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줘도 못 먹는 바보!
52.
발기한 고추 탓에 캡슐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이대로는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아 게임에 접속해 연무장으로 내려가 죽을 둥 살 둥 칼을 휘둘렀다.
밤 10시가 넘은 영주성은 순찰하는 경비병을 빼곤 모두 곤히 잠들어 있어 기합도 지르지 못한 채 숨만 헐떡대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TV도 없고, 게임기도 없고, 놀 거리도 없고, 돈도 없는 농노들은 해만 떨어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겨울에는 6~7시면 잤고, 여름에는 해가 길어 늦게까지 일해 9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할 게 없자 밤만 되면 유일한 놀이인 구멍 파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애들은 무진장 많이 낳았다.
그런데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건 태어나는 아이들만큼 어른들이 죽고, 영유아 사망률도 높아서였다.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선 의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에는 의사가 없었다.
대신 신관이 있었다. The Age of Hero 유일신인 환인을 받드는 성직자로 신관만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신관은 모두 NPC로 이들을 데려오려면 신전을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신전을 짓기 위해선 엄청난 돈이 들었다.
중세 시대 지독히 타락한 어떤 종교처럼 황금과 보석으로 신전을 치장하진 않지만, 대리석과 최고급 목재, 각종 조형물 등이 들어가 금화 3,000개는 있어야 지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수도 크라쿠푸스와 10대 도시, 공작, 후작, 백작령 등 부유한 도시에만 신전이 있었다.
그리고 매달 신전 운영비도 보조해야 했고, 치료비용도 매우 비싸 평민과 농노는 치료받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The Age of Hero는 힐러가 없어 상처를 치료하려면 본인이 직접 붕대 감기를 사용해 치료하거나, 상처가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유저는 환인의 보호를 받아 질병에 걸리지 않아 아파 죽는 일이 없어 저주에 걸리지 않는 한 신전을 찾을 일이 없었다.
신관을 데려올 수 없다면 약초 관련 서적을 찾아 내가 직접 약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신관 빼고는 질병을 치료할 사람이 없자 가벼운 질병에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 때문에 아틸라 제국 곳곳에서 민간요법이 성행했고, 이와 관련된 책도 수도에서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 의학 수준으로 천박하다는 표현조차 과분할 지경이었다. 군대에서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과 처치 방법을 배웠지만, 전문지식과는 거리가 멀어 약을 만든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내 몸을 실험체로 쓰면 되기 때문이었다. 유저는 환인의 보호 덕분에 잘못된 약을 먹어도 죽지 않았고, 독초를 먹고 중독되면 해독 물약을 마시면 깔끔하게 치료됐다.
민간요법과 약초 지식을 습득해 해열제, 지사제, 진통제, 소염제, 살균 소독제 등 상비약만 만들 수 있다면 유아사망률뿐만 아니라 전체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칼을 휘둘러도 생각나는 건 섹스밖에 없네. 아이고.”
밤새 내려치기와 베기, 찌르기를 연습했지만, 하린의 육체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죽어라 칼을 휘두르자 딱딱하게 발기한 놈이 힘을 잃고 쓰러져 복통은 사라졌다.
니콜라스가 새벽 4시도 안 되어 기어 나왔다.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니콜라스의 실력이면 내가 칼 휘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스콜라, 프리 스콜라, 프로보스트, 소드마스터는 스탯의 차이가 아니라 단계의 차이로 커다란 벽을 허물고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오감도 같이 성장해 프로보스트쯤 되면 아주 작은 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밤새 칼 휘두르는 소리를 듣고도 니콜라스는 모른 척했을 것이다. 고민이 있어 그런다는 걸 잘 아는 늙은 생강은 충분히 힘이 빠진 다음에야 얼굴을 비추는 노련함을 보였다.
흥분했을 때 대화를 시도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가 가라앉고 후회가 밀려올 때 말을 걸어야 상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누구나 아는 얘기였지만, 화가 난 쪽도, 말을 거는 쪽도 마음이 급해 잘 지키는 못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영주님.”
