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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성자
72.
경비대장 조나단에게 여성 농노를 병사로 쓰는 것에 대해 물어본 건 앞으로 조나단이 그들을 관리하는 책임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물어본 것도 관리들이 농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예상대로 매우 부정적인 견해였다. 조나단 대장은 농노가 글을 배우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기득권을 뺏길까 봐 두려워서 한 말이었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지였다. 글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닌 일도 겁을 집어먹게 됐고, 작은 협박에도 순순히 고개를 조아려 모든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무지하길 바랐다.
조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아틸라 제국도 소수의 지배층만 글을 익혔다. 글을 알면 세상의 이치와 돌아가는 시세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배층인 귀족과 평민 관리들은 농노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현대에서 자주 일어났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길 바라고, 언론에 관심을 끊길 바라며 정치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며 호도하고, 유흥과 오락을 제공해 무지하게 만들려 노력했다.
어느 시대를 사나 권력을 가진 자의 속성은 거의 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했고, 시도 때도 없이 국민의 눈을 닫고, 귀와 입을 막으려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지 않는 권력자를 우리는 성군, 진정한 지도자라 불렀지만, 가물에 콩 나듯 나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성군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내가 농노들을 교육시키려는 것은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먹으려는 것으로 몰염치한 권력자보다 한 끗발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다니엘, 영주성 성문 아래에 탁아소와 학교를 지을 계획이네. 여기에 적힌 규모와 크기에 맞게 필요한 자재와 인원, 비용 등을 계산해 내일 저녁까지 집무실로 갖고 오게.”
“농노들을 위해 짓는 겁니까?”
“어.”
“영주님이 농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만으로도 차고 넘치십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왜 안 된다는 거지?”
“농노들이 순순히 말을 듣는 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지해서 말을 듣는 것이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능력을 갖게 되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네들은 글을 알고 세상의 이치는 아는데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데, 왜 농노들은 반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저희는 영주님께 충성하기 때문에 그런 일도, 그런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농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농노는 개돼지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글을 알려주면 짐승처럼 날뛸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네. 태어날 때 신분이 다르지만, 벗겨 놓으면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몸만 그런 게 아니야. 마음도 그래.”
“아닙니다. 영주님은 위대한 귀족이십니다. 개돼지만도 못한 농노와 같을 수 없습니다.”
조나단과 다니엘은 자신들은 괜찮고, 농노들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권의식과 계급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그런 것으로 쉽게 고쳐질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지구도 불과 몇백 년 전까진 천동설이 진리였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들 역시 인간이 평등하다는 걸 이해하려면 수백 년이 필요했다.
인간은 똑똑하지 않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겪고 지금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동물만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절대 뛰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다니엘 집사.”
“예, 영주님.”
“농노들을 아카데미에 보낼 만큼 공부시키겠다는 뜻은 아니야. 자기 이름은 읽고, 아주 기초적인 책을 읽을 수준만 가르치겠다는 생각이야. 그래야 능력에 맞는 일을 시킬 수 있으니까. 그러니 너무 깊이 걱정하지 말고 내 생각대로 따라주길 바라네.”
“저는 영주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죽을 때까지 영주님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조금 전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무례가 아니네. 충성심이지.”
“감사합니다. 영주님.”
다니엘의 행동은 무례도 충성심도 아니었다. 걱정과 불안에 대한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속아주고, 마음에 안 들어도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이 군주가 신하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더 있네.”
“말씀하십시오.”
“농노들 중에 일하다가 다친 환자가 있으면 모두 데려오게. 저녁 먹고 상태가 어떤지 보겠네.”
“알겠습니다.”
조나단이 나가자 하린이와 함께 대장장이 래틀을 찾아갔다. 내가 입을 방어구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방어탑에 설치할 개틀링 석궁을 보러가는 길이었다.
개틀링 석궁 시제품은 지난주에 나왔다. 그러나 화살을 공급하는 탄띠에 문제가 있어 3~4발 발사하다 멈추기 일쑤였고, 석궁에 달린 좌우 도르래의 힘도 일정하지 않아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래틀과 머리를 맞대고 곧바로 해결책을 찾았고, 오늘 최종 테스트하기 위해 대장간으로 가는 것이었다.
“준비됐습니다. 영주님.”
”시작해.“
“예.”
래틀이 제자에게 신호를 주자 개틀링 석궁을 조준하고 있던 제자가 50m 떨어진 과녁을 향해 방아쇠인 손잡이를 돌렸다.
툭툭툭툭툭
연발이라고 하기에는 창피할 만큼 느린 속도로 석궁용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개틀링 석궁의 발사 속도는 3초에 1발로 대한민국 육군 기본 무장인 K2 소총의 단발 사격속도보다도 느렸다.
그러나 화약이 없는 아틸라 제국에서 3초에 1발을 쏘는 건 엄청나게 빠른 발사 속도였다.
황제가 개틀링 석궁을 본다면 당장 가지고 오라고 성화를 부릴 만큼 엄청난 신무기였다.
