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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Femme Fatale)
49.
「정이슬과 만난 남자들은 어떻게 됐어?」
「처음에 어울린 애들은 잘 모르겠고,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완전 엉망이었어.」
「방탕했다는 뜻이야?」
「이 남자 저 남자 사귀었으니 방탕했다고 해야겠지. 그것보다 사귀었던 남자애들을 정말 많이 힘들게 했어.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시도한 애도 세 명이나 됐어.」
「자살?」
「응. 창피해서 오빠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성우까지 저렇게 됐으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
하린이의 말에 따르면 두 명은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고, 한 명은 한강에 투신했다.
다행히 손목을 그은 두 아이는 부모가 조기에 발견해 생명을 건졌고, 한강에 뛰어든 아이는 지나가는 용감한 행인이 구해 목숨을 건졌다.
아이들이 자살한 이유는 같았다. 정이슬의 먹잇감이 되어 휘둘리다가 흥미가 떨어지자 무참하게 차였고, 만나 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보란 듯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자 상실감을 참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는데 학교도 모르고, 정이슬 부모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자살을 시도한 남자애들이 입을 꾹 다물었어. 주변 남자애들도 마찬가지였고. 이슬이와 사귄 남자는 물론 이슬이를 추종한 남자애들은 이슬이 말이라면 꼼짝 못 했어. 잠시 얘기라도 나눠주면 성은을 입은 것처럼 좋아했어. 그리고 차여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 절대 배신하지 못했어.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도 모르고, 부모님도 몰랐어.」
「여자애들은 알았을 거 아니야?」
「있었지. 하지만 말할 수 없었어. 이슬이와 어울리는 패거리 중에는 학교 일진도 있었어. 함부로 입을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말할 수 없었어.」
「자기 때문에 세 명이나 죽을 뻔했는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아?」
「이슬이는 주변 사람이 다치는 걸 즐겼어. 특히 내 주변 사람이 다치는 걸 아주 좋아했어. 우리 가족이 다치면 자기 부모에게 알려질까 봐 오빠와 언니, 동생 하연이는 건들지 않았지만, 나랑 친한 친구는 모두 힘들게 했어. 그래서 친구가 없어. 오빠 빼고는. 내가 싸움 잘하냐고 물어본 거 기억나?」
「어.」
「왜 물어봤는지 이제 알겠지. 무서우면 떠나도 돼. 원망하지 않을게.」
「그럴 일 없어. 어떤 일이 있어도 너랑 같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나 얻어맞고 다니는 남자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맞은 적 없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빠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해. 날 보호하겠다고 나섰던 친구들 팔다리가 부러졌어.」
「내가 어디 나왔다고 했지?」
「특전사.」
「나 그 안에서도 최고였어. 열 명이 와도, 백 명이 와도 조용히 처리할 자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오빠가 자신 있게 말해 마음이 놓이지만, 그래도 많이 걱정돼. 그런데 그거 알아? 오빠 떠나면 나 못 살 것 같아. 그래서 말만 무서우면 떠나도 된다고 했지,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어. 나 너무 이기적이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어.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야. 자연스러운 거야.」
「그래도 미안해. 오빠 힘들 게 해서.」
「그런 말하지 마. 나는 네가 있어 정말 행복아. 하린아! 내가 지켜줄게. 평생!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 앞으로 나만 믿고 살면 돼. 알았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오빠!!」
정이슬은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마다 남자가 바뀌었다. 그러나 마수에 걸린 남자들은 버림받고도 미련이 남아 정이슬의 주위를 맴돌며 괴로워했다.
정이슬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아주 조금씩 맛보여 주며 달아날 수 없게 올가미를 씌웠다.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알면서도 정이슬이 보내는 유혹적인 눈빛, 따스한 말 한마디에 남자들은 기꺼이 노예가 되고자 했다.
정이슬은 팜므 파탈(Femme Fatale), 요부(妖婦)였다.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숙명의 여인 팜므 파탈이었다.
이 때문에 정이슬을 만난 남자들은 모두 불행했다. 그러나 누구도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말했다.
“하린아, 고마워.”
“뭐가 고마워?”
“이슬이가 그러는데 네가 조만간 남자 친구 소개해준다고 했었데. 그런데 그게 나일 줄이야 생각도 못 했어. 정말 꿈만 같아.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않을 게. 정말 정말 고마워!”
“하아.”
“형, 저 이슬이랑 밥 먹고 올게요. 히히히히.”
“그래 맛있게 먹어.”
신이 나 점심을 먹으러 가는 성우의 기분을 망칠 수 없어 미소를 띤 채 맛있게 먹으라고 말했다.
성우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랑 친하지 않았다면 정이슬을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자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남자들은 모두 정이슬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이슬의 이국적인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에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최고의 인기 여자 아이돌그룹 히어로걸스까지 정이슬의 아름다움에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우를 바라보는 눈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자기들이 정이슬의 팔짱을 끼고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성우가 그 옆을 차지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러다 학과 남자애들 모두 정이슬에게 넘어가는 거 아니야?」
「반이면 다행이야. 학교 전체가 들썩일 수도 있어.」
「참나.」
「오빠, 로그아웃하고 시원한 커피나 한잔 마시러 가자. 속이 답답해 죽겠어.」
「나도 시원한 게 마시고 싶었는데 잘 됐다. 가자.」
게임을 빠져나와 학교 앞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까지 걸어가 얼음이 잔뜩 든 아이스커피를 샀다.
“하아 시원하다. 이제야 속이 좀 뚫리는 것 같네.”
