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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확장
56.
“내일부터 전투마 타고 학교 다니면 안 되겠네.”
3주년 이벤트 약속대로 영주를 선발했는지, 선발했다면 누군지 공개해야 한다는 글이 500개도 넘게 올라왔다.
이런 글과 함께 영주로 당첨된 사람을 봤다는 글도 수백 개나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10대 대형 길드 길마와 강만두를 비롯한 최상위 유저들, 대기업 사장들이 돈을 주고 영주를 샀다며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글로 읽어볼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사람이 본 글을 보자 등골이 오싹했다. 나와 하린을 영주로 지목한 글로 전투마를 몰고 XX대학교로 이동하는 사진도 함께 올려놓았다.
사진에는 기다란 후드 로브로 얼굴과 몸을 완벽히 가리고, 말도 갑주를 씌워 우리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글과 그림을 올린 유저는 2~3일에 한 번씩 남자와 여자로 보이는 남녀가 유저는 살 수 없는 값비싼 말을 타고 포털에서 XX대학교 근처까지 이동하는 걸 목격했다며 나와 하린이 영주일 가능성이 크다며 의심했다.
그러자 1,000명이 넘는 유저가 자신들도 그 모습을 목격했다고 답글을 달았고, 사진을 올린 유저도 100명이 넘었다.
이러자 너도나도 의심된다며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좋아요’를 눌러 올라온 지 하루 만에 베스트 10에 들며 사진과 함께 큰 제목으로 사이트 한쪽을 장식했다.
“평범한 후드 로브지만 열흘 넘게 입고 다녀 학과 애 중에 우리를 의심하는 애가 있을 수도 있겠네. 캡처 생각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어.”
아주 평범한 후드 로브라 옷이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러나 사진이 선명하게 나와 신장 차이가 확실하게 보였고, 대략적인 체형도 알 수 있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면 단번에 우리를 의심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지만, 한 번 주목받으면 계속 주시하는 사람이 생겨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고, 다니는 학교도 알려질 수 있어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이거야말로 가장 생각하기 싫은 상황으로 사진 속 인물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확실한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그래야 귀찮은 똥파리들이 꼬이지 않았다.
“오빠!”
“언제 왔어?”
“지금.”
“미안해. 뭐 좀 보느라고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어.”
“괜찮아. 나도 집중하면 내 방에 엄마, 아빠 왔다 가도 몰라. 그런데 뭘 보는데 그렇게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어?”
“우리 사진 올라온 거 보고 있었어.”
“우리 사진? 우리 사진이 왜 히어로 에브리 사이트에 올라와?”
“전투마 때문에 영주로 의심된다고 올라왔어.”
“아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놓고 머리가 복잡해 깜빡 잊고 있었네. 미안해 내 잘못이야.”
“네 잘못 아니야. 전투마를 끌고 나오면 사람들이 주목할 거란 걸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오빠는 게임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고, 나는 3년이나 됐어. 당연히 내가 챙겼어야 해. 그러니 내 잘못이지.”
“잘잘못 얘기는 그만하자. 누구 잘못인지 중요하지도 않고, 얘기해봐야 도움도 안 돼.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그런 일을 따진다는 것도 우습고.”
“알았어.”
누가 잘못했는지 따질 것도 없었고, 따진다고 해도 둘 다 잘못이라 누워서 침 뱉기였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수습하느냐 그것이었지 책임 전가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됐다.
“하루 만에 100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어. 이건 최소 1,000만 명 이상이 이 글을 봤다는 얘기야.”
“그러면 학과 애들도 봤겠네?”
“그게 가장 문제야. 다른 사람은 어쩌다 한 번 본 거니까 크게 신경 쓸 게 없지만, 우리가 입은 로브 후드를 매일 본 학과 애들은 분명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거야.”
“으음... 오빠 신고 있는 신발 키 높이 아니지?”
“어.”
“무두장이 불러서 신발 굽 높이 5cm 올려달라고 해. 그리고 어깨에 뽕도 좀 넣어. 나는 반대로 신발 굽 최대한 낮춰 달라고 할게.”
