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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특급 경호회사
112. 독수리 특급 경호회사
“오빠, 세 번째 보낸 자료까지 모두 읽었어요.”
“그럼 이제 반응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래야겠죠.”
첫 번째 미끼를 무는데 걸린 시간은 게임 시간으로 하루였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하연이가 자료를 보내는 즉시 읽었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소리로 미끼를 물었을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이은수와 이은택, 정이슬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세 연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야 다음 대책을 강구하는데, 그걸 알 수 없어 손 놓고 있어야 했다.
“흥신소에 의뢰하는 건 어때?”
“알려지면 사생활보호법에 걸려.”
“그럼 점심때 찾아뵙기로 오빠 선배에게 부탁하는 건 어때요?”
“상사님은 사람 뒷조사하는 거 싫어해. 아마 안 들어줄 거야.”
“이은택은 다현이, 민지, 수영이, 연아와 엮여 있잖아. 그쪽도 의뢰인을 보호하려면 이은택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으음... 일리 있는 말이네. 알았어. 만나면 말해볼게.”
의뢰인을 위협하는 범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위험에 대처하는 것만큼 완벽한 경호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의뢰인을 경호하는 일은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었다.
인력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 그런 것으로 한 사람을 경호하는데 수십, 수백 명이 달라붙어야 했다.
그리고 대다수 경호 의뢰는 생명의 위협보다 혼잡 경비가 주 업무라서 영화 보디가드에 나오는 케빈 코스트너 같은 특급 경호원을 쓸 일도 없었다.
“언니, 누구 만나러 가?”
“오빠 군대 선임.”
“왜?”
“다현이네 경호 부탁하려고.”
“어디로 가는데?”
“종로.”
“나도 종로 나가본 지 정말 오래됐는데. 따라가면 안 돼?”
“금방 갔다가 올 거야.”
“오빠랑 둘이서만 맛있는 거 사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그런 거 아니야. 일 때문에 가는 거야.”
“일 때문이라면서 왜 점심시간에 가? 군대 선임하고 같이 점심 먹기로 했어?”
“아니.”
“그럼 뭐야?”
“그쪽 시간 맞추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야.”
“그럼 점심은?”
“나간 김에 먹고 와야지.”
“이것 봐. 나 빼고 둘이서 맛난 거 먹으려고 했던 거야. 좋겠다. 같이 일하는 동생 따돌리고 오빠랑 둘이서 오붓하게 먹어서.”
“그렇지 않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나는 오빠와 언니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돕는데, 언니는 나 빼놓고 오빠랑 둘이서 놀 생각만 하고 정말 서운하다.”
“알았어. 알았어. 11시까지 오빠 집 앞으로 와.”
“히히히.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나 준비하러 간다.”
“편하게 입고와. 오빠 군대 선임 만나는 자리야. 요상한 거 입으면 안 데리고 갈 거야.”
“알았어. 요조숙녀처럼 하고 올게. 오빠 저 이따 봐요. 뿅!”
하린이가 같이 가자고 하자 하연이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밖에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로그아웃하고 나갔다.
덕분에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하려던 계획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린이도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게임 속에서 매일 어울려 다니자 밥 먹으러 로그오프하고 나오면 하연이가 없는 게 허전하게 느껴졌다.
현실 시간으로 만난 지 2주일밖에 안 됐지만, 게임 시간으로는 두 달이 다 돼가 만난 지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고, 사소한 일도 함께하며 항상 붙어 있다 보니 이젠 옆에 없으면 계속 찾게 됐다.
“내가 얌전하게 입고 오라고 했지?”
“이 이상 어떻게 더 얌전히 입어?”
“치마가 너무 짧잖아.”
“언니, 요새 누가 언니처럼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어. 언니가 이상한 거야. 지금이 조선 시대야? 허벅지 보이면 경찰서로 끌고 가는 유신 시대? 제발 정신 좀 차려.”
“내가 너 하고 말을 하지 말아야지. 대화가 안 된다.”
“히히히히.”
하연이는 허벅지가 드러나는 진한 남색 짧은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와 남색 재킷을 걸치고 나타났다.
치마 길이가 짧다고 하린이가 뭐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길고 날씬한 다리와 남색 치마가 잘 어우러져 예쁘기만 했다.
하린이는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치마에 엉덩이를 덮는 코트를 입어 단정하지만 세련된 모습이었다.
둘 다 아무거나 입어도 체형이 워낙 예뻐 잘 어울리는데, 신경 써서 입자 모델처럼 보였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양쪽 팔에 매달리자 지나가는 사람 모두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전철 타고 가기는 글렀네.”
“왜?”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르내리려고 한 거야?”
“이렇게 손으로 가리면 되지.”
“손으로 하늘을 가리지 그러냐? 잘도 가려지겠다.”
“보여?”
“살짝만 숙여도 보여.”
“보이면 안 되는데. 나 언니 T팬티 입고 왔는데.”
“헉!”
하연이가 입은 진한 남색 치마는 허벅지가 드러나긴 했지만, 미니스커트는 아니라서 걷는다고 팬티가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경사가 심한 지하철 계단을 올라갈 때 뒤에서 쳐다보면 팬티가 보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하연이의 엉덩이와 T팬티를 늑대 같은 놈들에게 보여줄 수 없어 택시를 타고 종로로 이동했다.
