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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트(Lilith)
96. 릴리트(Lilith)와 세라
영지 남쪽에서 서쪽으로 올라가며 독 가시나무 씨앗을 심으며 따뜻한 손길을 퍼부었다.
한 번에 생명력을 200이나 불어넣자 10cm도 자라지 않은 독 가시나무가 단 번에 1m 길이로 자라났다.
그러나 몬스터가 넘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면 이보다 최소 4~5배는 길어야 했고, 굵기도 어른 팔뚝 정도는 돼야 해 최소 10번은 따뜻한 손길을 퍼부어야 했다.
하지만 한 그루만 키워선 몬스터를 막을 수 없었다. 수십 그루의 독 가시나무가 실타래처럼 엉켜야 몬스터를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기초만 잡아준다는 생각으로 따뜻한 손길을 한 번씩만 걸어주며 내 영지의 서쪽 끝인 토리노 강까지 이동했다.
“저건 뭐지? 던전인가?”
영지의 서쪽 끝인 토리노 강에 도착해 말에게 물을 먹인 후 차가운 물로 땀을 씻어냈다.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숲이 우거진 강 건너편을 보는데, 강 중앙에 있는 작은 섬에 석조건물 비슷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위를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말에 올라 강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유심히 관찰하자 석조건물이 확실했다.
비바람에 깎이고 부서져 바위처럼 보였지만, 사람 손이 닿은 건물로 고대 신전처럼 보였다.
“건너가 볼까?”
던전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을 몰아 강을 건너려 했다.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말이 버티지 못하고 몸서리를 쳐대 50m도 가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강폭이 2km가 넘었고, 섬은 강 중간에 있어 1km나 헤엄쳐야 해 체력이 뛰어난 전투마도 사람을 태우고 건너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겉보기와 달리 물살도 매우 빨라 앞으로 가지 못하고 하류로 떠내려가 말을 타고 건너는 건 불가능했다.
먼저 내 땅인지 그것부터 확인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급히 영주성으로 돌아와 다니엘 집사를 불렀다.
“다니엘, 여기 이 섬은 우리 영지에 속하는 땅이야? 아니면 강 건너 마크 곤잘레스 남작의 땅이야?”
“누구의 영지도 아닙니다.”
“왜?”
“누구도 가지려 하지 않아 그렇게 됐습니다.”
“무슨 이유로?”
“전설 때문입니다. 서큐버스 여왕 릴리트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딸 세라를 가둬두며 섬에 접근하는 남자는 서큐버스를 이용해 정액을 모두 빼앗아 죽이고, 여자는 인큐버스를 이용해 캠비온을 낳게 하겠다고 저주를 내렸다는 전설 때문에 누구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설이 얼마나 됐는데?”
“10,000년도 넘은 전설입니다.”
“섬에 가본 사람은 있었어?”
“이곳 영지에 처음 부임한 대리 영주께서 전설을 확인하러 섬을 들어가셨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어른들 말씀이 있었습니다.”
“영주가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없습니다.”
“영주만 죽은 거야?”
“대리 영주님과 함께 섬에 들어간 병사 30명 모두 깡마른 미라가 되어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두 죽었는데 시신은 누가 찾아왔어?”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구전이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수고했어. 나가서 일봐.”
“영주님께 충성을!”
다니엘이 말한 릴리트와 세라의 얘기는 전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첫 번째 부임한 대리 영주가 섬에 들어갔다가 죽었다는 말도 구전이라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에 석조건물이 있다는 건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던전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조그마한 영지에 던전이 4개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었다.
그리고 다니엘이 말한 구전처럼 서큐버스 여왕 릴리트의 딸 세라가 있는 게 맞다면 대박도 이런 초대박이 없었다.
하린이가 남들이 보지 않는 글까지 싹싹 훑어보라고 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히어로 에브리에 접속해 조회 수가 100회 이하인 글만 골라서 읽었다.
