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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116화 (11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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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116. 이사

우우우웅 우우우웅

“하아...”

[하이 마스터 로만 리히테나의 일기장이 100억 원에 팔렸습니다. 세금과 수수료 10.1%를 제외한 89억9,000만 원이 전형필님의 XX 은행 XXX 통장에 입금됐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린아, 일기장 팔렸어.”

“정말? 얼마에?”

“하루 만에 팔렸잖아. 그럼 당연히 100억 원이지.”

“진짜?”

“어.”

“보여줘.”

“여기.”

“헉! 정말이네. 정말 100억 원에 팔렸네.”

“언니. 나도 보여줘. 허거걱! 대박!!!”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린이는 은하를 왜 밀어내지 않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나도 은하를 밀어내지 않은 이유를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하연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분위기에 눌려 입을 꾹 다물고 창밖만 바라봤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물어보면 생각하지 못한 말을 듣게 될까 봐 겁이 나서 물어보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이 이어지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은하가 보낸 문자라고 생각해 확인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다현이네 일로 보지 않을 수 없어 깊은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그러자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전화기에 찍혀있었다. 로만 리히테나의 일기장이 팔렸다는 메시지로 은하 일로 경매장에 일기장을 올린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애초 계획과 달리 금화가 아닌 현금에 로만 리히테나의 일기장을 팔았다. 집도 사야 하고, 집기도 사야 하는 등 돈 들어갈 곳이 많아 현금 판매로 바꿨다.

50억 원을 시작 가격으로 올렸지만,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몇 번 유찰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 번 유찰 되면 30억 원에, 두 번 유찰되면 20억 원까지 가격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올린 지 하루 만에 즉시 낙찰가 100억 원에 팔렸다.

The Age of Hero를 하는 유저 중에는 우리와는 태생부터 다른 엄청난 부를 쥐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아랍의 석유 재벌, 유태 금융재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광산재벌, 마피아, 야쿠자, 무기상, 마약왕, 월가의 큰손 등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도 모르는 부자들도 The Age of Hero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우리 같은 개미가 내놓는 아이템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세력 중 하나가 이런 사람들로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나오면 가격에 상관없이 무조건 사들였다.

또한, 이들은 쫄파티를 이용해 엄청난 생명력과 마나도 쌓아 상위 0.01%를 넘어 0.0001% 안에 드는 괴물로 거듭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대부분이 자신만의 왕국을 갖고 있어 The Age of Hero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실력이 아닌 돈의 힘을 이용해 만든 물 근육과 같아 절세의 보검을 들고도 썩은 무조차 자르질 못했다.

무엇보다 인간 세상은 신이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지 오래로... 관여한 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돈의 힘을 이용해 자기들 멋대로 분탕질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The Age of Hero는 환인이 창조한 세상으로 현실처럼 돈의 힘을 믿고 멋대로 행동하다간 그날로 날벼락을 맞을 수 있었다.

“옆집으로 가자.”

“지금 사게?”

“응.”

“알았어. 기사님, 죄송하지만 300m만 더 직진해주십시오.”

“네.”

원룸 앞에 서려던 계획을 바꿔 하린이네 집 옆집 앞에 택시를 세웠다.

딩동딩동

“누구세요?”

“아저씨, 저 옆집 사는 하린이에요.”

“오랜만이구나.”

“죄송해요. 바빠서 찾아뵙지도 못했어요. 별일 없으시죠?”

“그럼. 잘 지내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아저씨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있어서 데리고 왔어요.”

“그래? 모시고 들어오렴.”

“네.“

찌이잉

철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갔다. 옆집은 하린이네 집과 비슷한 구조로 작은 정원 겸 마당을 지나면 바로 현관문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하연이도 왔구나. 사고 치지 않고 잘 지냈어?”

“이젠 안쳐요.”

“정말?”

“그럼요. 나이가 몇 살인데 애들을 때리고 다니겠어요. 저도 이제 철들었어요.”

“잘 생각했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 속 썩이는 일은 하지 마라. 부모 가슴에 대못 박고 잘 사는 자식 없다.”

“네. 그럴게요.”

“아저씨 저랑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공부 중인 친한 오빠예요. 제가 아저씨네 집 판다고 말했더니 오빠가 사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전형필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상렬입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짧게 인사를 나눈 후 주인아저씨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1층부터 3층까지 구석구석 집을 둘러봤다.

하린이가 말한 대로 환기도 잘되고, 방음도 잘 돼 밖에 차가 지나가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또한, 좋은 건축 자재를 사용해 벽과 유리, 바닥 모두 튼튼했고, 구조도 잘 빠져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정말 튼튼하게 지었습니다. 고장 난 곳도 없고, 고칠 곳도 없습니다. 도배만 새로 하면 됩니다.”

“언제 비워주실 수 있습니까?”

“원하는 날짜를 말하면 그날 비워드리겠습니다.”

“저는 내일이라도 좋습니다.”

“그렇게 빨리요?”

“하린이에게 들었습니다. 낙향해서 사실 집 마련해두셔서 바로 이사할 수 있다고. 저도 급하게 집을 옮겨야 하는 처지라서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옮기고 싶습니다.”

“짐을 빼야 하니 내일은 안 될 것 같군요. 모레 아침 일찍 빼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가격은 얼마입니까?”

“복덕방에는 10억 원에 내놨습니다. 그러나 하린이에게 듣고 왔을 테니 9억5,000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계약서 쓰러 가시죠.”

집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이동해 등기부 등본을 떼어본 후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서류에 도장을 찍자 계약금 잔금 나누지 않고 일시금으로 돈을 한 번에 모두 송금했다.

