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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36. 개강
“형필이 형.”
“누구신지?”
“저에요 성우.”
“네가 성우야?”
“네.”
“몰라보겠다.”
“형, 이 정도는 기본이에요. 피어싱에 문신까지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세요. 제가 보기에는 하나도 고치지 않은 형이 이상하네요.”
“그런가?”
“그럼요. 본 모습 그대로 다니는 사람은 정치인과 연예인 그리고 형밖에 없을 거예요.”
하린과 다정히 캠퍼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다가와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다름 아닌 성우로 얼굴과 키, 복장까지 너무 달라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178cm에 평범한 외모에서 190cm의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 오뚝한 코, 묵직한 입술로 얼굴을 완전히 개조한 성우는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볼 만큼 변해 있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모습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도 바꾸지 않은 나와 하린이 이상한 것이었지 나름 멋지게(?) 바꾼 성우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꿈에서라도 그리던 멋진 모습으로 고칠 기회가 왔는데, 고치지 않고 가만두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잘 생기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건 인간의 순수한 욕망으로 손가락질 당할 일이 아니었다.
지나친 성형중독으로 얼굴과 몸, 건강까지 망친다면 모를까 자기만족을 위해 조금 손보는 것은 흠이 아니었다.
그리고 The Age of Hero에서 외모를 바꾸는 건 진짜 얼굴에 칼 대는 것도 아니었고,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을 게임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것으로 욕할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특출하지 못한 외모가 항상 불만으로 술에 취해 잠들지 않았다면 코도 조금 세우고, 눈도 크게 하고, 턱도 갸름하게 고치는 등 지금과는 모습이 많이 달랐을 것이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어. 너는?”
“저도 잘 보냈어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혹시... 우리 과 퀸카 송하린씨?”
하나도 고치지 않은 내 모습에 정신이 팔려 하린을 보지 못하고 수다를 떨던 성우가 뒤늦게 내 옆에 있는 하린을 발견하곤 눈이 동그래졌다.
“야, 송하린씨가 뭐야? 같은 과 친구끼리. 앞으로 하린이라고 불러.”
“저.정말 그래도 돼요?”
“싫으면 님 자를 붙이든가.”
“아.아니요. 아니. 아니. 하.하린이라고 부를게.”
“남자답지 못하게 말은 왜 더듬고 지랄이야? 너 말 더듬는 병 있어?”
“아.아니.”
“아니라면서 말 더듬는 건 뭔데? 바보야?”
“.......”
하린이 성우를 대하는 모습을 보자 걱정도 됐지만, 한 편으로 안심도 됐다.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친절한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었다.
친구든, 동생이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남자라는 동물에 내 여자가 친절한 건 무조건 싫은 게 남자 마음이었다.
그런 면에서 하린의 모습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하지만 사사건건 남자들과 싸운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은 아니라서 적당히 제어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그 손 뭐예요?”
“그.그게...”
“오빠랑 나랑 사귀어. 잘못된 거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없는데 왜 그런 눈으로 봐? 상당히 마음에 안 드네.”
“미안해. 놀라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었어.”
“조심해. 그러다 죽는 수가 있다.”
“알았어.”
나와 하린이 손을 꼭 붙잡고 있자 성우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와 하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피비 케이츠를 닮은 이국적인 소녀와 하린을 사귀고 싶다고 한 성우에게 잘 해보라고 해놓고 하린과 이러고 있자 죄를 지은 것 같아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성우가 얼굴을 바짝 디밀고 따지듯 전투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언제부터 사귄 거예요?”
“정식으로 사귄 건 어제고, 호감을 느낀 건 소집일 날 오후.”
“형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저 보러 잘 해보라고 해놓고 그날 사귀는 건 매너가 아니죠.”
“미안하다. 고의로 그런 거 아니다.”
“그럼요?”
“운동하러 갔다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지게 된 거야.”
“대단한 인연이네요.”
“미안하다.”
“아니에요. 작업한 것도 아니고 인연이 닿아 만났는데 미안할 일은 아니죠.”
“이해해줘서 고맙다.”
“대신 하린이에게 저 예쁜 여자 친구 한 명만 소개해주라고 말 좀 해주요. 저도 하린이처럼 예쁜 여자 친구 사귀고 싶어요.”
“말은 해볼게. 그런데 장담은 못 해. 많이 까칠한 성격이라.”
“형. 가엾은 동생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저 고등학교 3년 동안 여자 친구 한 명 없이 살았어요. 더는 못 참겠어요. 옆구리가 시려 죽을 것 같아요.”
“알았어.”
“오빠, 빨리 가자. 더 늦으면 좋은 자리 못 잡아.”
“어.”
성우가 다가오자 하린이 야, 너 대신 오빠라고 호칭을 바꿔 불렀다. 사람들 앞에서 내 위신을 세워주려는 의도로 같은 학년이라도 나이 차이가 있으면 형, 동생, 언니, 누나로 부르는 게 예의였다.