욕이나 엉뚱한 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아주 기발한 생각을 적은 글도 있었고, 자신이 찾은 던전, 설화, 전설에 대해 적어놓은 글도 있었다.
그중에서 조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골라 노트에 적어놓고 관련된 글이 있는지 찾았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100건이 넘었고, 조만간 하연이를 통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아볼 계획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를 끈 게 던전에서 갇혀있던 몬스터를 구해주고 부하로 삼았다는 내용이었다.
Voldemort7788이란 아이디로 글을 올린 유저는 북쪽의 10대 도시 중 하나인 홀가부르드에서 남쪽 200km 떨어진 절벽에서 사냥 중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철창에 갇혀있던 푸카를 구해 부하로 삼았다고 했다.
푸카(Pooka)는 아일랜드 전설에 등장하는 요정의 일종으로 영국에서는 팩(Pack)이라고 부르는 나이트메어였다.
나이트메어가 자고 있는 인간의 꿈속에 나타나 괴롭히는 것과 달리 푸카는 밤에 깨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장난을 치는 요정이었다.
주로 인간을 꿰어 멀리 버리고 오거나, 밤새 이상한 소리를 내어 공포에 떨게 만드는 등 아주 골치 아픈 요정이었다.
Voldemort7788는 푸카를 얻은 후 이를 이용해 유저들을 골탕 먹이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했다.
“서큐버스라... 거기다 딸을 가둬뒀다... 으음... 정말 그렇다면 놈을 괴롭히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는데.”
서큐버스(Succubus)는 중세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악마 인큐버스의 여성형으로 아름다운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이용해 남성의 정기를 갈취하는 악마였다.
그리고 릴리트(Lilith)는 아담의 첫 번째 아내이자 인류 최초의 여자로 음탕하고 사악하다는 이유로 낙원에서 추방당해 사탄의 아내가 되어 수많은 데몬을 낳은 최초의 서큐버스이자 여왕이었다.
“혼자서 뭘 그렇게 중얼거려?”
“언제 왔어?”
“지금 막.”
“전화하지 그랬어. 그러면 데리러 갔을 텐데.”
“밤도 아니고 10분이면 오는데 귀찮게 왜 불러내.”
집무실에 홀로 앉아 석조건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하린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Voldemort7788처럼 서큐버스를 부하로 삼을 수 있다면 이은택과 정이슬를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하린이가 온 것도 몰랐다.
“일은 잘하고 왔어?”
“일 시키려고 부른 게 아니라 옷 사주려고 부른 거였어.”
“음식 만든다고 시장에 고기하고 채소 사러 간 거 아니었어?”
“내가 옷을 안 사니까 엄마가 음식 만들어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불러내서 끌고 간 거야.”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털털한 성격의 하린이도 멋을 부리는 타입은 아니라서 옷이 많지 않았다.
하린이가 입은 옷의 절반 이상은 언니 하은과 동생 하연이 옷으로 세 자매가 체형이 판박이처럼 같아 옷을 공유해 입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싸웠고, 매일 옷 때문에 싸우는 딸들의 모습에 지친 어머니가 일 시킨다고 불러 옷을 사준 것이었다.
“많이 샀어?”
“바지 3개, 치마 1개, 윗도리 5개, 점퍼 1개, 코트 한 벌 샀어. 이제 내년까지 옷 살일 없어.”
“바지하고 윗도리 맞춰 있으면 3~4벌밖에 안 나오잖아. 좀 더 사지 그랬어?”
“잘만 코디하면 10벌도 나와.”
“그래도 부족할 것 같은데?”
“매일 같은 옷만 입어서 창피해?”
“아니. 넌 뭘 입어도 예뻐. 한창 멋 부릴 나이인데 그러지 않아서 걱정돼서 그래. 나이 먹고 후회할까 봐.”
“그럴 일 없어. 그리고 매일 캡슐 속에 있는데 옷 사도 입을 일이 없잖아. 사봐야 낭비야.”