“성우도 20살이야. 성인이니까 잘할 거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지고, 사람은 아픔을 겪으며 성숙해진다고 했어. 성우도 그럴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우 걱정에 오후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나 녀석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모른 채 입에 귀에 걸려있었다.
“형, 저 먼저 가 있을 게요. 빨리 오세요. 하린아, 이따 봐.”
오후 4시 강의가 끝나자 정이슬이 다정하게 성우 팔짱을 끼고 강의실을 나갔다. 눈웃음을 살살 흘리는 모습이 독사처럼 느껴졌다.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학생들의 시선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남학생이 있었다. 정이슬이 그냥 친구라고 말한 최수민으로 분노에 불타는 눈으로 성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원수를 쏘아보는 것 같은 최수민의 분노에 찬 눈에서 오늘 모임이 시끄러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사랑에 눈먼 성우는 정이슬만 바라보느라 최수민과 학생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성우와 달리 정이슬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최수민을 한 번 쓱 쳐다보고 강의실을 나갔다.
남자든 여자든 사랑에 눈멀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사랑은 본능으로 이성의 힘으론 막을 수 없다.
특히, 빗나간 사랑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와 같아 대형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최수민과 성우 둘 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랐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느낌이 커져만 갔다.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학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최수민의 선창과 함께 80명이 일제히 위하여를 따라 외치자 호프집이 떠나갈 듯 소란스러웠다.
학교 앞 거리는 실제 XX대학교와 많이 달랐다. 여러 대학이 몰려 있는 것도 달랐고, 음식점과 술집도 판이하였다.
대학가 주변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커피숍, 피자집, 떡볶이 집, 중국집, 편의점도 없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음식점이 없는 건 환인이 유저에게 음식점, 소매점 등을 허가해주지 않아서였다.
단합대회를 하는 호프집도 유저가 아닌 상인 NPC가 운영하는 가게로 좋은 말로 하면 아주 고풍스러웠고, 나쁜 말로 하면 아주 촌스럽고 지저분했다.
탁자는 엉성하고 의자는 딱딱했고, 안주도 육포와 치즈 등으로 그 흔한 돈가스 안주도 없었다.
그러나 맥주 맛은 아주 훌륭했다. 수제 맥주로 쓴맛이 조금 강했지만, 풍미가 있어 여학생들도 좋아했다.
아틸라 제국도 술이 발달한 나라로 맥주와 포도주를 비롯해 지방마다 특색 있는 술이 100여 가지가 넘었다.
하지만 소주는 없었다. 대신 위스키와 럼주, 보드카가 현실보다 아주 싸 많은 유저가 맥주와 함께 즐겼다.
“형, 정말 부럽네요. 군대도 갔다 오시고, 예쁜 여자 친구도 있고. 형이야말로 진정한 위너네요.”
“존경합니다. 형님.”
“군대는 너희보다 내가 먼저 갔다 온 것뿐이야. 너희도 갔다 오면 나랑 나이가 같잖아. 그리고 너희도 갔다 오면 하린이 보다 훨씬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세월에 군대 갔다 와서 여자 사귀고 취직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근택이 말이 맞아요. 군대 가면 있던 여자 친구도 떨어져 나가고, 제대하면 여자들이 잘 만나주지도 않아요. 썰렁하고 재미없다고. 형님은 예외지만.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20대 초반 남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 아니라 군대였다. 한창 공부하고 사랑할 나이에 남자만 득실대는 군대에 끌려가는 건 지옥에 가는 것과 같았다.
혈기 왕성할 나이에 여자도 없는 군대에 2년 가까이 갇혀 지내는 건 엄청난 고역이었다.
더군다나 군대 가면 99.9% 여자 친구도 떨어져 나가고, 제대하면 머리가 돌처럼 굳어있어 공부도 잘 안 됐다.
이 때문에 1학년 마치고 군대 가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연기하다 억지로 끌려가는 아이도 있어 공부할 시기를 놓치는 일도 있었다.
“남자애들이 그러는데 하린이 너 얼굴부터 몸매까지 하나도 고치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응.”
“왜?”
“귀찮아서.”
“귀찮아서가 아니라 고칠 곳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맞아. 킥킥킥.”
“아우 못 됐다.”
“농담이야.”
“농담은 무슨. 여자인 내가 봐도 넌 고칠 곳이 없는데. 우리 망했어. 히잉.”
“사고 쳤어?”
“사고라면 사고지. 학과 잘못 들어왔으니까. 이슬이 옆에만 가도 오징어가 되는데, 이제 너까지 있으니 누가 우릴 예쁜 아이돌 가수라고 하겠어. 그냥 평범한 대학생으로 보지.”
“너 정말 예뻐. 민지, 수영이, 연아, 아리, 진아, 선아, 주하도 다 예쁘고. 그리고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걸 그룹이 너희야. 엄살 부리지 마.”
“너와 이슬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그럴 일도 없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임자 있는 몸이거든.”
“사귄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던데?”
“그게 뭐가 중요해.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가는 거지.”
“형필이 오빠가 그렇게 좋아?”
“어.”
“얼마나?”
“세상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좋아.”
“어디가 그렇게 좋아?”
“모두 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아 죽겠어.”
“부럽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면 되잖아.”
“우리 25살까지 연애금지야. 어기면 죽어.”
“여자 아이돌 연애금지조항 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네. 나는 지어낸 얘기인 줄 알았는데.”
“지어낸 얘기 아니야. 오래전부터 있었어. 그것도 아주 심하게. 저기 건장한 남자 2명 서 있는 거 보이지?”
“어.”
“경호원이자 감시자야. 지금 우리 감시하고 있어. 남자들하고 눈 맞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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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