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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67.
다른 온라인게임이 초반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 느리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하루 만에 20~30레벨을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느린 게 사실이었다.
The Age of Hero는 스탯 올리기, 스킬 경험치 쌓기, 고급 이상의 장비 구하기 등 전투와 관련된 것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어 투자한 시간에 비해 데미지와 방어력이 매우 약했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저가 스킬 데미지와 무기 데미지를 상향해 줄 것을 지속해서 요구했지만, 환인은 묵묵부답으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래도 3주년 패치로 강화석이 도입되며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평판 포인트가 5만이나 필요해 대다수 유저는 그림의 떡이었다.
사냥으로 5만 포인트를 모으려면 뛰어난 장비를 가진 상위 1% 유저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이로 인해 저렙존에 상위 유저들이 대거 몰리며 몬스터를 싹쓸이해 중하위권 유저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리고 퀘스트를 통한 평판 포인트 획득은 퀘스트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별다른 도움이 안 됐다.
결국, 강화석은 보이기만 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아 유저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평판 포인트로 사이먼의 홀리메탈 블레이드나 강화할까?”
“오빠, 마음 급한 건 알겠는데, 참아야 해. 무기 하나 20% 오른다고 데미지가 확 올라가는 거 아니야. 알잖아.”
“그래도 20% 오르면 무기에 달린 공격력이 20이나 오르고, 힘도 0.6, 생명력도 60, 공속도 4%, 언데드와 악마형 몬스터에 대한 공격력도 10%나 올라. 여기에 패시브 스킬 효과까지 더하면 레어 아이템 하나 차는 것과 같은 효과야.”
“에픽이라 그런지 나쁘지 않네. 그래도 참아야 해.”
“왜?”
“직업 스킬 사는 게 더 급하니까. 필요한 직업 스킬 모두 사고, 그 다음에 강화석 사야 해. 그게 올바른 길이야.”
“무기를 강화해서 사냥 속도를 올리는 게 평판 포인트 더 빨리 모으는 길이잖아. 그게 원하는 스킬을 더 빨리 사는 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얻은 평판 포인트가 사냥해서 얻은 거야?”
“아니.”
“그런데 사냥해서 평판 포인트를 모으겠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어. 조금만 참아. 그러면 조만간 달라질 거야.”
“알았어.”
스킬부터 사야 하는 걸 몰라서 무기를 강화하는 게 낫겠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자이언트 판다를 사냥하며 내 공격력이 형편없다는 걸 알게 되자 충동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펑거스 숲의 몬스터와 스켈레톤, 맨드레이크를 잡을 때만 해도 내 공격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방어력과 생명력이 높은 자이언트 판다를 만나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실감 같은 기분을 맛보자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을 취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이언트 판다 사냥은 놈들이 사용하는 스킬과 공격 패턴을 알고 있어 크게 어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전투에 돌입하자 생각한 것보다 열 배는 더 힘들었다.
덕분에 온종일 사냥하고도 대나무 숲의 10분의 1도 처리하지 못했고, 잡은 자이언트 판다도 106마리밖에 안 됐다.
효율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템 드롭율도 최악으로 살이 뒤룩뒤룩 찐 거대한 사체를 얻은 게 전부였다. 이 때문에 침착함을 잃고 아이처럼 칭얼대는 창피한 모습을 보였다.
반지와 목걸이를 착용하면 공격력이 크게 오르지만, 그것도 에픽 아이템을 착용했을 때 얘기였지 공격력이 최대 50밖에 오르지 않는 레어 아이템으론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평타로 잡는 것도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 평타로 몬스터를 사냥하면 스킬 경험치를 쌓을 수 없어 당장은 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인내심을 갖고 사냥한 유저와 엄청난 데미지 차이를 보였다.
하린이 말처럼 참고 견디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참을 줄 알아야 최고가 될 수 있었다.
“농노들이 곰 고기 보면 엄청나게 좋아하겠다.”
“그렇겠지. 유일한 낙이 먹는 것과 섹스밖에 없으니까.”
“오빠, 우리는 그 유일한 낙을 언제 찾을 수 있는 거야?”
