와야 해 돈이 많이 든다고 한 것이었다.
“힘센 노예면 아주 거칠 텐데 사고 없이 잘 다룰 수 있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알았어. 내일 올 때 50명 데리고 올게.”
“주시는 김에 200~300명 주십시오.”
“그렇게 많이?”
“래틀님이 매일 철광석 생산을 독촉하고 계십니다. 광부가 지금보다 2배는 많아야 원하는 양을 채울 수 있습니다.”
“알았어. 대신 한 번에는 힘들어.”
“감사합니다. 영주님.”
“차 잘 마셨어.”
“자주 찾아주십시오. 제가 재스민차는 기가 막히게 잘 탑니다. 오시면 언제든지 타 드리겠습니다.”
“그래.”
래틀이 많은 철광석을 요구하는 건 나 때문이었다. 병사들이 쓸 무기와 방어구, 개틀링 석궁과 화살, 농노들이 사용할 농기구 등 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며 할리에게 더 많은 철광석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와 티타임을 끝내고 마을을 구경하던 하린이와 하연이를 불러 광산 마을을 나왔다.
경비병과 농노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손을 흔들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들에게 해준 건 먹을 것을 넉넉히 주고, 옷을 해 입도록 동물 가죽을 주고, 경비병 숫자를 늘려 몬스터의 침입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 것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들을 위해 해준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모두 나를 위한 것으로 영지를 발전시켜 이익을 얻으려고 한 행동이었다.
그런 행동에 고마워 팔이 떨어지도록 손을 흔들며 진심으로 고마워하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얼굴이 붉어졌다.
‘양아치가 따로 없네. 어휴.’
“노예 시장에 갔다가 검은 오크 잡으러 가야겠어.”
“갑자기 노예 시장은 왜?”
“할리가 광부로 쓸 남자 노예가 필요하대.”
“남자 노예면 대부분 사고 친 놈들이잖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
“광산에서 사고 치면 죽기밖에 더하겠어. 놈들도 그 정도는 알겠지.”
“살벌하네.”
“어쩔 수 없어. 이곳은 중세 시대야. 서울이 아니야.”
할리가 거친 놈들도 괜찮다고 한 건 손발을 두꺼운 강철 족쇄를 채우고 깊은 갱도에서 처박아 두면 됐기 때문이었다.
갱도에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 그리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굶어야 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지하 갱도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살아야 했다.
햇빛을 보고 싶다면,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할리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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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은 왜 이렇게 싼 거야?”
“산적들이라 그렇습니다.”
“그건 나도 눈이 있어서 알아. 왜 이렇게 싼지 물어본 거잖아.”
“죄송합니다.”
노예마다 목에 출신과 저지른 죄가 적힌 명패를 달고 있어 점원 NPC가 말해주지 않아도 놈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싸냐고 물어본 건 20대 건장한 남자 노예의 가격이 평균 금화 1.5개인데 이놈들은 3분의 1인 은화 50개밖에 안 했다.
지나치게 싼 건 물건에 하자가 있다는 뜻으로 무턱대고 샀다가는 돈도 날리고 골치 아픈 일에도 연루될 수 있었다.
명패에 적힌 내용보다 더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골치 아픈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왼쪽은 아슈뉴르 북부 이탕가 산의 산적들로 2달 전 아슈뉴르에 잠입했다가 잡힌 놈들입니다. 이 때문에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해 아무도 사는 분이 없으셔서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공짜로 줘도 안 가져가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아틸라 제국에는 황제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산적 세력이 다섯이나 있었다. 거느린 부하가 최소 10만에서 50만에 이르렀고, 무기와 방어구도 자체 생산해 국가라고 해도 될 만큼 엄청난 세력을 자랑했다.
이탕가 산적도 다섯 무리 중 하나로 동서남북 길이가 500km에 달하는 험난한 이탕가 산맥을 접수하고 200년 넘게 주변 영지는 물론 10대 도시 중 하나인 아슈뉴르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황제가 산적들을 내버려 두는 건 숫자가 많은 것도 이유였지만, 놈들이 차지한 곳이 접근이 어려운 험난한 산맥이라 그랬다.
토벌대가 출동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깊은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 찾을 수도 없었고, 악착같이 쫓다가 몬스터의 공격에 피해만 생겨 번번이 토벌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100년 전부터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으며 자치권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산적들은 산에서 모든 것을 충당할 수 없어 수시로 주변 영지와 도시를 공격하고 지나가는 상인의 호주머니를 털며 황제와 귀족들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여기는 또 왜 이렇게 싸?”
“33황자님을 따르던 외가 사람들로 33황자님이 갑자기 죽고 반란죄로 잡혀 와서 그렇습니다.”
“33황자가 갑자기 왜 죽었는데?”
“그게...”
“닐, 자네 아니어도 물어볼 곳은 많아. 마음대로 해. 책임자를 불러 점원 바꿔달라고 하면 되니까.”
“잘못했습니다. 남작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말해줄 거지?”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예 시장 점원 NPC는 월급이 매우 적었다. 대신 판매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아 손님에게 친절하지 못하면 버틸 수가 없었다.
허리를 90도로 꺽은 채 굽실거리는 점원 NPC 닐은 내가 노예 시장에 처음 왔을 때 만난 점원으로 그때 인연을 계기로 매주 농노를 사러 올 때마다 닐을 통해 농노를 구입했다.
그렇게 구매한 농노가 650명이었다. 비싼 농노를 사는 건 아니었지만, 금화 1개씩만 쳐도 650개로 떨어지는 수당이 절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머리가 땅에 닿을 듯 굽실대며 내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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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