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79화 (79/320)

0079 / 0310 ----------------------------------------------

경고

79. 경고

“우리 방에 데려다 눕히자.”

“혼자 놔두기 불안해?”

“어.”

“그럼 그렇게 해.”

깊이 잠든 묘인족 소녀를 안아 다 우리 방 침대에 눕혔다. 신장이 1.5m나 되는데, 몸무게는 30kg도 안 되는지 깃털을 안은 것처럼 가벼웠다.

“오빠, 이름 지어줘야지?”

“뭐라고 지을까?”

“으음... 안녕키티 어때? 안녕키티 정말 귀여워.”

“그거 상표 이름이잖아?”

“응.”

“별로야. 다른 거 없어?”

“그럼 톰은 어때? 톰과 제리에 나오는 톰!”

“그건 남자 이름이잖아.”

“우이씌! 나는 그게 전부야. 오빠가 말해봐?”

“음음... 아라치 어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나왔던 만화 영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그 아라치를 말하는 거야?”

“맞아.”

“너무 촌스럽지 않아?”

“나는 괜찮은데.”

“오빠가 괜찮다면 그렇게 해. 오빠 마음에 드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마루치는 산꼭대기, 으뜸을 뜻하는 마루와 사람을 의미하는 치를 합친 이름이었고, 아라치는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치를 합친 이름이었다.

그러나 만화 마루치 아라치에 나오는 아라치는 아름다운 소녀라는 뜻으로 나는 만화에 나오는 뜻으로 이름을 정했다.

묘인족 소녀의 이름을 아라치라고 지은 건 만화에 나오는 아라치의 모습처럼 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소녀가 원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면 아라치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지은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름이라고 해도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따라갈 순 없었다.

아라치가 깨어난 건 3일 후였다. 붙잡힌 이후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지 내리 3일을 자며 그동안 못 잤던 잠을 몰아서 잤다.

“나는 이곳의 영주 모모 레오 남작이야. 너는 이름이 어떻게 돼?”

“......”

“원래 쓰던 이름 말할 때까지 당분간 아라치라고 부를 거야. 야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까.”

“.......”

“나는 너를 노예로 생각하지 않아.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도 돼. 그러나 지금은 몸이 약해 떠날 수 없어. 이대로 떠나면 죽게 될 거야. 몸을 추스르고 네 고향으로 돌아갈 힘을 찾을 때 그때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해.”

“.......”

“그러려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슬러야 해. 주는 밥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어. 몸이 괜찮아지면 그때부터 훈련할 거야. 훈련은 아침 5시부터 8시까지야. 아침 훈련 끝나면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돼. 단, 영주성을 벗어나는 건 안 돼. 영주성 밖은 몬스터가 들끓고, 낯선 곳이라 길을 잃으면 죽을 수도 있어. 지킬 수 있어?”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죠?”

“내가 네 보호자니까.”

“나는 당신을 보호자로 생각한 적도 없고, 보호해 달라고 한 적도 없어요.”

“너희 부족도 성인이 되기 전에는 부모나 가족, 친척, 이웃사촌이 보호자 역할을 하잖아. 나도 그런 것뿐이야.”

“당신은 우리 부족이 아니에요.”

“아틸라 제국에선 유사인류는 제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아. 모두 노예야. 그래서 보호자가 필요한 거야.”

“보호자인척 제게 접근해 이용하려는 거죠?”

“그럴 생각이었다면 복종의 족쇄를 사용했어. 귀찮게 이런 말 할 필요도 없었어. 그리고 네가 뭐 볼게 있다고 이용해? 자신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

목에 채워져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복종의 개목걸이가 내 손에 들려있자 아라치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엘프와 드워프, 아라타족, 묘인족, 낭인족 등 유사인류도 모두 같은 말을 사용해 대화가 통했다.

현실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곳은 환인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 The Age of Hero였다.

환인이 원하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으로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러시아인, 중국인, 일본인 등 세계 모든 인종과 말이 통하는 것도 환인의 엄청난 능력 덕분이었다.

덕분에 아라치도 노예 시장 점원 NPC와 내가 나눴던 대화를 모두 들었고, 복종의 족쇄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복종의 족쇄를 채우지 않았어도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은 우리 가족을 죽인 인간종족과 같은 인간이에요.”

“묘인족끼리도 서로 죽이잖아.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네 가족과 친구, 이웃을 인간이 죽였다고 모두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는 게 세상이니까. 그리고 때로는 동족이 더 무서울 때도 있어.”

“.......”

“나와 대화하는 게 불편하면 하린이나 레이첼과 대화해. 여자끼리 말하는 게 훨씬 편할 테니까.”

“아니요. 책임자인 당신하고 계속 말하겠어요. 그게 제 의사 전달이 가장 빠를 테니까요.”

“현명한 생각이야. 하지만 하린이는 내 아내야. 하린과 대화해도 나랑 대화하는 것과 같아. 하린이가 결정한 일은 내가 결정한 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레이첼도 내가 믿는 사람이고. 레이첼이 약속한 것도 그대로 들어줄 거야.”

“매우 특이한 남자네요.”

“왜?”

“여자가 한 말을 자신이 한 말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여자를 완벽히 믿는 것도요.”

“생각하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더 이해가 안 돼. 자기 아내를 믿지 못하면 대체 누구를 믿으라는 거야?”

