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99화 (9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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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의 신전

99.

사악한 웃음을 흘린 하연이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자 옆에 바짝 다가온 하린이가 뚫어져라 눈을 맞췄다.

“레이첼과 아라치도 하연이처럼 저렇게 좋아해?”

“똑같지는 않아. 사람마다 느끼는 쾌감의 강도는 다르니까.”

“좋아하냐고?”

“그런 것 같아. 피 빨릴 때 하연이와 표정이 비슷하니까.”

“나만 그런 줄 알고 걱정했었네. 하아. 이제 안심이 된다. 후유.”

피를 빨릴 때 자기만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한 하린이 하연과 레이첼, 아라치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걸 알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진짜 뱀파이어가 아니라서 상대를 매혹해 송곳니가 박힐 때 생기는 고통을 없애주지 못했다.

그러나 흡혈로 인한 무기력증과 빠르게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며 생기는 이상한 느낌 그리고 호감도 상승이 복합적으로 엮이며 생각하지도 못한 쾌감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네 명 모두 피 빨리는 일을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즐겼고,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오빠, 우리 네 명 모두 좋아할 정도면 흡혈 대상을 늘려도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아이린과 아만다, 에밀리, 엠마 어때? 걔네들도 오빠 좋아해서 떠들고 다니지 않을 것 같은데.”

“으음... 레이첼과 먼저 의논해보고 하는 게 좋겠다. 나보다 레이첼이 성격을 더 잘 알 테니까.”

흡혈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려면 피를 공급해줄 사람을 늘려야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늘렸다가는 내가 뱀파이어란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꼴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여자가 아니면 안 됐고, 내가 뱀파이어란 것을 발설하면 안 돼 입이 무거워야 했다. 조건이 까다로워 부합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방법을 찾았다는 게 중한 것으로 조건에 부합되는 여자를 한 명씩 늘려가다 보면 특급을 마스터할 날이 언젠가 올 것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0개만 잘라 묶어도 5명은 충분히 탈 수 있습니다.”

“그럼 10개, 15개, 20개로 시험해봐.”

“알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목공 딜런이 농노들을 지휘해 커다란 대나무 80그루를 잘라 섬이 있는 강가로 옮긴 후 뗏목을 만들었다.

먼저 대나무 10개를 묶은 뗏목을 강에 띄우고 수영 잘하는 경비병 3명을 태웠다. 그리고 허리에 밧줄을 묶어 뗏목이 전복되면 바로 끌어낼 수 있게 단단히 준비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조심하고.”

“예.”

조나단 대장의 신호에 사공으로 선발댄 경비병 3명이 기다란 장대로 강바닥을 밀었다. 그러자 가벼운 대나무 뗏목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강심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강한 물살에 밀려 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밑으로 계속 떠내려갔다.

첫 번째 실패를 교훈 삼아 두 번째는 대나무 15개짜리 묶어 만든 뗏목을 1km 상류로 끌고 올라가 띄웠다.

그러자 밑으로 흘러가며 섬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친 물살에 밀려 섬에 반도 가지 못하고 하류로 밀려 내려갔다.

다시 3km 올라가 대나무 20개를 묶어 만든 뗏목을 띄우며 경비병도 2명 늘려 5명 태웠다.

인원도 늘고 뗏목도 커지자 안정감이 생기며 하류로 떠내려가는 속도가 줄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섬에 도착한 경비병들을 불러들이고 대나무도 좀 더 잘라와 30개로 뗏목을 만든 후 섬에 안착한 경비병 5명을 사공으로 삼아 섬을 향해 나아갔다. 20개짜리보다 더욱 안정감을 찾은 대나무 뗏목이 안전하게 섬에 다다랐다.

“언니,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지 않아?”

“야,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

“헙. 잘못했어.”

“둘 다 목소리 낮춰. 들어간다.”

3층 높이의 석조건물은 전면에 커다란 돌기둥 4개가 건물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전형적인 신전 양식이었다.

