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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69.
나와 하린이 MT에 가지 않으려는 건 합동 단합대회에서 했던 선배들의 지나친 행동 때문이었다.
하린이가 말한 것처럼 억지로 술을 먹여 남학생들 모두 술에 취해 몸도 가누기 힘들게 만들어 놓고,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술집 앞에 집합시켜 웃통을 모두 벗기고 얼차려를 1시간 넘게 해 토하고 쓰러지는 등 난장판을 만들었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술에 취하게 해놓고 남학생들 옆에 엎드려 뻗쳐있게 하는 등 지나가는 유저들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날 1학년 여학생 대다수가 치마를 입었고, 그중 절반은 짧은 치마를 입어 엎드려 뻗치면 팬티가 보였다.
그런데 2학년 여자 선배들까지 1학년 여자 후배들을 잡겠다고 그 짓거리를 말리지 않았다.
아무리 여자의 적이 여자라고 해도 자신들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무조건 막아야 했다.
하지만 막기는커녕 일부는 철저한 방관자로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두 팔 걷어붙이고 똑바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0년이 됐지만, 신입생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얼차려를 주는 행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아 새 학기가 되면 대학마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얼차려를 주는 선배들은 전통이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하겠지만, 얼차려를 받는 새내기들은 치욕을 느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해댔다.
뉴스에서 자주 나오고,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구폐(舊弊)는 세습되는 것인지 당했던 놈들이 그 짓을 후배들에게 되풀이하며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 짓만 했다면 다른 학교에서도 다 하는 짓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억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술 취한 여자애들을 끌고 가려고 한 선배도 있었고, 취해 쓰러진 여학생 옆에 붙어 은밀한 곳을 만지기까지 했다.
그날 술을 마시지 않은 여학생이 몇 명 있어 끌려가는 봉변을 당하지 않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많은 여학생이 몹쓸 짓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게임에서 몹쓸 짓을 당하면 몸은 괜찮을지 몰라도 정신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 대부분이 평생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게임에서 하는 성폭행도 분명한 범죄였다.
그러나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하면 구제받을 길이 없었다. The Age of Hero의 신 환인은 강간을 가장 추악한 범죄로 규정하고 절대로 봐주지 않았다.
하지만 철저하게 현행범만 처벌해 강간당하거나 끌려가는 순간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뒤에 가서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The Age of Hero는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에 맞는 규칙을 최대한 적용해 현대의 치밀한 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약탈 길드와 뒤치기 길드, 살인자가 게임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거대 길드가 아이템이 잘 나오고, 몬스터가 많이 몰리는 몫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걸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술과 정신을 잃게 하는 약을 이용해 여성 유저들을 강간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참았어야 하는데... 미안해 오빠.”
“오늘 일 아녔어도 이미 눈 밖에 난 지 오래야. 미안해할 거 없어.”
정이슬이 이은택과 붙은 순간 찍힌 것으로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참았어야 해. 그래야 눈총을 덜 받지.”
“이미 지난 일이야. 잊어버려.”
하린이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 빠르고 하루 느린 차이밖에 없었다.
“월요일 날 진짜 학교 가야 하지?”
“응.”
“학교 수업 빼먹으면 학점 펑크나?”
“그렇진 않아. 대신 B 학점 이상은 못 받아.”
“그러면 진짜 학교 가는 건 싹 빼자.”
“알았어.”
영지와 하린이를 얻는 순간 대학은 졸업만 하면 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 전까진 좋은 학점을 받아 큰 회사에 취업해야 했지만, 이제 내 직장은 레오 영지였다.
더는 학점에 목매달 이유가 없었고, 선배들과 트러블이 심해지면 학교도 그만둘 수 있을 만큼 중요도가 떨어졌다.
“내일부터 금·토·일 3일 동안 죽어라 사냥해서 대나무 숲 정리하자.”
“응.”
“그런데 노는 날에도 종일 나와 있어도 돼?”
“당연하지.”
“그러다 혼나면 어쩌려고?”
“안 혼난다고 말했잖아. 나 어린애 아니야.”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좋아. 어린애 아니라고 했으니까 집에서 혼났다고 떼쓰면 그때는 나한테 혼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걱정해. 그런 일 절대 없으니까.”
현실 시간 3일이면 게임 시간으로 12일로 그 시간이면 대나무 숲을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대나무 숲을 정리하고, 남쪽에 있는 버그 베어와 황색 오크 서식지까지 정리하면 영지 확장을 위한 초석이 마련된다.
동쪽과 남쪽의 펑거스 숲, 서쪽의 대나무 숲, 버그 베어 숲만 영주성 영역으로 포함하면 농지와 목장이 3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영지의 10분의 4가 인간이 사는 땅으로 변했다.
