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77화 (7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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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이 묘인족 소녀 아라치

77.

수도 크라쿠푸스 노예 시장에서 파는 낭인족과 묘인족, 아라타족은 모두 아말 왕국에서 잡아온 것이었다.

낭인족과 묘인족, 아라타족도 인간을 피해 몬스터 랜드와 검은 오크 왕국, 미지의 숲, 죽음의 정글 등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오지에 흩어져 살았다.

몬스터 랜드만큼 큰 아말섬도 많은 유사인류가 살아가는 땅으로 서쪽은 높은 산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지 않았다.

아말 왕국은 파르톤 제국에서 밀려난 왕족이 300년 전에 세운 나라로 평야 지대인 섬의 서쪽을 지배하고 있었다.

“오빠 예상대로 젊은 남자 노예는 다들 문제가 있어. 아틸라 제국에서 나온 노예는 도망치다 걸린 농노가 대부분이고, 반란에 연루된 노예는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큰 사건이 없는 노예들도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걸핏하면 싸우고, 도둑질에 강간까지 경력이 아주 화려해. 여자하고 아이만 사야 할 것 같아.”

노예 시장에서 파는 노예는 목에 걸린 명패를 통해 성격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영지의 인장을 이용해 자신의 영지의 속한 평민과 농노들의 성격과 상태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로 목에 걸린 명패가 그런 기능을 했다.

그리고 과거 이력을 알 수 있는 건 노예는 귀족만 살 수 있어 차후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알려줘서 그런 것으로 속이고 팔았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몇 명이나 골랐어?”

“53명.”

“가격은?”

“할인한 금액으로 금화 48개.”

황제가 노예 시장을 운영하자 20% 할인된 금액에 노예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포털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영지까지 데리고 가는데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오빠, 우리 온 김에 유사인류도 구경하고 가자.”

“그래.”

영리하고 재빠르지만, 신체적으로 인간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아라타족은 금화 30~50개 사이로 유사인류치곤 가격이 쌌다.

그러나 호위병과 성노로 이용할 수 있는 낭인족과 묘인족은 가격이 금화 1,000~2,000개 사이로 건장한 남성 농노의 1,000배에 달했고, 5,000명이 넘는 노예를 보유한 노예 시장에서 단 2명밖에 없는 엘프는 무려 금화 10,000개로 아주 작은 시골 영지의 몇 년 치 수입과 맘먹었다.

그리고 엘프보다 더욱 비싼 드워프는 금화 5만개가 넘었다.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잠자리에서 극치의 쾌락을 선사하는 엘프보다 성질 더럽고 고집 센 땅딸보 드워프가 3배 이상 비싼 건 에픽 아이템을 만들 수 있어서였다.

드워프 중에도 장로 이상만 에픽 아이템을 만들 수 있어 엄청난 돈을 날릴 수도 있지만, 드워프의 긴 수명을 생각하면 레어 아이템만 만들어 팔아도 본전은 뽑고도 남아 많은 귀족이 드워프를 찾으려 혈안이었다.

그러나 아틸라 제국이 생기기 1,000년 전 욕심 많은 레드 드래곤 케이노루스가 드워프 왕국을 잿더미로 만들며 많은 드워프가 죽었고, 살아남은 소수의 드워프들도 케이노루스를 피해 지하로 깊숙이 숨어 1,000년 동안 노예 시장에 나온 드워프는 10명이 안 됐다.

“금화 1만 개면 도대체 얼마야? 100억인가? 맞지?”

“응.”

“진짜 더럽게 비싸네. 이러면 몬스터 사냥할 게 아니라 엘프 잡으러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한 명만 잡아도 팔자를 피는데.”

“인신매매하고 싶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미쳤어? 그런 개돼지만도 못한 짓을 하게. 사람을 잡아다가 파는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해.”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농담을 해?”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농담이라도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엉덩이 피 날 때까지 맞을 줄 알아.”

