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98화 (9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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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의 신전

98. 몽환의 신전

“나이가 들수록 넉살만 좋아져서 큰일이야.”

“하린아, 너 하고 한 살밖에 차이 안 나. 그리고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고. 잘못은 우리가 더 많이 하고 있어.”

“그렇긴 하지만...”

“하연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편하게 게임 즐길 수 있는데, 불편한 거 감수하며 우리 도와주고 있어. 그럼 고맙게 생각해야지 장난쳤다고 화내면 되겠어?”

“오빠 말 듣고 보니 내가 동생이라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고마운 걸 잊고 있었네. 에휴.”

“가족이라서 그래. 나도 친동생이면 너처럼 대했을 거야.”

“알았어. 다음부터 조심할게.”

하연이에게 자료를 넘기고 섬에 들어갈 방법을 하린이와 의논했다. 석조건물이 있는 섬까지는 대략 1km로 물이 차가워 수영으로 건널 수도 없어 건너려면 배가 필요했다.

내 영지에서 10대 도시 중 가장 가까운 크바시르로 가려면 북쪽의 파인 노포크 남작의 땅으로 들어가 다리를 건너가거나, 배를 이용해 곤잘레스 남작의 땅을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내 영지에는 배가 없었다. 그동안은 황제 직영지라 배가 필요하면 곤잘레스 남작의 배를 이용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 영지라 배를 빌릴 수 없어 배를 만들든가, 뗏목을 만들든가 해야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빠, 뗏목으로 되겠어? 물살이 있는데.”

“우리 영지에는 배 만들 기술자가 없어. 뗏목 아니면 안 돼.”

“어류형 몬스터는 없어?”

“토리노 강은 물이 차가워서 몬스터가 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네.”

강이나 바다에 사는 몬스터도 많아 배를 타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토리노 강은 여름에도 발을 담글 수 없을 만큼 차가워 몬스터가 살지 않았다.

“그러면 뗏목을 몇 개 띄어 본 다음에 건너는 게 좋겠어. 무작정 뗏목을 타고 건너다간 사고가 날 수도 있어.”

“그러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다. 하물며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뗏목을 만들어 타고 거센 물살을 가로질러 1km를 가야 했다.

최소 3~4개는 만들어 잘 뜨는지, 조정은 되는지, 물살 세기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두 시험해본 다음 건너는 게 맞았다.

목공 딜런을 불러 내일 뗏목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조나단 대장에게는 수영을 잘하는 경비병 열 명을 준비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에게는 뗏목 만들 도구와 일꾼을 준비하라고 하고 로그오프하고 나와 뗏목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

“오빠, 대나무 뗏목 만들면 되겠다. 가벼워서 잘 뜨고 만들기도 쉬워.”

“그게 좋겠네.”

대나무 뗏목은 만드는데 시간도 얼마 안 걸렸고, 탄성이 매우 높아 거친 물살에도 잘 견뎠다.

♩♪♩♪♬~ ♩♪♬♩♪~

“찾았어?”

“응.”

“사실이야?”

“사실이야.”

“릴리트와 세라에 대한 전설은?”

“그것도 사실이야.”

“알았어. 지금 접속할게.”

“응.”

하린이가 하연이에서 온 전화를 끊자 바로 접속해 집무실에 다시 모였다. 먼저 하연이가 조사해온 내용을 들었다.

“Voldemort7788 아이디 쓴 유저는 본명이 김이동이라는 XX고등학교 학생이에요. 작년에 푸카로 유저 30명을 괴롭혀 돈 뜯어내다가 10대 길드 중 한 곳을 잘못 건드려 열라 죽고 지금은 게임을 접었어요. 다시 하는지는 모르겠고요.”

“돈을 뜯어낼 만큼 효과가 좋았어?”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고, 환각 증상도 있어 30명 모두 많이 괴로워했대요.”

“얼마나 뜯겼는데 그래?”

“이놈이 글쎄 환청과 환각을 없애는 능력이 있다고 유저들 속이고 접근해서 30명에게 적게는 500만 원, 많게는 3,000만 원까지 뜯어냈어요. 결국, 돈과 아이템 다 뺏기고 스탯도 모두 떨어져서 접었지만요.”

“릴리트와 세라는?”

“수도 크라쿠푸스 황립 도서관에서 찾은 내용인데, 릴리트가 낳은 수많은 자식 중에 세라라는 딸이 한 명 있었어요. 수많은 자식 중 유일하게 릴리트의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난 릴리트가 섬에 가뒀다는 기록도 찾았고요.”

나이트메어 푸카가 그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면 서큐버스의 여왕 릴리트의 딸은 그보다 몇 배는 능력이 출중할 것이다. 문제는 서큐버스 세라를 부하로 삼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황립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어?”

“제가 직접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자료를 요청하면 어둠의 상인이 매수해 놓은 도서관 사서를 이용해 정보를 찾아와 알려주는 거예요.”

“도서관 사서 NPC까지 매수한 거야?”

“발이 엄청나게 넓어요. 황궁에도 끈이 닿아 있다는 소문이에요.”

“장난 아니네.”

“그러니까 월 이용료가 300만 원이죠.”

황립 도서관은 귀족만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평민과 농노, 유저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다.

나도 남작이라 신분상으론 들어갈 수 있지만, 아직 유저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곳에 있는 자료를 마음껏 가지고 나오고,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알 수 있다면 월 3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을 내라고 해도 비싼 게 아니었다.

“자료 구하느라 돈 들었겠네?”

“이번 것도 결혼 선물이에요.”

“알았어. 장부에 적어놓을게.”

“백배로 적어놓는 거 잊지 마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헤헤헤.”

