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63화 (6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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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63.

“형, 이따 2학년 선배들이랑 하는 단합대회는 오실 거죠?”

“미안해서 어쩌지, 집에 일이 있어서 오늘 모임은 못 갈 것 같아.”

“바빠도 잠시 들렀다 가세요. 선배들이랑 하는 첫 번째 모임인데 빠지면 뭐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 가면 안 되는 일이야. 꼭 가봐야 해.”

“선배들이 한 명도 빠지지 말라고 했는데.”

“다음에 나가면 되지.”

“하린이 너는 올 거지?”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들이랑 저녁 먹기로 했어.”

“이슬이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는데.”

“이슬이에겐 내가 따로 말할게.”

우리 둘 다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자 풀이 죽은 성우의 눈썹이 축 처졌다. 성우도 아직 친한 친구가 몇 명 없어 어디를 가든 우리와 함께 가려 했다.

정이슬만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밥도 같이 먹고, 수다도 떨고, 술도 한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이슬이 끼어들며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렸다.

“그것 말고도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뭔데?”

“형하고 하린 오늘 단합대회 참석하면 은택 선배에게 길드 가입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어.”

“나는 하린이하고 둘이서 조용히 사냥하는 게 편해. 사람 많은 곳은 싫어. 신경 써줘서 고맙다.”

“형, 대형 길드 들어가면 건드리는 놈들도 없고 정말 편해요. 하린이가 상당한 실력자라고 해도 혼자서 조폭 길드나 뒤치기 길드 감당할 수 없어요. 그러지 말고 들어오세요.”

“성우야, 나랑 오빠랑 알아서 할 테니까 너나 길드에서 왕따 당하지 말고 자리 잘 잡아. 네가 지금 우리 걱정할 때야?”

“은택 선배랑 이슬이가 있는데 내가 왜 왕따를 당해? 그럴 일 절대 없어.”

“그러면 다행이고.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눈치 잘 봐.”

“그럴 일 없다니까 왜 그래? 내 걱정하지 말고 생각 바뀌면 말해. 내가 은택이 형에게 가입시켜달라고 직접 말할 테니까.”

“알았어.”

마림 길드 길마 이은택과 친하다는 티를 팍팍 내는 성우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본성이 워낙 착하고 순수한 녀석이라 거드름을 비우거나 잘난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이은택, 정이슬과 계속 어울리면 성우의 착한 마음도 바뀔 수 있었다.

그 전에 정이슬이 성우를 뻥 차주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쉽게 나주지 않을 것 같았다.

눈치가 100단인 정이슬은 우리가 성우를 일부러 멀리한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곤 우리가 억지로 성우를 밀어내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아이큐만 높은 게 아니라 영리하고 눈치도 빨라 정상적인 방법으론 정이슬을 속일 수 없었다.

“하린아, 오늘 단합대회 참석 못 해?”

“어. 가족 모임 있어.”

“오빠는?”

“오빠도 중요한 약속 있어서 못 가.”

“그러면 우리도 가지 말아야겠다.”

“왜?”

“너 하고 형필 오빠도 없는데 거기 가서 뭐하겠어. 가봐야 짜증만 나지.”

“애들하고 놀면 되잖아?”

“1학년은 남자애들은 착한 편이라 나쁜 생각으로 접근하는 애 없어서 같이 밥 먹고 얘기해도 걱정이 없는데, 2학년은 그렇지가 않아.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커피 마시자, 밥 먹자, 술 마시자 장난 아니게 쫓아다녀.”

“정말?”

“어. 오늘 아침에도 민지하고 수영, 연아에게 찝쩍대는 2학년 선배가 다섯 명이나 있었어. 싫다고 하는데도 강의실 앞까지 따라와서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지랄을 떨다 돌아갔어.”

“나쁜 놈들. 일하면서 공부하는 애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뭐하는 짓이야.”

“그뿐인 줄 알아? 마림 길드에서 들어오라고 난리야. 들어오면 장비 다 맞춰주겠다고 매일 와서 얘기해.”

“이은택이?”

“섭외부장이고 허여멀겋게 생긴 이상한 놈이 매일 찾아와 지랄이야.”

“결국 이은택이 시켰을 거 아니야?”

“그렇지. 평소 하는 짓을 보면 그놈이 시킨 게 확실하지.”

“평소 하는 짓이라니?”

“그 새끼 소문 몰라?”

“여자를 밝힌다는 얘기는 들었어.”

“밝히는 정도가 아니야. 학교 애들은 기본이고, 아이돌과 연예계 지망생 애들까지 건드리고 다녀. 얼마나 심한지 연예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오죽하면 경호원들 붙였겠니.”

“이은택 때문에 붙인 거야?”

“어. 안 그러면 납치당할 수도 있거든.”

“정말?”

“납치는 아니고 음료수하고 술에 약 탄다는 소문이 있어.”

“이런 X자식!”

“X자식은 약해. X쌍놈의 자식이야!”

성우가 밖으로 나가자 히어로걸스 멤버들이 강의실로 우르르 들어와 우리 앞자리로 앉았다.

1학년 단합대회 이후 하린과 급격하게 친해진 히어로걸스 멤버들은 항상 우리 앞이나 뒤에 앉아 하린과 수다를 떨었다.

히어로걸스 멤버들은 잘나가는 아이돌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주 평범한 성격으로... 무진장 수다스러움... 하린과는 성격이 잘 맞아 오랜 친구처럼 잘 지냈다.

덕분에 나는 꽃밭에서 놀았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린과 히어로걸스 사이에 있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가 난무했고, 귀가 먹먹할 만큼 시끄러워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나 한 명뿐이라 수시로 음료수와 과자, 음식 심부름을 해야 해 한 없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학생들의 생각만큼 행복한 건 아니었다.

