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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43화 (4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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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눈물

43.

“맛 어때?”

“진짜 맛있다. 평생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는 처음이야.”

“나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거짓말이지?”

“아니야. 진심이야. 정말 정말 맛있어.”

“헤헤헤. 내가 요리는 좀 잘하는 편이지.”

“운동도 잘해, 공부도 잘해, 청소도 잘해, 요리도 잘해, 말도 예쁘게 하고, 배려심도 남다르고. 이런 천사가 왜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남자에게 왔을까?”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 오빠는 지금껏 내가 본 남자 중 최고야.”

“고마워.”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고맙다는 말로 말을 끝맺었다. 계속 아니라고 말하면 못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린이보다 못났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래야 나와 하린이 모두 행복할 수 있었다.

내가 계속 자격지심을 갖고 행동하면 우리 둘 다 불행해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는 할 게 궁수밖에 없네. 오빠는 기사 선택할 거지?”

“방패 사용하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오빠는 영주니까 다른 직업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히어로 에브리에서 확인한 직업은 유저들이 올린 것으로 모든 직업이 다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무투가, 창술가, 상인, 주술사 등 많은 직업이 누락돼 있었다. 그리고 유저 중에는 나만 영주 신분이라 남들은 알 수 없는 직업이 나올 수도 있었다.

“용기사나 영주 나오면 대박일 텐데.”

“그럼 좋지.”

“어. 새로운 직업 나왔네.”

“어떤 거?”

“대장장이, 무두장이, 목공, 연금술사, 요리사, 세공사 이렇게 6개 나왔어.”

“모두 생산직이야?”

“맞아.”

The Age of Hero는 생산직 직종이 없었다. 있다면 상인이 전부로 이들 역시 NPC를 상대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유저에게만 물건을 팔았다.

이 때문에 대장장이로 키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취미생활로 할 순 있지만, 상점에서 스킬을 팔지 않아 아이템을 만들 수도 없었고, 대장간에서도 제자로 받아주지 않아 스킬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패치를 통해 유저도 무기와 갑옷, 물약, 요리, 액세서리 등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상점에서 스킬 팔아?”

“요리 스킬만 팔고 나머지는 NPC 제자로 들어가야 스킬을 배울 수 있다고 나왔어.”

“제자로 들어가는 거 쉽지 않은데.”

“밸런스 파괴를 우려하는 거 같아. 안 그러면 상점에서 스킬 팔았겠지.”

“그렇겠네.”

수도와 10대 도시에 있는 대장간은 모두 황제와 귀족 소유였다. 영지에 있는 대장간 역시 영주 소유로 이들의 허락 없인 제자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물약을 만드는 연금술사와 가죽 갑옷을 만드는 무두장이, 나무 무기를 만드는 목공, 액세서리를 만드는 세공사도 같았다.

The Age of Hero는 슈퍼에고 컴퓨터 환인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게임으로 총과 대포 같은 밸런스를 파괴하는 무기는 절대 만들 수 없었다.

또한, 기업이 공장을 짓고 무기와 각종 소비재 물품을 만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무적인 일, 학술적인 일, 서비스업, 금융업 등 NPC의 삶과 무관한 일만 허락됐고, 이것도 수도 크라쿠푸스와 10대 도시에서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도 최대한 아틸라 제국 양식을 따라 지어야 했고, 10층 이상 고층 건물도 올릴 수 없었다.

유저는 The Age of Hero를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환인이 정한 원칙 안에서만 가능한 일로 질서를 무너뜨리는 건 용서하지 않았다.

내가 래틀에게 설계도를 그려준 개틀링 석궁도 최신형 컴파운드 석궁만 한 위력은 없었다.

시속 300km로 날아가는 최신형 컴파운드 석궁은 일반 석궁보다 사거리가 2배 이상 길었고, 파괴력도 엄청나 가까운 거리에선 총알만큼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개틀링 석궁은 빠르게 발사할 수 있는 장점은 갖고 있지만, 유효 사거리는 50m에 불과했고, 크기와 무게로 인해 들고 다니면서 쏠 수도 없었다.

전차나 장갑차처럼 마차에 설치하고 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움직이는 물체를 흔들리는 마차에서 조준경도 없이 맞추는 건 불가능했다.

최신형 기관총도 뛰어다니는 사람을 맞추기가 무척 어려운데, 3~4초에 한 발씩 발사되는 개틀링 석궁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그렇게 밸런스를 파괴하지 않아 설계도를 그릴 수 있었고, 래틀도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칭찬하며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밸런스를 깨는 무기와 방어구는 설계도를 그릴 수도 없었고, 대장장이가 만들 수도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밸런스를 깨는 짓을 하면 영구히 The Age of Hero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대박.”

“뭔데 그래?”

“오크 왕국과 엘프 왕국, 파르톤 제국, 6개 왕국 연합, 몬스터 랜드, 바다 건너 아말 왕국이 공개됐어. 그런데 그것보다 더 파격적인 내용도 있어.”

“뭔데?”

“파르톤 제국과 6개 왕국 연합, 아말 왕국으로 본거지를 이전할 수 있어.”

“원하는 사람은 다?”

“아니. 대한민국 유저는 안 돼.”

“그럼 다른 나라 사람은 다 된다는 거야?”

“원하는 곳에 다 갈 수 있는 건 아니야. 파르톤 제국은 북미와 유럽 국가만 갈 수 있고, 남미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는 6개 왕국과 아말 왕국으로만 갈 수 있어.”

“분산이네?”

“사람이 많아져 분산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보단 본격적인 전쟁을 위해 나라별로 나누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제목을 생각해봐 그럼 답이 있잖아.”