20살이면 한창 멋 부릴 나이로 패션에 관심이 없는 여성도 일주일에 한두 벌의 옷을 샀다.
몇 번 입지도 않고 옷장 속에 처박혀 있다가 빛도 보지 못한 채 버려지는 옷이 대부분으로 잘못된 소비 형태였지만, 그 나이 때는 쇼핑에 목매고 사는 나이라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젊은 여성은 버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지출로 카드빚에 쫓겨 술집을 나갔고, 일부는 The Age of Hero에서 몸을 팔기도 했다.
The Age of Hero 안에 매춘은 불법이었지만, 진짜 성관계를 갖는 게 아니라서 처벌할 규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이 유저들을 상대로 몸을 팔고 돈을 벌었다. 초창기에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여성이 주류였다. 그러다 차츰 연령이 낮아져 작년 초부터 중고등학생들이 크게 늘어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하린이의 말에 따르면 한 학급에 3~4명은 그렇게 돈을 벌었고, The Age of Hero에서 관계를 맺은 남성과 직접 만나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The Age of Hero에서 매춘은 정신을 통한 것이지 육체관계는 아니라서 가격이 실제 매춘의 절반밖에 안 해 은화 10개 이상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현실에서 만나 성관계를 맺는 등 성범죄가 날로 심해졌다.
“그러면 게임 속에서 입을 옷을 사면 되잖아?”
“3년 내내 방어구만 입고 다녀서 그런지 평상복은 귀찮아. 그리고 영지에서 입을 옷은 레이첼이 10벌도 넘게 준비해줬어. 대부분이 잠옷이지만, 3층은 여자들밖에 없어 불편하지도 않고.”
“안 되겠다. 내가 가서 사와야지. 아주 야한 것들로.”
“야한 거 벌써 사 왔어. T팬티, 망사팬티, 섹시 슬립까지 열 가지도 넘게.”
“어머니랑 같이 갔다고 하지 않았어?”
“엄마 먼저 보내고 혼자 가서 사 왔지. 히히히. 나 잘했지?”
“응. 아주 잘했어.”
“T팬티 입고 왔는데, 보여줄까?”
“어!!!”
하린이가 T팬티를 보여준다고 하자 석조건물이 속에 릴리트의 딸 세라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부하로 삼을 것인지, 이은택과 정이슬을 어떤 식으로 괴롭힐 것인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이 저 멀리 토리노 강 너머로 사라졌다.
자기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남자는 많지 않았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의 음탕한 시선을 받는 걸 좋아할 남자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러나 내 여자가 나만을 위해 섹시한 속옷을 입는다면 싫어할 남자는 세상에 없었다.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일명 똥꼬 팬티를 입고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면 안 넘어갈 남자가 없었다.
물론 몸매가 되는 여자가 입는다는 전제가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흥분은 고사하고 분노의 주먹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어때?”
“죽인다.”
“크크크크. 좋아할 줄 알았어. 내일은 망사, 모래는 갈라 팬티 입고 올게.”
“망사는 알겠는데, 갈라 팬티는 뭐야?”
“밑이 트인 팬티야. 다리 벌리면 거기가 보여.”
“헉!”
만화였다면 쌍코피가 쫙 터지는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다. 밑이 갈라진 야릇한 팬티를 입고 나온 섹시한 서양 포르노 배우를 보고 내 여자 친구도 저 정도 몸매에 저런 속옷을 입어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러나 대다수 여자는 엉덩이에 끼는 T팬티를 좋아하지 않았고, 밑이 갈라진 팬티는 더더욱 입지 않았다.
T팬티를 싫어하는 건 얇은 끈이 항문을 간지럽혀 신경을 자극했고, 착용감도 일반 팬티보다 못했다.
그래서 팬티선이 드러나면 안 되는 모델이나 연예인 그리고 몸매를 드러내고 싶은 일부 여성만 입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