“니콜라스 경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밤새 칼을 휘두르는 영주님의 열정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생각이 얕은 사람이라면 무슨 일로 밤새 칼을 휘둘렀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니콜라스는 밤새 칼을 휘둘러서 실력이 늘었다는 말로 고민이 있냐는 말을 대신했다.
“잠이 오질 않아서 칼을 휘두른 것뿐입니다.”
“때로는 고민이 사람을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리히테나 검술을 연습해 보십시오. 자세를 봐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침 8시 레이첼이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까지 자세 교정은 계속됐다.
하룻밤 만에 스킬이 생길 만큼 급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몰랐던 리히테나 검술의 요의(要義)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으며 스킬 터득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내가 자라고 했지?”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 와서 도저히 잘 수 없었어.”
“왜 잠이 안 오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것 때문이지? 나랑 그거 하고 싶어서 못 잔 거지? 그렇지?”
“아니야.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랬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내말이 맞다고 쓰여 있는데.”
“그런 부분도 있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빨리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더 많았어.”
“정말?”
“응.”
진실은 밤새 하린이를 안고 뒹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된 것이지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놓고 널 안지 못해 그랬다고 말하는 건 작은 일에도 징징대는 성우와 다를 게 없었다.
멋있는 척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나잇값 못하는 남자로 비치고 싶진 않았다.
“서두르면 일을 망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했잖아.”
“서두르는 게 아니라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한 거야. 이게 어떤 기회인데 내가 허투루 하겠어.”
“그래도 마음 급하게 먹지 마. 급하게 서둘러서 잘된 일이 없어. 그리고 나 좋은 집 같은 거 필요 없어. 오빠만 있으면 돼.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마.”
“알았어.”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 군대 있을 때 밤새는 훈련 많이 했어. 제대하고 아르바이트할 때도 하루에 몇 시간 안 잤고. 나도 너처럼 잠 많이 없는 편이야.”
“그래도 좀 자야 해. 아침 먹고 3시간만 자. 그래야 학교 가서 졸지 않지.”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준 얼큰한 김치찌개에 밥을 두 그릇이나 말아먹고 캡슐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하린이 보고 있자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왜 못 자는지 알아챈 하린이 품에 안기자 그제야 잠이 솔솔 왔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젠 하린이가 없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누구나 그렇게 됐다. 사랑은 이성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바이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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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빠졌네. 넋이 나간 것 같다.”
“어제 게임에서 온종일 데리고 다니며 혼을 쏙 빼놨을 거야. 애교도 많고, 남자 마음 읽는 것도 선수거든.”
“꿈이 크면 실망도 큰데.”
“그것보다 버려진 다음이 문제야.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이슬이에게 매달리면 그땐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어.”
성우를 옆에 끼고 주무르자 정이슬은 하린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린과 말다툼하는 걸 성우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와 우리가 애타 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이슬이 그런 마음을 하지 못하게 우린 철저하게 성우를 외면했다. 반갑게 인사해도 소 닭 보듯이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고, 같이 점심 먹자고 애원해도 생각 없다며 매몰차게 뿌리쳤다.
정이슬과 헤어진 후 우리 행동이 성우를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성우가 가깝지 않다는 걸 정이슬이 느끼게 하는 게 더 시급했다.
“오빠, 식량 산 다음에 평판 관리소에 잠시 들러 히든클래스 스킬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고 가자.”
마법 가방 10개에 밀을 가득 채우고 직업 훈련소 옆에 있는 평판 관리소로 향했다. 평판 관리소에 들어가자 전당포처럼 두꺼운 쇠창살 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남작님과 마님은 옆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조그맣게 뚫린 쇠창살 틈새에 손을 집어넣어 하얀 구슬 위에 손을 올리자 이름과 종족, 직업, 칭호, 평판 포인트가 화면에 떴다.