25살 젊은 사람이 대출도 끼지 않고 단번에 10억 원에 가까운 엄청난 현금을 일시금으로 주자 주인아저씨도, 공인중개사도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오빠, 도배지 고르러 가자.”

“깨끗하던데 그냥 살아도 되지 않나?”

“그래도 이사하면 새로 하는 거야.”

“그럼 알아서 해.”

“뒤에 가서 색깔 이상하다고 타박하기 없기다?”

“알았어.”

“가구와 전자제품도 내가 알아서 해?”

“어.”

“핑크색으로 해도 되지?”

“마음대로 해.”

“언니 캡슐 배송지 바꿔야지?”

“지금 전화할 거야.”

“방은 어떻게 쓸 거야?”

“1층은 다현이네 쓰라고 하고, 2층은 캡슐 놓고, 3층은 오빠와 나만의 공간으로 꾸밀 거야.”

“내 방은 없어?”

“네 방?”

“응.”

“바로 옆이 우리 집인데 왜 방이 필요해?”

“그래도 하나 줘.”

“안 돼. 집에 가서 자.”

“2층에 방 3개라 캡슐 놔도 2개 남잖아. 하나만 줘. 안 주면 뽀뽀도 못 하게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하아. 줄게. 대신 3층에는 허락 없이 올라오지 마. 그럴 수 있지?”

“나 애 아니거든.”

“애가 아니니까 그러지.”

“안 올라가. 걱정하지 마.”

하린이와 하연이는 옆집으로 이사 올 생각에 들떠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쫑알대며 뛰어다녔다.

그러나 나는 이사 오면 며칠 내로 하린이네 부모님을 찾아봬야 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긴장돼 이사에 대한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들뜬 하연이를 억지로 집에 보내고 원룸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린이가 주인아줌마에게 이사하겠다고 전화했다.

“뭐래?”

“환호성이라도 지를 분위기야.”

“돈을 올려 받을 수 있게 됐으니 좋겠지.”

하린이가 집을 빼겠다고 하자 원하던 일이었는지 두말하지 않고 모레 집 빼는 날 아침에 돈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학생들 코 묻은 돈 뺏는 게 그렇게 좋나?”

“학생들 코 묻은 돈이 아니라 부모 등골 빼먹는 거지.”

“오빠처럼 생활비에 학자금까지 모두 벌어서 학교 다니는 학생이 많지 않으니 그 말이 맞겠네.”

“30만 원이면 한 달 내내 따뜻한 밥 해먹을 수 있는 돈인데...”

“불쌍해?”

“알지도 못하는 애들 불쌍할 건 없어. 그런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지.”

주인아주머니는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 돈을 들여 원룸을 수리한 후 보증금을 7,000~8,000만 원으로 올리고 월세도 30~40만 원을 받을 생각이었다.

주변 원룸 시세가 그 정도라 주인아주머니를 욕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처럼 돈 없는 가난한 학생이 원룸을 이용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인아주머니를 좋게 볼 순 없었다.

원룸에 들어가기 전 인테리어 가게에 들러 도배지를 골랐다. 아저씨 내외가 깨끗하게 써 새로 도배하지 않아도 됐지만, 지금 벽지는 하린이가 원하는 취향이 아니었다.

하린이가 원하는 건 옅은 핑크와 옅은 녹색이었다. 하린이 뜻대로 벽지를 고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먼저 들어가서 일 보고 있어. 나는 가구하고 전자제품 주문한 다음에 들어갈게.”

“어.”

영주가 돼서 좋은 점도 있지만, 장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영지는 독재국가나 다름없어 결정권자인 영주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아 한시도 비워둘 수 없었다.

시간 차이가 없다면 조금은 편할 텐데... 모든 게임이 현실보다는 훨씬 빠르게 시간이 흘러 The Age of Hero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5~6배 빠르게 흐르는 게임도 많았다... 시간이 4배나 빨리 흘러 6시간만 비워도 하루가 지나갔다.

“저녁 먹었어?”

“네.”

“불편한 곳은?”

“없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최대한 들어줄 테니까.”

“그럼 책 좀 주세요. 온종일 벽만 보고 있으려니 심심해 죽겠어요.”

“레이첼 시켜서 바로 갖다 줄게.”

“고마워요. 영주님. 이제 얘기 끝났으면 피 빨아주세요. 온종일 이 시간만 기다렸어요.”

“알았어.”

아그작

“흐응. 하응. 하윽.”

피를 빠는 내내 세라가 야릇한 신음을 토해냈다. 서큐버스의 능력이 가미된 것인지 욕망을 자극하는 소리가 귀에 착착 감겼다.

‘야아 소리만으로도 사람 미치게 만드네. 요물은 요물이다.’

이름 : 세라

나이 : 10,133살

종족 : 서큐버스

계급 : 릴리트 성의 공주

직책 : 유배된 죄인

특기 : 환몽

충성심 : 36

성격 : 교활하고, 고집 세고, 4차원적임

레벨 : 60(보스)

상태 : 모모 레오 남작의 포로(마법 족쇄로 인해 모든 능력 봉쇄)

흡혈로 인한 무기력증(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 50% 감소)

30까지 5씩 오르던 호감도가 7일째 되자 3으로 확 떨어졌다. 이 상태가 50이나 60까지 이어지다가 그 이후로는 2나 1로 떨어지고, 80부터는 소수점으로 떨어질 게 확실했다.

어쩌면 90부터는 현재의 초급 흡혈 능력으로는 호감도를 올릴 수 없을 수도 있었다. 100을 찍으려면 상급이나 특급에 도달해야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30을 넘기자 말투가 전보다 고분고분해졌다. 이런 속도면 호감도 50을 넘기면 감춰뒀던 진실을 말해줄 것도 같았다.

그러나 50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로 언제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어 믿을 수 없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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