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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이 된 처제
88. 첩이 된 처제
“처제가 비밀 지켜주면 이유를 말해줄 수도 있어.”
“제가 입 하나는 열라 무겁거든요. 걱정하지 말고 말하세요. 언니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대체 무슨 버그에요?”
“버그 아니야.”
“버그가 아닌데 돈 한 푼 안 들이고 55레벨 보스 몬스터를 잡아요? 말도 안 돼요.”
The Age of Hero라고 버그가 없지는 않았다. 인간이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 것처럼 가장 완벽한 슈퍼에고 컴퓨터 환인도 사소한 실수는 저질렀다.
몬스터가 제자리를 빙빙 돌거나, 길이 있는데 갈 수가 없거나, 나무가 불에 타지 않는 등 소소한 버그가 있었다.
게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유저가 발견하면 즉시 해결해 버그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갔다.
그러나 몇몇 유저가 버그를 이용해 몬스터를 학살하고 돈을 번 일도 있었다. ㈜판타스틱과 환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지만, 공공연한 비밀로 알만한 유저는 다 알아 하연은 내가 버그를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3주년 이벤트 당첨됐어. 성주 이벤트.”
“허거걱!”
평생 처음 와본 고급 레스토랑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래도 음식 맛은 기가 막히게 좋아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자 살살 녹았다.
하지만 그것도 반쯤 먹자 금세 질려 하린이와 첫 데이트를 즐겼던 허름한 고깃집 연탄불 삼겹살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마블링이 잔뜩 낀 스테이크는 고소한 맛에 매료되지만, 나처럼 토종 입맛은 두세 점만 먹어도 느끼해 속이 니글거렸다.
풀만 먹여 키운 건강한 소는 질기고 피 맛이 강해 사람들이 싫어했지만, 숙성만 잘 시키면 쇠고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일본 X규보다 훨씬 맛있었다. 물론 TV에서 들은 얘기로 먹어본 적이 없어 장담할 순 없었다.
후식이 나오자 하린과 오면서 상의했던 얘기를 동생 하연에게 꺼냈다. 몬스터 레벨이 올라갈수록 둘이서 사냥하는 게 버거웠다.
많은 기연으로 한 달도 안 돼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60레벨 이상 보스 몬스터는 아직 둘이서 감당하기에 너무 강했다.
아라치와 아서, 아더 형제가 발전하면 어려움을 덜 수 있지만, 현실 시간으로 최소 1년은 기다려야 실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NPC도 장비를 착용할 수 있어 장비빨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유저와 달리 죽으면 다시는 살릴 수 없어 최소한의 실력을 배양한 다음 장비로 능력을 올려야지 무턱대고 장비에만 의존하면 아까운 인재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하린이 동생 하연이를 영지에 영입하는 것이었다. 하연이의 실력은 하린이보다 더욱 뛰어나 상위 0.01% 안에 드는 강자였다.
파티에 합류하면 지금보다 사냥 속도가 2배는 오르고, 70레벨 네클로맨서 탈라한 던전도 공략할 수 있었다.
또한, 영지에 있는 검은 오크 무리를 소탕하고 국경 너머에 있는 북풍의 신 보레아스의 활을 찾으러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가족이라 비밀이 새나갈 일도 없었다.
“히어로 에브리에 올라온 사진이 언니와 형부 사진이었어?”
“응.”
“헐!”
“알려지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말하지 못했어. 미안해!”
“동생한테도 비밀이야?”
“너에게 처음으로 얘기한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 언니도 몰라. 그리고 내가 영주가 아니라 오빠가 영주야.”
“그럼 언니는 뭐야?”
“남작 부인.”
“게임에선 벌써 결혼한 거야?”
“응.”
“빠르네. 어쨌든 내가 첫 번째니까 용서해줄게. 그래도 다음부터 그러지 마. 하나밖에 없는 동생 서운해서 눈물 날 수도 있어.”
“알았어.”
“형부도 그러면 안 돼요.”
“안 그럴게.”
히어로 에브리에 올라왔던 우리에 관한 얘기는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일부러 검색하지 않으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베스트 글 순위에서도 한참 아래로 밀려났다.
그리고 학과 아이들의 의심스러운 눈도 성우 덕분에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성주라는 소문이 돌자 성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조목조목 반박했고, 우리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덕분에 의심은 설마로, 설마는 무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정이슬은 성우에게 열 번도 넘게 나에 관해 확인했고, 우리가 어디서 사냥하는지, 어떤 몬스터를 잡는지 알아오게 하는 등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남작 부인도 칭호다. 이거 덕분에 네 가지 스탯 모두 2씩 올랐어.”
“우와!”
“그뿐만이 아니야. 영지가 발전하고 농노들이 충성심이 오를 때마다 업적 포인트와 함께 평판 포인트도 먹었어.”
“얼마나?”
“지금까지 29만9,050포인트 모았어.”
“헉! 엄청나네. 그런데 그게 전부 남작 부인이란 호칭 때문에 얻은 거야?”
“전부는 아니지만, 태반이 그래.”
“죽어라 사냥해서 6만7,560포인트 쌓았다고 열라 좋아했는데... 에이씨 짜증 나. 대체 뭐한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는 60만 넘어.”