작은 외딴 섬에 있기에는 아까울 만큼 건물을 장식한 조각들이 아름다웠지만, 세월의 풍상 앞에 아름다웠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돌무덤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허물어져 있었다.

문도 없는 건물에 발을 들여놓자 맨드레이크 던전에 들어갔을 때 보았던 익숙한 메시지가 머리 위에 떴다.

- 파티원 모모님이 서큐버스 세라의 유배지 몽환의 신전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 몽환의 신전을 최초로 발견한 파티원 모모님에게 업적 50,000포인트와 평판 50,000포인트를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 몽환의 신전을 최초로 발견한 파티원 하린님에게 업적 50,000포인트와 평판 50,000포인트를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 몽환의 신전을 최초로 발견한 파티원 하연님에게 업적 50,000포인트와 평판 50,000포인트를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헉! 평판 포인트 5만?”

“놀랍지?”

“어.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지금 놀라도 금세 익숙해질 거야. 오빠랑 있으면 이런 자주 보게 되니까.”

“오빠, 저 버리면 안 돼요. 사랑해요! 영원히 사랑해요!!”

“.......”

부서진 돌과 먼지가 가득한 통로를 따라 30m쯤 전진하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사이먼의 홀리메탈 원형 방패를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조금 어둡긴 했지만, 부서진 돌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사물을 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100개도 넘는 계단을 내려가자 석문이 나왔다. 부비트랩이 있는지 하린이 화살로 확인한 후 이상이 없자 힘주어 밀었다.

그르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리자 엄청나게 큰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에는 진시황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을 장식한 병사들처럼 수많은 병사가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붉은빛에 싸인 제단이 보였다.

“물러가라! 이곳은 밤의 여왕 릴리트님이 딸 세라님을 벌주기 위해 만든 몽환의 신전이다. 여왕님의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경고를 어기고 들어오면 오직 죽음만이 있으리라!”

광장에 발을 들여놓자 커다란 대검을 땅에 박은 채 철판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남성이 경고를 날렸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성 뒤에는 방패와 칼을 든 완전무장한 병사 100명이 열과 오를 지어 서 있었고, 좌우로도 같은 형태의 무리가 세 무리씩 있었다. 또한, 그런 무리가 원통형 붉은빛이 있는 제단까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아우 좋아. 오늘 경험치 좀 먹겠다. 안 그래 언니?”

“못해도 2,000명은 되겠다. 저걸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먹기 좋게 밥상 제대로 차려놨는데, 뭐가 문제야?”

“밥상이 아니라 저승사자 같다.”

“숫자와 겉모습에 쫄 거 없어. 그래 봐야 대부분이 일반 몬스터야. 정예는 100마리당 한 마리 정도고, 보스도 한 마리가 전부일 거야. 그리고 오빠가 문을 지키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은 문을 넘어오려는 놈들 2~3명이 전부야. 숫자가 많다고 꼭 유리한 건 아니거든.”

“제발 네 말처럼 됐으면 좋겠다.”

“걱정하지 마셔. 그렇게 될 테니까.”

광장에서 싸우기에는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럴 땐 하연이 말처럼 좁은 문을 틀어막고 싸우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면 문을 넘어오려면 몇 놈만 상대하면 됐다.

그리고 하린이와 하연이 둘 다 궁수라서 다가오는 놈들을 화살로 재거할 수 있어 내가 받는 부담도 크게 줄어들었다.

“물러가지 않는다면 목숨을 빼앗을 수밖에. 위대한 릴리트님의 전사들이여! 침입자를 죽여라!”

와아아아아아

씨우웅 씨우웅

하린과 하연의 손을 떠난 래틀의 칼날 화살이 연속으로 날아가 캠비온을 공격했다. 그사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 문을 가로막았다.

- 파티원 하연님이 60레벨 캠비온 전사 3명을 사냥했습니다.