칭호를 확인한 NPC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쇠창살 옆에 달린 문으로 들어오게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전 인사한 NPC가 다시 허리를 90도로 숙여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 후 안락한 의자에 앉게 했다.
「남작이라고 대우가 다르네.」
「철저한 계급 사회니까 어쩔 수 없겠지.」
평판 관리 NPC는 평민으로 남작인 내게 불경죄를 저지르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라 그것만으론 죽일 수 없겠지만, 귀족 능멸죄는 매우 위중한 죄로 나랏일을 하는 관리라도 곤장 몇십 대는 때릴 수 있어 최대한 공손하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맞는 히든클래스 스킬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나는 군주, 아내는 바람의 궁수입니다. 배울 수 있는 스킬이 있으면 모두 보여주세요.”
“차 한잔 드시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알겠습니다.”
우유를 넣은 따끈한 홍차를 내온 NPC가 사라진 지 10분 만에 마법 주문 10개를 들고 나타났다.
군주와 바람의 궁수 스킬 5개씩으로 직업 스킬은 평판 포인트로밖엔 살 수 없어 일반 스킬보다 효과가 1.5배 좋았다.
1.5배면 NPC에게 스킬을 전수받는 것과 같은 매우 뛰어난 효과로 일반 스킬 주문의 효과가 10%라면, 일반 직업 스킬은 15%, 히든클래스 직업 스킬은 20%에 달했다.
대신 일반 직업 스킬보다 히든클래스 직업 스킬은 비용이 1.5배 비싸 75만 평판 포인트를 소비해야 마법 주문을 살 수 있었다.
군주 직업 스킬
군주의 기상 초급 : 자신과 부하(30명)의 공격력과 방어력 20% 증가
군주의 진격 초급 : 자신과 부하(30명)가 적으로부터 받는 데미지 20% 감소
군주의 위엄 초급 : 자신과 부하(30명)의 생명력과 마나 회복력 20% 증가
군주의 소환 초급 : 동료와 부하 최대 30명을 군주 옆으로 강제소환
한 명당 마나 500 소모
창공의 검 초급 마스터 : 물리 데미지×1.2, 데미지 반경 50m, 100% 치명타
방어력 무시(충격 내부 전달), 마비 확률 20%(20초간)
바람의 궁수 직업 스킬
높새바람 초급 : 자신과 파티원(5명)의 이동속도 20% 증가
하늬바람 초급 : 자신과 파티원(5명)의 공격속도 20% 증가
마파람 초급 : 자신과 파티원(5명)의 치명타 확률 20% 증가
불바람 초급 : 폭발하는 불화살, 원거리 데미지×1.2, 화상 데미지 1초당 40,
폭발로 인한 혼란
벼락바람 초급 : 벼락화살 10발, 원거리 데미지×1.2, 전격 데미지 1초당 40
전격 데미지에 의한 마비
직업 스킬 다섯 가지 중 세 가지는 지속적으로 마나를 소모해 스킬 효과를 지속시키는 버프 스킬의 일종이었다.
초급은 1초당 마나 3이 소모됐고, 중급은 5, 상급은 10, 특급은 30씩 소모돼 한꺼번에 세 가지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마나 소모가 극심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러나 마나가 3,000 이상이면 1초에 마나가 10씩 회복돼 초급 스킬 3개는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중급부터는 마나 회복 속도가 소모량을 따라가지 못했고, 다른 스킬까지 사용하며 버프 스킬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5,000은 넘어야 했다.
상급과 특급까지 생각하면 10,000은 넘어야 했고, 스킬을 난사하고 싶다면 30,000으로도 모자랐다.
나머지 두 가지씩은 액티브 스킬로 바람의 궁수는 두 가지 모두 상태 이상 효과를 동반한 화살 공격이었고, 군주는 검의 형상을 날려 충격을 주는 공격 스킬 하나와 파티를 맺은 동료와 영지에 속한 부하들을 자기 곁으로 공간이동 시키는 스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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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