“그걸로 되겠어?”
“얼굴도 안 나왔고, 몸매도 완벽히 드러나지 않았어. 남자와 여자 둘이라는 것과 매일 같은 색, 같은 모양의 후드 로브를 입고 다녔다는 게 전부야. 그 후드 로브 입고 다니는 사람만 수도에서 족히 1,000만 명은 될 거야.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야. 정말 아니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때 발끈하지만 않으면 돼.”
“그건 그렇게 한다고 쳐도 우리가 수도 근처에서 사냥하는 걸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그 부분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오빠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거 성우가 알잖아. 그리고 나랑 사냥 다닌다는 것도 알고. 알리바이는 이것만 해도 충분해. 그래도 모르니까 수도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위성도시 파우드론 근처에 있는 황금 어금니 황색 오크 부족을 사냥한 것으로 입을 맞추자. 내가 그곳 형태와 몬스터 분포도, 파우드론의 모습, 상가 위치도 자세하게 알려줄 테니 외워.”
“학과 애들이나 학교 애들 중에 그곳에서 사냥한 애들도 있을 거 아니야?”
“황금 어금니 오크 부족은 아틸라 제국에 있는 황색 오크 부족 중 세 손가락에 안에 드는 커다란 무리야. 놈들이 차지한 땅만 반경 200km로 학과 애들이 그곳에서 사냥해도 마주칠 일이 없어.”
“알았어.”
우리랑 가장 친한 성우가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기 3일 전 성우에게 영주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 말이 자꾸 신경을 거슬렸다.
“강의실에 모인 첫날 영주 이벤트 당첨됐다는 문자 받았다고 성우에게 말했어.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The Age of Hero 이벤트 당첨됐다는 문자 나는 100통도 넘게 받았어. 유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중에 그런 메시지 안 받은 사람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모르니까 메시지 지워. 발신번호가 남아 있으면 의심할 수도 있어.”
“알았어. 지울게.”
얘기가 끝나자 게임에 접속해 무두장이 브랜틀을 불러 내가 신은 신발 굽을 5cm 올려달라고 했고, 하린이의 신발 굽은 반대로 최대한 낮춰달라고 했다.
내일 아침까지 고쳐놓으라고 하고 지하 무기고에 내려가 마법 고글을 챙겼다. 밤새 사냥하고 바로 학교로 갈 계획이라 사냥하다 먹을 빵과 햄, 우유, 깨끗한 물을 챙겨 영주성을 나왔다.
브랜틀을 만나기 전 레이첼을 불러 사냥 중에 먹을 음식을 준비해놓으라고 하자 놀라 팔에 매달려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아란테스 대륙 사람들에게 야간에 몬스터를 잡으러 간다고 하면 모두 죽으러 가는 줄 알았다.
해가 진다고 몬스터의 능력이 더 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80%가 야행성으로 낮보다 움직임이 활발해 밤에 잡기가 더욱 어려웠다.
또한, 시야도 매우 좁아 사냥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해 낮보다 위험이 4~5배는 증가했다.
이 때문에 아란테스 대륙 사람들은 날이 저물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바깥출입을 자제했다.
유저들도 밤 사냥은 꺼리는 편이었다. 이유는 마법 고글을 써도 시야가 대낮의 절반도 안 됐기 때문이었다.
시야가 절반 이하라는 건 위험이 3~4배는 증가한다는 뜻으로 몬스터가 마음먹고 숨으면 찾기도 어려웠고, 놈들이 쏜 암기와 마법도 피하기가 쉽지 않아 어두운 밤 사냥은 잘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던전은 군데군데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어 마법 고글 없이도 무난히 사냥할 수 있어 유저들이 꺼리진 않았다.
맨드레이크 던전이 아주 특이한 경우로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던전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울며불며 안 된다고 매달리던 레이첼이 급기야 품에 안겨 엉엉 울며 놓아주지 않자 몽실몽실한 커다란 가슴이 욕망을 부채질했다.
