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 / 0310 ----------------------------------------------
군주(Monarch)
47.
“이게 전부야? 이것 말고 다른 직업은 없어?”
“원하시는 직업이 있으십니까?”
“아니. 다른 직업이 더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
“너무 모호한 질문입니다. 원하시는 직업이 있다면 정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군주와 용기사란 직업도 있어?”
“있습니다.”
“있는데 왜 알려주지 않았어?”
“군주와 용기사는 히든클래스입니다. 히든클래스는 유저가 요청하기 전에는 알려줄 수 없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군주와 용기사 말고도 다른 히든클래스도 있어?”
“정확한 이름을 말하기 전에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해놓은 거지?”
“The Age of Hero는 유저 스스로 알아가는 게임입니다. 노력하지 않는 유저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슬의 말대로 The Age of Hero는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있어 유저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내야 했다.
이번에 패치 한 직업 시스템도 같은 맥락으로 숨겨진 직업이 있는지,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있는지 알아내는 노력이 없으면 아주 평범한 직업을 얻게 됐다.
“군주와 용기사는 어떤 특징이 있는 직업이야?”
“군주를 선택하면 카리스마 스탯이 생성됩니다. 카리스마는 스탯 1당 전체 공격력, 공격속도, 영지 발전 속도가 1.5%가 증가합니다. 용기사를 선택하면 창공 스탯이 생성됩니다. 창공은 스탯 1당 와이번 공격력, 방어력, 이동속도 1.5%가 증가합니다.”
“왜 다른 직업과 달리 왜 효과가 한 가지씩 더 있고, 상승폭도 1.5배나 되지?”
“히든클래스이기 때문입니다.”
“히든클래스?”
“히든클래스는 숨겨진 직업으로 효과가 한 가지씩 추가로 더 있고, 효과 상승폭도 1.5배 큽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페널티도 있어 평판 포인트가 1.5배 소모됩니다.”
평판 포인트가 1.5배 필요하다면 효과 한 가지가 늘어나도 이익이 아니었다. 그러나 효과가 1스탯 당 1.5% 늘어난다면 엄청난 혜택이었다.
스탯이 10만 되도 효과가 5%나 높았고, 20 스탯은 10%, 200 스탯은 무려 100% 차이가 났다.
직업 스탯을 100 스탯 올린다는 건 꿈같은 얘기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The Age of Hero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용기사를 선택한 유저가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비밀입니다.”
“군주는?”
“그 역시 비밀입니다. 직업 선택은 비밀사항으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알려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물어봤다. 히든클래스 군주와 용기사도 처음 물어봤을 땐 알려주지 않았다.
두 번째 물었을 때 알려준 것으로 반복해서 물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어 일부러 물어봤다.
군주와 용기사를 놓고 고민했다. 군주를 선택하면 근거리와 원거리, 마법 공격력에 공격속도까지 오르고, 영지 발전 속도도 올라 영지를 빠르게 발전시키며 개인의 전투력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용기사는 내 전투력은 오르지 않지만, 와이번의 전투력과 방어력, 이동속도를 크게 올릴 수 있어 쓰기에 따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와이번을 길들이는 방법도 몰랐고, 와이번을 잡을 수준도 안 됐다. 그리고 와이번을 잡을 수 있는 유저도 상대할 수 있는 유저도 없어 용기사를 고르면 언제 빛을 볼지 알 수 없었다.
와이번의 레벨은 150으로 하늘을 나는 몬스터 중 레벨이 가장 높았다. 드래곤과 피닉스가 나타나지 않는 한 공중에선 적수가 없는 최강의 몬스터로 아틸라 제국 북서쪽에 있는 섬 데스페라도와 남쪽의 화산지대에 살았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미래에 투자할 것인가 고민하다 군주를 택하기로 했다.
영지가 없다면 모를까 영지가 있는 한 군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목표가 영지를 발전시켜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군주를 선택해야 했다.
“뭐로 했어?”
“여기서 말 못해. 집에 가서 말해줄게.”
“궁수 아니야?”
“아니야.”
직업 훈련소를 빠져나와 곧바로 귀환 주문을 사용해 영지로 돌아와 볼이 빨개지도록 흥분한 하린의 손을 잡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뭔데 그래?”
“오빠, 나 히든클래스 바람의 궁수로 직업 선택했어.”
“바람의 궁수?”
“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구슬이 히어로 에브리에 올라온 직업을 화면에 띄워주는 거야. 그래서 다른 직업은 없냐고 물어보니까 정확한 이름을 대라는 거야. 그래서 고민하다가 내가 빠르게 움직이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주특기라 바람의 궁수도 있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숨겨진 직업 히든클래스라며 바람의 궁수가 있다고 하는 거야. 놀라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나 잘했지?”
“아주 잘했어.”
하린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직업이 있냐고 물어보자 정확한 이름을 말하라고 했고, 운 좋게 바람의 궁수라는 직업이 있어 히든클래스를 얻게 됐다.
처음 화면에 띄워준 직업을 선택했다면 나나 하린이나 평범한 기사와 궁수가 됐을 것이다.
환인은 노력하는 유저에게만 혜택을 줬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유저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다.
매우 합당한 처사였지만, 함정에 걸려들어 일반 직업을 선택한 유저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차이가 미미하다면 그나마 큰 소란 없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스탯 효과가 50%나 차이가 나고, 효과도 히든클래스가 한 가지 더 많아 조만간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바람의 궁수는 스탯이 어떻게 돼?”
“스탯은 자유고, 자유 1당 원거리 공격력과 사거리, 치명타 확률 1.5%씩 증가해. 좋지?”