하지만 유효 사거리가 50m밖에 안 됐고, 위력도 크지 않아 40레벨 몬스터를 상대로는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다.
견습 마법사와 비교해도 형편없는 수준으로 뛰어난 기사와 마법사를 수천 명 거느린 황제가 개틀링 석궁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큰 힘이 들지 않아 가냘픈 여자와 아이도 쏠 수 있었고, 명중률도 아주 뛰어나 20발 모두 과녁으로 세워둔 단단한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무엇보다도 조작이 아주 쉬워 30분만 교육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 현대의 총과 같은 뛰어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75대 만들어서 영주성에 30대, 광산 마을에 30대, 방어탑 8곳에 8대를 설치하고 나머지는 예비로 가지고 있어. 화살 떨어지지 않게 넉넉하게 보급하고.”
“알겠습니다.”
“발사 속도와 사거리, 파괴력, 발사장치 등을 개선하는 연구도 계속해야 해. 그래야 제대로 된 개틀링 석궁이 되는 거야. 지금 건 시제품이나 다름없어. 여기에 만족하면 안 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전담팀을 꾸렸습니다. 1년 이내에 성능을 30% 이상 개선하겠습니다.”
“아주 좋아.”
“감사합니다. 영주님.”
래틀은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과 탐구욕도 매우 커 설계도를 주면 그걸 뛰어넘는 무기를 만들려고 밤낮없이 연구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사실은 이벤트로 만들어 준 것이지만... 아틸라 제국에 몇 명 없는 상급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다.
“래틀, 영주님이 착용하실 방어구는 언제쯤 완성돼요?”
“준비가 거의 다 됐습니다. 늦어도 일주일이면 끝납니다.”
“고마워요. 래틀.”
“아닙니다. 믿고 맡겨주신 영주님과 마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래틀이 자신 있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하린이의 예상대로 레어 아이템이 분명했다. 래틀이 상급 대장장이지만, 레어 아이템을 마구 찍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확률이 5% 이하로 아주 드물게 나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작심하고 만들면 얘기가 달랐다.
5%밖에 안 되는 건 많은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며 확률이 낮아진 것으로 온 힘을 쏟아부어 만들면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미스릴 같은 귀한 재료를 사용하면 확률은 더욱 올랐다.
안타깝게 상급 대장장이는 레어 아이템이 끝이라 에픽 아이템을 만들 수 없어서 그렇지 정성은 레전드 아이템을 만들고도 남았다.
“래틀,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라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런 말씀 하실 때마다 이놈의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마님이 원하시는 걸 모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알았어요. 다음부터 그럴게요.”
“마님, 뭐가 필요하십니까?”
“관통력이 뛰어난 화살촉을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몇 레벨 몬스터를 잡는데 사용하실 겁니까?”
“40레벨 이상 몬스터 중 자이언트 판다처럼 생명력이 매우 크고, 방어력이 뛰어난 몬스터요.”
“으음... 화살촉에 칼날 세 개를 삼각형으로 달아 드리겠습니다. 그거면 웬만한 몬스터는 등을 뚫고 나올 겁니다. 그리고 더 강력한 몬스터를 잡을 수 있게 화살대까지 강철로 된 것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정말 원하던 화살이에요. 고마워요. 래틀.”
“아닙니다. 마님께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다음 주에 영주님 방어구 가져다 드릴 때 화살도 함께 갖다 드리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최고로 멋진 화살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점에서도 관통력을 높여주는 화살을 팔았다. 그 외에도 출혈을 일으키는 화살, 독이 묻은 화살 등 아주 다양한 화살을 팔았다.
그러나 가격만 비쌀 뿐 성능은 하린이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가장 싸고 평범한 나무 화살만 사용했다.
내 영지로 온 이후론 상점에서 파는 화살 대신 목공 딜런이 만든 화살을 사용해 전보다 위력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화살촉을 저 레벨 몬스터의 이빨과 손발톱으로 만들어 자이언트 판다를 상대로 하린이의 실력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질이 더 뛰어난 강철 화살촉으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이를 재빨리 눈치챈 래틀이 현대의 사냥용 화살촉과 아주 흡사한 형태의 날개가 세 개에 날을 날카롭게 벼린 화살촉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무겁지만, 활과 힘만 받쳐주면 더욱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통짜 강철 화살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준비됐습니다. 영주님.”
“몇 명이나 왔지?”
“113명입니다.”
“적당하군.”
따뜻한 손길 초급을 사용할 때마다 마나가 50씩 소모돼 마나양이 4,473이라 90명밖에 치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용하는 동안 마나가 회복돼 120~130명까진 쉬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다.
“하린아, 혹시 모르니까 해열제하고, 지사제, 진통제, 소염제, 살균 소독제도 모두 가지고 나와.”
“알았어.”
“레이첼은 시녀들 몇 명 데리고 가서 하린이 좀 도와줘.”
“네,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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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