“헉!”
가죽을 벗기고, 이빨과 손톱을 뽑은 다음 소염·해독작용이 뛰어난 웅담만 빼고, 고기는 모두 큼직큼직하게 잘라 한 덩어리씩 나눠주자 농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중풍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곰 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중간 맛 정도로 서양에선 스테이크나 스튜로 요리해 먹었고, 일본은 전골, 중국은 곰 발바닥 요리를 황제에게 진상할 만큼 별미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웅담이 정력에 좋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요리법이 알려지지 않아 농노와 관리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 레오 영지의 농노들이 모모님과 하린님이 내려준 곰 고기에 깊이 감명받아 충성심이 10씩 올랐습니다. 모모님과 하린님은 3,000명이 넘는 NPC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 모모님이 위대한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업적 50,000포인트와 평판 50,000포인트를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
- 하린님이 위대한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업적 25,000포인트와 평판 25,000포인트를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
웃음꽃과 함께 농노들의 충성심이 대폭 오르자 또다시 업적과 평판 포인트가 왕창 쏟아졌다.
자이언트 판다를 사냥해 얻은 것은 돈도 안 되는 가죽과 이빨, 손발톱 그리고 10시간 가까이 사냥해 얻은 2,000포인트가 전부였다.
맨드레이크 던전과 비교하면 완벽한 쪽박으로 시간 낭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 쓸모없는 곰 고기를 농노들에게 나눠주며 손실을 만회하는 것은 물론 몇 배는 남는 장사로 바꿔놓았다.
이것이야 말로 업적 시스템을 최고로 훌륭하게 활용한 것으로 잔머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마나를 올려야겠어. 지금 마나양으로는 자이언트 판다 두세 마리 잡으면 끝이야. 이래선 스킬 경험치를 쌓을 수 없어. 당분간 마나에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야 할 것 같아.”
“나도 오빠하고 같아. 마나 5,000 될 때까지는 생명력 찍지 말아야겠어.”
“5,000? 그렇게 많이?”
“직업 스킬도 생각해야지.”
“네크로맨서 탈라한 던전과 보물 지도는 어쩌려고?”
“오빠 피통 나랑 비슷해지면 그때 작업할 거야. 빨라도 몇 개월 걸릴 테니 마나 올린 다음에 생명력 올려도 늦지 않아.”
생명력이 3,050밖에 안 됐지만, 빠른 스킬 경험치 획득을 위해 사냥과 업적 시스템으로 받은 포인트 전부를 마나 올리는데 사용했다.
당분간 맨드레이크와 자이언트 판다, 버그 베어, 황색 오크만 사냥할 계획이라 생명력을 올리지 않아도 죽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내로 래틀이 레어 아이템으로 흉갑과 장갑, 전투 장화, 투구를 만들어 주기로 해 그걸 모두 착용하면 방어력도 크게 올라 50레벨 이하 몬스터는 두렵지 않았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안전한 내 영지에서 사냥해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으로 약탈 길드와 살인자 유저에게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생명력부터 올려야 했다.
게임을 새로 시작한 유저는 포인트를 얻는 족족 생명력을 올렸다. 당연한 행동으로 피통이 작으면 장비가 좋아도 살아남을 수 없어 초반에는 무조건 생명력을 찍어야 했다.
문제는 현실 시간 6개월, 게임 시간으로 2년을 한 유저들도 마나를 거의 안 찍고 생명력을 올린다는 것이다.
스킬 살 돈이 없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약탈 길드와 살인자 그리고 PK 시스템을 악용한 악당 유저들 때문에 생명력에 포인트 대부분을 쓸 수밖에 없었다.
PK 시스템 악용은 게임에서 아주 만연한 행위로 한 놈이 유저를 때리고 도망치면 흥분한 유저가 도망친 PK 유저를 따라가 공격하게 된다.
이때 그놈과 한패인 놈이 중간에 끼어들어 유저의 공격을 일부러 맞아 정당방위가 성립되게 한 후 죽이는 것으로 이렇게 죽이면 살인자도 안 됐고, 아이템까지 한 개 뺏을 수 있어 아주 많은 악당이 즐겨 사용했다.
