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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106. 그물
“오빠, 셋 다 읽었어요.”
“그럼 2차로 준비한 자료 보내.”
“네.”
“반응을 알 순 없지?”
“익명으로 보낸 거라 알 수 없어요.”
“둘 다 수도 크라쿠푸스 서쪽 고급 주택가에 집이 있다고 했지?”
“네.”
“경비가 삼엄해?”
“고급 주택 2개를 사서 왼쪽은 이은수가 쓰고, 오른쪽은 마림 길드 본부로 쓰고 있어요. 이은택은 마림 길드 본부에 있고요. 상주 인원이 최소 3,000명이라 몰래 잠입할 생각이라면 포기하세요. 들어가자마자 걸려요.”
“내가 무슨 재주로 잠입해? 밖에서 볼 수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담이 5m나 돼서 가봐야 높은 담밖에 볼 수 없어요.”
수도 크라쿠푸스 서쪽은 평민 거주지였다. 그러나 평민 중에도 장사로 돈을 번 사람이 많았고, 준 귀족과 기사 계급은 귀족 거주지에 살 수 없어 평민 거주지에 살아 커다란 저택이 수백 채에 이르렀다.
마림 길드를 비롯해 1위 오송, 2위 한울, 3위 현도, 4위 LTE 길드 등 10대 길드와 대형 길드는 모두 서쪽 평민 거주지에 있는 대형 주택을 구입해 길드 본부로 사용했고, 중형 길드들도 비싼 도심보단 주택가에 집 한 채를 구입해 아지트로 삼았다.
“오빠, 성우에게 물어볼까? 이슬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니야. 성우가 이슬이에게 말할 수도 있어. 그러면 우리를 의심할 거야. 절대 연락하면 안 돼.”
“알았어.”
정이슬에게 보낸 자료는 이은수가 조만간 마림 재단을 물려받는다는 것과 이은택이 이름만 마림 재단 둘째 아들이지 배다른 동생으로 형 이은수가 재단을 물려받으면 그날로 아웃이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은수가 정이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동생 이은택의 여자라 다가가지 못하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보냈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하린이가 정이슬이 어떻게 지내는지 성우에게 물어봐도 걸릴 게 없었다.
그러나 정이슬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해선 절대 안 되는 천재였다. 멘사 회원인 걸 떠나서 남자 수십 명을 가지고 놀 정도로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돼 작은 단서만 줘도 바로 우리를 의심하고 집요하게 뒤를 캘 게 분명했다.
“그럼 다현이 친구를 통해서 알아볼까?”
“그 사람도 믿을 수 없어.”
“그럼 어떻게 알아봐?”
“다현이에게 이은택과 정이슬이 잘 지내는지 그것만 물어봐. 그것도 넌지시.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된다는 것을 미끼로 해서.”
“다현이도 못 믿는 거야?”
“다현이가 좋은 애고 쉽게 친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 그러나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할 만큼 조심할 때야. 그래서 그래.”
“알았어. 그런데 다현이하고 히어로걸스 멤버들은 어떻게 할 거야?”
“영지에 데려올 순 없으니까 크바시르 시 근처에 적당한 사냥터를 하나 찾아서 거기서 같이 사냥하는 거로 하자.”
영지에 유저들이 많이 오면 올수록 돈이 돌아 영지가 빠르게 발전했다. 대표적인 곳이 파우드론 시와 근처 영지로 매일 수만 명의 유저가 황금 어금니 오크를 사냥하기 위해 몰려들며 엄청난 돈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내 영지는 NPC 영지가 아닌 최초의 유저 영지로 딴마음을 품은 유저들이 찾아와 분탕질을 치면 발전이 아니라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놈들을 제어할 힘이 있을 때까진 철저하게 영지를 숨겨야 했다.
“하연아, 다현이에게 전화 좀하고 올게.”
“그럼 나도 로그오프하고 밖에 좀 나갔다 올게. 볼일 있어.”
“알았어.”
하린이가 히어로걸스 리더 다현이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로그오프하자 나도 로그오프하고 나가 하린이 뒤에 착 달라붙어 가슴과 꽃잎을 만지작댔다.
하린이의 가슴과 꽃잎은 만지고 또 만져도, 빨고 또 빨아도 질리지 않았다. 마약보다 중독성이 백배는 강해 캡슐을 빠져나오면 졸졸 따라다니며 만져댔다.
그렇게 종일 만지다가 하린이를 집에 바래다주고 원룸에 혼자 남겨지면 허전하고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가슴만 만져.”
“싫어.”
“밑에 만지면 나 몸이 떨려서 전화 못 해.”
“만지고 싶어.”
“가슴 빠는 것까지만 해. 그 이상 하면 나 신음 소리 나온단 말이야.”
“그것도 재미있겠다. 다현이 많이 당황하겠네. 흐흐흐흐.”
“음흉하기는.”
“어서 해봐. 다현이 놀라는 소리 듣고 싶다.”
“계속 그러면 전화 안 할 거야.”
“크크크크. 알았어. 대신 빨리 끊어야 해. 오래 걸리면 못 참아.”
“알았어.”
가슴 빠는 것으로 극적으로 타협을 본 하린이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다현이에게 전화하기 위해 하린이 버튼을 누르자 면티를 목까지 올리고 작은 젖꼭지를 물었다.
