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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121화 (12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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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121.

“정말 훌륭한 부모님을 두셨네요. 자랑스럽겠어요.”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나 그런 명문대 교수인데, 엄청 훌륭한 거죠. 그런 건 겸손하지 않아도 돼요. 자랑해도 될 일이에요.”

“.......”

“미안하지만 존함을 물어봐도 되겠어요?”

하린이 이모가 부모 이름을 물어왔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모는 XX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같은 직종이라 호기심에서 물어본 것으로 대학교수라고 말해 놓고 이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순순히 말했다.

“아버지는 전종명 교수시고, 어머니는 윤선숙 교수십니다.”

“헉! 전종명 교수님하고 윤선숙 교수님이면 TV에 자주 나오는 스타 교수님이잖아요?”

“... 맞습니다.”

“두 분 모두 미국에서 어린 나이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XXX 대학교 최연소 교수에 임명됐다고 TV에도 여러 번 나왔어요. 학식과 인품도 매우 훌륭해 따르는 제자도 구름처럼 많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네요. 좋겠어요. 그런 분들을 부모로 두셔서.”

“.......”

이모가 우리 부모에 대해 입에 침이 튀도록 칭찬을 하자 하린이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다른 눈으로 쳐다봤다.

그 눈은 잘난 집 자식이라는 뜻으로 부러움과 존경까지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 눈을 바라보는 나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가족들은 좋은 뜻으로 호의적인 눈빛을 보낸 것이지만, 부모에게 버려진 나는 그 눈빛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엄마, 그 사람들 훌륭한 부모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니?”

“그 사람들 오빠 고등학교 1학년 때 버린 사람들이야.”

“뭐라고?”

“엄마라는 여자는 이혼한 지 3개월도 안 돼 돈 많은 사학 재벌과 재혼했고, 아빠라는 인간은 5개월 후 수년간 몰래 사귀던 자신의 제자이자 돈 많은 재벌 이혼녀와 재혼했어. 두 명 모두 재혼하려고 오빠 버리고 이혼한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야?”

“양쪽에서 아무도 형필군을 데려가지 않았다는 말이니?”

“그래. 그뿐만이 아니야. 수백억 원의 재산을 가졌으면서 오빠에게는 변두리의 낡은 18평 아파트 한 채와 한 달 생활비 60만 원을 준 게 전부야.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주고 끊었어. 그 돈으로는 아파트 관리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오빠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해야 했어. 왜?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돈 벌어서 대학 가겠다고 특전사 지원해 5년이나 근무했고. 더 황당한 건 오빠를 버린 후 찾아오는 건 고사하고 전화조차 없었다는 거야.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 있어? 그게 부모야? 낳아주면 다 부모냐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좋은 부모라고 하는 게 말이 돼? 그게 말이 되냐고?”

“하린아, 그만해.”

“내가 틀린 말 했어?”

“지금 할 얘기는 아니잖아.”

“그럼 언제 해야 하는데? 오빠 죽고 나서 해야 하는 거야?”

“.......”

“오빠가 말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속는 거잖아. 진실을 말해야 해. 더는 사람들이 속지 않게 추악한 얼굴을 세상에 보여줘야 해.”

“부모가 미워도 자식 된 도리를 생각하면 부모를 욕할 순 없어. 그리고 17년 동안 먹여주고 키워준 공도 잊을 수 없고.”

“그건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야.”

“의무라고 해도 받은 건 사실이야. 그러면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해. 그게 최소한의 양심이야.”

“오빠는 마음이 넓어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죽을 때까지 저주하며 살 거야. 아니! 죽어서도 저주할 거야. 지옥에 떨어지라고.”

“하아...”

어머니와 이모가 나를 버린 부모를 훌륭하다고 계속 칭찬하자 하린이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하린이는 내 부모를 극도로 미워했다. 부모 얘기를 꺼내면 내가 마음 아파할까 봐 말하지 않았을 뿐 원수보다 더 미워했다.

그러나 내가 미워하는 마음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됐다. 싫든 좋든 부모이기 때문에 원망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어 하린이보다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었지 가슴 속에 쌓인 원망을 모두 표출하면 패륜아로 낙인 찍힐 수도 있을 만큼 미워했다.

그런데도 참고 사는 건 화내고 원망하면 내 인생만 망치는 짓이자 나를 버린 부모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화가 나도 참고, 가슴이 터질 만큼 답답해도 참았다.

“에미야.”

“네 어머니.”

“손주 사위 배고프겠다. 어서 저녁 차려라.”

“네.”

싸늘해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저녁을 차리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분위기는 냉동 창고보다 더 싸늘하게 변해 밥 먹는 내내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 삼촌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사소한 것들을 물었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덕분에 술도 없이 깔끔하게 저녁 식사가 끝났다. 보통 이런 날은 술도 한잔 하며 웃고 떠드는 게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너무 냉랭해 할아버님과 아버님조차 술 한 잔 먹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살얼음판 같은 저녁 식사가 끝났지만,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고, 하연이가 후식으로 가져온 참외 한 조각을 먹는 것으로 바늘방석 같은 첫 만남은 끝을 고하고 말았다.

