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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리히테나의 일기장
111.
하린이와 하연이의 축복을 받으며 순간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수도 크라쿠푸스로 이동했다.
마림 길드원들이 우리를 찾고 있을 수도 있어 후드 로브로 얼굴과 몸을 가린 채 평판 관리소로 들어가 군주의 진격을 구입했다.
군주 직업 스킬
군주의 진격 초급 달성 : 자신과 부하 30명이 적으로부터 받는 데미지 20% 감소
군주의 진격(초급 0/200): 자신과 부하 10명이 적으로부터 받는 데미지 5% 감소
버프 스킬의 장점은 전투가 없을 때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패시브 스킬보다 경험치가 빠르게 오른다는 것이었다.
패시브 스킬과 버프 스킬은 유형이 비슷해 같은 스킬처럼 보였지만, 패시브 스킬은 24시간 자동으로 스킬 효과가 발동했고, 마나도 소모하지 않았다.
그러나 버프 스킬은 액티브 스킬처럼 사용해야 효과를 보았고, 사용하는 내내 지속해서 마나를 소모했다.
패시브 스킬은 마나 소모도 없이 24시간 자동으로 발동하는 장점이 있지만, 이 때문에 스킬 경험치는 액티브 스킬, 버프 스킬, 디버프 스킬보다 크게 적었다.
그에 반해 버프 스킬은 마나를 지속적으로 소모해 액티브 스킬보다 빠르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이런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틀 전 군주의 기상 스킬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군주의 기상(중급 21/500): 자신과 부하 30명의 공격력과 방어력 20% 증가
그러나 마나가 충분해야 가능한 일로 마나가 적다면 경험치 쌓기가 매우 어려웠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돌리게 되면 엄청난 마나 소모로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300페이지면 금화 60개입니다.”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줄 수 있나?”
“가능합니다.”
“뭐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부담 갖지 마시고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마법사의 탑에서 아이템을 파는 점원 NPC는 유저들에게 매우 고압적으로 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물건을 파는 NPC도 마법사라 그런 것으로 초급 스킬을 마스터한 견습 마법사에 불과했지만, 마탑을 등에 업고 있어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그래도 계급이 깡패라고 남작인 나와 하린, 하연에겐 아주 공손하게 굴었다. 무기점이나 잠화점 점원 NPC처럼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말했다.
“몬스터를 잡고 스킬북을 구했네. 그걸 마법 잉크와 마법 닥나무 종이로 복사하려는데 가능한지 알고 싶네?”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법 잉크와 마법 닥나무 종이로는 20%가 한계입니다.”
“주문 효과를 더 올릴 방법은 없나?”
“황금 픽시의 무지개 가루를 사용하면 효과를 5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하나?”
“책 한 권이면 대략 금화 100개 정도 듭니다.”
“100% 올릴 방법은 없나?”
“아주 특별한 방법을 개발한 아크 메이지가 아니면 어려울 겁니다.”
“고맙네.”
“아닙니다.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법 닥나무 종이만 사용해도 효과를 20% 복사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효과로 근력과 순발력을 1씩 올리고, 공격력도 40이나 올랐다.
그런데 효과를 더 올릴 수 있는지 물어본 건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좀 더 나은 일기장을 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스탯 10과 공격력 200을 올리면서 스탯 2와 공격력 40밖에 오르지 않는 판매용을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줄 순 없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돈이 얼마가 들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걸 만들어줘야 했다.
“남작님, 모르실 것 같아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킬 주문서 원본의 효과를 카피할 수 있는 수량은 3권이 전부입니다. 4권 째부터는 효과가 카피 되지 않습니다. 또한, 카피한 주문서는 다시는 카피할 수 없습니다.”
“필사는 되겠지?”
“네.”
“알려줘서 고맙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마법사의 탑 점원 NPC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생돈을 날릴 뻔했다. 이런 내용은 하연이도 몰랐던 것으로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도 올라온 적이 없었다.
어둠의 상인이 히어로 에브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자료와 고급 정보를 취급했지만, The Age of Hero의 방대한 규모를 생각하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The Age of Hero를 창조한 환인 빼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으로 수천 겹으로 둘러싸인 양파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오빠, 경매장에서 파는 건 홍보가 되지 않아 팔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상점이나 서점에서 파는 것도 NPC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으면 팔기가 어려울 거고요.”
“좋은 생각 있어?”
“어둠의 상인 사이트를 통해 파는 건 어떨까요? 그곳을 이용하는 유저는 로만 리히테나 일기장의 가치를 잘 알 거예요.”
“판매 수수료는 얼만데?”
“20%요.”
“세금은 별도겠네?”
“네.”
“급할 거 없으니까 일단 경매장에 올려 반응을 본 다음에 결정하자.”
“알았어요.”
수수료 20%에 세금이 별도면 30.1%를 뜯겨 금화 10개에 팔면 699만 원만 받게 된다.
판매할 재고가 많다면 높은 수수료를 주며 팔아야겠지만, 하루에 한두 권 파는 수준이면 판매 수수료 20%를 내면서까지 팔 이유는 없었다.
일단 경매장에 올려 반응을 본 다음 마법 깃털 펜을 더 사 수량을 늘릴 것인지, 어둠의 상인 사이트를 이용할 것인지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사용할 일기장을 만들기 위해 마법 깃털 펜과 마법 닥나무 종이, 황금 픽시 가루를 사 영지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하연이가 돈을 냈다. 자기와 언니가 사용할 걸 만드는 거라며 바락바락 우겨서 값을 치렀다.
