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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102.
농노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로 한 그 날 저녁부터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 아서, 아더를 집무실로 불러 하루 1시간씩 글자를 가르쳤다.
The Age of Hero는 한글과 한국어가 공용어로 머리가 돌이 아닌 이상 배우는 게 어렵지 않아 일주일 만에 7명 모두 한글을 깨우쳤다.
그러나 글자를 안다고 단어와 문장의 뜻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서 7명 모두 책 읽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한글은 익히기가 쉬운 우수한 글자지만, 단어 대부분이 한자라 뜻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많은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 아서, 아더에게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게 했다.
그러나 20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다가 뜻도 모르는 책을 억지로 읽자 하품이 나오고 눈꺼풀이 자동으로 감기는 등 7명 모두 아주 힘들어했다.
목공 딜런의 감독하에 유치원과 학교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맨땅에 터를 다지고 그 위에 나무로 건물을 짓는 단순한 공사라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애초 계획보다 수용인원을 대폭 늘려 1,000명의 아이가 먹고 놀고 뛰어다니며 공부할 건물을 짓다 보니 공사 규모가 커져 완공까지는 빨라도 6개월은 걸렸다.
애초 계획은 300명 규모의 목조 건물 3동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다 하린이가 농노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크게 짓자고 주문해 위치를 영주성 정문 아래에서 부지가 넓은 호숫가로 옮기도 건물도 10동이나 지으며 규모가 4배 가까이 커졌다.
덕분에 공사비도 몇 배나 늘며 내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나게 했다. 그러나 나무는 펑거스 숲에서 농지개간을 위해 벌채한 나무를 사용하면 됐고, 책상과 의자, 식탁 등도 자체 조달해 식비 빼고는 크게 들어갈 게 없었다.
그리고 식비도 자이언트 판다와 버그 베어를 잔뜩 사냥해 곡물만 사면 돼 큰 부담은 아니었다.
“승마는 열심히 하고 있어?”
“한 번에 2시간씩 일주일에 3번씩 타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혼자 달릴 수 있겠네?”
“아니요.”
“아직도 고삐를 잡아줘야 해?”
“네.”
“너도 어지간히 운동신경 없구나.”
레이첼은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말타기를 연습했지만, 아직도 혼자서 타지 못해 조련사들이 고삐를 잡아줘야 했다. 그리고 탈 때마다 엉덩이가 깨지는 고통에 아파 죽으려고 했다.
내가 시킨 거라 억지로 하는 것이지 부모가 시켰다면 때려치운 지 오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요. 저 달리기도 잘하고, 수영도 잘해요. 승마만 못 하는 거예요.”
“달리기하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승마만 못 해? 그걸 믿으라는 거야?”
“진짜예요. 원하시면 지금이라도 수영하는 거 보여드릴 수 있어요?”
“수영복 있어?”
“수영복이요? 그게 뭐예요?”
“수영할 때 입는 옷. 몸에 착 달라붙는 작은 옷 말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농노들은 속옷도 없는데.”
“그럼 뭐 입고 수영해?”
“옷을 왜 입어요? 불편하게. 빨가벗고 해야죠.”
“헉! 너무 야한 거 아니야?”
“제 알몸 여러 번 보셨으면서 왜 그래요? 창피하게.”
“다른 남자 보여준 거 아니지?”
“그럼요. 어렸을 때 그랬다는 거예요. 나이 들고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절대 하면 안 돼. 내 앞에서만 해. 알았지”
“네에~”
레이첼을 데리고 살 생각은 없었지만, 다른 놈에게 주고 싶지도 않았다. 레이첼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래선 안 됐다.
그러나 다른 놈 품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주 더러운 심보였지만, 이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내게 폭 빠진 데다 흡혈로 더욱 친근해져 가라고 해도 절대 가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평생 내 곁에 있게 된 것으로 몇 년 후에는 평민으로 지위를 격상시키며, 시녀 일도 그만두고 하게 싶은 일을 하며 편안하게 지내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찰거머리처럼 옆에 딱 달라붙어 작은 것 하나까지 챙겨주는 게 레이첼의 행복이었다. 그 일을 뺏겠다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 칠 게 분명했다.
“어제 얘기한 거 어떻게 됐어?”
“네 명 모두 영주님을 깊이 따라 비밀을 발설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믿으셔도 돼요.”
“그럼 오늘부터 할 테니까 지위를 부시녀장으로 모두 올려줘. 허드렛일은 그만하게 해야지.”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영주님하고 하린, 하연 마님 챙기는 건 저희가 할게요.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요.”
“알았어.”
밤 11시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가 레이첼과 함께 집무실로 찾아왔다. 레이첼에게 이미 듣고 왔지만, 내가 말해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짧게 요약해서 피를 마시게 된 이유와 비밀을 지켜야할 이유를 설명했다.
“너희는 이제 나와 비밀을 공유한 사이야. 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야 해. 그래도 괜찮아?”
“저희가 바라던 일이에요.”
“그렇게 되기를 환인님께 매일 기도했어요.”
“그렇다고 너희를 내 여자로 들인다는 보장은 없어. 알고 있지?”
“괜찮아요. 영주님 옆에만 있게 해주세요.”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을 시키셔도 다 할 수 있어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지만, 이거 하나만은 약속할게.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를 버리는 일은 절대 없어. 나이가 들고 아파 움직일 수 없어도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거야.”