“그건... 그건...”

말문 여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쉽게 말문이 트였다. 가장 다루기 힘든 상대는 말하지 않으려는 상대로 삐딱하게 구는 상대보다 다루기가 백배는 힘들었다.

삐딱하게 굴어도 대화가 오가면 상대가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어 요리하기 쉬웠다.

그러나 입을 꾹 다문 채 쳐다보지도 않으면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아 상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아라치는 나이가 어려 살살 유도하자 마음속에 품었던 얘기를 꺼내 빠르게 가까워질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리고 나에 대한 호기심도 매우 충만해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전망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월요일은 왜 안 나오셨어?”

“일이 있어서 못 갔어.”

“하린이하고 놀러 갔다 오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날 하린이도 안 나온 것 보니까 제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둘 다 바빠서 못 간 거야.”

“형, 저까지 속이시지 않아도 돼요. 저는 언제나 형 편이에요. 아시잖아요?”

“고맙긴 한데 정말 아니야. 일이 있었어.”

“하린이하고 틀어진 건 아니죠?”

“그렇지 않아. 아주 좋아.”

“형, 제가 형 정말 좋아해서 드리는 말이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알았어.”

“지금 하린이 노리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우리 학과 선배들도 있고, 다른 학과 선배들도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만 10명이 넘어요. 형, 하린이 뺏기기 전에 빨리 도장 찍으세요. 하린이가 형에게 뻑가 있을 때 확실하게 도장 찍으셔야 해요. 안 그러면 뺏길 수도 있어요. 형이 못나서 하린이 뺏길까 봐 이런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하린이에게 관심보이는 놈들이 엄청나게 빵빵해서 그래요. 형, 저 정말 걱정돼요.”

“하하하하. 생각해줘서 고맙다.”

“웃지만 말고 오늘 끝장 보세요. 안 되면 임신이라도 시키세요. 하린이 같은 미녀 다시 찾을 수 없어요.”

“그래. 생각해 보마.”

“형, 생각하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에요. 무조건 사고 치셔야 해요. 안 그러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

“알았어. 알았어. 그만 흥분해.”

하린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옆에 달라붙은 성우가 주말에 뭐했는지, 월요일에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 꼬치꼬치 캐묻다가 급기야 하린이를 빨리 자빠뜨리라고 성화였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저절로 띄는지 캐릭터를 고치지도 않고, 화장도 안 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다녔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관심보이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강의가 있는 날이면 하린이와 정이슬을 구경하기 위해 남학생들이 떼로 몰려왔고, 음료수와 쪽지를 건네고 가는 일도 잦았다.

히어로걸스 멤버들을 보러 오는 남학생들보다 하린이와 정이슬을 보러오는 남학생들이 많자 리더 다현이 히어로걸스에 들어와 달라고 하린이를 괴롭힐 정도였다.

이러자 나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아직 완벽하게 몸을 합친 건 아니었지만, 도장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하린이도 죽을 때까지 나만 바라보고 산다고 다짐해 마음을 놓아도 됐다.

그러나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간다고 외치며 대쉬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중에는 부잣집 아들도 여럿 있었다.

나도 이제 가난뱅이는 아니라서 기죽을 일은 없었지만, 매일 그런 일이 반복되자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하린이는 당장에라도 결혼하자며 불안한 내 마음을 잡아줬다. 그렇지 않았다면 술 한잔 하자고 쪽지를 책상 위에 놓고 간 놈을 따라가 이빨을 몽땅 뽑아놨을 것이다.

“길드는 지낼만해?”

“저 길드 들어가기 전에 하루에 많이 먹어야 2,000포인트 먹으면 정말 많이 먹은 거였어요. 그런데 주말에 길드원들하고 게임 시간으로 나흘 동안 사냥하고 13만 포인트나 먹었어요. 끝내주죠?”

“멋지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레어 아이템 나왔는데, 길드원들이 저 밀어줬어요. 보여드릴까요?”

“그래.”

황색 오크 족장 무비타오의 사슬 흉갑

등급 : 레어

잡철이 많이 들어가 방어력이 낮은 게 단점이지만, 형태가 아름다워 많은 오크가 부러워해 무비타오는 더 좋은 갑옷이 있음에도 항상 이 갑옷만 입었다.

내구도 : 63/70

방어력 : 30

생명력 : 200

지력 : 2

착용 효과 : 일반 데미지 20 감소

착용 제한 : 없음

성우가 보여준 무비타오의 사슬 흉갑은 레어 아이템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내구력과 방어력, 착용 효과가 형편없었다.

내구력은 70밖에 안 됐고, 방어력은 레어 아이템에 붙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치인 30이었다.

거기다 착용 효과는 일반 데미지 20 감소로 있으나 마나 한 효과였고, 스탯은 지력으로 전사인 성우와는 맞지 않았다.

이런 레어 아이템은 팔려고 해도 거래가 안 됐고, 운 좋게 팔려도 고급 아이템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팔려 유저들은 무늬만 레어 아이템, 저주받은 아이템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그런 아이템을 얻고도 좋아하는 성우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레어 아이템을 얻었다고 좋아 입이 귀에 걸린 녀석 앞에서 한숨을 쉴 수 없어 마음에도 없는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