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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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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고?”
“하린이도 조만간 길드 들어올 거예요. 그러면 형필이 형도 길드에 들어올 거고요. 한식구될 텐데 얼굴 붉힐 이유 없잖아요.”
“이슬이 가장 친한 친구가 하린이라고? 너 약 먹었냐?”
“제가 이슬이에게 직접 들은 얘기에요. 사진도 봤고요.”
“네가 뭔데 이슬이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
“저 이슬이 남자 친구예요. 모르셨어요?”
“네가 이슬이 남자 친구라고? 이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진짜에요. 우리 학과 아이들에게 물어보세요. 다 알고 있어요.”
“야이 미친 새끼야! 이슬이 남자 친구는 은택이야. 마림 길드 길마 이은택이라고. 그리고 오늘 이 새끼 손봐달라고 말한 사람이 누군 줄 알아?”
“설마 은택 선배인가요?”
“병신새끼. 네가 하린이와 가장 친하다고 말한 이슬이야. 이슬이가 이 새끼 손봐달라고 했어.”
“네에?”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너 이슬이 남자 친구라고 떠벌리고 다니다간 은택이에게 죽는 수가 있어. 그럼 학교도 못 다녀.”
“그럴 리 없어요. 이슬이 남자친구 저예요. 제가 이슬이 남자친구예요. 제가 정말 남자친구라고요.”
“은택이하고 이슬이 사귀는 거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절대 그렇지 않아~. 이슬이 남자 친구는 나야. 나라고~~~”
정이슬과 이은택이 사귀는 걸 우리 반 아이들도 모두 알았다. 그런데도 성우만 모르는 건 정이슬이 아니라고 얘기해 철석같이 믿어서였다.
그리고 성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남자애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우도 알면서 애써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을 것이다.
성우를 빼고도 정이슬을 자기 여자 친구라고 생각하는 남학생이 10명도 넘었다. 그들도 정이슬의 감언과 자기 최면에 빠져 성우처럼 정이슬을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다.
팜므 파탈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었다. 알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되는 것, 정이슬은 한 번 빠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이었다.
“또라이 새끼. 완전히 맛이 갔네.”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이 새끼 때문에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한 번만 더 주둥이 나불대면 그땐 학교고 뭐고 없어. 알았어?”
“.......”
“그냥 가려고?”
“애들 유리창에 붙어 쳐다보는 거 안 보여?”
“무슨 상관이야. 그냥 끌고 가서 죽이면 되지.”
“신고 들어갔을 거야. 교무과 직원과 청원 경찰이 오기 전에 빨리 떠나야 해. 이번에도 걸리면 정말 학교 잘릴 수도 있어.”
“이런 젠장! 양아치 새끼. 이게 끝이 아니야. 시작이야. 나는 한 번 찍은 새끼는 절대 봐주지 않아. 게임 접을 때까지 죽여. 넌 나에게 찍혔어. 개새끼야!”
“빨리 가.”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가 네 제삿날이야. 알았어?”
“.......”
김연우와 패거리는 성우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꽥꽥 지르자 다음을 기약하며 잽싸게 사라졌다.
성우만 있었다면 나를 힘으로 끌고 갔겠지만, 유리창에 300명도 넘는 학생들이 달라붙어 무슨 일인지 관찰하며 쑥덕대고 있어 하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김연우와 패거리는 교내 폭력 사태를 일으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은택이 막아준다고 해도 연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신문사에 제보가 들어갈 수 있어 막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재미있는 건 The Age of Hero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자 게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 때문에 신문사마다 전담 기자를 수십 명씩 파견해 The Age of Hero 안에서 일어난 일을 실시간으로 기사화했다.
정치인과 기업 등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국민의 관심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호의적인 관심을 받는 일보다 잘못으로 인해 받는 나쁜 관심이 백배는 많아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마림 재단 둘째 아들 이은택도 과거 경력이 있어 언론의 관심을 가장 싫어했고, 김연우도 이런 사실을 알아 경고만 날린 채 쌩하니 사라졌다.
김연우와 돼지가 악담을 퍼부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걸 알면서 싸우겠다고 상대를 자극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참는 건 비겁한 게 아니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부닥쳤다면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겠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했다. 싸움은 이기려하는 것이지 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우 왜 이래?”
“김연우가 정이슬 남자 친구가 이은택이라고 말했어.”
“그게 전부야? 다른 얘기는 없었어?”
“경고하러 왔어.”
“무슨 경고?”
“한 번만 더 떠들면 죽인다는 경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라는 얘기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도 성우가 정신을 차리면 미주알고주알 다 지껄일 게 확실해 담백하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이은택이 시킨 거야?”
“김연우 말로는 정이슬이 시켰다고 했어. 하지만 이은택이 시켰는데, 정이슬을 팔았을 수도 있어 누가 시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이슬이가 맞을 거야. 자기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고, 나만 바라보는 오빠를 마음에 안 들어 했어. 미안해. 나 때문에 이번 일이 생겼어. 내가 참지 못하고 떠드는 바람에... 그리고 내가 이슬이와 친하지만 않았어도 오빠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아. 마음에 담아두지 마.”
“끌려갈 뻔했잖아?”
