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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확장
55.
“던전 탐사는 작업 끝나고 밤에 하는 게 좋겠어. 아주 어두운 동굴이라 지금 들어가나 이따 밤에 들어가나 안 보는 건 마찬가지야.”
“어두우면 몬스터를 어떻게 잡아?”
“밤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보여주는 마법 고글을 쓰면 되지.”
“마법 고글?”
“마법 고글이 뭔지도 몰라?”
“스키 탈 때 쓰는 고글하고 모양이 같지?”
“어.”
“그거면 지하 무기고 금고에 2개 있어. 전에 뭐가 들었는지 열어봤는데 있더라.”
“다행이다. 그거 하나에 금화 5개나 하는데.”
“헉!”
동쪽 펑거스 숲을 벌목한 지 5일째 되던 날 숲 속에서 커다란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내 키의 두 배쯤 되는 동굴은 한 번에 남자 3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가도 될 만큼 큰 크기로 입구에 안개 같은 뿌연 연기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곳은 며칠 전에도 왔던 곳으로 그때는 울창한 나무와 풀에 가려 동굴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벌목하는 농노들 근처에서 주위를 샅샅이 뒤지며 약초를 캐 나무와 풀, 돌에 가려져 있던 맨드레이크 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영지가 백만 배는 더 괜찮은데.”
“별로라며?”
“그땐 잘 몰라서 그런 거고, 지금은 달라. 아주 좋아.”
“갑자기 왜 좋아졌어?”
“맨드레이크가 있잖아. 그것도 필드가 아닌 던전으로. 이거야말로 노다지지.”
“맨드레이크가 노다지라고 불릴 만큼 좋은 아이템을 잘 줘?”
“맨드레이크가 뭔지 몰라?”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사람 닮은 뿌리 식물이잖아. 얼굴은 쭈글쭈글한데 몸은 아이처럼 생겼고, 땅에서 뽑으면 캑캑 소리 지르는 이상한 식물. 영화에서 보니까 마비에 걸린 아이들 치료제로 쓰이던데, 그래서 노다지라고 한 거야?”
“아주 엉뚱한 곳에서 알아내긴 했지만, 얼추 맞아. 맨드레이크는 장비 아이템은 안 줘. 대신 맨드레이크 주스라고 불리는 유리병에 담긴 아이템을 드롭해. 이걸 마시면 석화와 마비, 공포, 혼돈 네 가지 상태 이상 공격을 동시에 막을 수 있어. 걸린 사람에게 사용해도 증상이 풀리고.”
“얼마나 하는데?”
“한 병에 은화 30개.”
“30만 원? 뭐가 그렇게 비싸?”
“60레벨 이상 정예 몬스터부터 아주 강력한 상태 이상 스킬을 사용하는 놈이 있어. 이런 놈에게 걸리면 꼼짝도 못 하고 죽어. 맨드레이크 주스를 마시면 10분 동안 가장 까다로운 석화와 마비, 공포, 혼돈 상태 이상 공격에 걸리지 않아. 그래서 비싼 거야.”
겨우 10분 동안 석화와 마비, 혼돈, 공포를 막아준다고 30만 원이나 하는 비싼 물약을 먹는 유저가 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위 1% 안에 드는 유저는 고 레벨 몬스터를 잡기 위해 얼마든지 돈을 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럴 능력도 충분했다.
고 레벨 몬스터를 잡을수록 값비싼 장비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높아졌고, 그중에서도 정예와 보스 몬스터를 잡을수록 확률이 더욱 올라갔다.
이 때문에 상위권 유저들은 60레벨 이상 정예와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 기를 쓰고 덤볐다.
그리고 몬스터에게 죽지 않으려면 맨드레이크 주스 한 병은 상비약처럼 가지고 다녀야 했다.
평생 60레벨 이하 몬스터만 잡겠다면 없어도 됐지만, 그게 아니라면 60레벨 정예 몬스터와 언젠가는 마주치게 된다.
그때 놈이 석화와 마비, 혼돈, 공포 네 가지 중의 한 가지를 사용한다면 죽었다고 노래 불러야 했다.