“성우가 그러는데 하린이 너 상위 1% 안에 드는 강자라며?”

“그 정도 아니야. 그냥 조금 하는 편이야.”

“성우가 수다스럽긴 해도 거짓말할 애는 아닌데. 상위 1% 맞지?”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야?”

“우리 조금 있으면 3집 활동 끝나. 그러면 다음 음반 준비할 때까지 4~5개월은 쉬거든. 놀 때 우리도 너 따라 다니면서 사냥 좀 할까 하고.”

“앨범 활동 끝나면 드라마도 찍고, 영화도 찍고, 연극도 하고, CF와 예능도 나가던데, 게임할 시간이 있어?”

“이번 노래는 별로였는지 섭외 들어온 곳이 거의 없어. 최소 3개월은 숙소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어쩌면 2~3년 동안 음반 안 내줄 수도 있어. 인기 없다고 판단하면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 내버려두는 일도 이 바닥에서 아주 흔하니까.”

“무슨 소리야? 이번 음반 차트하고 가요 프로에서 1위 했잖아.”

“그거야 고정 팬들이 있으니까 한 거지 노래가 좋아서 한 거 아니야. 그것도 타이틀 곡 딱 한 곡만 잠깐 1위하고, 다음 날 곧바로 5위로 밀려났어. 며칠 후에는 보이지도 않았고. 이 정도면 완전히 망한 거야.”

“이런... 내가 TV를 안 봐서 잘 몰랐어. 미안해.”

“아니야. 잘 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어떻게 매일 잘 되겠어.”

작년 초에 데뷔한 히어로걸스는 1집이 대박이 나며 작년 상반기 최고의 아이돌로 주가를 올렸다.

그러나 두 번째 음반은 1집의 반의반도 안 되는 성과를 내며 불안감을 드러냈고, 3집은 2집보다 더 심하게 떨어지며 연예계 안팎에서 이제 끝난 거 아니냐는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하린과 나는 몰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하린이도 TV를 잘 보지 않아 연예계 소식에 매우 둔감했다.

하린이뿐만 아니라 The Age of Hero를 하는 유저는 남는 시간 대부분을 게임에 투자해 대한민국은 The Age of Hero 출시 후 TV 시청률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방송관계자들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더욱 The Age of Hero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연예인인지 일반인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 내에는 방송 매체가 없어 공연과 팬 사인회, 광고판이 아니면 얼굴을 알릴 수 없어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다음 곡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기획사 사장님이 하는 거지.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인형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짜인 각본대로 춤추고, 노래하고, 예쁜 척 웃는 게 전부야.”

“연예인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꿈을 갖고 한 거지만, 막상 해보니까 생각한 것과 많이 달라. 그래도 후회하진 않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그것만 해도 어디야. 대부분은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다음 앨범은 잘 될 거야. 너무 실망하지 마.”

“그래야지. 다음 앨범까지 안 되면 그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아이돌 한 팀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4억 원 정도로 한해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만 최소 50개가 넘었다.

성공하는 그룹은 1개 내지 많아야 2~3개로 성공확률은 5% 미만이었고, 심할 때는 한 그룹도 성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때문에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켜 성공시킬 확률이 로또만큼 어렵다는 말이 연예계에 파다했다.

그런데도 많은 기획사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는 건 성공하면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작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까지 벌어들여 한 팀만 성공해도 수십 팀을 다시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공한 아이돌도,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도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무리한 연습으로 인한 부상, 원치 않는 다이어트와 성형, 인격모독, 성상납 등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부조리가 연예계에 만연했다.

다현이가 생각했던 꿈과 많이 다르다고 한 말은 이런 것을 얘기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현이는 대형 기획사 소속이라 지저분한 꼴을 조금밖에 안 본 편이었다.

이름도 없는 소형 기획사, 유령 기획사에 들어가 죽도록 일하고, 몸까지 버리고 나온 아이들과 비교하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도와줄 거지?”

“활동 종료되면 말해. 많이는 못 도와줘도 최대한 노력할게.”

“고마워 친구야! 앞으로 더 잘할게.”

잔정이 많은 하린이 히어로걸스 멤버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쳐다보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도와준다고 승낙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아 누굴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히어로걸스는 도와주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됐고, 도움이 안 되더라도 친구라면 도와주는 게 맞아 제지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영주라는 걸 밝힐 때까지는 영지에 데려올 수 없어 수도 근처 사냥터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을 테니 오빠에게 치근대지나 마.”

“치근대다니? 나는 순수하게 오빠로서 좋아하는 거야. 그렇지 얘들아?”

“맞아. 나도 형필 오빠 착하고 순수해서 너무 좋아.”

“나는 그것도 좋지만, 키 크고 잘 생겨서 좋아.”

“너희 그러면 안 돼. 나처럼 다 좋아해야 진짜 좋아하는 거야. 안 그래요 형필 오빠?”

“.......”

“이것들이 정말 죽고 싶어?”

“하린이 화났다. 모두 도망쳐.”

“거기서. 너희 오늘 걸리면 죽었어!!”

“꺄악~~~”

다현에 이어 연아와 아리, 진아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자 하린이의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농담으로 한 얘기였지만, 진짜인 것처럼 진지하게 말해 듣는 나도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하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정말 화가 난 것처럼 주먹을 흔들며 뛰어다녔다.

***** 변경사항 ******

던전 리스폰이 게임 시간 20일 = 현실 5일에서 --->

게임 시간 60일 = 현실 15일로 바뀌었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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