신입 유저들만 걸리는 게 아니라 오래된 유저들도 자주 걸려 몬스터가 아니라 이런 놈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많은 유저가 생명력에 포인트를 사용해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그런 위협 없이 편하게 사냥할 수 있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업적 시스템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클 순 없었다.
사냥만으로 열흘도 안 돼 60만 포인트를 얻으려면 장비 전체가 에픽에, 값비싼 물약을 물처럼 마시며 사냥해야 해 갑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3주년 이벤트로 영지와 작위를 받아 이만큼 성장한 것으로 남들은 현실 시간으로 1년 이상 걸릴 일을 열흘도 안 돼 이루는 황당한 짓을 했다.
포인트 113,555 중에 113,000을 마나로 바꾸자 마나가 2,130이 됐다. 하린이처럼 마나양을 5,000까지 올리려면 300,000포인트가 더 필요했다.
40레벨 몬스터를 혼자 7,500마리나 잡아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지금껏 해온 것처럼 하면 돼 내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음식으로 농노들의 충성심을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으면 벽에 부딪힐 수 있었다.
“오빠, 맨드레이크 주스 다 팔렸어.”
“은화 40개에 올린 것도 다 팔렸어?”
“어.”
“또 한 사람이 다 산 거야?”
“10초 단위로 팔린 거로 봐서 그런 것 같아. 시간으로 봐서 이 사람이 특별한 맨드레이크 주스도 산 것 같아.”
“모두 얼마야?”
“금화 62.8개. 현금으로 바꾸면 금화 개당 100만 원으로 계산해서 세금 제하고 56,457,200원이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네.”
“오빠가 잘 팔아서 그래.”
“혹시나 해서 올린 거지 팔릴 줄 알고 올린 거 아니야.”
“어쨌든 팔렸잖아. 그럼 잘 팔은 거지.”
결과론적으론 그랬다. 그러나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치밀한 작전과 흐름을 읽고 이런 결과를 낳은 건 아니라서 다음에도 이만큼의 이익을 남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빠, 원룸 빼서 바로 이사하자. 원룸 보증금하고 오빠 통장에 있는 돈 합치면 이것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어.”
“안 돼.”
“계약 기간 남아서 그래? 아줌마가 너무 싸게 줬다고 난리야. 뺀다고 하면 바로 빼줄 거야. 오늘이라도 뺄 수 있어.”
“15일 후에 또 사냥하면 최소 5,000만 원은 들어오잖아. 그럼 돈 생길 때마다 이사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아파트 살돈 모으면 그때 이사하자. 길어야 두세 달이야. 그것도 못 참아?”
“히잉. 알았어.”
하린이는 하루라도 빨리 이사하고 싶어 안달을 냈다. 이유는 단 하나 내 품에 안기고 싶어 그런 것이었다.
나는 매일 하린이가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걱정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내겐 하린이는 너무 과분한 존재였다.
그러나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하린이도 나처럼 내가 떠나면 어쩌나 걱정했다.
아무것도 없는 내 처지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콩깍지가 씌운 하린이는 내가 백마 탄 왕자라고 생각하는지 나보다 더 조바심을 냈다.
“하루에 수천만 원을 쓰다니, 돈이 썩어나나 보네.”
“돈 없는 사람에겐 1억이 엄청나게 큰돈이지만, 돈 많은 사람에겐 껌값이나 다름없어. 그 얘기 못 들었어? 밥 한 끼 먹겠다고 자가용 비행기 타고 유럽과 미국까지 갔다 온다는 얘기.”
“그런 얘기하지 마라. 라면 하나로 한 끼 때우는 사람 울컥해서 사고 칠 수도 있다.”
“앞으로 오빠가 더 많이 벌 건데, 왜 사고를 쳐?”
“내가?”
“응. 현실 시간으로 15일마다 맨드레이크 던전에서 6,000만 원씩 벌면 그것만 한 달에 1억2천이야. 영지 발전시켜서 거기도 벌고, 사냥해서 또 벌면 일 년에 100억 도 벌 수 있어.”
“100억?”
“그래. 100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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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