빠른 몸놀림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100% 피할 수 있다면 없어도 됐지만, 단 한 번이라도 놈의 강력한 스킬에 걸리면 그걸로 끝장이었다.
석화와 마비, 혼돈, 공포는 상태 이상 스킬 중 가장 치명적인 효과로 걸리면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도 없었고, 두려움에 혼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등 걸리면 에픽 아이템으로 도배해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른 게임은 죽으면 경험치만 날리고 끝났지만, The Age of Hero는 스탯 10%가 날아가고, 착용한 아이템도 한 개 바닥에 떨궈 절대 죽어선 안 되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하린이가 노다지라고 부른 것이었다. 장비와 스탯을 떨구고 싶지 않은 유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사야 하는 아이템이었고, 최고가 되고 싶은 유저는 물 마시듯 마셔야하는 아이템이 맨드레이크 주스였다.
“몇 레벨까지 방어하는데?”
“일반 맨드레이크가 드롭하는 주스는 보스 몬스터는 70레벨, 일반 몬스터는 90까지 상태 이상 공격까지 막아주고, 맨드레이크 보스가 드롭하는 주스는 보스는 90레벨까지, 일반은 110까지 막아준다고 히어로 에브리에 나와 있어. 그리고 한 가지 더 특별한 효과가 있어.”
“그게 뭔데?”
“정력제! 효과가 끝내주게 좋아 한 병만 마셔도 밤새 여자를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한대. 오빠 다 줄 테니까 기대해. 호호호호.”
“컥!”
두 갈래로 갈라진 뿌리가 사람 모습 아주 비슷한 맨드레이크(Mandrake)는 특이한 모양으로 인해 고대 아랍인과 게르만인은 남자의 악령이 맨드레이크에 산다고 믿었고, 교수대 밑에서 자라는 풀이라고 알려져 그 뿌리에 죄수의 죽은 영혼이 숨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뽑을 때 처절한 비명을 질러 귀를 막지 않은 채 이 소리를 들으면 미쳐 죽는다고 생각했다.
각종 판타지 소설과 영화에도 자주 등장해 괴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있는 식물로 임신촉진, 숙면, 최음제 등으로 사용했다.
The Age of Hero에선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만 자랐고, 크기는 이파리와 뿌리를 합쳐 대략 1m 크기로 뽑으려 가까이 다가가면 땅에서 튀어나오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맨드레이크가 지르는 비명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하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어 걸리면 최대 10분간 차디찬 바닥을 이불 삼아 누워있어야 했다.
그러나 비명을 빼면 머리에 달린 가지를 채찍처럼 휘둘러 공격하는 것이 전부로 40레벨대 몬스터치곤 공격력이 형편없었다.
그렇다고 우습게만 볼 수 없는 게 맨드레이크가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다 풀을 건드리면 비명 한 방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잘 팔려?”
“올리면 바로바로 팔려. 그러니까 내가 좋은 영지라고 했지. 팔리지도 않으면 뭐하게 그런 소리를 하겠어.”
찾는 사람은 많은데 파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사는 곳이 음지라 자주 발견되지 않았고, 건들기 전에는 먼저 공격하지 않아 옆에 있어도 몰랐다.
그리고 맨드레이크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던전이 발견된 적도 없어 항상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맨드레이크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게임 시간으로 60일에 한 번씩 사냥하면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다.
하린과 약속한 6개월이면 12번은 잡을 수 있어 한 번에 100개씩만 구해도 3억6,0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세금과 수수료를 빼도 3억2,364만 원으로 원룸 전세를 더 하고, 쓸만한 아이템도 몇 개 구해서 팔면 작은 아파트 한 채와 그에 필요한 살림살이는 모두 살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고급스러운 집은 아니라도 냄새 나는 원룸보다는 100배 나은 집으로 그 정도면 하린도 첫날밤이 불쾌한 기억으로 남진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냥하는 족족 아이템이 나오는 건 아니라서 생각한 만큼 못 벌 수도 있어 마냥 낙관할 순 없었다.
딩동! 문자 왔어. 문자 왔어.
“오빠, 나 집에 갔다 와야겠다.”
“무슨 일 있어?”
“할머니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하시네. 며칠 놀아드리지 않았더니 삐졌나 봐. 얼른 저녁 먹고 바로 올 테니까 게임하고 있어.”
