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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87화 (8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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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뱀파이어

87.

“많이 아파?”

“죽을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한지 알면 적당히 빨아. 온몸에 피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단 말이야.”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돼. 참아야 한다고, 그만해야 한다고 머리가 말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어.”

하루에 피를 두 번 빨면 죽게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흡혈 스킬은 일정량 이상의 피를 빨아야 멈추는 스킬이라 내 의지로 그만둘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 피를 빨리면 과다출혈로 죽게 된다.

그나마 현실이 아닌 게임이라 다음 날 피를 또 빨려도 죽지 않았지, 현실이라면 이틀 연속 헌혈만 해도 몸이 약한 사람은 응급실에 가게 될 수도 있었다.

“오빠, 나 힘이 하나도 없어. 서 있을 수가 없어. 업어줘.”

“알았어.”

피를 과도하게 빨리며 무기력증에 빠진 하린이는 서 있을 힘도 없었다. 하린이를 업고 영주성으로 돌아오는 내내 뱀파이어 백작 베르니스타의 심장을 삼킨 게 잘한 짓인지, 잘못한 짓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상태창을 열어 대폭 늘어난 생명력과 마나, 공력력, 방어력, 스탯을 확인하자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이름 : 모모

종족 : 인간

직업 : 군주(히든클래스)

칭호 : 아틸라 제국 남작(스탯+4), 가짜 성자(스탯+1, 생명력과 마나+1,000)

반쪽짜리 뱀파이어(스탯+5, 생명력과 마나+2,000)

평판 포인트 : 635,725

일반 포인트 : 689

스태미나 : 216/241

생명력 : 11,999/12,345

마나 : 6,830/7,973

근거리 공격력 : 634(화염 데미지 50 포함)

원거리 공격력 : 594(화염 데미지 50 포함)

마  법 공격력 : 510(화염 데미지 50 포함)

방어력 : 571

화염 저항력 : 100

근력11.3(+10)  순발력11(+7)  체력11.1(+3)  지력11

상태창을 확인하자 잘한 결정이란 확신이 섰다. 진짜 뱀파이어로 바뀐 것도 아니었고, 햇빛에 노출된다고 힘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피의 갈증으로 인해 하루에 3번 이상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 했지만, 잃는 것보다 얻은 것이 열 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등에 업혀 잠이 든 하린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잠시 후 보게 될 레이첼과 아라치를 생각하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레이첼, 도와줄 수 있어?”

“그럼요. 저는 영주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피 드리는 건데 일도 아니에요.”

“고마워. 그런데 피 빨리고 나면 많이 피곤할 거야. 아프기도 하고.”

“겨우 1시간인데 뭘 걱정하세요. 그리고 물릴 때 아픈 거 고통도 아니에요. 저 영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어요. 할 수만 있다면 제가 하루 세 번 다 하고 싶어요.”

“그건 안 돼. 두 번 빨리면 죽어.”

“만약 두 번 빨아야 할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빠세요. 영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행복은 없어요.”

“하아.”

레이첼을 집무실로 불러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했다. 신분은 여전히 농노지만, 레이첼은 영주성에서 하린이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속이거나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고,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킬 것도 약속했다.

아란테스 대륙에서 뱀파이어가 사라진 지 5,000년이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NPC가 뱀파이어를 무서워했다.

이 때문에 내가 피를 마시는 게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틸라 제국의 공적이 되진 않았다.

수도와 10대 도시에 있는 마법사의 탑에는 암흑 마법과 네크로맨서 마법을 연구하는 NPC가 수천 명이 넘었지만, 흑마법을 연구한다고 누구도 이들을 박해하지 않았다.

또한, 유저는 The Age of Hero의 유일신 환인의 비호를 받는 존재로 직업과 종족에 관련된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아 내가 뱀파이어 백작 베르니스타의 심장을 삼키고 반쪽짜리 뱀파이어가 된 것이 알려져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런데도 비밀로 한 건 농노들이 두려워할 수도 있어서였다. 미신을 환인 이상으로 믿는 농노들이 내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크게 동요할 게 확실했다.