“살살. 세게 하면 안 돼.”
“알았어.”
♩♪♩♪♬~ ♩♪♬♩♪~
“여보세요.”
“다현아. 나야 하린이.”
“어 하린아.”
“잘 지냈어?”
“별로.”
“이은택이 계속 사람을 보내?”
“사람을 보내도 안 되니까 회사에 압력을 넣고 있어.”
“회사에선 뭐래?”
“사장과 실장이 알아서 접대해줬으면 하는 투로 말했어.”
“나쁜 새끼들.”
“이 바닥이 원래 그래.”
“활동은?”
“어제부로 완전히 끝났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는 거야?”
“전혀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래도 아직은 너희가 가장 잘 나가는 걸 그룹이잖아.”
“이은택이 ㈜판타스틱에도 압력을 넣었나 봐. 그 흔한 팬 사인회도 없고, 대학 공연도 뚝 끊겼어. 대학들도 마림 재단의 눈치를 보나 봐.”
“연예 프로는?”
“회사에서 안 잡아주면 끝이야. 손발 다 묶인 거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당장은 똘똘 뭉쳐 이겨내자는 분위기인데, 반은 생각이 다른지 사장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어. 인기 맛을 봤으니 끊기가 어렵겠지.”
“이은택을 만나겠다는 거야?”
“민지와 수영이는 아니야. 다른 멤버 4명이 스폰서를 구해서라도 다시 인기를 얻고 싶어 해. 나도 그 애들 마음 이해해서 아무 얘기도 안 했어. 그렇지만 그 애들 몸판 덕에 그룹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아.”
“어쩌려고?”
“사장과 담판을 지을 생각이야.”
담판을 짓는다는 것은 최후통첩을 말하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소송으로 가면 이긴다고 해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연예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기 어려웠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암묵적인 원칙이 있어 업계를 배신(?)한 연예인은 웬만해선 데려다 쓰지 않았다.
“가능하겠어?”
“사장이 이은택을 만나 스폰서 제안을 받으라고 하는 동영상을 찍었어. 구체적이진 않지만, 앞뒤 말을 조합해보면 누구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 그리고 이은택이 민지와 수영이에게 집요하게 문자로 치근댄 게 있어. 이걸 무기로 나와 민지, 수영, 연아를 풀어달라고 할 거야. 안 먹히면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계약파기 소송과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지.”
“소송으로 가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상한 소문도 날 텐데 괜찮겠어?”
“한 번 스폰서 맺으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몸 망치고, 마음도 망치고, 결국에는 버려지게 될 거야. 그것보단 사람들에게 오해 사는 게 백번 나아.”
“변호사 비용은?”
“연아가 좀 살아. 연아가 먼저 내고, 차차 갚기로 했어.”
“장기화하면 비용이 엄청날 텐데?”
“너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벌어야지.”
“알았어. 최대한 많이 도와줄게. 대신 4명만 와야 해. 믿을 수 없는 사람과 같이하고 싶지 않아.”
“내일 모여서 얘기하기로 했어. 늦어도 3일 안에 갈라설 거야.”
“아까 말한 동영상과 문자 메시지 누가 갖고 있어?”
“내가 가지고 있어.”
“다른 멤버들도 알아?”
“동영상은 모르고 문자는 민지와 수영이가 받은 거라 둘은 알지.”
“그러면 동영상하고 문자 내게 보내. 알려지면 이은택과 회사에서 뺏으려 들 수도 있어.”
“그럴 줄 알고 다른 곳에 저장해뒀어.”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내게 보내.”
“알았어.”
하린과 다현이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다가 동영상과 문자를 받으라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건 제3의 인물이 가지고 있어야 뺏기지 않았다.
“얘기 끝나면 바로 연락해.”
“알았어.”
이은택의 개지랄로 인해 정이슬과 이은택의 동태가 어떤지도 물어보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전화를 끊은 하린의 얼굴에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 꿈 많은 소녀들을 상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SUN 엔터테인먼트와 성적으로밖에 보지 않는 이은택의 행동에 잔뜩 화가 났다.
그리고 거미줄에 걸려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친구 다현이의 모습에 슬퍼하는 것이었다.
“군대 선배가 하는 경호회사가 있어. 믿을 수 있는 분이야. 도움을 청하면 다현이와 친구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거야.”
“돈은 내가 낼게. 도와줘 오빠.”
“너랑 내 돈 네 돈 할 사이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회사가 고용한 경호원 이외에 따로 개인 경호원 붙여도 되는지 그거나 다현이에게 물어봐.”
“알았어. 지금 전화할게.”
SUN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미치지 않고선 다현과 민지, 수영, 연아를 감금하거나 생명의 위협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은택은 SUN 엔터테인먼트 사장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마림 재단에서 아버지를 빼곤 자기편은 한 명도 없어 아버지가 이선으로 물러나면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어로걸스 멤버를, 그것도 전체를 노린 게 세상에 알려지면 그날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 이만철이 건재하고 엄마도 살아 있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만, 사학계의 황태자로 군림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국에서 홀로 지내게 된다면 허영심이 넘쳐나는 이은택의 성격으론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다현과 민지, 수영, 연아를 납치해 포르노를 찍어서라도 입막음을 하려 할 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