- 파티원 하연님이 6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6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6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하린은 충격 화살로 60레벨 캠비온 전사들을 밀어내자, 하연이 관통 화살과 폭발 화살로 놈들을 처리했다.

- 60레벨 캠비온 전사 10명이 도발 스킬에 걸렸습니다. 도발에 걸린 캠비온 전사의 방어력이 1% 하락했습니다. 화가 난 캠비온 전사들이 모모님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문을 막고 도발 스킬을 사용하자 선두에 선 캠비온 무리가 한꺼번에 도발에 걸렸다.

그러자 흥분한 놈들이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나를 죽이겠다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쾅쾅쾅

- 사이먼의 홀리메탈 원형 방패의 영향으로 캠비온의 공격력이 50% 줄어들었습니다.

캠비온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큐버스와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로 악마형 몬스터에 속했다.

이 때문에 놈들이 휘두른 칼과 방패의 공격력이 홀리매탈의 영향을 받아 50% 줄어들었다.

- 사이먼의 홀리메탈 블레이드의 영향으로 캠비온을 공격할 때 공격력이 50% 상승합니다.

대신 내가 휘두른 사이먼의 홀리메탈 블레이드는 공격력이 50% 증가해 캠비온의 방패와 갑옷을 가볍게 잘라냈다.

- 파티원 모모님이 65레벨 정예 몬스터 캠비온 기사를 사냥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6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6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연님이 6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힘 프라나를 획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고급 아이템 정예 캠비온의 강철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100% 홀리메탈이 내 공격력은 50% 올려주고, 캠비온의 공격력은 50% 내려주자 40레벨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하린과 하연이 다가오지 못하게 화살을 연속으로 날리자 문 앞까지 접근한 캠피온은 10마리 중 2~3마리에 불과했다.

그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접근해 휘두른 대검과 방패에 충격을 받아 생명력이 조금씩 소모됐다.

- 따뜻한 손길을 사용했습니다. 생명력 200을 즉시 회복했습니다.

이럴 때면 따뜻한 손길로 소모된 생명력을 바로바로 보충했다.

- 60레벨 캠비온 전사의 피를 마셨습니다. 피의 갈증이 해소됐습니다.

- 60레벨 캠비온 전사가 상태 이상 효과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무기력증으로 인해 60분 동안 모든 능력이 50% 감소합니다. 60분간 치유 스킬을 사용해도 생명력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숨이 붙어 있는 캠비온의 피를 빨았다. 아직 초급을 마스터하지 못해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상대의 공격력 10% 차용 효과는 없었지만, 흡혈 스킬 경험치를 쌓아야 초급을 마스터할 수 있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놈들의 팔을 물어 피를 빨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 60레벨 캠비온 전사의 피를 연속으로 마셨습니다. 연속 흡혈로 인해 60레벨 캠비온 전사가 죽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2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2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연님이 2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또한, 살려둘 필요도 없는 놈들이라 연속으로 피를 빨아 스킬 경험치와 일반 경험치를 동시에 쌓았다.

내가 캠비온의 피를 빨자 하린과 하연이 놈들을 죽이는 것보다 심한 상처를 입혀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는데 주력했다.

힘이 두 배나 들고 마나 소모도 훨씬 많았지만, 내가 강해져야 파티의 힘도 강해지는 것이라 힘든 내색 없이 화살을 날렸다.

2시간 넘게 전투가 이어지자 멀쩡히 서 있는 캠비온이 500마리도 안 됐다. 1,500마리 중 1,000마리는 죽고 500마리는 팔다리가 잘리고, 어깨에 허벅지에 구멍이 뚫려 일어나지 못한 채 쓰러져 버둥대고 있었다.

그러자 제단 앞에 서 있던 신장 3m의 거인이 내 키보다 더 큰 거대한 대검을 들고 다가왔다.

- 몽환의 신전 경비대장 70레벨 보스 몬스터 캠비온 군단장 타야르가 등장했습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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