“잘못했어. 그래도 숙녀 엉덩이 때린다고 말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잘못 했으면 숙녀 엉덩이가 아니라 가슴이라도 맞아야지.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혼나 볼래?”

“히잉.”

초창기 엘프와 드워프의 엄청난 가격에 혹한 유저들이 이들을 잡겠다고 설치고 다닌 적이 있었다.

한 명만 잡아도 팔자를 필 수 있어 많은 유저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엘프와 드워프를 잡기 위해 오지를 뛰어다녔다.

그러나 아틸라 제국 땅에는 엘프와 드워프의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있다고 해도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금지에 있을 가능성이 커 잡고 싶어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노예 사냥꾼과 상인도 황족과 귀족의 비호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로 이를 모르고 설치던 유저 수백 명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자 더는 엘프와 드워프를 잡겠다고 떠드는 유저가 없었다.

값비싼 노예답게 일반 NPC보다 유사인류가 있는 철창 안은 공간도 넓었고, 바닥도 더 깨끗하고, 입고 있는 옷도 훨씬 깔끔했다.

그러나 표정은 양쪽 모두 암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미래가 없는 것만큼 슬프고, 괴롭고, 힘든 일은 없었다.

죽을 때까지 평생 개보다 못한 신세로 살아야 하는데 밝게 웃을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목에 찬 게 복종의 개목걸이야?”

“아니. 힘과 마나를 못 쓰게 하는 마법 족쇄야. 탈출과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채워놓은 거야.”

“어쩐지 다들 힘이 없어 보이더라.”

도우미 아란이 알려준 내용으로 엘프와 낭인족, 묘인족의 목에는 쇠로 된 개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이건 복종의 개목걸이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힘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제어하는 마법 족쇄였다.

복종의 개목걸이는 한 번 사용하면 재활용이 안 됐고, 가격도 금화 10개나 해 유사인류를 구매한 주인들만 사용했다.

복종의 족쇄를 개목걸이라고 하는 건 공원에 끌고 다니는 강아지 목에 채운 목걸이와 아주 흡사해서 생긴 은어로 줄까지 달려 있어 개목걸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엘프 정말 예쁘다. 옆에 서면 나 오징어 되겠어.”

“네가 훨씬 예뻐.”

“정말?”

“그럼. 나는 우리 하린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히힝.”

두 명의 엘프는 모두 여자로 남자 엘프는 잡으면 그 자리에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일부 남색을 밝히는 귀족들도 있고, 남자 엘프를 찾는 귀부인도 있어 여자 엘프보다 남자 엘프의 가격이 더 비쌌다.

그러나 웬만해선 죽지 않는 여자 엘프와 달리 남자 엘프는 숲을 벗어나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 팔면 얼마 못 가 컴플레인이 들어와 사룟값도 아깝다며 잡히면 모두 죽였다.

하린이의 말대로 여자 엘프 둘 다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만큼 조각 같은 미모였다.

그러나 외모는 완벽하게 아름답지만, 생기가 없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금세 사라졌다.

얼굴이 조금 못나도, 몸매가 떨어져도,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생동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생동감이 없으면 죽은 시체나, 쇠로 만든 조각과 같아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젊음이 아름답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으로 넘치는 생명력만큼 아름다운 건 세상에 없었다.

“얘는 금화 50개밖에 안 하네. 아! 팔 하나가 없구나. 그래서 싼 거였구나. 에구! 가엾어라.”

하린이 가엾다고 말한 묘인족은 왼쪽 팔꿈치부터 팔이 잘린 불구로 나이는 우리 나이로 15~16세로 보였다.

묘인족의 수명이 200년 전후인 걸 생각하면 그보다 많을 수도 있겠지만, 얼굴이 많이 앳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녀일 가능성이 컸다.

“몇 살인가?”

“17살입니다.”

“팔 한쪽이 없는 묘인족도 파나?”