그렇게만 되면 식량 생산량이 최소 4배 이상 늘어나 영지를 발전시킬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농지와 목장이 되기까진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인력이 많다면 농사를 지으며 벌목과 개간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겠지만, 농번기에는 많은 인력을 뺄 수 없어 그 많은 땅을 개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빠, 농노를 사는 게 어때? 조만간 겨울작물 재배가 시작되면 숲을 개간할 인원이 3분의 1로 줄어들잖아.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기다리다간 그 많은 숲을 언제 다 개간할 수 있겠어.”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긴 한데, 현재 재정 상태로는 많은 노예를 살 수 없어. 최대 1,000명이 한계야.”
“남자 말고 여자와 아이를 사면 되잖아.”
“농노는 가족 단위로 팔아.”
“그래? 몰랐네.”
일반 유저는 법으로 노예를 거느릴 수 없었다. 나처럼 작위와 영지를 가진 유저만 노예를 거느릴 수 있어 유저들은 노예에 관심을 두지 않아 히어로 에브리 사이트에도 노예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농노는 땅과 함께 파는 것이 특징이지만, 아틸라 제국에서 농노는 노예와 같은 용어로 주인인 영주와 귀족이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었다.
그러나 기계가 없는 아란테스 대륙에서 농노는 노동력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 큰일이 없으면 팔지 않았고, 팔아도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됐다.
20대 건장한 남자 농노는 금화 1.5개, 여자 농노는 금화 1개에 거래됐고, 한 명씩 거래하지 않고 가족 단위로 묶어서 5인 기준에 금화 3~4개에 거래했다.
“수도에 있는 노예 시장가면 한 명씩 파는 노예가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가볼래?”
“대나무 숲 정리하고 가자. 급한 거 아니니까.”
“알았어.”
농노를 사들여도 500명이 한계였다. 그 이상 사면 영지 자금이 크게 줄어들어 가뭄, 태풍, 병충해, 전쟁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없었다.
그리고 타지 농노를 대량으로 사들이면 기존 농노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어 몇십 명씩 쪼개서 사 융화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또한, 한 명씩 파는 건장한 남자 농노는 달아났다가 잡혔거나, 사고를 친 농노일 가능성이 매우 커 데리고 있어 봐야 골칫거리만 될 수 있어 사지 않는 게 나았다.
그런 놈을 살 바에는 노동력이 떨어져도 젊은 여자 농노와 아이들을 사는 게 속 편했고, 미래를 봐도 그편이 영지에 더 큰 도움이 됐다.
“오빠, 이사하면 어디로 갈 거야?”
“글쎄? 생각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아파트 가지 말고 단독주택에 이사하는 건 어때?”
“난 상관없어. 너 좋을 대로 해.”
“내가 원하는 곳에 정해도 돼?”
“그럼. 같이 번 돈인데.”
“우리 옆집 판다고 내놨어. 그 집으로 이사하는 건 어때?”
“옆집?”
“어.”
“얼마에 나왔는데?”
“10억.”
“그걸 내가 어떻게 사?”
“9개월이면 맨드레이크 던전에서 7억 정도 나오고, 그때 되면 농지도 크게 늘어나 흑자로 돌아설 거야. 그럼 10억 원은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몇 층 집이야?”
“우리 집하고 같은 3층.”
“그걸 나 혼자 쓰라고?”
“왜 혼자 써? 나랑 같이 쓰면 되지.”
하림이네 옆집으로 이사 가면 바래다주고 데리러 다니지 않아도 돼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가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잠자는 시간만 빼고 종일 붙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까운 만큼 들킬 염려도 높았고, 들키는 날에는 혼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차피 결혼할 거라 걸려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혼은 둘 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린이 부모님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일로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엮이는 일로 부모님이 반대하면 큰 난관에 부딪혔다.
그렇다고 결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축복받으며 하는 것이 하린이에게도 좋았고, 내게도 좋았다.
“식구들에게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안 걸리면 되지.”
“그게 말처럼 돼?”
“조심하면 돼. 그리고 집 사면 엄마·아빠에게 결혼한다고 말할 거야.”
“결혼?”
“싫어?”
“그런 게 아니라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부모님이 허락하시겠어?”
“결혼하고도 공부하면 되지.”
“쉽지 않을 텐데.”
“결혼하자마자 애 낳을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아무 문제없잖아?”
“알았어. 그렇게 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지기까지 해서 그런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아이를 낳는다고 나를 버린 부모처럼 행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그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인성은 피로 대물림된다. 그것이 꼭 부모라는 법은 없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니면 먼 조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열매를 보면 뿌리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부모를 보면 조상들도 그런 성향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안심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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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