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57화 (5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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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확장

57.

정이슬의 남자 친구를 알아보려 한 것은 한 번도 남자친구 자랑을 한 적이 없다는 하린이의 말이 신경을 자극해서였다.

하린이에게 대놓고 자랑할 정도면 보통 남자 친구는 아니라는 뜻으로 아주 대단한 남자 친구를 사귄다면 놈을 이용해 하린이를 더욱 괴롭힐 수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어떤 놈인지 알아내 대비책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면 피해를 완벽하게 막진 못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같은 강도로 맞아도 모르고 맞는 주먹보다 알고 맞는 주먹이 훨씬 덜 아팠고, 아파도 다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닷새 동안 헛걸음을 하자 하린에게 말하고 하루 이틀 따라붙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던 중에 3층 남자 화장실에서 2학년 선배들이 하는 소리를 우연히 엿들었다.

그때 나온 이름이 마림 재단과 둘째 아들 이은택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며 떠들어대던 선배 3명은 이은택과 매우 친한지 은밀한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

어디 어디 모텔과 호텔을 갔다는 둥, 며칠 전부터 이은택의 오피스텔에 동거하다시피 산다는 둥 원색적인 얘기들을 쏟아냈다.

누구 아들인지 알아내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워낙 유명한 집안이라 마림 재단이라고 인터넷에 치자 기사가 수백 개가 넘게 떴다.

80%가 비리에 대한 기사로 저질 급식, 부실 공사, 등록금 횡령, 학점 조작 등 사학에서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했다.

그중에는 이은택에 관한 제보도 30개가 넘었다. 모두 익명으로 올라온 글로 100% 신뢰할 순 없지만, 중·고등학교 때 놀았던 흔적과 대학 1년간 사고 친 기록이 상세하게 올라와 있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2학년 남학생들이 자주 모이는 3층 흡연실과 화장실을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마다 기웃댔다.

2학년 남학생 상당수가 이은택의 돈에 넘어갔는지 이곳저곳 몰려다니며 나쁜 짓 한 얘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이런 건 녹음해 두면 차후에 쓸데가 있어 나쁜 짓 한 걸 자랑처럼 떠들어대는 놈들의 목소리를 핸드폰에 모두 녹음했다.

인터넷에 올린 제보가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 서자 이은택의 가족에 대해 알아봤다. 그러자 더욱 인터넷에 올린 글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은택의 증조할아버지 이연수는 일제 강점기 유명한 고증 사학자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선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고증사학은 역사를 증명할 자료가 없으면 가짜라고 우기는 이론으로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든 역사학이었다.

일제는 한반도 식민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지역에 있는 우리 역사 자료를 훼손한 후 우리 역사가 날조된 것이라고 우기며 우리 민족을 뿌리부터 없애려 지랄발광을 떨었다.

이 일에 가장 앞장선 조선 역사학자가 이은택의 증조할아버지 이연수였다. 이연수는 일제의 명령에 따라 친일사학자들을 규합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한편 친일의 대가로 막대한 부를 쌓아 현재의 XXX대학, XX대학, XX대학의 전신이 된 학교를 인수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손아귀에 넣고 자라나는 새싹들을 우민화와 식민지 교육에 물들게 하는 등 해방 이후 친일파가 이 나라를 집어삼킬 수 있도록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은택의 할아버지 이홍득과 아버지 이만철도 증조할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어 학생들의 머리에 친일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썩어빠진 국회의원, 공무원, 검사, 변호사 등과 손잡고 불법적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등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 교육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다.

그런데도 법은 언제나 이들 편이었다. 법을 만드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돈 가진 사람, 교육자라고 떠벌리는 사람 등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이들 편으로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지만, 누구도 이들을 건들지 못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집안 전체에 썩은 내가 진동하자 이은택도 초등학교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을 여실히 보여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자 선생님을 대걸레 자루로 두들겨 패 갑질이 무엇인지 학교에 각인시켰다.

