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 / 0310 ----------------------------------------------
영지를 지켜라!
31. 영지를 지켜라!
아서와 아더 형제를 데리고 아침 훈련을 마친 후 든든히 아침을 먹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아서와 아더는 니콜라스의 제자로 입문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니콜라스가 내 소유물(?)이 아니었다면 아서와 아더는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내게 검술을 배워야 했을 것이다.
평민 출신인 니콜라스는 고생 끝에 프로보스트에 도달해 농노들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해 아주 쉽게 아서와 아더를 제자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으로 사람을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생각이었지 특권의식이 남다른 중세 시대 NPC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니콜라스를 욕할 수도 없는 것이 현대인 중에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성공하면 안면을 싹 바꾸는 종자들도 많았다.
일곱 가지 선물 중 하나라 내 명령을 절대 어길 수 없어 아서와 아더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으로 자긍심이 높은 프로보스트가 농노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일은 아틸라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명령은 무조건 따르게 입력돼 있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리히테나 검술은 물론 니콜라스가 알고 있는 모든 무기 사용법과 격투술, 전술 등을 아서와 아더 형제에게 전수할 것이었다.
호위병으로 활동하는 건 빨라도 3년 후로 애써 키운 아서와 아더를 허무하게 잃을 수 없어 자기 몸을 지킬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쌓게 할 계획이었다.
니콜라스의 도움을 받아 오늘부터 이베리아 검술을 경비대에 가르쳤다. 이베리아 검술은 피오레 열두 가지 검식과 함께 아틸라 제국에서 가장 흔한 검술로 기사 지망생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기본 검술 중 하나였다.
공격 검식 6개와 방어 검식 3개로 이루어진 이베리아 검술은 매우 단조로운 것이 단점이지만, 단조로운 만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응용 동작을 섞어도 무리 없이 검술을 펼칠 수 있어 재능이 뛰어난 기사는 이베리아 검술 하나만 파고들어도 프리 스콜라까지 올라설 수도 있었다.
그런 뛰어난 검술이지만, 스킬 위력이 약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 어려웠고, 검술을 배우는 사람의 99.99%가 귀족으로 이베리아 검술보다 훨씬 뛰어난 검술을 얼마든지 수련할 수 있어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없었다.
“조나단.”
“네, 영주님.”
“경비대 전원이 이베리아 검술을 완벽히 익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기필코 그렇게 하겠습니다.”
“궁술과 방패술, 체력 단련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이들이 앞으로 레오 영지를 이끌어갈 주축입니다. 잘 먹이고, 잘 훈련시키고, 다치면 바로바로 치료해 한 명의 낙오자도 없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충직한 조나단 경비대장만 믿겠습니다.”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영주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주님!”
- 경비대장 조나단이 모모님의 진실한 마음에 크게 감명받아 충성심이 50 올라 87이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름 : 조나단
나이 : 45살
종족 : NPC
계급 : 평민
직책 : 레오 영주성 경비대장
특기 : 피오레 열두 가지 검식(스콜라)
충성심 : 87
성격 : 다혈질이지만 책임감이 투철함
근력 5 순발력 5 체력 6 지력 1
“전체 차렷. 고귀한 영주님께서 비천한 우리에게 이베리아 검술을 내려주셨다. 이런 영광은 아틸라 제국이 생기기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우와아아아.”
“은혜를 내려주신 영주님께 경례!”
“영주님께 충성을!!!”
- 레오 영지 경비병 200명이 이베리아 검술을 전수해준 모모님의 은혜에 크게 감명받아 충성심이 50씩 올랐습니다. 모모님은 100명이 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다란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 업적 보너스로 10,000포인트와 평판 10,000점을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조나단에 이어 이베리아 검술을 전수한 경비병들의 충성심이 크게 오르며 업적 보너스와 평판을 받았다.
병사들의 충성심이 크게 오른 건 이베리아 검술을 전수했기 때문이었다. 농노 병사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영주는 없었다.
아틸라 제국의 영주들은 농노의 반란을 두려워해 농노 병사에겐 검술을 전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술은 고귀한 귀족의 전유물로 간혹 자질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남다른 평민에게 가르치는 일은 있어도 농노에겐 절대 가르치지 않았다.
농노 병사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이베리아 검술을 전수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검술을 가르친다는 건 소모품이 아닌 진정한 병사로 인정한다는 뜻이자, 지긋지긋한 농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커다란 은혜를 베푼 것이었다.
그래서 진정으로 감명받은 것이었다. 또한, 자신들을 알아준 내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것이었다.
아서와 아더 형제도 호위병으로 받아들이고 리히테나 검술을 배울 수 있게 니콜라스의 제자로 입문시키자 단번에 충성심이 100까지 도달했다.
일곱 가지 혜택으로 받은 니콜라스와 래틀 그리고 시녀장이 된 레이첼에 이어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충성도 100을 찍은 것으로 충성도가 100이 되면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충성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단, 니콜라스와 래틀은 선물로 받은 것이라 충성도가 떨어지거나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이런 내용은 아란에게 들은 것으로 충성도 100의 중요성을 알게 되자 측근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충성도 100을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전 게임 X국지처럼 장수에게 돈과 무기를 선물로 준다고 충성도를 100까지 끌어 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선물로 끌어올린 충성도는 계속 선물을 주지 않으면 빠르게 충성도가 떨어져 아까운 돈만 낭비할 뿐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견고한 시멘트 바닥 충성도를 만들려면 돈이 아니라 NPC의 마음을 감복시켜야 했다.
“레이첼, 차 한 잔 줘.”
“네 영주님.”