거리가 멀지 않아 30분 만에 상사님이 운영하는 독수리 특급 경호회사가 있는 낡은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낡고 지저분한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두꺼운 철문에 1공수 특전여단 마크인 독수리와 함께 귀퉁이가 깨진 낡은 명패가 보였다.
“단결.”
“경례하지 마.”
“아무 것도 안하면 어색합니다.”
“나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 그러니 다시는 경례하지 마. 아픈 기억과 함께 살심이 솟구치니까. 알았어?”
“명심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 두 분이 의뢰인인가? 내가 알고 있는 히어로걸스 멤버들 얼굴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의뢰인은 맞지만, 경호할 대상은 아닙니다. 이쪽은 제 여자 친구고, 이쪽은 여자 친구 동생입니다. 인사드려 군대 있을 때 많이 도와주신 이범석 상사님이셔.”
“안녕하세요. 송하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빠를 열렬히 좋아하는 동생 송하연이에요.”
“이런 미인을 두 분이나 만나게 되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독수리 특급 경호 사장 이범석입니다.”
사무실은 다치기 전인 3년 전에 왔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있다면 그사이 가구는 더 낡아졌고, 바닥은 더 지저분해졌고,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왜 사무실에 혼자 계십니까?”
“김 상사와 박 상사는 일 나갔고, 정 상사는 집에 볼일이 있어 잠깐 갔어.”
“다른 분들은?”
“다 그만뒀어.”
“일이 잘 안 됩니까?”
“경호 일하는 것보다 Hero 게임하는 게 벌이도 좋고, 인간적인 대우도 그쪽이 더 낫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The Age of Hero의 전투는 실제 전투와 크게 다를 게 없어 특수부대 출신, 격투기 선수, 운동선수 등 싸움에 소질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했다.
이 때문에 군인, 경찰, 각종 격투기 선수, 달리기 선수, 창던지기 선수, 경호원 출신 심지어 조폭까지 많은 사람이 본업을 때려치우고 돈을 벌기 위해 The Age of Hero에 투신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부 돈을 번 건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노력해도 성과가 없지만, The Age of Hero는 노력하면 그만한 성과가 따라 10명 중 7~8명은 전에 하던 일보다 수입이 훨씬 좋았다.
“그리고 대형업체가 많아서 나처럼 작은 경호업체는 살아남기가 힘들어. 아무래도 조만간 접어야 할 것 같아.”
“관두시면 뭐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The Age of Hero나 해야지 어쩌겠어.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해보긴 하셨고요?”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그거 못하겠어?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김 상사님과 박 상사님, 정 상사님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어제 소주 한잔 하면서 얘기했어. 하게 되면 같이하기로.”
김상호 상사와 박무윤 상사, 정동일 상사는 이범석 상사의 후배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으며 전 세계를 누빈 최정예 특전사 요원이었다.
이범석 상사가 부대장의 과실을 뒤집어쓰고 불명예제대를 한 이유가 이들을 구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범석 상사가 군복을 벗자 연대장으로 진급한 대령은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내근 업무에 투입해 바보를 만들어 놓고 걸핏하면 징계를 먹인다고 협박했다.
1년 가까이 참던 이들도 연대장의 지랄에 하는 수 없이 군복을 벗고 이범석 상사가 운영하는 경호업체에 투신했다.
우리나라 군대는 이런 훌륭한 재원들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 능력보다는 라인과 아부를 중요시하는 똥별들 때문으로 무공훈장을 받고도 제대 후 취직이 안 돼 암흑가로 들어가거나 부랑자처럼 사는 군인도 있었다.
“자네가 의뢰한 일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아주 깔끔하게 처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얘기하는 내내 이범석 상사와 김상호 상사, 박무윤 상사, 정동일 상사 네 명 모두 나와 하린이, 하연이의 개인 경호원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네 명 모두 최고의 특전사 요원으로 완전무장한 병력 일개 중대가 몰려와도 이들만 있으면 두렵지 않았고, 신의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 내 등에 칼 꽂을 걱정도 없었다.
그러나 당장 시킬 일이 없었다. 그걸 알면서 경호원으로 고용하는 건 이들을 모욕하는 짓이었다. 자존심과 명예로 하나로 지금껏 버틴 사람들에게 동정은 가장 큰 모욕이었다.
일단 다현이네를 맡긴 후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이들을 어떻게 운용할지 판단해야 할 것 같았다.
“히어로걸스 멤버 8명 중 4명이 내일 그룹을 탈퇴할 겁니다. 전화로 말씀드린 다현, 민지, 수영, 연아 이렇게 4명입니다. 탈퇴 이유는 마림 재단 둘째 아들 이은택이 SUN 엔터테인먼트에 이들을 요구했습니다.”
“스폰서?”
“네.”
“사장이 이은택의 요구를 들어준 거야?”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림 재단이 The Age of Hero 투자사 중 한 곳이라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말이 좋아 스폰서지 성상납이잖아. 시대가 변해도 그놈의 성상납은 없어지지가 않는군.”
“사람이 변해야 하는데 변하질 않잖습니까. 그러니 반복될 수밖에요.”
“하긴 그렇지. 항상 사람이 말썽이지. 아니지. 그놈의 고추가 말썽이군.”
이범석 상사의 말처럼 항상 그놈이 말썽이었다. 그렇다고 잘라버릴 수도 없는 일로 자웅동체로 변하긴 전까지 끊임없이 성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