뱀파이어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 중 하나가 피를 빨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것과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이었다.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피를 몽땅 빨아먹지 않는 한 죽을 일이 없었고... 기다란 송곳니를 신경이 집중된 목에 깊숙이 박으면 죽을 수도 있음... 뱀파이어가 자신의 피를 먹이지 않으면 뱀파이어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심장만 바뀐 것으로 NPC를 뱀파이어로 만들 능력도 없었다.

이렇게 잘못 알려진 진실 때문에 죽음을 피해 옆 농지나 국경수비대로 도망치는 농노도 있을 것이고, 문을 걸어 잠그고 밖을 나오지 않으려는 농노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영지가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선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야 했다.

“좋아요. 저도 하겠어요.”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응한 거야?”

“공짜 밥 먹기 싫어서요.”

“밥값치고 꽤 비쌀 텐데?”

“그럼 재워주고, 입혀주고, 훈련시켜주는 것까지 포함하면 되겠네요.”

“그 정도면 대충 맞겠네. 알았어.”

공짜 밥 먹기 싫어서 내게 피를 준다는 아라치의 말은 거짓이었다. 하린이의 말을 빌리면 호기심, 관심 때문에 허락한 것이었다.

여자 마음을 읽을 만큼 섬세하진 않았지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우둔하지도 않았다.

게임 시간으로 집에 온 지 열흘이 된 아라치는 표정도 많이 밝아지고 밥도 잘 먹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하린이와 레이첼, 아이린, 아만다가 돌아가며 말을 걸고 영주성을 구경시켜주는 등 아라치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언니들의 노력을 느낀 아라치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며 이곳 생활에 적응해갔다.

재미있는 건 내게 말 거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참새처럼 밥 먹는 내내 짹짹거리지는 않았지만, 한마디씩 툭툭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유도했다.

하린이는 이것을 나에 관한 관심이라고 말했고,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왜 관심을 보이는지 그건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음에는 관심으로. 그러다가 오빠, 여보가 되는 거야.”

“그럼 누군가에게 호기심이 생기면 다 결혼하는 거야?”

“미쳤어? 호기심 생겼다고 결혼하게.”

“네가 지금 호기심이 결혼으로 이어진다고 했잖아.”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야. ‘아’ 하면 ‘어’ 하고 알아들어. 오빠는 그게 문제야. 고지식한 거.”

하린이의 말처럼 호기심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호기심이 호기심으로 끝났다.

특히 10대 소녀의 호기심은 수시로 바뀌는 날씨처럼 변덕스러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옮겨갔다.

팬클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빠 없인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던 여중생이 한 달도 안 돼 다른 팬클럽에 가입해 다른 오빠를 연호하는 건 너무도 흔한 일이었다.

아라치의 호기심도 그런 것이었다. 순식간에 퍼붓고 사라지는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것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반가워요 형부.”

“.......”

“언니 말대로 정말 순진하네요. 형부라는 말에 얼음이 돼 말도 못하고. 큭큭큭큭.”

“너 오빠 놀리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조만간 형부 될 텐데 형부라고 부른 게 놀린 거야?”

“미.미안해요. 내가 숫기가 없어요. 전형필이에요.”

“처제 될 사람에게 존댓말은 아니죠. 편하게 하연아라고 불러주세요.”

“아.알았어.”

“언니, 형부 말 더듬어?”

“숫기가 없어서 그래. 30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30분이나?”

“어쩌면 헤어질 때까지 그럴지도 모르지.”

“쯔쯔쯔쯔. 우리 언니 엄청나게 드센데, 형부 고생 좀 하겠네요. 그런데 어쩌다가 왈가닥에 성질 더러운 우리 언니를 만났어요? 20살 먹는 동안 남자 친구도 못 사귄 개차반 같은 성격인데.”