“허거걱!”
“그리고 남작과 남작 부인은 황제가 운영하는 상점과 관공서 등에서 20%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어. 평판 관리소와 직업 훈련소도 그렇고.”
“그럼 강화석도 4만 포인트면 사겠네?”
“그렇지.”
“완전히 사기네. 대체 3년 동안 내가 뭐한 거야?”
“너도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정말?”
“응.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나도 언니처럼 형부 부인이 되어야 하는 거야?”
“비슷해.”
“설마... 첩? 아니지?”
“맞아.”
”컥!“
귀족은 가신 이외에도 부인과 첩, 자식에게도 보너스 스탯이 들어갔다. 부인은 모두 한 명으로 남편보다 스탯이 1 적었고, 자식은 후계자만 스탯 보너스를 받았다.
남작 후계자는 +2, 자작은 +3, 백작은 +4, 후작은 +5, 공작은 +6의 전체 스탯이 올랐다.
그리고 첩은 작위에 상관없이 스탯이 +1식 오르고 남작은 최대 2명, 자작은 3명, 백작은 5명, 후작은 7명, 공작은 10명까지 아틸라 제국에서 지위를 인정했다.
“스탯은 +1밖에 안 되지만, 나처럼 영주 서리로 임명하면 업적과 평판 포인트를 받을 수 있어. 그리고 뒤치기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사냥할 수 있고. 괜찮지?”
“좋긴 한데 첩이라는 말이 신경 쓰이네.”
“진짜도 아닌데 뭘 신경 써?”
“친구나 모르는 사이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얼마 안 있으면 형부 되는데, 첩은 이상하잖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면 되지.”
“그렇긴 하지만...”
“고민할 거 없어. 언니가 있는데 뭘 고민해.”
“알았어.”
- 모모 레오 남작님이 하연님께 결혼을 신청했습니다. 동의하면 ‘예’,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주세요.
“예!”
- 모모 레오 남작님과 하연님은 부부가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 모모 레오 남작님과 결혼한 하연님은 남작의 첩이 됐습니다.
- 하연님이 칭호 남작의 첩을 획득했습니다. 칭호 효과로 근력, 순발력, 체력, 지력 스탯이 각각 1씩 올랐습니다. 축하합니다.
- 하연님은 지금부터 레오 영지의 포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레오 영지의 포털을 출발점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동의하면 ‘예’,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주세요.
“예.”
- 지금부터 하연님의 출발점은 레오 영지입니다. 즐거운 여행 하십시오.
- 모모님이 하연님께 친구 신청을 했습니다. 동의하면 ‘예’,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주세요.
“예!”
- 모모님과 하연님은 친구가 됐습니다. 귓속말을 원하시면 ‘하연 귓속말’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 됩니다. 귓속말은 같은 국가 안에서는 거리에 상관없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형부, 기사 아니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작이나 되는데 기사일 리가 없잖아요. 언니처럼 형부도 히든클래스죠?”
“속일 생각은 없었어. 영주라는 신분 얘기한 다음에 말하려고 했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그 정도도 이해 못할 만큼 속 좁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
“히든클래스 뭐예요?”
“군주.”
“역시 귀족은 히든클래스부터 다르네요. 저는 제 별명과 같은 귀궁인데.”
“나는 귀궁이 더 멋진 것 같은데?”
“형부 아부 솜씨는 형편없네요.”
“진심이야.”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립서비스라는 게 그대로 느껴져요. 좀 더 분발하셔야겠네요. 호호호호.”
처갓집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일차적으로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해야 하지만, 처남 처제도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처남 처제와 사이가 나쁘면 장인·장모와도 사이가 틀어지고 마누라와도 문제가 생긴다.
아군이 많을수록 전투가 유리한 것처럼 내 말에 무조건 쌍수를 들어 호응해줄 처남·처제가 많다면 처갓집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군주는 고유 스탯이 뭐예요? 저는 언니와 같은 바람이에요.”
“카리스마.”
“이름 멋지네요. 이래서 다들 귀족 귀족 하나 보네요. 바람이 뭐야? 바람피우는 유부녀도 아니고. 에휴.”
“이름이 뭐가 중요해.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지.”
“사람들이 형부처럼 생각하면 백화점은 오래전에 망했어요. 만 원짜리 가방이나 500만 원짜리 가방이나 실용성은 거의 차이가 없거든요.”
인간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돈을 쓰는 지구에서 유일한 동물로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몇천만 원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자동차와 음료수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겠다며 수억 원의 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리고 일반 제품과 용도 차이가 전혀 없는 제품을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수백, 수천만 원씩 주고 샀다.
100%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과시욕으로 돈 지랄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처럼 실용성만 강조하는 사람에겐 이런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만 지구에 득실댄다면 전 세계 상점의 99.99%는 문을 닫아야 했다.
또한, 극장과 공연장, 스포츠, 예술 등 인류가 문화라고 떠들어대는 것들도 대부분 사라져야 해 인류의 문명이 퇴보, 아니 멸망할 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이 지금과 같은 문명을... 동물이 보기에는 문명이 아니라 지랄이겠지만... 이룩할 수 있었던 힘 중에는 허영심과 과시욕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