“한 달 전에 들어온 묘인족으로 성노로 팔아보려 했지만, 찾는 분이 없어 오늘까지 팔리지 않으면 내일 아침 도살할 계획입니다.”

“가족은?”

“모두 죽었습니다.”

묘인족 소녀는 아주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겨 남자 귀족들이 좋아할 타입이었다. 그러나 팔 한쪽이 없는 묘인족 소녀를 성노를 삼는 귀족은 없었다.

자부심이 강한... 자기들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틸라 제국 귀족들은 흠집 있는 유사인류와 여자 농노는 절대 성노로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 옛날 어른들은 금이 간 밥그릇이나 귀퉁이가 살짝 깨진 밥그릇에 밥을 주면 복이 달아난다고 먹지 않았다.

아틸라 제국 귀족들도 불구를 데리고 자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 공짜로 줘도 불구는 받지 않았다.

“내가 사면 얼마까지 줄 수 있나?”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남작님께서 사신다면 목걸이값만 받겠습니다.”

“주게.”

“알겠습니다.”

금화 8개를 주고 묘인족 소녀를 샀다. 묘인족은 전투에 특화한 종족이지만, 손이 하나 없어 전투력이 급감해 금화 8개나 주고 살 이유가 없었다.

“풀어주려고 산 거야?”

“풀어주면 죽어.”

“그럼 데리고 자려고 산 거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럼 왜 샀어?”

“불쌍해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쌍해서 샀어.”

“나도 번쩍번쩍 안고, 건장한 남자 3~4명도 문제없이 때려눕힐 수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런 생각하지 마. 오빠 괜찮아. 멋져!”

“알았어.”

철창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묘인족 소녀를 보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군대에서 다친 왼팔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했지만, 실상은 하린이와 팔씨름을 해도 질만큼 상태가 엉망이었다.

왼팔이 아파봤기에, 제대로 쓸 수 없어 고통을 겪었기에,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그로 인해 먹고 사는 것마저 걱정할 만큼 절박했기에 묘인족 소녀가 느끼는 상실감과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자 소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게 소녀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허무하게 죽는 것보다 힘들어도 이겨내려 노력하는 게 백번 나았다.

병원에서 왼팔이 불구에 가깝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기댈 곳도 없는 내가 한쪽 팔마저 못 쓰면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만 가득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져서가 아니라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죽을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자 살길이 열렸다. 묘인족 소녀도 나처럼 이를 악물고 버티면 언젠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도 계속 걸으면 언젠가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을 빠져나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죽을힘을 다해도 빠져나오기 힘든 길로 어린 소녀가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죽을 용기가 없다면 눈물을 삼키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야 한다.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걸이에 남작님의 피를 떨어뜨린 후 묘인족 노예 목에 채우고 원하시는 이름을 지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복종의 족쇄가 발동합니다.”

“복종의 족쇄가 끊어지면 어떻게 되나?”

“그때는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인 의지로는 절대 족쇄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호 마법과 강화 마법이 걸려 있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수명은 얼마나 가지?”

“노예가 죽을 때까지 작동합니다. 그리고 고장이 나면 새것으로 교환해 드립니다.”

금화 8개를 주자 노예 시장 점원 NPC가 복종의 개목걸이를 넘겨주며 사용방법을 설명했다.

NPC가 말한 대로 복종의 개목걸이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묘인족 소녀의 목에 채웠다.

이름을 뭐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소녀의 눈을 보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건 내가 생각한 소녀를 도와주는 방법이 아니었다. 이건 소녀를 평생 노예로 부리려는 짓이었다.

***공지사항***

Noist님 정보를 주셔 알게 됐습니다.

호빗은 톨킨이 만든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란 호라산 주에 과거 아라타 문명권이었던 마크후니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BC 6,000년 전에 문명의 꽃을 피운 곳으로 이곳에서 아주 작은 소인 미라가 발견됐습니다.

그래서 아라타족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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