덕분에 미스릴을 내게 뺏겨(?) 시집갈 밑천을 날린 하린이처럼 하연이도 속옷까지 탈탈 털리며 알거지 신세가 됐다.
하연이가 말한 것보다 마법 깃털 펜의 성능은 더욱 뛰어나 12시간 만에 리히테나의 일기장을 글자 하나, 모양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다.
필사를 마치고 황금 픽시의 무지개 가루를 일기장에 뿌리자 마탑의 점원 NPC가 말한 대로 효과가 50%로 상승한 복사본이 탄생했다.
하이 마스터 로만 리히테나의 일기장(복사본)
등급 : 퀘스트 아이템
로만 리히테나는 최고의 검객이 되기 위해 뛰어난 고수들을 찾아 비무를 벌이며 아란테스 대륙 곳곳을 누볐다. 일기장은 로만 리히테나가 그때 받은 영감과 여행에서 일어난 일을 적어 놓은 것이다.
내구도 : 100/100
사용 제한 : 유저 전용
특이 사항 : 일기장을 100번 정독하면 근력과 순발력 2.5, 공격력 100 영구히 상승
(100번 정독 후 일기장 영구 소멸, 마법 복사 불가)
“오빠, 남은 거 한 권은 얼마에 올릴 거야?”
“금화 1,500개.”
“15억?”
“어.”
“너무 비싼 거 아니야? 들어간 재룟값이 200개 정도밖에 안 되는데, 1,500개는 너무하잖아.”
“이건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이야. 그 정도 올려도 팔려.”
“아무리 그래도 15억 원은 너무 비싸. 800개에 올리면 적당해.”
“그래?”
“응.”
“그럼 3,000개에 올려.”
“무슨 소리야? 1,500개도 비싸다고 했잖아.”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고 했어. 3,000개 올려도 살 사람은 사. 그리고 하린이 네가 말했잖아. 부자에게 100억 원은 돈도 아니라고.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해 봐야지.”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에픽 아이템도 아니고 책 한 권에 누가 30억 원을 내겠어?”
“나는 에픽 아이템보다 일기장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 아이템은 뺏길 수 있지만, 스탯과 공격력은 죽지 않는 한 사라질 염려가 없잖아.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거지.”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30억 원은 너무 비싸.”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안 팔리면 내리면 되잖아. 기간을 일주일로 해서 시작 금액을 금화 5,000개에 올려. 즉시 판매는 10,000개로 하고.”
“헉!”
금화 5,000개를 시작 가격으로 하는 일주일짜리 경매에 올리라고 하자 엄청난 금액에 놀란 하린이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가의 20배가 넘는 가격에 올리게 한 건 희귀성 때문이었다. 스탯과 공격력을 올려주는 책은 지금껏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스탯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프라나와 칭호, 장비 아이템이 전부였고, 공격력은 스탯과 장비 아이템, 스킬밖에 없었다.
로만 리히테나의 일기장은 언제 또다시 경매장에 나올지 알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저가 군침을 흘리며 일기장을 손에 넣고 싶어 할 것이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인해 살 사람이 일반인이 아닌 부자라는 것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게 된 이유였다.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건 매우 잘못된 행동으로 인스턴트 던전용 캡슐을 팔아먹는 ㈜판타스틱과 투자자들의 행동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얍삽한 짓을 하는 건 통쾌함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부모를 비롯해 평생 가진 자들의 횡포를 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먹고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더럽고 치사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했다. 유치하고 비겁한 행동이었지만, 그에 대한 앙갚음을 이번에 할 생각이었다.
“오빠, 저 책 읽는 거 무지 싫어해요. 책만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져 참을 수가 없어요.”
“하루에 두 번 읽기도 힘들면 한 번씩만 읽어.”
“한 페이지만 읽어도 눈이 감겨요.”
“찬물로 세수하고 읽어.”
“1분도 안 돼서 졸아요.”
“그럼 어쩔 수 없네. 레이첼 줘야지.”
“안 돼요. 이거 제거에요. 제가 읽을 거예요.”
“그러면 언니하고 같은 속도로 끝내. 빨리 읽을수록 이익이니까.”
“그건 너무 어려워요.”
“이은수와 이은택, 정이슬에게 보낸 자료도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들고, 내가 부탁한 자료도 바로바로 찾아주면서 왜 책은 못 읽겠다는 거야?”
“그건 재미있는 일이고, 책 읽는 건 재미없는 일이잖아요.”
“일기가 재미없어? 나는 재미있는데.”
“재미있어요. 하지만 한 번만 재미있어요. 두 번부터는 지루해요.”
“누구나 같은 책 여러 번 읽으면 재미없어. 그래도 이건 100번 정독해야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참고 읽어야지 어쩌겠어.”
“그러면 지루하지 않게 읽게 해주세요.”
“어떻게?”
“책 읽을 때 오빠 옆에 착 달라붙어 읽으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오빠가 옆에 있으면 졸음이 싹 달아나거든요.”
“하아. 알았어. 대신 게임 시간으로 하루에 2번 읽는 거야. 약속할 수 있어?”
“그럼요. 2번 아니라 3번도 읽을 수 있어요. 오빠만 옆에 있으면요. 헤헷.”
일기장을 읽는 게 귀찮고 힘들어 앙탈을 부린 게 아니었다. 내 옆에 있고 싶어 꾀를 쓴 것이었다.
그리도 나도 하연이가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척 너스레를 떨며 허락한 것이었다.
하린이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런데 하연이에게도 눈이 갔다. 잘못된 행동이고 절대 해선 안 될 행동이었지만, 사람 마음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