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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34화 (3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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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부인

34.

“모습 하나도 안 바꾼 거야? 내가 보기엔 그대로인 것 같네.”

“술 취해서 이름 빼고 네네네 하다가 잠들어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어.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너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난 바꾸는 게 귀찮아서 원래 모습으로 한다고 했어. 이상해?”

“아니. 너는 지금 모습이 가장 예뻐. 바꿀 게 하나도 없어. 완벽해.”

“이 남자 은근히 여자 기분을 맞출 줄 아네. 사실은 군인이 아니라 전직 제비 아니었어?”

“뭐라고?”

“헤헷.”

“하하하하.”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큼 좋은 약은 없는지 하린과 웃고 떠들자 언제 속이 울렁거렸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속이 편해졌다.

캐릭터를 만들 때 최대 20%까지 얼굴과 몸매, 신장을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었다.

신장 170cm인 남자가 2m의 장신이 될 수 있었고, 몸무게 80kg의 뚱뚱한 아줌마가 64kg의 날씬한 젊은 여성으로 돌변할 수 있었다.

몸매와 키, 얼굴 각각 20%를 성형할 수 있어 얼굴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고작 20%로 얼마나 바꿀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코를 살짝 높이고 눈을 조금만 키워도 추녀에서 미녀로 확 바뀌는 게 여자였다.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과 모양은 헤어숍에서 돈만 내면 언제든 바꿀 수 있었고, 화장도 현실보다 100배는 더 잘 먹어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을 만들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현실과 너무 다른 얼굴과 몸매로 가족끼리도 알아보지 못하고 썸을 타다 개망신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하린아.”

“어?”

“도우미 요정에게 들은 건데 영지를 가진 귀족은 기사와 준남작, 부인 등을 임명할 수 있데.”

“그런데?”

“네가 남작 부인이 되면 근력, 체력, 순발력, 지력 스탯 모두 2씩 오르고, 내 영지에 있는 포털도 평생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

영지를 가진 귀족은 계급에 따라 기사와 준 남작, 남작, 자작, 백작까지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가신 시스템이라는 것으로 남작은 기사 3명을 가신으로 임명할 수 있었고, 자작은 기사 5명과 준 남작 2명을, 백작은 기사 10명과 준 남작 3명, 남작 2명을, 후작은 기사 20명과 준 남작 5명, 남작 3명, 자작 1명을, 공작은 기사 30명과 준 남작 10명, 남작 5명, 자작 2명을 가신으로 둘 수 있었다.

귀족에게 작위를 받은 가신은 작위를 준 귀족의 영지에서만 작위가 인정됐다. 영지를 벗어나면 작위를 인정받지 못해 평민 취급을 받았다.

단, 원래부터 귀족이면 가신으로 받은 작위만 사라지고, 부모로부터 받은 작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황제가 임명한 작위가 영주가 임명한 작위보다 우선하기 때문이었다.

영지를 가진 영주는 자기 영지 안에선 황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조세권과 지배권을 황제에게 위임받은 것으로 엄밀히 말해 신하였다. 그래서 영지 안에서만 영주의 권한이 인정됐다.

“지금 게임 핑계로 청혼하는 거야?”

“어.”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너만 좋다면 평생 함께하고 싶어. 진심이야.”

“.......”

남작 부인이 되어달라고 한 건 스탯과 포털 이용이 이유였다. 그러나 진심은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서였다.

가진 것도 없고, 직장도 없고, 팔까지 성치 않고, 고아나 다름없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린과 결혼을 꿈꾸는 건 정말 양심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얄팍한 수를 쓴 것이다.

남작 부인이 된다고 진짜 결혼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The Age of Hero에서 결혼식을 올린 커플이 수십만 쌍이 넘었다. 그러나 이들 중 진짜 결혼에 골인한 연인은 수백 쌍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곁에 있으면 연인을 넘어 결혼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본심을 하린이 단번에 알아차렸다. 속마음을 들키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댔지만, 이제 와 물러설 수 없었다.

남자가 칼을 뽑은 이상 썩은 무라도 잘라야 했다. 그래서 본심을 숨기지 않고 고백했다.

“미안해. 괜한 얘기 해서.”

“아니야. 내가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이상한 말한 내가 미안하지.”

“평생 같이하고 싶다는 말이 왜 이상한 말이야? 나는 좋기만 한데.”

“정말?”

“그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받고 싫어할 여자는 세상에 없어. 아무 말도 못 한 건 너무 놀라서 그런 거지 네가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 오해하지 마.”

“고마워.”

“우리 평생 사랑하면서 살자. 나도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할 테니까, 너도 나만 사랑해야 해. 다른 여자 쳐다보다 걸리면 죽여 버릴 거야. 알았어?”

“알았어.”

“헤헷.”

쪽쪽쪽

귀엽게 입을 쪽 내민 하린이 품에 안기며 입을 맞췄다. 공원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유저와 NPC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에 눈먼 하린은 남의 시선 따윈 까맣게 잊고 내 품에 매달려 연신 입을 맞춰댔다.

“사람들이 쳐다봐.”

“우리가 불륜도 아니고 청춘남녀가 사랑하는 게 잘못이야? 볼 테면 보라고 해.”

“이러다 강의 늦겠다. 그만 가자.”

“강의 듣기 싫어. 너랑 종일 이러고 있고 싶어.”

“앞으로 매일 이러고 있을 거야. 그러니 그만 일어나자.”

“싫은데.”

“어서.”

“히잉.”