사회에 나오면 1~2살은 친구로 지냈지만, 학교는 예외였다. 한 살 차이만 나도 호칭을 명확히 해야지 얼버무리거나 싹수없이 굴면 바가지로 욕먹었다.
이 때문에 생년월일이 빨라 학교를 일찍 들어간 학생들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년도는 같은데 나이는 한 살 어려 나이 많은 쪽에 끼기도 그렇고, 나이 적은 쪽에 끼기도 그런 난감한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배는 달랐다. 나이 차이가 있어도 학교를 먼저 들어가면 깍듯하게 선배로 대해야 했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친해지면 모를까 10살이 많아도 존댓말을 써야 했다.
「그동안 막대한 거 미안해 오빠. 기분 많이 나빴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정말?」
「나이 몇 살 많다고 어른 대접 받으려는 거 꼴불견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았어.」
「역시 우리 오빠는 생각이 깨어 있어. 그래도 내가 좀 심했어. 앞으로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를게. 대신 말은 지금처럼 반말할 거야. 사랑하는 연인끼리 존댓말 하는 거 거리감 있는 것 같아서 싫어. 이해해줄 거지?」
「나도 그런 거 싫어.」
「고마워 오빠. 앞으로 더 잘할게.」
「나도.」
오빠라고 부른다는 말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별명이나 이상한 이름만 아니라면 하린이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둘만 있을 땐 그래도 됐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러면 우리 둘 다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나는 여자 친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비웃음을 사고, 하린은 나이 많은 남자 친구에게 버릇없이 군다고 욕을 먹었다.
그걸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배려심 깊은 하린이 모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신할 거로 생각해 내버려 뒀다.
그 믿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하린은 호칭을 오빠로 바꿔 부르며 나를 기쁘게 해줬다.
“성우야. 같이 가자.”
“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성우를 끌고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강의실이 있는 영웅관으로 들어갔다.
영웅관은 The Age of Hero의 Hero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학과의 강의실과 실습용 캡슐 접속실이 있었다.
「성우 여자 친구 한 명만 소개해줄 수 있어? 성우 말로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없었데. 많이 외로운가 봐.」
「오오. 그렇단 말이지? 딱 걸렸어.」
「소개해줄 거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빠는 가만있어.」
「어쩌려고 그래?」
「군기 좀 잡고 소개해줄게. 아주 예쁜 친구로. 헤헤헤헤.」
「너무 심하게 하진 마. 착한 애야.」
「알았어.」
“너 여자 친구 있어?”
“아.아니. 없어.”
“내 친구들 다 예쁜데, 한 명 소개해줄까?”
“저.정말?”
“오빠에게 하는 거 봐서. 오빠에게 잘하면 소개해주고, 싸가지 없이 굴면 국물도 없어. 잘할 수 있지?”
“그.그럼. 나 형에게 정말 잘해. 형도 알아.”
“그거야 네 생각이고. 내가 보기엔 다를 수도 있지.”
“형 수강신청 할 때 내가 도와줬고, 소집일 날도 형하고 같이 있었어. 그리고 앞으로 형 The Age of Hero하는 거 도와드릴 계획이야.”
“The Age of Hero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앞으로 오빠 리포트나 신경 써. 그거만 잘해도 퀸카로 소개해줄게.”
“거.걱정하지 마. 형 리포트는 내가 책임지고 다 할게.”
“얼렁뚱땅하면 죽을 줄 알아.”
“그럴 일 절대 없어. 나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숙제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어.”
“좋아. 믿어줄게.”
“고마워.”
성우를 갖고 노는 하린의 모습은 한 마리 여우였다. 그것도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였다.
하린은 말이 살짝 거칠어 선머슴 같은 기질이 있었지만, 이해심과 배려심 모두 깊은 착한 여자였다.
그러나 여자는 시간과 장소,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성우를 대하는 모습과 나를 대하는 모습이 180도 달랐다.
“오빠, 우리 저기 뒤에 앉자.”
“어.”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먼저 온 학생들이 나와 하린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러나 깊이 관심 갖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교실에 들어오기 전 둘 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들어와 얼굴이 조금밖에 드러나지 않아 하린인줄 몰랐다.
현실이라면 이상하게 보겠지만, The Age of Hero에선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다니는 NPC와 유저가 많아 이상한 눈으로 보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후드를 눌러 쓰고 강의실에 들어온 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아서였다. 성우만 해도 나와 하린이 사귀는 걸 알고 놀라 쓰려지려 했다.
하린이 내 여자라는 걸 널리 알릴수록 똥파리가 꼬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지만, 광고하듯이 하린이 어깨에 팔을 걸치고 다니고 싶진 않았다.
그건 내가 못났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일종의 자격지심이었다. 억지로 알리려 해선 안 된다.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가 알려지는 것이 좋았다. 그게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지 않고 예쁘게 사랑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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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