하린으로 인해 욕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레이첼이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자 이성을 상실한 손이 자꾸만 가슴을 만지려 움찔댔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인내심 하나로 이겨내며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열 번 넘게 약속한 다음 품에서 레이첼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왜 그런 짓을 했냐며 바보 같은 이성을 욕했다.
“오빠, 내일 1·2학년 통합 단합대회 있는데 어떻게 할 거야?”
“참석 안 하면 난리 치겠지?”
“안 간다고 자기들이 우릴 어쩌겠어. 학교가 군대도 아니고, 감옥도 아닌데.”
“2학년들이 벼른다는 소문이 있어.”
“왜?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초기에 잡겠다는 뜻이겠지.”
“웃기지도 않는 것들이네. 지금이 1970년대도 아니고 꼴랑 1년 선배라고 유세 떨겠다는 거야?”
“2학년이 우리 학과 첫 번째 입학생이잖아. 자기들 딴에는 전통을 세우겠다고 그러는 거겠지.”
맨드레이크 던전으로 이동하며 내일 1·2학년 통합 단합대회에 참석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대학에 입학하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보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인간관계도 훨씬 복잡해 신경 써야 할 일도 몇 배는 많았다.
“억지로 술 먹이고, 잘못도 없는데 기합 주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 주는 게 전통이야? 그건 전통이 아니라 고문이야. 범죄행위라고.”
“그런 걸 권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 갑질 천국이라지만, 지성의 요람인 대학까지 그러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육상부 있을 때도 지랄 떠는 선배들 때문에 짜증 나서 도는 줄 알았는데, 대학까지 이래야겠어.”
“동아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일부 대학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단체로 후배들 창피 주는 짓도 서슴지 않아. TV에 자주 나오잖아.”
“나는 그런 연놈들 선배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욕먹어도 안 갈 거야.”
시대가 바뀐 지 오래였지만, 정신은 아직도 시대를 못 따라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도 구시대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한 채 쥐꼬리만 한 권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사람들을 괴롭혔다.
2학년 선배 중에도 이런 사람이 여럿 있어 어떻게 하면 자기가 우월하다는 것을 1학년들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 돌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정이슬이 남자친구가 더 문제야.”
“이슬이 남자친구가 왜?”
“우리 학과 2학년 이은택이야.”
“우리 학과 선배란 말이야?”
“어. 놀랐어?”
“아니. 짜증 나는 거지 놀라지는 않았어. 동기들 다음은 당연히 2학년 선배들 사귈 거라고 생각했어. 내년쯤에는 학교 전체 남자들과 놀 테고.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그랬으니까.”
“정이슬이 사귀는 남자가 2학년 선배라는 건 문젯거리가 될 것도 없어. 이은택의 배후가 문제지.”
“배후라니?”
“이은택, 마림 재단 이사장 둘째 아들이야.”
“마림 재단? 그게 뭐 하는 곳인데?”
“우리가 다니는 XX대학교를 포함해 대학 3개와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수십 개를 거느린 사학 재단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이야. 학교 이외에도 The Age of Hero 출자하는 등 아주 각종 사업에 진출해 대기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사학 비리로 신문과 방송에도 자주 이름이 나와.”
“이슬이가 비리 사학 재단 이사장 아들과 사귄다는 말이지?”
“응.”
정이슬을 만난 첫날 엄청난 부자에 얼굴도 잘 생겼고, 몸도 좋고, 정력도 끝내주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자랑한 말을 토대로 진짜 남자 친구가 누구인지 은밀히 알아봤다.
하린이가 항상 옆에 있어 화장실을 가거나 음료수를 뽑으러 갈 때마다 잠시 홀로 빠져나와 정이슬과 친하게 지내는 애들을 몰래 따라가 얘기하는 걸 엿들었다.
그러나 아직 친한 친구가 없는지 정이슬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매일 허탕만 쳤다.
정이슬을 미행하면 하루 안에 남자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지만, 하린이가 떨어지지 않으려 해 소득 없이 시간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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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만 가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