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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37화 (3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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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37.

“형, 캡슐은 사셨어요?”

“어.”

“얼마짜리 사셨어요?”

“싼 거 샀어.”

“게임은 해보셨어요?”

“어.”

“사냥은요?”

“해봤어.”

“쉽지 않죠?”

“그렇지 뭐.”

“수업 끝나고 도와드릴까요?”

“야, 사냥은 내가 도와줄 거라고 했잖아.”

“이왕이면 셋이 하는 게 좋지 않아?”

“나 혼자서도 오빠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그러니 너는 네가 시킨 일이나 잘해.”

“생명력이 얼마나 되는데?”

“그러는 너는 얼만데?”

“2,800이야. 6개월 한 것치고 괜찮지?”

“2,800이 생명력이야? 마나 아니야?”

“그러는 너는 얼만데 그래?”

“8,000 넘어.”

“헉!”

The Age of Hero는 생명력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으로 실력을 가늠했다. The Age of Hero는 레벨이 없는 게임으로 사냥을 통해 얻은 포인트를 생명력과 마나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실력을 비교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생명력과 마나의 크기였다.

그러나 장비에 따라 변동 폭이 커 생명력만으로 실력을 가늠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사냥했다면 생명력과 마나가 클 수밖에 없어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한 거야?”

“오픈할 때부터.”

“3년 했으면 레어 아이템도 있겠네?”

“당연한 거 아니야? 3년하고 레어 아이템 하나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하린이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로 성우를 놀리려고 한 얘기였다. 레어 아이템을 한 개라도 가진 유저는 전체의 3%도 안 됐다.

초창기에 시작한 유저들이 레어 아이템을 한 개씩 갖고 있다면 최소 1억 개는 풀렸다는 얘기로 그렇게 많이 풀렸다면 수천만 원이나 갈 수가 없었다.

아이템 가격은 희소성이 첫째로 아무리 좋은 아이템도 많이 풀리면 제값을 받을 수 없었다.

“몇 개나 있어?”

“그건 알려줄 수 없어.”

“미안해. 흥분해서 그만...”

“괜찮아. 나쁜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닌 거 아니까.”

The Age of Hero에서 상대가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는 건 큰 실례였다.

아이템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비싸 아이템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 가족이 아니면 어떤 아이템을 가졌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직업이 뭐야?”

“궁수.”

“혼자서 몇 레벨 몬스터까지 사냥할 수 있어?”

“50레벨 정예 몬스터.”

“대박!”

성우가 놀란 건 40레벨 몬스터부터 공격력과 방어력, 움직임 등이 1.5배 증가해 장비와 실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절대 사냥할 수 없어서였다.

특히 정예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전투력이 3배나 높아 장비와 생명력이 따라주지 않는 유저는 10명이 모여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런 강력한 몬스터를 혼자서, 그것도 50레벨 정예 몬스터를 혼자 사냥할 수 있다는 건 장비와 실력 모두 따라준다는 뜻으로 하수인 성우가 보기엔 신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좀 키워주면 안 돼?”

“됐거든.”

“그러지 말고 조금만 도와줘. 고급 아이템을 다섯 개나 맞췄는데도, 저렙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같이 게임하는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수준이라 30레벨 정예 몬스터도 못 잡아.”

“겨우 6개월하고서 40레벨 몬스터를 잡으려고 해? 미친 거 아니야?”

“빨리 키우고 싶단 말이야.”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씩 전진해. 그러면 어느 순간 확 달라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거야. 욕심부리면 아이템, 스탯, 포인트까지 모두 잃게 돼.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잘 알고 있어. 일주일 전에 40레벨 몬스터 잡다가 죽어서 아이템도 떨구고, 스탯 도 10%나 깎였으니까.”

“이런 화상.”

“에휴.”