“안 갔잖아. 그러면 된 거야. 그리고 지금은 내가 문제가 아니야. 성우가 문제야. 충격이 엄청나게 클 텐데,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야.”
“내일 되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날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멀쩡할 수 있어? 혹시... 오늘 있었던 일 모두 잊어버리는 거야?”
“잊어버린 척하거나 꿈이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할 거야. 이슬이와 헤어진 남자아이들 10명 중 8명은 그랬어. 성우도 마음이 약해 분명 그럴 거야. 이슬이를 떠나선 살 수 없을 테니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잘됐다고 해야 하는 건가?”
“글쎄.”
김연우와 패거리가 사라진 지 1분도 안 돼 하린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교실에 내가 없자 이상한 느낌에 어디 갔는지 아이들에게 물었고, 김연우와 2학년 선배들을 따라갔다는 말에 놀라 영웅관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3층 창문에서 김연우와 패거리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바람처럼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하린이가 도착한 지 3분도 안 돼 이번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교무과 직원 2명과 청원 경찰 3명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주먹질을 하며 싸운 것도 아니라서 말해봐야 사람만 우습게 돼 별일 아니라고 말해 돌려보냈다.
그렇게 주변이 어수선했지만, 성우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벤치에 앉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 대기만 했다.
중얼대는 말은 아니라는 말과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 대부분으로 정이슬을 옹호하고 김연우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선배 7명이 나를 몰아붙이는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겠다고 나설 만큼 성우는 착하고 의리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잠시 마음을 달래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 녀석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라 말없이 옆에 앉아 등을 두드려 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빠, 오늘 수업들을 기분 아닌 것 같은데,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건 어때?”
“성우는 어쩌고?”
“혼자 있고 싶을 거야.”
“그래도 그냥 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오빠라면 이럴 때 누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어? 나는 없는 게 더 좋아. 이제는 마음 터놓고 말할 오빠가 생겨서 이럴 일도 없겠지만.”
“그래. 가자.”
하린이 말이 맞았다. 위로받을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었다. 성우는 자신의 치부를 들킨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땐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성우를 더욱 괴롭게 하는 짓이었다. 말없이 조용히 사라져주는 것이 성우를 위한 길이었다.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야. 조만간 오빠를 살인자로 만들거나 정당방위로 아이템을 뺏으려 들 거야.”
“그렇겠지.”
“학교라고 안심할 수 없어. 대책을 세워야 해.”
“대책이 있어?”
“없어.”
놈들이 작심하고 달려들면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마림 길드는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로 길드원이 10만 명이 넘어 나와 하린이를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웠다.
다른 게임처럼 순간이동 주문서가 있으면 죽음을 피할 수 있겠지만, The Age of Hero는 그런 기능도 없어 놈들이 몰려오면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성우 덕분에 위기를 넘겼지만, 다음에는 바로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니는 대학도 마림 재단 소속이라 공개적으로 죽이지 않는 한 모른척할 가능성이 컸고, 학생들도 마림 길드와 엮이는 걸 싫어해 못 본 척할 가능성이 커 학교도 안전하지 않았다.
“강의실까지 쳐들어올까?”
“그렇게는 못 해. 그러면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테니까.”
“강의실만 안전하다고 끝이 아니야. 포털에서 강의실까지 이동하는 길 곳곳이 지뢰밭이야.”
“오빠 남작이니까 수도 방위군에 도움을 청하는 건 어때?
“개인적인 일이라 도움받기 어려울 거야. 그리고 한두 번은 가능해도 졸업할 때까지 보호받는 건 불가능해.”
“그럼 어쩌지?”
“으음... 놈들이 정말 공격할 기미를 보이면 휴학계를 낼 수밖에 없지.”
“휴학하자고?”
“다른 방법이 없잖아. 1년 휴학하며 힘을 키우는 수밖에. 1년이면 도와줄 부하도 여럿 있을 거고, 우리도 지금처럼 녹녹하진 않을 거야.”
“그게 가장 좋겠네. 그렇게 해.”
“나는 괜찮은데 너는 부모님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내가 몇 번 말했어. 나 성인이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그러라고 하셨어. 제발 아이 취급 좀 하지 마.”
1년 후에도 마림 길드를 상대할 수준에 도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건 분명했다.
지금 속도의 절반 수준으로 꾸준하게 성장해도 상위 0.01% 안에 들 수 있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할 수도 있어 놈들이 길드원을 몽땅 끌고 오지 않는 한 죽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현실 시간 1년 후면 게임 시간 4년 후로 Part 2의 전쟁의 서막이 본격화될 시기였다.
전쟁이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지만, 마탄과 화살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면 우리에게 쓸렸던 관심도 멀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조교들 훈련시키러 갈 테니까 아라치하고 같이 있어.”
“알았어. 그런데 훈련을 핑계로 스트레스 풀러 가는 거 아니지?”
“맞아.”
“못됐다.”
“사람은 원래 못 된 존재야.”
“나한테는 안 그럴 거지? 나한테 그러면 엉엉 운다.”
“그럴 일 없어.”
“진짜지?”
“응. 쉬고 있어. 다녀올게.”
“적당히 하고 와. 너무 심하게 하면 스트레스 더 받아.”
“알았어.”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