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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거스 숲
44. 펑거스 숲
“배워볼래?”
“아니야. 검술까지 배우면 스킬이 너무 많아져 복잡하기만 해. 나는 궁수로 끝을 볼 거야.”
“몬스터와 가까이 붙었을 때도 대비해야지.”
“그럴 땐 활로 쳐내면 돼.”
“그러다 활 부러지면 어쩌려고?”
“레어 아이템이라 그럴 일 없어.”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활보다는 다른 무기를 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단검 어때?”
“단검?”
“어. 내가 군대에서 배운 단검술 있어. 그거 배우면 활로 치는 것보다 나을 거야.”
“알았어. 가르쳐줘.”
“단검술은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게 포인트야. 눈이 빠르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생각보다 단검이 긴 거 아니야?”
“은장도로 몬스터 잡게?”
“크크크크.”
깊게 배울 게 아니라서 찌르고 베는 몇 가지 간단한 동작만 알려줬다. 운동 감각이 타고나 금세 따라 했다.
그러나 따라 한다고 익힌 게 아니었다. 실전에 사용할 수 있게 숙달해야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귀찮아도 하루에 10분만 투자해. 그러면 몇 달 후에는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 거야.”
“알았어. 활 훈련할 때 틈틈이 할게.”
침실에 하린과 단둘이 있자 레이첼과 있을 때처럼 로그아웃하지 않아도 돼 리히테나 검술과 찌르기, 베기, 내려치기 등을 밤새 연습했다.
내가 검술을 연습하자 하린은 활시위를 튕기는 연습과 화살을 시위에 빠르게 거는 연습을 했다.
이런 연습이 스킬 경험치를 올려주진 않지만, 실전에서 빠르게 활을 쏠 수 있게 해줘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해야 했다.
“내일부터 주변 숲 정리하자.”
“검은 오크도 정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주변 정리한 다음에.”
“검은 오크가 영지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야?”
“아니. 하나 더 있어.”
“뭔데?”
“레벨 70 네크로맨서 탈라한의 던전.”
“오오. 아주 좋은데.”
네크로맨서 탈라한은 듀라한 쿠티티르의 망토에 나오는 인물로 촉망받는 국경수비대 기사 쿠티티르를 타락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후 듀라한으로 만든 네크로맨서였다.
“70레벨 정예와 보스도 잡아봤어?”
“아니.”
“몇 레벨 정예까지 잡아봤는데?”
“정예는 55레벨, 보스는 50레벨까지 잡았어.”
일반 몬스터보다 정예 몬스터가 3배, 보스가 10배 강했다. 포인트가 일반 몬스터보다 정예 몬스터가 3배, 보스는 10배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보스가 50레벨 일반 몬스터의 10배인 500레벨 몬스터와 전투력이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몬스터는 40레벨에 1.5배 급격하게 강해진 후 10레벨 단위로 또다시 1.5배씩 강해져 50레벨 보스면 80레벨 일반 몬스터와 비슷하거나 조금 강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물리 데미지 면역, 마법 데미지 면역 같은 특이한 특성을 갖고 있는 일반 몬스터도 있어 보스가 무조건 강하다고 볼 순 없었다.
“도우미 아란의 말로는 1, 2, 3층까진 일반 몬스터만 나오고, 4층부터 보스가 있는 5층까진 정예 몬스터와 일반 몬스터가 함께 나온다고 했어. 우리 둘이서 깰 수 있을까?”
“아니. 못 잡아.”
“그런데 왜 좋아했어?”
“지금은 못 잡아도 언젠가는 잡을 수 있잖아.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안 그래?”
“그렇긴 하지.”
The Age of Hero에서 유일하게 리스폰(Respawn) 시스템이 적용되는 곳이 던전이었다.
필드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다른 몬스터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한다는 뜻은 새끼가 성장해 죽은 어미를 대신하거나, 이웃한 몬스터가 그쪽으로 넘어온다는 뜻으로 던전만 유일하게 시간이 흐르면 죽은 몬스터가 부활했다.
그러나 다른 게임처럼 몬스터를 사냥하면 바로바로 리스폰 되지 않았다. 현실 시간으로 15일 후, 게임 시간으로 60일 후 리스폰 됐다.
이 때문에 던전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일은 드물었다. 필드에도 몬스터가 넘쳐나는데 60일이나 어두운 던전에서 몬스터가 나타나길 기다릴 유저는 없었다.
그런데도 하린이 좋아하는 건 내 영지는 나와 하린만 사냥할 수 있어 누구의 간섭도 없이 60일마다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레벨이 높다는 건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높다는 뜻으로 70레벨 정예와 보스를 계속 잡으면 언젠가 대박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영주님, 세숫물 떠왔습니다. 마님, 세숫물 떠왔습니다.”
“들어와.”
“네.”
레이첼이 세숫물과 수건을 든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세숫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층에서 수동 펌프로 3층까지 물을 밀어 올려 커다란 욕조를 채우려면 장정 4명이 고생해야 했다.
그리고 주방에서 쓸 뜨거운 물도 새로 끓여야 했고, 우물에서 물도 길어 와야 하는 등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세숫물 대령을 받게 됐다. 이렇듯 하기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있었다.
“아침 수련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오빠 옆에서 알아서 훈련할게.”
“같이하는 게 낫지 않아?”
“검술은 체력과 힘 위주의 훈련이라 나랑은 맞지 않아.”
“알았어.”
3시간 동안 땀을 흠뻑 빼고 침실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씻었다. 하린이 온 이상 더는 시녀들의 손에 몸을 맡길 수 없어 아이린과 아만다를 억지로 내보내고 혼자 몸을 씻었다.