“어, 정말 좋다.”
“오빠는 뭐야?”
“나는 군주.”
“군주? 군주도 히든클래스야?”
“그렇다고 하네.”
“그럼 우리 둘 다 히든클래스네. 나만 그러면 어쩌나 마음 졸였는데, 정말 잘 됐다. 헤헤헤.”
나 역시 하린이와 같은 생각으로 나는 히든클래스로 군주를 얻었는데, 하린이는 평범한 궁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하린이는 히든클래스를 얻지 못했어도 내가 히든클래스를 얻은 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응원해줬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궁수 직업을 얻은 것도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편치 못했을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하린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정말이지 싫었을 것이다.
직업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어 일반 직업을 포기하고 히든클래스로 전직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번 일반 직업을 선택하면 일반 직업 안에서만 전직할 수 있었다.
직업 NPC인 구슬이 알려준 내용으로 히든클래스는 히든클래스 안에서, 일반 직업은 일반 직업 안에서만 전직이 허용됐다.
“오빠, 배 안 고파?”
“평소에 하루에 두 끼 먹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
“두 끼 먹고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니 정말 불가사의하다. 나 몰래 보약이라도 먹는 거야?”
“아니. 그런 거 없어.”
“그럼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남들은 세 끼도 모자라서 간식에 야식까지 먹는데, 오빠는 세 끼도 못 챙겨 먹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흐흐.”
“웃지 마. 나는 심각해 죽겠는데 웃음이 나와?”
“미안.”
“우씌! 밥 차릴 테니까 히어로 에브리에 들어가서 새로 올라온 자료 있는지 그거나 검색하고 있어. 없으면 공부 좀 하고.”
“알았어.”
“그리고 우리 밥 먹고 운동하러 가자. 며칠 뛰지 않았더니 몸이 찌뿌둥해 죽겠어.”
“무릎 안 아파?”
“살살 달리면 돼.”
“그래. 대신 너무 무리하지 마.”
“응.”
사실 난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군대에선 달리기 싫어도 달리라고 하면 달려야 해 어쩔 수 없이 달렸고, 제대하곤 왼팔이 고장 나 돈 안 들이고 운동할 수 있는 게 달리기밖에 없어 달린 것이었지만, 원래는 조용히 앉아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달리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하린이 좋아하니까. 하린이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해야 한다. 그게 사랑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형, 하린이 하고 종일 게임했죠?”
“어.”
“저는 늑대 같은 친구 놈들하고 종일 홀아비 냄새 풀풀 풍기며 몰려다녔는데, 형은 미녀 중의 미녀와 온종일 붙어 다니다니 정말 부럽네요.”
“너도 조만간 생길 거야. 너무 낙담하지 마.”
“그 조만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니까 그렇죠.”
“조급하게 굴면 생길 것도 안 생겨. 마음이 느긋해야 여자 친구도 생기는 거야. 그리고 하린이가 해준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하린이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성우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여자 친구가 없다며 한숨을 쉬어댔다.
1학년 1학기 강의가 시작된 지 게임 시간으로 3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커플이 우리까지 다섯 쌍이나 생겼다.
캠퍼스 커플들이 구석진 강의실에 앉아 손잡고 희희낙락하는 보습을 보자 더욱 애간장이 타는지 여자 친구를 소개해달라고 아이처럼 졸라댔다.
현실이라면 이렇게 빨리 CC가 생기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가상현실 게임에선 육체가 아닌 정신이 만나는 것으로 교제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한 번 만나보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헤어지기도 쉬웠고, 성관계를 해도 진짜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서 부담도 적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남성과 염문을 뿌려대는 여자도 있었고, 제비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고 다니는 남자도 있는 등 게임 내에서 성생활이 방탕한 남녀가 한둘이 아니었다.
“형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분명해요. 하린이를 만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형, 혼자만 나라 구하지 말고, 저도 나라 좀 구하게 해주세요. 하린이처럼 예쁜 여자 친구 생길 수 있도록 나라 좀 구하게 해주세요.”
“내가 하린이를 택한 게 아니라 하린이가 날 택한 거야. 안 그랬으면 나도 너처럼 짝없는 기러기였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하린이처럼 예쁜 여자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형, 하린이에게 여자 친구 빨리 소개해주라고 말 좀 해주세요. 저 옆구리가 시리다 못해 얼어붙어 죽을 것 같아요.”
“말 꺼낸 지 몇 시간 됐다고 그 얘기를 또 하냐? 조금만 진득하게 기다려. 하린이 약속한 건 꼭 지켜. 말 허투루 하는 애 아니야.”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그러질 못해요. 형, 제발 도와주세요. 이러다 동생 죽겠어요.”
하린과 성우가 만난 건 게임 시간으로 3일이나 됐지만, 현실 시간으로 10시간도 안 됐다.
많은 사람이 게임과 현실 시간의 차이를 혼동해 큰 혼란을 겪었다. 약속 시각을 어기는 건 기본이었고, 날짜마저 헷갈려 중요한 행사마저 놓치기 일쑤였다.
그리고 성우처럼 게임 시간을 현실 시간으로 착각해 아주 오래된 일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일도 잦았다.
강의만 해도 4일 연속 출석해도 실제 시간은 하루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뇌는 둘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 무려 4배의 시간 차이를 생기게 했다.
이 때문에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혼란을 느껴 정신과 의사를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저는 현실과 게임의 시간 차이를 정확히 인지했고, 핸드폰에 현실 시간과 게임 시간을 동시에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까는 등 큰 문제없이 적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