“할머니와 재미있게 놀고 내일 아침에 와. 밥만 먹고 나오면 실망하실 거야.”
“밤에 할머니랑 같이 자면 돼.”
“늦게 들어가면 주무실 텐데?”
“괜찮아. 밤 귀 밝으셔서 들어가면 금방 알아. 저녁 1시간이면 끝나. 늦어도 8시까지는 올게.”
“알았어. 바래다줄게 나가자.”
“아직 시간 있어. 오빠 저녁 차려주고 가도 돼.”
“내가 차려 먹을 수 있어. 그냥 가자.”
“싫어. 오빠 밥은 내가 평생 차려줄 거야. 그러니 앉아 있어.”
“밥하고 빨래는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남자 아니야. 내 일은 내가 하는 스타일이야.”
“사랑하는 사람 밥 차려주고, 옷 빨아주는 게 왜 고리타분한 일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랑하면 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남자도 해줄 수 있다는 말을 한 거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아.”
“해주고 싶으면 해. 대신 내가 아파서 못 움직이거나 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때만 해줘. 내가 해준 음식 오빠가 맛있게 먹을 때 나 너무 행복해. 그 행복 놓치고 싶지 않아.”
“알았어. 대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응.”
이런 게 바로 부질없는 사랑싸움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 네가 하라고 미룰 게 뻔한 일을 사랑에 눈멀어 서로 해주려 싸우는 짓, 이때만 만끽할 수 있는 소꿉장난 같은 사랑이었다.
하린이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집 근처까지 바래주고 돌아와 새로 올라온 자료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히어로 에브리에 접속했다.
하린의 말대로 매일 하루에 1시간 히어로 에브리에 접속해 새로 올라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고, 내게 유용한 팁도 검색했다.
며칠 안 됐지만, 하린을 만나기전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지식을 쌓으며 이제는 전처럼 게임의 겜자도 모른다는 소리는 듣지 않게 됐다.
그러나 하린과 비교하면 여전히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매일 잔소리 듣는 게 일이었었다.
사이트에 접속하자 눈에 띄는 이슈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히든클래스와 전직 시스템에 관한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주에 관한 내용으로 3주년 이벤트로 영주를 한 명 선발해 영지를 준다고 발표해 놓고 왜 그에 관한 내용이 없느냐를 따지는 글이었다.
패치 후 게임 시간으로 4일째 되던 날 히든클래스 직업을 얻었다는 유저가 글을 올리자 ㈜판타스틱 홈페이지에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글이 쇄도하며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판타스틱 운영진은 게임에 대한 권한이 모두 환인에게 있어 자신들도 모르는 일이라며 내용을 파악한 후 알려주겠다고 답변했다..
운영진이 직업 시스템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때 연속으로 히든클래스 직업을 얻었다는 글과 스탯을 캡처한 사진이 올라오며 일반 직업을 택한 유저들이 직업 훈련소에 몰려가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이 시끄러워지자 직업 훈련소 NPC가... 사실은 환인이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직업 훈련소 NPC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앞으로도 노력하지 않는 유저는 이와 같은 일을 수시로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끝으로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속이게 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게임 시간으로 한 달 후 2차 전직 시스템을 패치하기로 했다.
내용을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일반 직업을 조금 상향해 히든클래스와 차이를 줄이고, 두 가지 직업을 동시에 택하는 듀얼클래스로 갈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겨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그제야 가마솥처럼 들끓던 성난 민심이 가라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급하게 직업을 선택한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힘들게 알아낸 내용을 죄책감도 없이 마구 이용했다. 그래놓고 문제가 생기면 잘못된 내용을 올렸다며 힘들게 사실을 알아낸 사람을 욕했다.
이런 행동은 노력이 없이 달콤한 열매만 따려 하는 속물근성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자성의 목소리도 며칠 지나지 않아 조용히 수그러들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사람이 고생해 올린 자료를 조금의 미안함도 없이 마구 이용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올린 자료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이용하고, 고마운 마음도 갖지 않아 누굴 욕할 처지가 아니라서 얼굴만 붉힌 채 조용히 영주에 관한 내용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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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만 가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