열흘 사이 시녀들의 손에 익숙해졌는지 혼자 씻자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씻겨달랄 수는 없어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대충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빠, 나 때문에 많이 불편한 거 아니야? 나 없었으면 시녀들이 씻겨줬을 텐데?”
“그때는 시녀들 처지를 생각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야. 나 다른 사람이 내 몸 씻겨주는 거 안 좋아해.”
“정말?”
“어.”
“내가 해줘도 싫어?”
“네가 해주면 그렇지 않지.”
“음흉하긴.”
“흐흐흐.”
“웃지 말고 빨리 먹어. 농지와 목장 주변 몬스터 정리해야 한다고 했잖아.”
“알았어.”
강의는 게임 시간으로 이틀에 하루씩 했다. 시간을 4배나 쓸 수 있어 나흘에 하루만 해도 됐지만, 현실에서도 매주 금요일 강의가 있어 2일에 하루씩 가상현실 강의실에 출석해야 했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남아 3개월이면 한 학기가 끝났다.
이런 현상은 직장도 마찬가지로 The Age of Hero가 생긴 이후 학교와 직장 모두 여가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생산직은 The Age of Hero에서 활동할 수 없어 화이트칼라와 학생 등 일부 계층에 국한돼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었다.
오늘은 동쪽과 남쪽에 있는 숲을 탐사해 몬스터가 얼마나 있는지,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기로 하고 영주성을 나섰다.
“오빠, 저건 뭐 만드는 거야?”
“방어탑.”
“뭘 방어하는데?”
“몬스터가 울타리를 수시로 넘어와서 죽는 농노들이 많아. 그래서 피해를 줄이려고 만들고 있어.”
“숲을 정리하고, 농지 넓힌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여기에 방어탑 만들면 효율이 떨어지잖아.”
“울타리를 둘러싼 숲이 워낙 넓어서 태울 수가 없어. 그랬다가는 영지 전체가 불바다가 될 거야. 그리고 나무를 베도 바로 농지로 활용할 수도 없고. 뿌리를 걷어내야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데, 그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거든.”
숲을 정리해도 바로 농지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나무를 태우고 베어내도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농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나무를 벤 후 뿌리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일 년쯤 기다렸다가 소들을 이용해 뿌리를 뽑고 농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농지를 늘려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대형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The Age of Hero는 현실을 너무 강조한 게임으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숲이 우거져도 너무 우거졌네. 완전히 원시림인데.”
“농노들이 가끔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가는 것을 빼면 1,00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숲이야. 원시림일 수밖에 없지.”
“그동안 왜 개간하지 않고 버려둔 거야?”
“황제 직영지라 대리 영주들이 관리해서 그래. 개인 영주가 했어도 쉽지 않았겠지만.”
“시간만 때우고 갔다는 말이야?”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랬다고 봐야지.”
대리 영주 임기는 5년에서 10년 사이로 1,000년 동안 150명 가까운 준 남작이 대리 영주로 내 영지를 거쳐 갔다.
지금과 같은 농지와 목장, 영주성이 생긴 건 아틸라 제국 건국 초기로 초창기에 준 남작들은 세습귀족으로 발돋움할 기회가 많아 아주 의욕적으로 일했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 건국 초기에는 신분의 이동이 자유롭고 진취적인 기상이 아주 팽배했다.
특히 아틸라 제국은 건국왕 아틸라가 평민 출신이라 평민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100년쯤 지나자 건국 화려한 기상과 활기찬 기운은 시들은 꽃처럼 사그라졌고, 신분은 단단한 바위처럼 굳어졌다.
또한, 부패와 안일함이 제국 곳곳에 퍼지며 내 영지도 답보상태를 거듭했고, 500년이 지나도록 한 치도 농지를 늘리지 못한 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 파티원 하린님이 레벨12 붉은 여우 5마리를 사냥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3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3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레벨12 곰팡이 펑거스 12마리 사냥했습니다.
- 파티원 하린님이 9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파티원 모모님이 9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숲에 들어간 지 30분도 안 돼 사방에서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1~3레벨 쥐가 달려들었고, 다음은 3~5레벨 토끼가 커다란 앞발로 발차기를 해왔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10레벨 초중반 몬스터인 붉은 여우와 펑거스가 적게는 3~4마리, 많게는 10마리 이상씩 무리 지어 공격했다.
울타리를 넘어 50m까지는 몬스터의 움직임이 없어 생각했던 만큼 몬스터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외곽을 돌아다니다가 인간에게 공격받아 먹이가 될 수도 있어 안쪽에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건장한 남자 농노들이 숲 외곽에서 식물과 열매를 채취하며, 1~5레벨 이하의 몬스터를 사냥해 식량으로 충당하자 영악한 몬스터들도 숲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The Age of Hero에선 레벨이 있는 모든 동물을 몬스터라고 불렀다. 쥐조차 1레벨 몬스터로 아주 작은 곤충만 레벨이 없었다.
또한, 인간형과 좀비형, 유령형, 독을 품은 몬스터를 빼면 모두 먹을 수 있어 식용으로 사용했다.
“이번에는 내가 잡을게.”
“알았어.”
내가 나설 사이도 없이 하린이 눈에 보이는 몬스터를 모두 사냥했다. 패시브 스킬 해동청의 눈 덕분에 나보다 멀리 넓게 볼 수 있자 숨어 있는 몬스터까지 화살을 날려 잡아내 칼을 휘두를 기회도 없었다.
순발력이 높은 영향인지, 많은 사냥을 통해 생겨난 능력인지 반응속도, 이동속도, 공격속도 모두 빨라 사이먼의 홀리메탈 원형 방패를 던질 기회도 없이 하린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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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밤12시에 올릴 작품을 미리 올립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