- 시녀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가 모모님의 진실한 마음에 크게 감명받아 충성심이 최대치인 100에 도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 모모님은 10명이 넘는 NPC의 충성심을 100까지 올리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 모모님이 위대한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업적 100,000포인트와 평판 100,000포인트를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달콤한 소리에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의 충성심이 최대치인 100에 도달했다.
레이첼을 시작으로 다니엘과 조나단, 아서, 아더, 무두장이 브랜틀, 목공 딜런, 조나단의 수제자이자 경비대 조장인 루니까지 충성심 100을 찍었지만, 평판 포인트를 주지 않아 개인의 충성심은 평판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명 단위로 주는 것인지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까지 충성심 100을 찍으며 12명(니콜라스와 래틀은 제외)이 충성심 100을 찍자 10만이라는 엄청난 직업 포인트와 평판 포인트를 선물로 줬다.
‘받고도 기분이 찜찜하네.’
기분이 찜찜한 건 내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데,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의 시간은 빠르게 흐리기 때문이었다.
유저는 실제 나이의 5분의 1 속도로 늙지만, NPC는 4배나 빨리 흘러 유저보다 20배나 빨리 늙었다.
5년 후에는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 모두 40대 중년 여성이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다.
그녀들의 생명을 늘리는 방법은 소드 마스터나 아크 메이지로 만드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 20살 젊은 나이로 200년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천재도 이루기 힘든 일을 평생 부엌칼 말고는 잡아보지도 못한 그녀들이 이룩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고생했어. 어서 가서 쉬어.”
“영주님도 쉬세요.”
“그래.”
몸은 힘들지만 기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서는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의 얼굴을 보자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The Age of Hero에는 불로장생의 명약이 없었다. 소드 마스터와 아크 메이지도 200년 이상은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인간처럼 NPC도 수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렇다고 평생 나를 위해 헌신할 그녀들을 허무하게 잃을 순 없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오래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 그럴 뿐 방법이 없어 생각할수록 머리만 복잡했다.
“하연이라면 아는 게 있을까? 시녀들을 살리겠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가입해서 알아봐야 하나?”
“뭘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하세요?”
“어? 언제 왔어?”
“1분 전에요.”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하연이가 집무실에 들어온 것도 몰랐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있던 버릇으로 뭔가에 빠지면 정신없이 그 일만 파고들어 방에 유모가 들어와도 몰랐다.
좋게 말해 집중력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해 여러 개를 동시에 할 수 없는 단세포 동물로 공부할 땐 도움이 됐지만, 넋 놓고 있는 일이 많아 생활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됐다.
“그럼 내가 한 말 다 들었겠네?”
“네.”
“신경 쓰지 마. 불쌍해서 그런 거니까.”
“저는 오빠의 그런 마음이 좋아요.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이면 NPC도 끝까지 챙기려는 마음 정말 좋아요.”
“다른 사람도 다 그래.”
“누가 NPC를 사람으로 생각해요? 오빠처럼 사람 소중한 거 아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그러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겠죠. 언니에게 들었어요. 오빠 과거에 대해서. 그래서 오빠가 NPC들을 사람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내 얘기를 들었어?”
“제가 오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어젯밤에 밤새 언니 졸라서 들은 거예요. 언니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혼내려면 절 혼내세요.”
“화나서 물어본 거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물어본 거야. 그리고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어. 그러니 화낼 일도 없어.”
“그래도 미리 말하지 않은 거 정말 죄송해요.”
“그건 좀 그렇지?”
“네.”
“다음부터는 내게 물어봐. 그럼 언니가 얘기해주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말해줄 테니까.”
“그럼 지금해주세요. 언니는 유모 얘기하고 부모님과 헤어진 것, 군대에서 다친 것만 얘기해줬어요. 대충대충 얘기해서 알맹이가 별로 없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그때 말해줄게. 지금은 다른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서 안 돼.”
“꼭 말해주세요.”
“알았어.”
내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하연이에게 내 과거를 말한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연이가 말한 것처럼 말해도 좋을 만큼 적당한 선에서 얘기한 거라 화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하연이에게는 자세히 알려줘도 괜찮았다. 하린이 다음으로 친한 사람이 하연이었다.
또한, 평생보고 살 사람이었다. 지금 밝히지 않아도 언젠가는 밝힐 사이로 조금 먼저 알게 됐다고 화낼 일은 아니었다.
“저는 오빠처럼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좋아요. 그러나 그런 사람 찾기기 정말 힘든 세상이에요. 모두 돈 돈 돈 돈만 밝히니까요.”
“다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나도 돈 좋아해.”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좋아하는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우선순위를 말하는 거죠. 사람 나고 돈 났는데, 지금 세상은 돈 낳고 사람 낳은 세상이잖아요.”
돈만 있으면 권력도 사고, 사랑도 사고, 쾌락도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연이 말대로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됐다.
그러나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인간이 물물거래를 하기 이전부터 그랬던 것으로 인간의 탐욕과 소유욕은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겼다.
인간이 멸망하기 전까진 절대 고칠 수 없는 병으로 하연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나도 내 것에 대한 소유욕이 엄청나게 강했다.
그래서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를 살리려는 것이었다. 소유욕이 없었다면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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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