성우가 하린에게 매달리는 건 상위 유저와 파티를 맺고 사냥하는 것이 혼자 사냥하는 것보다 몇 배나 빨리 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PL(Power Leveling), 일명 쫄파티라 불렀다. 레벨이 높은 유저가 레벨이 낮은 유저을 키워주기 위해 파티를 맺고 사냥하는 방법으로 단기간에 저레벨 유저를 급성장시킬 수 있었다.

특히 The Age of Hero는 일반적인 게임과 달리 레벨이 없어 파티를 맺고 사냥하면 포인트를 공평하게 나눠 가져 새로 시작한 유저가 쫄파티를 맺으면 아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돈을 받고 키워주는 전문 쫄파티 길드도 있었다. 고생 고생해서 키운 유저들 입장에선 정말 화날 일이었지만, 슈퍼에고 컴퓨터 환인과 ㈜판타스틱은 쫄파티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아 간판을 내걸고 사람들을 모집하는 전문 업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포인트 당 비용을 지불해야 해 많은 돈이 들었고, 이렇게 키운 유저는 스킬 경험치를 얻지 못해 반쪽짜리 유저로 전락했다.

생명력과 마나, 장비만으론 완벽한 사냥꾼이 될 수 없었다. 스킬이 따라줘야 몬스터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또한, 남의 손을 빌려 성장하면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겉만 뻔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형, 저기 여자애들 ‘히어로걸스’ 아니에요?”

“히어로걸스가 뭐야?

“The Age of Hero 협찬사 중에 SUN 엔터테인먼트라고 있어요. 거기서 작년 초에 데뷔시킨 걸 그룹으로 지금 가장 잘 나가는 걸 그룹이고요.”

“그런 걸 그룹도 있었어? 나는 핑클하고 SES밖에 몰라.”

“하아. 형하고 얘기하면 석기 시대에 있는 것 같아요. TV도 안 보고, 인터넷도 안 하고... 대체 무슨 낙으로 사세요?”

“흐흐흐흐.”

“야, 김성우. 모든 사람이 너처럼 여자 아이돌 그룹을 알아야 하는 거야? 모르면 이상한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TV만 틀어도 나오는 걸 그룹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눈 감고 귀 닫고 살지 않는 한 모를 수가 없어.”

“우리 오빠는 너와는 달라. 다른 여자에겐 관심 없어. 나만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그럴 수 있는 거야. 알았어?”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죽고 싶어?”

“그게 아니라...”

“한 번만 더 이상한 소리 하면 아까 한 얘기는 없던 거로 하겠어. 그래도 되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조심해라.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다.”

“알았어.”

강의가 시작되기 20분 전 여학생 8명이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160cm 초반에서 후반까지 비슷한 신장의 여학생들은 깊게 눌러쓴 모자를 빼면 평범한 복장이라 눈이 갈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여학생 8명이 들어오기 직전 건장한 남자 2명이 강의실에 먼저 들어와 앉아 있는 학생들을 쭉 훑어보고 나간 후 여학생들이 곧바로 들어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들어왔던 남자 2명도 눈에 띄지 않는 간편한 복장이었지만, 강의실을 훑어보는 눈빛이 누굴 찾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위험한 인물이 있는지 훑어보는 것으로 안전요원 또는 경호원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아직 군바리 물이 다 빠지지 않았는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특히, 운동한 티가 역력한 남자들이 나타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몰래 쳐다봤다.

그래서 여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올 때 일반인은 아닐 거로 추측했다. 하지만 TV를 보지 않아 가장 인기 있는 여자 연예인은 앞에 세워놔도 알아보지 못해 8명의 소녀가 히어로걸스(Hero Girls)인지는 몰랐다.

“저기 팬인데 사인 한 장만 해주세요.”

“저도요.”

많은 연예인이 The Age of Hero를 했다. The Age of Hero는 세계를 선도하는 가장 핫한 트렌드로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 전 세계 연예인들이 3억5천만 명의 유저를 팬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앞다투어 The Age of Hero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들 연예인은 얼굴이 밥줄이라 일반 유저와 달리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키를 살짝 키우고, 다리도 조금 늘리고, 알게 모르게 얼굴도 살짝 손봤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그대로였다.