중학교에 올라가선 불량 서클을 조직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두들겨 패 병신으로 만들고 여자애들을 건드리는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몸이 큰 고등학교 때부턴 더욱 계집질에 열을 올려 집단 성폭행으로 경찰서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이용해 힘없는 사람과 썩은 공권력, 기레기의 입을 틀어막으며 당당히 모범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들어갔다.

그중 이은택의 죄까지 뒤집어쓴 똘마니 한 명이 많이 억울했는지 중·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을 인터넷에 아주 자세하게 올려 이은택이 어떤 짓을 하고 다녔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은택과 관련된 글을 올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이은택의 이름을 전부 거론하지 않고 살짝 바꾸거나, 비슷한 학교 이름과 성만 넣는 등 걸리지 않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렇게 글을 올리면 실명을 거론한 게 아니라서 문제 삼기 어려웠고, 포털 사이트 업체에 글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면 언론에서 냄새를 맡을 수도 있어 이제껏 이은택과 관련된 내용이 인터넷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정이슬과 이은택이 사귄 건 현실 시간으로 2주일 전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 사귀게 됐다.

여자를 마음이 아닌 얼굴과 몸으로 보는 이은택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상형을 만났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질렀고, 남자를 됨됨이가 아닌 돈과 권력으로만 보는 정이슬은 이은택의 배경에 홀딱 반해 눈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이 아닌 욕망에 반했지만...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며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발전했다.

“언제 알게 된 거야?

“게임 시간으로 3일 전에.”

“그런데 왜 얘기 안 했어?”

“네가 가슴 아파할까 봐.”

“이슬이 사귄 남자가 30명도 넘어. 그중에 돈 많은 놈도 여럿 있었어. 처음도 아닌데 가슴 아플 게 뭐가 있어. 그리고 나 이슬이에게 관심 끊은 지 오래야. 누굴 사귀든 누구와 자든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니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하아.”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했지만, 깊은 한숨에 담긴 마음은 복잡하기만 해 말과 마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드러냈다.

친구를 걱정하는 하린이 마음은 이해했지만, 그만 포기해야 한다. 정이슬을 잊지 못하면 하린이의 인생까지 망칠 수 있었다.

친절과 호의는 상대도 내게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 베푸는 것이었지, 적개심을 가진 상대에겐 절대 베풀어선 안 될 행동이었다.

그건 빈틈을 드러내는 것으로 상대의 공격을 불러들였고, 최악엔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까지 다치게 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칼로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하린이처럼 한 번 사귀면 끝까지 가려는 신의 있는 사람은 더욱 힘들었다.

이들은 좋았던 기억, 같이하자던 맹세 등을 잊지 못해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바보처럼 상대에게 당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못해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지만, 하린이가 그런 성격이란 게 너무 고마웠다.

작은 손해에도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시대에서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었다.

더군다나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건 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하린아, 앞으로 단합대회, MT 그런 거 모두 불참하자. 그게 낫겠어.”

“모두 안 나가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

“드문드문 참석해도 욕먹는 건 마찬가지야. 어차피 욕먹을 거 다 빠지고 그 시간이 데이트하는 게 100만 배는 더 나아.”

“데이트라면 나도 좋아. 그런데 데이트 어디로 갈 건데?”

“사냥터.”

“헉!”

대학생활도 사회생활이라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인간관계를 넓혀야 했다. 그러나 정이슬이 이은택을 이용해 하린을 괴롭힐 수도 있어 당분간 수업을 빼곤 일절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빠, 이거로 귀 틀어막은 다음에 이거 써. 그러면 맨드레이크의 비명이 아주 작게 들려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아.”

하린이 건네준 건 하얀 솜뭉치와 귀 전체를 덮는 검은색 헤드셋 귀마개였다. 특별한 게 전혀 없는 아이템으로 맨드레이크의 비명은 고막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는 스킬이라 귀만 막으면 큰 어려움 없이 놈들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몬스터도 고막만 공격하는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진동으로 뇌와 심장까지 공격하는 몬스터도 있었다.

