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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105화 (10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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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105.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쉬고 있어. 점심에 올 테니까.”

“배고파요.”

“레이첼이 먹을 거 갖다 줄 거야.”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먹게 해주나요?”

“만들 수 있다면.”

“알았어요. 이따 봐요.”

“그래.”

세라는 아무 일도 없다는 지하 감옥을 나서는 나를 향해 웃음 띤 얼굴로 손까지 흔들어줬다.

이런 모습이 교활함의 극치로 세라는 불안한 속마음을 감추고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하는 영악함을 보였다.

“레이첼.”

“네, 영주님.”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 넷이서 돌아가면서 세라를 감시해.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돼.”

“네.”

“그리고 절대 다가가지 말고 말도 붙여선 안 돼.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내게 바로 연락하고.”

“알았어요.”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에게 세라를 감시하게 한 건 남자 병사들을 시키면 서큐버스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

마나가 제어돼 스킬을 사용할 순 없지만, 몸에 밴 애교와 교태만으로도 촌놈인 농노 병사들은 쉽게 휘어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라가 릴리트의 딸이자 서큐버스라는 건 1급 비밀로 밖에 새어나가면 안 돼 입이 무겁고 믿을 수 있는 레이첼과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에게 맡긴 것이었다.

“성격이 종잡을 수 없네요. 완전히 다중인데요.”

“살려고 그러는 거야. 이상하게 볼 거 없어.”

“이상하게 보진 않아요. 거부감이 드는 거지.”

“세라 처지가 되면 누구나 그렇게 돼. 미워하지 마.”

“알았어요.”

포로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가혹한 육체적 고통, 가족에 대한 그리움, 조국에 대한 원망 등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끊임없이 정신과 육체를 괴롭혔다.

세라는 육체적 고통을 겪진 않았지만, 정신적 고통만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 성격이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그걸로 세라를 평가해선 안 된다. 극한 상황에 몰리면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체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누구나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없었다.

“하연아, 자료는 보냈어?”

“지금 보낼게요.”

“누가 보냈는지 모르게 해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무기명으로 보내면 누가 보냈는지 절대 찾을 수 없어요.”

“알았어.”

메일을 보내는 것처럼 The Age of Hero에서도 유저들 간에 자유롭게 메시지와 사진, 각종 자료를 보낼 수 있었다.

속도와 처리용량이 일반 메일보다 3배 이상 빠르고 커 많은 유저가 The Age of Hero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했다.

“보냈어요.”

“한 번으로는 걸려들지 않을 거야. 두 번째와 세 번째 자료도 준비해.”

“벌써 준비하고 있어요. 늦어도 오늘 중으로 마무리될 거예요.”

“고마워 하연아.”

“오빠 일이 제 일이고, 제 일이 오빠 일이잖아요.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내 일 네 일 따져서야 하겠어요? 안 그래요 오빠?”

“그.그렇지.”

사이좋은 형부와 처제 사이라면 서로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돕는 건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아주 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불륜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하린이는 저녁 준비로 로그아웃한 상태라 듣지 못했고, 장소도 집무실이라... 모두 내 첩으로 알고 있어 들어도 오해하지 않겠지만... 하연이와 나밖에 없어 가슴 철렁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검은 오크는 언제 잡으러 가실 거예요?”

“오늘은 탁아소 공사와 벌목 현장에 갔다가 독 가시나무 씨앗도 좀 더 뿌려야할 것 같아. 검은 오크 사냥은 며칠 후에 가야할 것 같아.”

“그럼 저도 저녁 먹고 들어와서 도와드릴게요.”

“그래.”

“오빠, 저녁 맛있게 드세요.”

“너도 맛있게 먹어.”

“네.”

로그아웃하고 나오자 하린이가 순두부찌개를 얼큰하게 끓여놓았다. 잘못한 건 없지만, 찔리는 건 있어 쭈뼛거리자 하연이가 짓궂게 굴었다는 것을 눈치챈 하린이가 손을 잡아끌어 밥상 앞에 앉혔다.

“오빠가 당황할수록 하연이의 장난은 더욱 심해질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해야 해. 그래야 장난을 안 쳐.”

“정말?”

“여자는 남자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면 그 모습이 재밌어서 계속 장난을 쳐. 수위도 점점 올라가고. 여자 여럿 있는데 남자 하나 있으면 바보 되는 게 바로 그 때문이야.”

“남자는 여자 한 명 있으면 서로 챙겨주는데, 여자는 왜 그래?”

“글쎄? 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남자보다 여자가 더 짓궂어서 그럴 수도 있고, 이때다 싶어서 마구 부려먹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중요한 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거야. 동요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게 되거든.”

“알았어. 노력해볼게.”

하린이는 하연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물어볼 순 없었다.

나는 걱정돼서 물어본 것이지만, 하린이는 내가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루하루 하연이가 다가오고 있지만,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건 하린이도 알고 하연이도 알았다.

그러나 마음은 성적표처럼 몇 점인지 나오는 게 아니라서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아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서로 싸우고 아파하며 잠 못 이뤘다.

점심을 먹고 벌채 작업이 한창인 동쪽 펑거스 숲으로 갔다. 두 달 넘게 남자 농노 1,000명이 벌채 작업에 매달리자 울창했던 숲이 벌판으로 변했다.

나무뿌리까지 모두 캐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지만, 몬스터가 살 서식지를 없애고 농지로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은 이미 마련된 것이었다.