내가 원하던 답을 하연이가 족집게처럼 쏙쏙 찾아왔다. 사냥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언니를 닮아 일도 똑소리 나게 잘했다.

“복종의 족쇄로 세라를 지배할 수 있을까?”

“릴리트가 인간이니까 가능하겠죠.”

복종의 족쇄는 인간과 유사인류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인간과 형태가 비슷한 휴머노이드(Humanoid) 형태의 몬스터는 복종의 족쇄를 사용해도 정신을 지배할 수 없었다.

힘과 마나를 억제하는 마법 족쇄를 목에 채우면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지만, 말도 듣지 않고 힘도 약해져 써먹을 곳이 없어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마법 족쇄는 정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서 앙심을 품고 있다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고, 날카로운 칼 따위로 끊고 도망칠 수도 있어 계속 감시해야 하는 등 아주 번거로웠다.

“인간의 피가 섞여도 악마라서 안 될 수도 있잖아?”

“안 되면 마법 족쇄로 구속해 놓고, 흡혈로 호감도를 높이면 되잖아요.”

“서큐버스는 악마인데 흡혈이 될까?”

“릴리트는 아담의 첫 번째 아내이자 인류 최초의 여자잖아요. 엄마가 사람인데 딸은 최소 반인반마는 되겠죠.”

하연이 말이 맞았다. 엄마가 인간이면 딸도 인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인 사탄도 타락천사 루시퍼로 인간은 아니지만, 천사도 엄밀히 말해 유사인류에 속해 흡혈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서큐버스 레벨이 어떻게 돼?”

“60에서 70레벨 사이요.”

“생각보다 레벨이 낮네. 왜 그런 거야?”

“서큐버스는 하급 악마에요. 꿈에 나타나 남자의 정액을 빼앗는 악마가 상급 악마일 수가 없죠.”

“릴리트는?”

“릴리트는 서큐버스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에요. 악마 서열 7위로 넘사벽이죠.”

“서큐버스와 함께 나오는 몬스터는 없어?”

“있어요. 캠비온이라고 인큐버스와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에요.”

캠비온(Cambion)은 서큐버스가 취한 남성의 정자를 인큐버스가 여성에게 수정시켜 태어난 반인반마(半人半魔)로 인간과 악마의 힘을 동시에 지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인간 남성의 정자를 인간 여성에게 수정했는데 반인반마가 태어나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정자를 흡수하고 배출할 때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마력이 스며들어 반인반마가 태어났다.

이와 비슷한 존재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인 담피르(Dhampir)가 이었다. 담피르는 뱀파이어 아빠와 인간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뱀파이어(Half-Vampire)로 햇볕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은 뱀파이어만큼 강했다.

대신 피를 마셔야 살 수 있어 생겨난 방식은 달랐지만, 나랑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레벨은 어떻게 되는데?”

“서큐버스하고 비슷해요.”

“고생했어. 좀 쉬고 아침 되면 다시 모이자.”

“그러면 어서 제 피 빠세요. 안 쓰던 머리 썼더니 피곤해요. 피 드리고 2시간만 자고 올게요.”

“그.그래. 고마워.”

하연이가 하얀 팔을 내 입에 갖다 대자 눈동자를 살짝 돌려 하린이가 어쩌고 있는지 재빨리 살펴봤다.

하린이는 내가 하연이 피를 빠는 일에 관심도 없는지 하연이가 가져온 자료를 뒤적이고 있었다.

하린이도 이미 알고 있는 일로 눈치 볼 필요가 없었지만, 하연이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오는 데다 호감도 상승이라는 요상한 효과도 있어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나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미안해!」

「뭐가 미안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빨아.」

「알았어.」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라 쓰지 않는 척한 것이었는지 귓속말로 괜찮다며 하연이 피를 빨라고 했다.

계속 머뭇거리면 정말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어 평소보다 세게 팔을 물었다.

아그작

“흐응.”

츄웁츄웁 꿀꺽꿀꺽

“아아 기분 좋아. 이 느낌 정말 좋아.”

“너 마조히즘이니?”

“언니도 느낄 텐데. 피가 빨려 나갈 때 생기는 야릇한 느낌.”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내가 넌 줄 알아.”

“레이첼과 아라치에게 물어봤는데, 걔들도 느낀다고 했어. 첫날과 이튿날은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3일째 되는 날부터 간질간질하면서 노곤해지는 야릇한 느낌을 나처럼 느꼈대. 그래서 지금은 깨물릴 때 아픔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빠가 깨물어주기만 기다린다고 했어. 그런데 언니만 느끼지 못한다. 이상하지 않아?”

“그건 쾌감이 아니라 무기력증에서 오는 허탈감이야.”

“어디서 오면 어때. 기분만 좋으면 되지. 언니도 느끼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됐거든. 나 변태 아니거든.”

“좋고 나쁨에 변태가 어디 있어. 마약만 아니면 되지.”

하린이도 하연이와 레이첼, 아라치가 느낀 야릇한 느낌을 느끼지 못해서 변태라고 한 게 아니었다.

하연이가 내 앞에서 콧소리를 내며 신음하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낸 것이었다.

‘신음소리 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중간에서 아주 미치겠네.’

“아흥. 오늘도 기분 좋게 잘 수 있겠다. 몸이 나른한 게 자기 딱 좋네. 고마워요. 오빠!”

“고.고맙긴 뭘.”

“빨리 꺼져 이 변태야.”

“나 이제 갈 테니까 언니도 많이 느껴. 호호호호.”

“느끼긴 뭘 느껴?”

“알면서. 킥킥킥킥.

“.......”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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