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40화 (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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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악연

40.

“이 기회에 내 캡슐도 오빠네 집에 가져다 놓는 게 어떨까?”

“그러면 나야 좋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부모님이 허락하실까?”

“집에 남는 거 한 대 있어. 친구 준다고 하고 오빠 집에 가져다 놓으면 돼.”

“비싼 캡슐을 친구 준다고 해도 돼?”

“아주 친한 친구 잠시 빌려준다고 하면 뭐라고 안 할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캡슐 우리 집에 가져다 놓으면 계속 집에 늦게 들어갈 텐데, 그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일일이 간섭하는 스타일 아니야. 자기 미래는 자기가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하셔. 그래서 오빠와 언니, 나, 동생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셔.”

“그래도 남자 혼자 있는 집에 가 있다는 걸 아시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거야 당연하지. 아직 결혼도 안 한 다 큰 처녀가 남자 혼자 있는 집에 온종일 있다면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 그러니 오빠가 아닌 여자 친구 집에 빌려준다고 해야지.”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그럼 결혼해야지. 크크크크.”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부모님이 과연 허락하실까? 이제 겨우 대학교 1학년에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걱정할 일 아니야. 닥치면 다 되게 돼 있어. 그리고 오빠는 꿈이 있잖아. 그 꿈을 열심히 좇으면 반드시 성공할 거야.”

“고맙긴 한데 걱정이 앞선다.”

“그만 걱정하고 주소나 불러. 용달차 불러야 해.”

“오늘 옮기게?”

“말 나온 김에 해야지. 나는 결정하면 바로 움직여. 결정해놓고 질질 끄는 거 딱 질색이야.”

“알았어.”

하린의 추진력은 정말 끝내준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 같으면 최소 한 달은 고민했을 일을 하린은 1분도 안 돼 결정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자기 확신이 강해야 할 수 있는 일로 확고한 자아와 판단력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유형이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로 사고뭉치로 불렸다.

그러나 하린은 이런 유형은 아니었다. 아주 침착하고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유형으로 확고한 확신이 들 때만 이런 모습을 보였다.

집 주소를 불러주자 재빨리 로그아웃하고 나간 하린이 용달차를 부르고 돌아와 2시간 후 캡슐을 싣고 집으로 온다고 했다.

The Age of Hero에서 같이 있는 것도 좋았지만, 현실에서 붙어있는 것만은 못했다. 진짜 만지고 뽀뽀하는 기분은 게임에서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많은 사람이 The Age of Hero에서 하는 스킨십과 섹스가 더 좋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원시 시대 사람인지 직접 내 손에 닿은 하린의 부드러운 피부와 달콤한 입술이 백만 배는 더 좋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같이 올해 입학한 새내기 최수민입니다. 낮에 2학년 과대표가 오늘 중으로 1학년 과대표를 선출해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해서 제가 총대 메고 올라왔습니다.”

웅성웅성

“1년 동안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학과를 훌륭하게 이끌어 가실 분 있으시면 손들어 주십시오. 후보를 받아 빠르게 거수로 선출하겠습니다.”

“.......”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 도와가며 하는 일입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과대표에 알맞다고 생각하는 분 있으시면 추천해주세요. 자가 추천도 받습니다.”

“.......”

“아무도 없습니까?”

저녁 5시 강의가 끝나자 정이슬의 남자친구... 정이슬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남자라고 했지만... 최수민이 앞에 나서 과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며 집에 가려는 학생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전체 과대표도 아니고 1학년 과대표는 해봐야 학점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장학금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인맥을 넓히며 다양한 학교생활을 경험하고 싶거나, 작은 감투에도 욕심이 있다면 해볼 만한 자리였지만, The Age of Hero에 중독된 청춘들은 과대표 따위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에 나가 떠든다는 건 자기가 과대표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자리에 앉아 침묵으로 일관하는 학생들도 그쯤은 알고 있어 최수민이 과대표를 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하실 분이 안 계시면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전교 회장을 역임해 교수님과 학생들을 연결하는 일은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해 여러분의 고민도 잘 들어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믿고 맡겨주시면 우리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학과를 XX대학교 최고의 학과로 만들겠습니다.”

“그럼 하세요.”

“잘할 수 있다면 하시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지도교수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괜찮다면 박수로 응원해주십시오.”

짝짝짝짝

“1년 동안 열심히 하겠습니다. 1학년 과대표가 됐으니 한 가지 안건을 제출하겠습니다. 게임 시간으로 모레 강의 끝나고 학교 앞 호프집에서 단합대회를 했으면 합니다. 다현씨, 참석해주실 거죠?”

“으음...”

“첫 번째 단합대회입니다. 꼭 참석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스케줄이 있어 2시간 이상은 어려울 것 같네요.”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저희도 같은 과인데 당연히 참석해야죠.”

“여러분 히어로걸스가 단합대회에 참석합니다. 모두 오실 거죠?”

“히어로걸스 가면 나도 가야지. 이런 기회가 다시는 안 올 수도 있는데 빠지면 안 되지.”

“나도 은지 보러 무조건 간다.”

최수민은 모레 단합대회를 해도 되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히어로걸스의 리더 다현에게 참석해줄 것인지부터 물어봤다.

히어로걸스가 참석하면 남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단합대회에 참석한다는 걸 알고 한 짓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듣기보단 특정인의 인기를 이용해 자기주장을 관철시킨 아주 얍삽한 짓이었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히어로걸스의 참석에 광분해 그런 사실을 잊은 지 오래였고, 여학생들은 국민 걸 그룹 히어로걸스도 참석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기들이 빠지면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어 울며 겨자 먹기고 꼭 참석해야 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전교 회장과 부회장을 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최수민은 아주 영악하게 사람들을 다뤘다.