“영주님, 내일부터 남쪽 펑거스 숲 벌채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런데 목재 많이 쌓였지? 더는 쌓아둘 곳이 없을 만큼.”

“네.”

“내버려두면 아까운 목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겠네?”

“그렇습니다.”

“그럼 탁아소와 학교 공사 끝나면 자네와 조나단 대장의 집부터 새로 짓도록 해. 자네들 집을 지은 다음 평민들 집도 새로 짓고. 지금보다 훨씬 크고 세련되게.”

“저희 집을 지어주신다는 말입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러나 영주성부터 새로 짓는 게 순서입니다.”

“영주성 지을 돈도 없지만, 지으려면 몇 년은 걸려. 그리고 그 일은 경작지 확보가 끝나면 해야지 지금 서두를 일은 아니야.”

“그래도...”

“새집 싫어?”

“아닙니다. 죄송해서 그렇습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고생했으면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지. 집 구조와 모양은 2~3일 내로 내가 딜러에게 줄 테니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고쳐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새집을 지어준다는 말에 다니엘 집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100년도 넘은 집으로 나무가 썩어 냄새가 심했고, 비가 새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집 짓는데 많은 돈이 들어 박봉인 조나단 형편에 지을 형편이 안 됐고, 짓고 싶어도 영지에 묶인 몸이라 영주 허락 없이는 지을 수도 없어 참고 살았다.

“평민들 집 지은 다음에 농노들 집도 새로 지어줘. 그게 돼지우리지 사람 사는 집이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썩은 내가 진동하고, 좁기는 또 더럽게 좁아. 개돼지도 그것보다는 좋은 곳에서 살겠다. 농노들 집도 어떻게 지을지 그림으로 그려줄 테니까 짓는데 차질 없도록 하고.”

“예, 영주님.”

농노들의 집도 새로 지어준다고 하자 다니엘 집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전 같으면 대놓고 반대했겠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성격인지 알아 반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못마땅해했다. 농노는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다니엘의 생각은 죽어서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다. 남녀는 평등하다. 인간은 인종과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교육을 수십 년 넘게 한 대한민국도 여전히 남녀를 차별하고 인종과 국가, 재산과 집안, 학벌에 따라 사람을 계급으로 나눴다.

대한민국도 그런데 수천 년간 귀족과 평민, 노예가 생활처럼 존재해온 아란테스 대륙에서 하루아침에 농노를 사람으로 보기를 바라는 건 해를 달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뭐든지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대신 노력이 더해지면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오빠, 펑거스 숲 바깥쪽에도 독 가시나무의 씨앗을 뿌리는 게 좋겠어. 남쪽과 북쪽, 서쪽에서 뿌려 농지 전체를 독 가시나무로 보호하는 거야.”

“그러자.”

독 가시나무는 번식력이 매우 뛰어나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자랐고, 몬스터는 물론 외부세력의 침입도 막을 수 있어 다용도로 이용할 수 있었다.

“언니, 그러다 독 가시나무가 농지까지 잠식하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가 대비책을 알아냈어.”

“사람 손으로 일일이 새로 돋아나는 독 가시나무를 뽑아주는 거?”

“아니. 독 가시나무가 싫어하는 나무를 앞에 심어주면 돼.”

“그게 뭔데?”

“은행나무.”

“여기도 은행나무가 있어?”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하고는 많이 달라. 많이 자라봐야 3m밖에 안 되고, 은행잎 모양도 부채 모양이 아니라 별 모양이야. 그래도 열매는 우리가 아는 은행과 아주 흡사해. 색깔도 다르고 효능도 다르지만.”

찔리면 구토와 함께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독 가시나무는 번식력이 엄청나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숲 전체를 잠식했다.

이 때문에 생태계 파괴자라 불리며 인간은 물론 숲에 사는 동물과 몬스터들도 싫어했다.

이런 독 가시나무도 싫어하는 식물이 있었다. 대표적인 식물이 분홍 은행나무로 주변에 분홍 은행나무가 있으면 그쪽으로 가지도 뻗지 않았다.

독 가시나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 수도 크라쿠푸스의 서점을 뒤지다 알게 된 내용으로 남쪽 펑거스 숲과 서남쪽 황색 오크 서식지 사이에만 독 가시나무가 있었던 것도 분홍 은행나무가 있어 주변에 널리 분포해 있어서였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독 가시나무가 분홍 은행나무를 정말 싫어하는지 알아보기 위기 남쪽 경계에 30그루를 심어 따뜻한 손길로 키워봤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벌벌 떠는 상극으로 한 그루만 있어도 반경 30m 이내에는 독 가시나무가 자라지 않았다.

분홍 은행나무는 개나리처럼 꺾어 심기를 해도 금세 뿌리를 내리고 자라 재배하기가 아주 수월했다.

그리고 열매는 우리가 아는 은행 열매와 달리 독성이 없고,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해 아이들 간식으로 먹이면 발육에 큰 도움이 됐다.

- 분홍 은행나무 가지에 따뜻한 손길을 사용했습니다. 분홍 은행나무 가지가 묘목으로 성장했습니다.

50cm쯤 되는 분홍 은행나무 가지를 꺾어 독 가시나무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 심고 물을 준 다음 따뜻한 손길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1m나 되는 묘목으로 자라났다.

1분 후 다시 한 번 따뜻한 손길을 사용하자 굵기가 2cm로 커지고 키도 1.2m로 자라났다.

이렇게 2번만 따뜻한 손길을 사용하면 생명력이 크게 활성화해 2~3년 안에 열매를 딸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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