병사들을 조나단에게 맡기고 집무실로 돌아와 조금 전 하린이의 집 앞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했다.
입맞춤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자 애틋한 마음이 더욱 깊어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쉬움에 1시간 넘게 헤어지지 못하고 집 근처를 배회하며 입을 맞췄다. 마음 같아선 밤새 꼭 붙어 있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하린을 들여보내야 했다.
떨어지지 않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아 하린을 들여보내고 집에 돌아와 또다시 30분 넘게 전화기에 대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내일 수업이 시작되면 이놈 저놈 하린에게 달려들어 밥 먹자, 커피 마시자, 술 마시자 치근거릴 게 확실해 저녁 먹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그렇다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내가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서 까맣게 속만 타들어 갔다.
그러나 이제 불안하지 않았다. 골키퍼가 있어도 골이 들어가는 게 현실이라 키스 한 번에 마음을 놓을 순 없지만, 하린이는 조건과 외모를 보고 남자를 사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돈이면 국민의 마음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도 있는 미친 세상이었지만, 나와 하린이처럼 순수한 사랑을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주변의 흔들림 따위에 넘어가지 않았다. 사랑 하나면 되니까, 그거면 행복할 수 있으니까.
‘내일 아침 집으로 찾아가서 내가 성주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걸 말해야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속여선 안 돼.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나를 버리고 떠난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고, 주변 사람들을 기만하는 그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싶었다.
“영주님, 차 드세요.”
“어.”
일주일(영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알려준 도우미 아란이 떠났다. 고맙다는 작별 인사를 하자 잘 있으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란이 가버리면 허전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영지 관리 역시 엉망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다니엘, 조나단, 니콜라스, 래틀, 레이첼, 아이린, 아만다 등을 사귄 게 도움이 됐는지 아란이 사라진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허전함이 사라지고, 영지 발전도 계획대로 잘만 굴러갔다.
아란에게 기대려 했던 건 유모와 은하 이후 나를 챙겨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5년간 몸담은 군대에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 전우는 없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반쯤 닫고 살아 그런 것이겠지만, 주변 환경도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있던 중대에는 선임과 후임만 있었지 동기가 없어 마음 놓고 말할 상대가 없었다.
군대 가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선임과 후임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6년을 살다 아란을 만나자 유모와 은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란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따뜻하게 조언해준 건 사실이었지만, 처음 아란이 자기를 소개했던 것처럼 영지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잠시 도와주는 존재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정에 많이 굶주려 있었나 보네. 도우미 NPC에게 애정을 느낄 만큼. 그러나 이제 그런 일은 없어. 하린이 있으니까.’
“영주님, 말 준비됐어요.”
“가자.”
“정말 저도 타야 하는 건가요?”
“어.”
“에휴.”
“한숨 쉬지 마. 복 달아나.”
“네.”
바람을 가르는 기수처럼 능숙하게 말을 몰지도 못했고, 마장마술을 하듯 멋지게 장애물을 뛰어넘지도 못했지만, 5일 동안 열심히 연습하자 제법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었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에 빠르게 승마를 익혔지만, 게임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The Age of Hero에선 현실보다 빠르게 각종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시간이 4배 많은 것도 이유였지만, 너무 지루하면 유저들이 싫어한다고 슈퍼에고 컴퓨터 환인이 판단했는지 현실보다 몇 배 빠르게 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NPC는 적용되지 않는지 레이첼은 여전히 천천히 걷는 말을 타는 것도 어려워 높은 안장에 앉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어댔다.
레이첼이 부서질 것 같은 엉덩이의 아픔과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나는 온몸이 검은 전투마 흑룡을 타고 넓은 목장을 마음껏 달렸다.
영주성 남동쪽에 넓게 자리 잡은 목장은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어 산책로로 삼아도 될 만큼 경치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경치 구경은 배부른 나에게나 어울리는 얘기였지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농노들에겐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꿀 수도 없는 얘기였다.
농노들에게 목장은 온종일 가축 먹이 주는 끔찍한 일터였고, 푸른 초원은 손이 부르트도록 가꾸어야 하는 저주받은 땅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못 본 척 신나게 달렸다. 불쌍하다고 오늘 하루 쉬게 한다고 농노들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 못다 한 일을 내일 몰아서 하게 돼 골병만 더 들었다. 그런 감상적인 생각으론 농노들을 도울 수 없었다.
온종일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그들을 돕고 날 이롭게 하는 것이었다.
땡땡땡땡 땡땡땡땡
“무슨 일이야?”
“북서쪽 농지에 몬스터가 침입했다는 경보입니다.”
“앞장서.”
“네, 영주님.”
조나단의 첫째 제자 루니가 빠르게 말을 몰아 북서쪽 농지로 달려가자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영지의 경보체계는 아주 간단했다. 3초 간격으로 한 번씩 연속으로 울리면 북동쪽 농지에 몬스터가 침입했다는 뜻이었다.
두 번씩 울리면 남동쪽에 있는 목장, 세 번씩 울리면 서남쪽 농지, 네 번씩 울리면 북서쪽 농지, 다섯 번씩 연속으로 울리면 철광석 광산과 광산 마을, 쉬지 않고 연달아 울리면 영주성이 공격받는 것이었다.
영주성을 가로질러 한달음에 북서쪽 농지 끝에 도착하자 레벨 23짜리 흑곰 3마리가 일하던 여자 농노 1명을 잡아먹고 있었다.
발 빠른 젊은 농노들이 도망치자 영악한 흑곰들은 늙고 병들어 달릴 수 없는 늙은 여자 농노를 붙잡아 목을 부러뜨린 후 게걸스럽게 내장을 빼먹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