“자주 자주 놀러 와요.”

“네 할머니.”

표정이 썩 좋지 않은 어머니께 저녁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등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 때문인지 옆집인데도 집에 돌아오는 길이 수십km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미안해 오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나는 괜찮아. 들어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위로해드려.”

“위로받을 사람은 우리 집 식구가 아니라 오빠야.”

“나는 이런 일이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나 너희 집은 지금 초상집이나 다름없을 거야. 어서 들어가 봐.”

“왜?”

“들어가 보면 알게 돼.”

나와 함께 있으려는 하린이를 억지로 집에 들여보내고 집에 들어왔다. 불 꺼진 3층 집에 들어오자 을씨년스럽다 못해 쓸쓸했다.

원룸은 손바닥만 해서 그랬는지 기분이 꿀꿀해도 쓸쓸하진 않았는데, 새로 이사한 3층 집은 커서 그런지 가슴이 휑했다.

집에 보낸 지 30분도 안 돼 하린이 불같이 화를 내며 들어왔다. 누군가 내 부모와 나를 엮은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하린이가 이토록 화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뭐가?”

“오빠 부모를 욕하면서 오빠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냐고 고모부와 고모가 말하잖아.”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자식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

“오빠 말대로 하면 살인자 아버지를 둔 자식은 모두 살인자가 된다는 말이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뜻이 아니라 어른들이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한 거야. 오해하지 마.”

“나는 이해 못 해. 절대 이해 못 해. 절대 이해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뛰쳐나오면 어떻게 해?”

“오빠 욕을 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라는 거야?”

“널 걱정해서 한 말이야. 마음에 들지 않아도 끝까지 들었어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딴 소리를 내가 왜 들어야 하는데?”

문짝이 부서져라 쾅 닫고 들어온 하린이가 또다시 화를 참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어른들을 욕했다.

하린이는 내가 부모를 닮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걸 잘 알았다. 돈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말 한마디도 지키려 노력하는 게 부모를 닮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고모부와 고모가 그런 말을 하자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 이모, 삼촌들까지 고모부와 고모의 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저주를 퍼붓듯이 화를 쏟아내고 우리 집으로 왔다.

하린이가 화내는 걸 이해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이 그러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고, 나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 하린이네 고모부와 고모를 두둔했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난 하린이가 아니라며 소리를 질렀다.

“고모부와 고모에게 말했어. 그런 소리 할 거면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잘했어.”

“그리고 당분간 언니하고 나 집에 안 들어간다고 말했어.”

“나야 그렇다지만 왜 너까지 집에 안 들어가?”

“오빠가 그런 소리를 듣는데 내가 집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언니는 내가 모르는 척했으면 좋겠어?”

“하아. 그래 잘했어.”

“잘하기는 뭘 잘해. 둘 다 빨리 집에 들어 가. 어른들 걱정하셔.”

“싫어! 죽어도 못 가.”

“저도 싫어요!! 억지로 보내면 가출할 거예요.”

“하아...”

하린이에 이어 하연이까지 집을 뛰쳐나왔다. 하린이가 씩씩거리며 집에 온 순간 하연이도 올 것이란 걸 예감했었다.

둘 다 참을성이 없어 어른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지 못했고, 나를 맹목적으로 좋아해 싫은 소리를 하면 발끈해 싸우고 나올 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도 안 돼 문이 부서져라 열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농성을 시작했다.

바로 옆집이라 거리로 따지면 10m도 안 되는 거리라서 가출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집 나온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꼬맹이도 아니고 과년한 딸이,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있겠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는가?

하린이와 하연이에 이어 부모님까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아닌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띵동띵동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하연이 오빠 송준범입니다.”

“들어오십시오.”

“괜찮습니다. 동생들 여기 있는지 그것만 확인하러 온 겁니다.”

“둘 다 여기 있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나오라고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가자고 한다고 말 들을 녀석들이 아닙니다. 불편하시겠지만, 며칠 잘 재워주십시오.”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실 텐데요?”

“하린이는 이미 성인이고, 하연이도 내년이면 성인입니다.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언니와 동생이 함께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결혼할 생각으로 찾아오셨는데,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들 때문에 심통이 많이 났습니다. 제 생각에도 어른들이 크게 잘못한 겁니다. 그래도 하린이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십시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보다 3살 많은 오빠 송준범은 친동생 하린이 일인데도 어른들 편을 들지 않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28살 젊은 나이니까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가족과 관계된 일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가족이 흉악한 범죄에 연루돼도 무조건 편들고 감싸는 것이 대한민국 가족의 현실이었다.

하물며 동생이 불행해질 수도 있는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오빠는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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