심통 반 애교 반을 부리는 하린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공원을 빠져나왔다. 포털이 있는 곳은 도심 중앙으로 이곳이 아틸라 제국 수도 크라쿠푸스 중심이었다.

대학교가 모여 있는 대학로는 동쪽으로 10km 떨어져 있어 가려면 마차나 말을 타고 가야 했다.

서울보다 다섯 배나 큰 수도 크라쿠푸스는 황궁과 귀족 주택가는 북쪽에 있었고, 관공서와 회사, 백화점 등은 도시 중심에 몰려 있었다.

대학가는 동쪽에, 공장은 남쪽에, 평민 거주지는 서쪽에, 농노는 성벽 밖 남쪽에 거주했다.

“말 탈 줄 알아?”

“어.”

“그럼 말도 있겠네?”

“있긴 한데 상태가 별로 안 좋아. 워낙 비싸서 좋은 말은 살 수가 없었어.”

“혹시나 해서 네가 탈 말도 가져왔어. 갖고 있는 말은 다른 사람 주거나 팔아. 그리고 이제부터 이거 타고 다녀.”

인벤토리에서 검은색 전투마를 꺼냈다. 내 말 흑룡과 아주 흡사한 놈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갈기 색깔로 흰색인 것 그것만 달랐다.

“우와! 멋지다. 내 말과는 비교도 안 되게 멋있어. 이런 멋진 말은 처음 봐.”

“이제부터 네 거야.”

“정말?”

“오늘은 준비한 게 이것밖에 없어. 다음에 더 좋은 선물 줄게.”

“이렇게 좋은 말을 줬는데 이것밖에 라니. 난 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 사람 미안해지게.”

“미안하면 결혼 승낙해줘.”

“말이 결혼 예물이야?”

“아니. 예물은 조만간 근사한 거로 줄게.”

“알았어. 그런데 결혼 어떻게 하는 거야?”

“친구 신청하고 똑같아. 결혼 신청 오면 예라고 하면 돼.”

“웨딩드레스 입고하는 거 아니었어?”

“그건 날 잡아서 영주성에서 할 거야. 오늘은 신청만 받아.”

“알았어.”

- 모모 레오 남작님이 하린님에게 결혼을 신청했습니다. 동의하면 ‘예’,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주세요.

“예!”

- 모모 레오 남작님과 하린님은 부부가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 모모 레오 남작님과 결혼한 하린님은 남작 부인이 됐습니다.

- 남작 부인이 된 하린님은 칭호 아틸라 제국의 남작 부인을 획득했습니다.

- 칭호 효과로 근력, 순발력, 체력, 지력 스탯이 각각 2씩 올랐습니다.

- 남작 부인이 된 하린님은 레오 영지의 포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레오 영지의 포털을 출발점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동의하면 ‘예’,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주세요.

“예.”

- 지금부터 하린님의 출발점은 레오 영지입니다. 즐거운 여행하십시오.

“이제 우리 부부인 거네?”

“어.”

“게임에서 부부지만, 그래도 부부는 부부야. 학교에서 딴 여자 보다가 걸리면 죽여 버린다.”

“아.알았어.”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가득 담은 하린이 웃는 얼굴로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자 화내면서 말하는 것보다 100배는 살벌했다.

얼굴은 선녀처럼 아름답고, 목소리는 찰랑거리는 물결처럼 고왔지만, 화내거나 경고를 날릴 때는 표독한 암고양이보다 사나워 발톱에 다치지 않으려면 몸을 납작 엎드려야 했다.

하린과 함께 전투마를 타고 학교가 있는 대학가로 이동하자 지나가는 유저와 NPC들이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말 중에서 가장 싼 조랑말은 금화 5개로 500만 원 선에 거래됐고, 짐 끄는 노역마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 금화 10개에 거래됐다.

사람이 타고 다니는 승용마는 금화 15개에서 20개에 거래됐고, 빠르게 달리는 경주마는 금화 30개에서 100개에 거래됐다.

마지막으로 말 중에 가장 뛰어난 전투마는 최소 200개 이상으로 비싼 건 500개도 넘어갔다.

현실에서도 2~3억 원대에 거래되는 경주마도 종종 있어 The Age of Hero에서 거래되는 말값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큰 성적을 거둔 경주마의 2세마는 3,000만 원대로 거래돼 현실보다 The Age of Hero의 말 가격이 더 비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The Age of Hero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공간이동 마법을 빼면 운송수단이 말밖에 없었다.

커다란 늑대나 호랑이를 길들여 타고 다니며 전투에도 이용하는 비스트 마스터(Beast Master)도 있었지만, 이런 유저와 NPC는 손에 꼽을 만큼 귀했고, 빌려주거나 팔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타고 다니는 이동수단은 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포털은 귀족과 유저만 사용할 수 있는 값비싼 고급 이동수단이라 가난한 평민과 농노는 걷거나 노역마가 끄는 마차를 이용했다.

이처럼 말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나 다름없어 현실보다 The Age of Hero에서 더 비쌀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거 전투마야?”

“맞아.”

“전투마는 시장에 나오질 않는데, 어디서 구한 거야?”

“영지에 있던 말이야.”

“네 영지 부자 영지야?”

“아니. 변방의 가난한 영지야.”

“그런데 어떻게 전투마가 있어?”

“전임 영주 대리들이 타고 다니려고 국경수비대에 압력을 행사해 한 마리씩 가져다 키우면서 그렇게 됐어.”

“땡 잡았네.”

“그렇지.”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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