“머리 좋네.”

“머리 좋은 게 아니라 얍삽한 거야.”

“그래도 자기 뜻대로 학생들을 움직였잖아. 그럼 머리 좋은 거지.”

“과대표도 히어로걸스를 움직이게 한 것도 이슬이가 시킨 게 분명해.”

“정이슬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과대표가 되면 나를 더 괴롭힐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단합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을 알고 미리 선수 친 게 분명해.”

“최수민이 무슨 힘이 있다고 널 괴롭혀?”

“작은 권력이라도 쓰기에 따라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어. 제출한 리포트를 고의로 빠뜨릴 수도 있고, 공지사항을 오빠와 나에게만 전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뒤에서 우리를 험담할 수도 있어.”

“그런 일 없게 내가 잘할게.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리포트는 제출할 때마다 핸드폰으로 찍어 놓으면 되고, 공지사항은 조교에게 물어보면 돼. 그리고 아이들이 험담하는 것도 무시하면 돼. 들을 가치도 없는 얘기니까.”

“오빠가 있어 정말 든든하다. 그런데 오빠 싸움 잘해? 특전사 출신이니까 잘하겠지?”

“싸움은 왜?”

“이슬이가 힘을 사용할 수도 있거든.”

“잘하진 못하지만, 얻어맞고 다닌 적은 없어.”

“그럼 됐어.”

하린이 크게 걱정하는 것으로 보아 정이슬의 괴롭힘이 지독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마추어에게 당할 만큼 특전사에서 보낸 5년이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정보수집과 정찰, 게릴라전은 특전사의 기본 임무였고, 교란과 민사심리전도 이가 갈리도록 훈련했다.

그리고 무력을 동원해도 두렵지 않았다. 요인암살, 납치, 인질구조, 주요시설물 파괴가 임무로 정이슬이 킬러를 고용한다면 모를까 동네 양아치와 학교에서 힘 좀 쓴다고 설치는 놈들을 데리고 온다면 아주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오빠, 갈 거야?”

“가야지. 첫 번째 행사부터 빠질 순 없잖아.”

“나는 땡기지 않는데.”

“그럼 가지 말자.”

“아니야. 남들 다 가는데 우리만 빠지면 두고두고 얘기할 거야. 마음에 안 들지만, 가는 게 맞아.”

하린이 단합대회에 참석하려 하지 않은 건 정이슬과 부딪치기 싫어서였다. 정이슬은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려 하린이를 아주 힘들게 했다.

게임에서 하는 단합대회가 술 마신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The Age of Hero는 섹스도 진짜로 한 것처럼 느끼고, 작은 상처도 현실처럼 아파 발을 동동 굴렀다.

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고 헛소리를 해댔다.

그래도 현실에서까지 취하는 건 아니라서 로그아웃하고 나가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강의실을 빠져나와 곧장 영지로 돌아가지 않고 대형 곡물 상점이 밀집한 상점가로 이동했다.

추수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지금이 곡물 가격이 가장 쌌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올수록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사려면 지금 사 놓는 게 가장 싸게 살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다른 게임은 유저와 NPC, 몬스터 모두 머리 위에 이름과 직위가 표시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는 몬스터만 이름이 표시돼 유저와 NPC는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입은 옷을 보면 유저인지 NPC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유저는 패션에 신경을 쓰지만, NPC는 귀족이나 상인이 아니면 대부분 거지꼴을 하고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곡물 상점 점원 NPC가 내가 귀족인 걸 몰라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진 않았다.

자신을 뽐내는 건 어리석은 사람이나 할 짓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은 단단한 망치에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곡물 가격 좀 알아 보러왔습니다.”

“밀은 ton당 은화 21개고, 옥수수는 15개, 쌀은 40개입니다.”

농노 한 명당 하루에 밀 700g을 소비하면 밀 2.1ton이 하루에 없어졌다. 영지 관리창에는 5개월분 식량이 있다고 나오지만, 현대인 기준으로 하면 2개월분이 조금 넘어 3달분인 200ton은 있어야 겨울작물을 추수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양과 말, 돼지, 소, 닭 등 사료용 옥수수 100ton도 필요해 모두 사려면 금화 57개가 들었다.

이처럼 싼 이유는 추수가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수도 크라쿠푸스 주변에는 엄청나게 넓은 곡창지대가 있어 아틸라 제국에서 곡물 가격이 가장 쌌기 때문이었다.

“운반비는 통상 얼마나 합니까?”

“지역과 거리에 따라 다릅니다.”

“크바시르에도 분점이 있습니까?”

“네.”

“크바시르에서 레오 남작 영지까지 밀 200ton과 사료용 옥수수 100ton을 운반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나옵니까?”

“거리는 350km지만, 가는 길이 워낙 험하고 몬스터가 곳곳에 있어 용병 50명은 동원해야 안전하게 곡물을 운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곡물 구매 비용보다 운반비가 더 나옵니다.”

생각보다 곡물 가격이 싸 안심했었다. 그러나 영지까지 운반하는 비용이 사는 비용보다 더 들자 머리가 아파왔다.

마차에 실어 나르는 방법 이외에 택할 수 있는 운송방법은 마법 가방에 담아 나르는 것이었다.

공간 확장 마법과 무게 감소 마법이 걸린 마법 가방에 곡물을 담아 운반하면 추가비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에 100ton씩 담을 마법 가방이 있다면 모를까 금화 1개나 하는 100kg짜리 마법 가방에 밀과 옥수수를 담아 옮기려면 가방이 3,000개나 필요했다.

100kg짜리 마법 배낭 10개를 사서 수도와 영지를 계속 오가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영지에 설치된 포털은 소형 공간이동 마법진이라 공기 중에서 마나를 모으는 마나 집적진이 작아 6시간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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