이런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솜뭉치와 귀마개보다 더한 준비를 해야 했다. The Age of Hero는 단순히 장비 아이템만 좋다고 끝이 아니었다.

상황에 맞는 다양한 특수 아이템과 장비가 있어야 고 레벨 몬스터를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면 모든 대화는 귓속말로 해. 청각이 예민한 놈들이라 말하면 도망칠 수도 있어.”

“자리도 마음대로 바꿔?”

“안 그러면 어떻게 땅을 뚫고 나와 공격하겠어.”

“그렇긴 하네.”

“몬스터 공부 안 할 거야?”

“맨드레이크 찾아봤는데, 네가 말한 것 빼고 다른 내용은 없었어.”

“사람들이 많이 읽는 자료만 보지 말라고 했지. 그게 가장 정확한 자료라는 뜻은 아니란 말이야. 원하는 것과 관련된 자료는 모두 찾아봐야 해. 그중에는 사람들이 놓친 아주 중요한 자료도 가끔 있어. 그게 진짜 도움이 되는 정보야.”

“알았어. 내일부터는 모두 읽을 게.”

“매일 확인한다.”

“알았어.”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마법 고글을 썼다. 잔소리는 군대 있을 때도 많이 들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그러나 하린이가 하는 잔소리와 군대에서 들은 잔소리는 전혀 달랐다.

하린이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잔소리였고, 군대 선임과 장교가 하는 잔소리는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들이 할 일을 내게 억지로 미루려고 하는 잔소리였다.

똑같은 말도 다르게 들리는 건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하린의 잔소리는 나를 사랑하고 걱정해서 하는 소리로 한 번도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입구에는 없어. 같이 들어가.」

「응.」

맨드레이크 던전은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숲이었다. 그러나 숲이 아닌 커다란 지하 동공으로 지구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영화나 글에서 등장하는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빛도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 동공에 우거진 숲이 있는 건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로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맨드레이크 던전 1층밖에 없어?」

「아닐 거야. 지금까지 들어간 던전 중에 3층 이하는 없었어. 40레벨 던전이면 못해도 5층까진 있을 거야.」

「많이 나와야 할 텐데.」

「잘 될 거야. 내가 3개월로 줄여달라고 계속 빌고 있거든.」

「종교 있어?」

「아니. 무교야.」

「없는데 누구에게 빌어?」

「삼신할머니에게 빌고 있어. 잘 돼서 어서 오빠랑 결혼해 오빠 닮은 예쁜 아기 낳게 해달라고.」

「컥!」

「이 반응은 뭐야? 나랑 살고 싶지 않다는 거야? 벌써 볼 장 다 봤다는 뜻이야?」

「아.아니야. 너무 좋아서 사레들어서 그.그런 거야.」

「정말이지? 좋아서 그런 거지? 다른 뜻 없지」

「당연하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믿겠어. 그래도 조심해. 한 번만 더 컥 하고 소리 지르면, 그날로 켁 하고 인생 끝내는 수가 있어.」

「아.알았어.」

마법 고글을 쓰고 좌우를 둘러봤지만, 보이는 건 온통 잡목과 기다란 잡초밖에 없었다.

다른 인터넷 게임은 지도가 화면에 있고, 그 안에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 자세하게 표시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는 상점에서 파는 종이 지도가 전부로 원하는 지역을 찾아가려면 지도를 보고 따라가야 했다.

또한,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기능도 없어 유저가 눈으로 몬스터를 찾아야 했다.

디텍팅 주문을 사용하면 몬스터를 찾을 수 있지만, 초급은 범위가 30m에 불과했고, 상급을 마스터해도 100m가 고작이었다.

더군다나 가격이 무려 금화 5개에 사용할 때마다 마나를 100씩이나 잡아먹지만, 지속형이 아닌 단발형으로 몬스터가 움직이면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라 쓰는 유저가 거의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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