“Part 2 일곱 용기사와 전쟁의 서막?”

“바로 그거지.”

The Age of Hero가 서비스되고 3년 만에 한 첫 번째 패치 제목이 Part 2 일곱 용기사와 전쟁의 서막이었다.

하린은 이 제목대로 전쟁을 위해 국가별로 나누는 거로 생각했다. 패치 되기 전까진 아틸라 제국의 분열이 전쟁의 서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패치 내용을 보자 아란의 말처럼 전쟁이 대륙 전체로 번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가 간의 전면전이 될지, 국지전이 될지, 자신만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쟁이 될지, 민족 간의 전쟁이 될지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란테스 대륙 전체로 전쟁이 번진다는 것으로 국경 영지인 내 영지가 안전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우리 영지에도 전쟁의 화마가 불어 닥치겠네?”

“안 그럴 수도 있지만,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지.”

“현재 재정 상태로는 병사를 더 늘릴 수 없어.”

“곧바로 시작되진 않을 거야. The Age of Hero가 오픈한지 게임 시간으로 12년이 흘렀어. 내 생각엔 빨라도 3~4년은 걸린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국가를 옮긴 사람들이 정착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하린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국가를 옮기자마자 전쟁을 시작할 순 없었다. 전쟁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끝나야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려면 나라별로 이동한 유저들이 기반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3~4년 안에 이루어지기 어려웠지만, 시간을 느긋하게 잡았다간 우리가 죽을 수도 있었다.

준비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했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이전하는 거야?”

“게임 시간으로 한 달.”

“한 달이면 너무 짧은 거 아니야? 수도와 10대 도시에 진출한 기업과 대학은 어쩌라고?”

“건물은 원하는 도시로 이전시켜 준데.”

“그래도 피해가 클 텐데.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잖아.”

“크진 않을 거야. 국가별로 정해진 도시에서만 기업과 대학 등을 지을 수 있었으니까. 크라쿠푸스만 해도 외국 기업과 대학은 진출하지 못했어. 모두 국내 기업이거나 외국계 국내 법인만 들어왔어.”

“아 그래?”

“오빠는 아는 게 너무 없어. 매일 한 시간씩 히어로 에브리에 접속해서 베스트에 올라온 글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몰라? 알아야 영지를 제대로 키울 거 아니야.”

“알았어.”

내가 아는 게 없다는 하린의 말은 사실이었다. 히어로 에브리에 들어가 읽은 글마다 모르는 것투성이로 아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사이트에는 소소한 팁부터 몬스터 공략 방법 등 수천 가지가 넘는 유용한 정보가 가득했다.

이것만 모두 숙지해도 The Age of Hero에 대해 절반은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에 절반은 과장된 정보이거나 거짓 정보로 걸러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었다.

“하린아, 난 레이첼하고 잠시 얘기 좀하고 올게.”

“상처받지 않게 잘 다독여줘. 그 나이에 상처받으면 평생 지워지지 않아.”

“알았어.”

하린에게 레이첼을 만나고 온다고 하자 잘 다독여주라고 했다. 화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반대로 레이첼이 상처받을 것을 걱정하자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레이첼. 난 네가 싫지 않아. 그러나 사랑하는 건 아니야. 미안해.”

“제가 농노이기 때문인가요?”

“그건 절대 아니야. 나는 신분으로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는 속물이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야.”

“영주님이 원하시면 영지에 있는 여자 모두를 사랑할 수 있어요. 영주님은 그러셔도 돼요.”

“나는 그런 넓은 가슴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럴 수 없어.”

“그건 가슴이 넓은 것과는 상관없어요. 영주님의 특권이에요.”

“나는 그런 특권을 원하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 않아. 나 때문에 누군가 아파하고 슬퍼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데 안아주지 않는 것도 상처 주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생각해. 나는 조르주 준 남작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건 여자의 일생을 망치는 일이야. 레이첼.”

“네 영주님.”

“경비병들이 널 몰래 훔쳐보는 거 알아?”

“아니요.”

“네가 밖에 나가면 경비병들이 너만 바라봐.”

“왜요?”

“너무 예쁘니까.”

“아!”

경비병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는다는 말에 레이첼이 탄성을 터뜨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로 레이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경비병이 여럿 있었지만, 모든 경비원이 레이첼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린과 아만다 등 시녀들 모두 미모가 출중해 경비원들 모두 시녀들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러나 전임 성주 조르주 준 남작의 행패로 인해 젊은 시녀는 모두 내 여자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 몰래 훔쳐보기만 했다.

“나를 사랑해준 건 정말 고마워. 그러나 나는 평생 하린만 사랑할 거야. 그러니 너도 널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남자를.”

“영주성에서 쫓아내실 건가요?”

“아니. 지금 당장 찾으라는 게 아니야. 난 네가 필요해. 그러니 조금만 더 내 곁에 있다가 때가 되면 그때 네 짝을 찾아 아기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

“영주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말해.”

“절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씀 좋아한다는 말인가요?”

“맞아. 좋아해. 다만 사랑할 수 없을 뿐이야.”

“영주님이 저같이 비천한 농노 계집을 좋아해 주셨다니 생각만 해도 행복해요. 그게 사랑이 아니란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요. 영주님 말대로 할 게요. 영주님이 가라고 할 때까지 곁에 있을게요.”

“고마워.”

“아니에요. 버릇없는 저를 예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진심으로 영주님을 사랑해요. 제 사랑을 받아주지 못하더라도 제 마음만은 알아주세요. 흐윽.”

끝내 레이첼이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죽여 우는 모습이 너무 가여워 품에 안고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잔인해도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다. 레이첼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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