돈을 많이 벌어 더는 얼굴을 알리지 않아도 돼 취미생활로 한다면 모를까 연예인은 대중에게 얼굴을 알려야 인기를 얻고, 인기를 얻어야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최대한 얼굴을 고치지 않았다.

성형수술까지 해서 연예계에 데뷔하고, 게임에선 그럴 수 없다는 게 생각하면 정말 우습고 슬픈 얘기였다.

히어로걸스도 이런 이유로 외모를 거의 고치지 않아 앞에 앉은 학생들이 알아볼 수 있었다.

히어로걸스를 알아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종이와 펜을 내밀자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히어로걸스 리더 다현입니다. 이번에 저희 멤버 8명이 모두 XX대학교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 내용은 시험을 통해 당당히 합격한 것이지 기부 입학한 것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이제 같은 학과 친구니까 저희 학교 잘 다닐 수 있게 많이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야호! 히어로걸스다.”

“다현! 다현! 다현! 히어로걸스! 히어로걸스!”

리더 다현의 말에 강의실이 떠나가도록 환호성을 지른 남학생들이 다현과 히어로걸스를 연호했다.

정윤희를 닮은 하린과 피비 케이츠를 닮은 이국적인 여학생만으로도 남학생들은 다가올 4년의 세월이 즐겁기만 했다.

그런데 여기에 최고의 걸 그룹 히어로걸스 8명이 모두 같은 과에서 공부하게 되자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한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과 반대로 여학생들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하린과 피비 케이츠를 닮은 여학생만으로도 깊은 좌절감을 맛봤는데, 미모는 떨어져도 인기는 하늘 끝까지 다다른 최고의 여자 아이돌 그룹까지, 그것도 8명 모두 다 4년 동안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되자 분노와 함께 허탈감이 들었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내가 못나지 않아도 지독하게 잘난 사람 옆에 있으면 오징어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뱀의 머리가 될지언정 용의 꼬리가 되지 말라고 했다. 예전에는 능력만 해당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외모와 인기도 이 말에 포함됐다. 여학생들이 좌절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

“오빠. 안 쳐다볼 거지?”

“누구?”

“히어로걸스.”

“관심 없어.”

“정말이지?”

“어.”

“그 말 어기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절대 미모 갑 하린조차 신경이 쓰이는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히어로걸스를 째려봤다.

히어로걸스 8명의 미모가 특출한 건 사실이지만, 하린과 비교하면 한두 수는 무조건 접어줘야 할 만큼 하린의 미모가 훨씬 예뻤다.

그런데도 하린이 히어로걸스를 신경 쓰는 건 미모와 인기가 절대적으로 비례하지 않아서였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여자 연예인 중에는 미모가 특출하지 않은 배우도 많았다. 대중이 배우를 좋아하는 것 단순히 얼굴만 예뻐서가 아니었다.

대중을 사로잡을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였다. 끝내주는 몸매와 눈부신 미모를 갖고도 뜨지 못하는 연예인은 노래를 못하거나, 연기를 못하거나, 대중을 사로잡을 매력이 없어서였다.

그런 측면에서 히어로걸스는 남학생들을 사로잡을 강력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대형 기획사와 방송, 신문, 대기업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만들어낸 거짓 인기였지만, 매스 미디어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히어로걸스는 여신이었다.

하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부질없는 걱정으로 나는 여자의 얼굴보단 마음을 봤다. 하린이 예쁘지 않았어도 지금과 같은 성격이라면 무조건 사귀었다.

그렇다고 예쁘고 완벽한 몸매가 싫다는 뜻은 아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배려심까지 갖춘 여자가 자기 여자이길 바라는 건 세상 모든 남자의 마음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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