“네 성격은 어떻고? 허구한 날 싸움질에 사고 쳐서 물어준 돈만 집 한 채 값이 넘어. 그리고 나만 남자 없었어? 너도 없잖아. 누가 누굴 욕해? 그리고 나 이제 솔로 아니야. 보면 몰라? 너나 걱정해. 이 언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알았지?”

“형부가 언니 성격을 잘 몰라서 옆에 있는 거겠지. 알면 당장 도망갈걸?”

“내 성격 나쁜 거 다 알아. 알고도 나랑 평생 같이하기로 했어. 왜냐고? 날 죽도록 사랑하니까. 너는 이런 남자 평생 못 만날 거야.”

“웃기지 마. 나는 더 좋은 남자 만날 거야.”

“성격 좋고 인물까지 좋은 남자가 어디 흔한지 알아? 너 절대 못 만나. 너는 나보다 성격이 더 지랄 같으니까.”

“그게 동생한테 할 말이야? 내가 주워온 동생이니?”

“누가 먼저 했는데 그래?”

하린이와 하연이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인지 만나자마자 으르렁대며 싸웠다. 약속장소인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전 얼굴만 봐도 티격태격 싸운다고 하린이가 말해줘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하린아, 그만해.”

“하연이가 먼저 한 거야. 내가 잘못한 거 아니야. 오빠도 봤잖아?”

“그래도 네가 언니잖아. 조금만 참아.”

“우이씌. 너 운 좋은 줄 알아. 오빠 없었으면 죽었어.”

“헉! 엄마·아빠 말도 안 듣고, 오빠·언니 얘기도 안 듣는 우리 지랄 같은 언니가 다른 사람 말을 듣다니 놀랄 노자네. 역시 사랑은 위대해. 우리 언니 같은 사람을 순한 양으로 만들고.”

“그만해라. 정말 화낸다.”

“형부! 존경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하린이가 얘기한 것처럼 하연이는 까칠한 성격은 아니었다.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붙임성도 있고 표정도 밝아 성격과 미모, 몸매 모두 만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살짝 깐족거리는 느낌이 있어 하린이처럼 욱하는 성격은 받아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 아니었다. 한 살 터울 자매간에 으레 있을 법한 수준의 말싸움으로 귀엽게만 보였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은 없었다.

“형부, 언니랑 둘이서만 사냥하시는 거예요?”

“응.”

“형부는 직업이 뭔데요?”

“기사.”

“기사면 언니랑 상성은 잘 맞겠네요. 성격은 저래도 실력도 좋고 센스도 짱이에요. 형부가 디펜스만 좀 쳐주면 언니가 실력발휘 제대로 할 거예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도움만 받고 있어.”

“몇 달 지나면 괜찮아져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어요. 저와 언니도 처음에는 엉망이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상대에 대한 배려심은... 그것이 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기본으로 장착된 집안 능력인지 말할 때 내가 위축되거나 기죽지 않게 세심하게 신경 썼다.

“언니 말로는 처제 혼자 한다고 하던데? 혼자 하면 힘들지 않아?”

“좀 힘들긴 하죠. 그래도 아이템 때문에 사람들하고 부딪칠 일 없고, 포인트도 쏠쏠하고 괜찮아요.”

“처제, 우리랑 같이해볼 생각 없어?”

“조금 전에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저는 60레벨 이상 몬스터만 사냥해요. 버티지 못하실 텐데?”

“55레벨 보스까지 잡아봤어.”

“정말요?”

“응.”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55레벨 보스를 잡아요? 혹시 현질 하셨어요? 아니지. 언니가 부자 아니라고 했으니 그럴 일은 없을 테고... 언니가 잡은 거 아니에요?”

“내가 잡은 거 아니야. 오빠가 잡았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모르는 버그가 있었나?”

버그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돈으로 처바르지 않는 한 한 달도 안 된 유저가 55레벨 보스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전투 감각이 아무리 뛰어나도 40레벨 보스 몬스터부터는 감각만으로는 잡을 수 없었다.

아이템과 능력치, 생명력, 마나가 뒷받침되어야 데미지가 먹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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